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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출장은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그것은 인내의 실험이었고 또한 새로운 도약이었다. 도전과 시련에 대한 극복 해 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허로운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어찌보면 눈물겨운 고뇌 뒤에 절망의 순간이 해방으로 바뀌었고 오랬동안 가슴을 후벼팠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하여 비로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고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과 설계를 수정하고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할까?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휴유증으로...

부산 출장 (128) 신설 공장 (7)

2009.10.28 10:50

文學 조회 수: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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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톤 봉고 화물차 안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자는데... 춥고 다리를 펼 수 없어 불편하기만 하였다. 그림을 그릴 때 사진을 찍어서 그것을 토대로 일러스트로 그리지 않으려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냥 떠오르는 상태로 그림으로서 여러가지 방법을 터특하고 싶어서라고 할까? 잘못그리면 어떤가! 단지 표현력을 발휘하는 게 나을 듯 싶어서다. 사진을 그대로 그린다며 그게 어디 그림인가! 모방이지... 그림이란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고 화가의 의도를 그대로 방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방법이 적절한 방법임에랴! 그렇지만 그릴 때마다 항상 좋지 못하다. 왜냐하며 짧은 시간에 대강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

 

 화물차에서 잠을 잤다. (10)

 

  월요일(10월26일)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쯤 출발을 하여 5시에 대동 IC로 빠져 나간 뒤에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대동 IC는  구포역에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였다. 그래서 이 공장에 AS를 오게되면 구포 다리를 건너서 낙동강 둑길을 계속 오르게 되면 대동이었다. 하지만 낙동강 반대편의 구포와는 다르게 반대편은 개발이 되지 않았으므로 무척 낙후되어 있었다.

  오후 5시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기계를 내려 놓고 설치하니 시운전할 시간도 많지 않아서 7시까지 두 시간만 설명과 시운전을 하고 보니 네 사람의 공장 사람들 퇴근시간이 6시를 넘겼으므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만하고 내일 봅시다!"

  "차를 놓고 기왕 찜질방에서 잘 것 같으면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고 사장이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했으므로 부담을 주기 싫어서 거절했다.

  "아닙니다! 저 혼자 찜질방을 찾아 가겠습니다."

  "이 근처에는 없습니다만... 구포역 근처라면 모를까?"

  "그럼, 그곳으로 갈테니까 염려 마시고 가십시요!"

  모두를 보내고 뒤늦게 차를 운전하여 그곳을 빠져 나올 곳이 없어서 구포쪽으로 차를 운전하였다. 시골의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리고 나니 대동면 소재지가 나왔다. 그리고 다시 낙동강의 뚝 아래쪽 길을 줄곳 달리자 구포대교가 나왔다.  구포대교를 건넌 뒤에 고포역 앞의 대로변을 달리다가 차를 세워 놓을 곳이 없었다. 아니, 내 딴에는 구포대교를 건너 반대편에 세우고 걸어서 구포 대교를 넘고 싶었다. 마침 구포역 앞에서 유턴을 하자, 구포대교로 오르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반대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서 구포역앞의 돼지국밥집에서 순대국을 6,000원 주고 사먹은 뒤에 주위를 걸어본다. 

  구포역 앞은 자주 오는 곳이었다.

  1시간의 거리를 걸었으므로 다리가 무척 아팠다. 왕복 2시간의 거리를 걸었으므로... 그러나 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머리가 핑 돌았다.

  '아, 다시 어지럼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내게 올 한해 이 어지럼증으로 인하여 두 어번은 쓰러졌었다. 2월에는 응급실에 부축하여 실려 갔었고 가을에는 이마를 다치고 찾아온 어리럼증으로 꼼짝을 하지 못한 체 아내가 올 때까지 꼼짝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아마도 누군가에게 신세질수도 없었다. 그런 두려움이 앞섰지만 현기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도 구표역의 음식점에서 먹은 순대국밥 때문에 체했던 것같다고 진단을 내렸는데 하루가 지난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 그 증상(배가 아프고, 머리가 띵한)를 다시 한번 겪고 나서야 저녁을 먹지않고 소화제인 까스활명수를 먹고 잠을 잤었다.

  

  이번에는 잠자리가 문제였다. 구포역 앞에서 찜질방을 아무리 찾아 봤지만 없었으므로 차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차를 운행하여 다시 거래처의 공장 마당까지 온 뒤에 머리도 아프고 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불편한 잠자리였다. 다리를 곧게 펼수도 없었고 덮을만한 이불도 없었다. 또한번 천막으로 된 원단을 펼쳐서 이불삼아 덮고 있었지만 차가운 느낌 때문에 잠에서 몇 번을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