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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출장은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그것은 인내의 실험이었고 또한 새로운 도약이었다. 도전과 시련에 대한 극복 해 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허로운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어찌보면 눈물겨운 고뇌 뒤에 절망의 순간이 해방으로 바뀌었고 오랬동안 가슴을 후벼팠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하여 비로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고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과 설계를 수정하고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할까?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휴유증으로...

2. 배경 설명

2014.02.09 00:05

文學 조회 수:307

  어린 날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었다. 마치 돈에 환장 들린 사람처럼 같았다. 그는 뾰족하게 내세울 게 없었다. 그래서 되레 그게 자신을 움츠리게 하였다. 그녀 앞에 당당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하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던 것이다. 

  사실 크고 작은 중소 공장들은 산업단지, 공단지역에 밀집하여 몰려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못사는 달동네의 재개발이 아직 못 미치는 도심지의 낙후된 빈촌 한복판에 위치한 주물공장은 부지가 일만 평정도의 크기나 되었으며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곳에 있어 왔었다. 주변이 주택단지로 들어서게 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끊임없는 소음과 분진 공해 때문이었다. 특히 주야 작업으로 야간에 일어나는 소음공해는 많은 진정서를 구청에 접수시켰다. 그로인하여 제기된 주민들의 민원으로 곧 이전할 것처럼 소문까지 나돌았으나 여전히 이전하지는 않았으며 늘 건재하였었다. 그리고 삼 십 년 뒤에는 이곳 모두 재개발 단지로 지정되어 보상을 받고 주민들과 공장 모두 이곳에서 떠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어쨌든 그 당시, 큰 공장이 주택단지 한 복판에 위치하여 좋은 점은 공단지역보다 직원을 모집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반면 동네에서는 이 공장으로 인하여 반상회의 가장 큰 이슈이기도 했다. 물론 그래서 공장은 제 2공장을 공단지역에 구입하였지만 쉽게 떠나지 않았고 그 이유가 종업원을 모집 하는데 유리하다는 조건으로 보여 졌었다. 그 이유는 항상 정문 앞에는 모집공고가 붙어 있었으며 동네 사람들 중에 건강한 사람치고 이 공장에서 근무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일까? 공장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고 구청의 담당자는 동네 주민들은 큰소리를 내었고 구청의 환경 담당자는 대변자로서 여러모로 압력을 행사하여 왔었다.

   서 광일로서는 이 동네에서 낳고 자랐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이 공장에 대한  많은 의문을 느껴 왔었고 소문을 듣고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이 공장에 직공으로 입사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도 순전히 가족들을 위한 희생을 염두에 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의 가족은 부친의 무능력함으로 인하여 연명하기 힘들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여 왔었으니까?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진로를 포기한 결과였다. 그래서 모친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이 공장이 방위산업체라는 사실을 알고 입사를 하여 수습기간을 거쳐서 결국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을 받게 되었다.

  말 그대로 산업기능요원(특례병이)이 되었다.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기술 자격증 등을 습득하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하겠다는 일념으로 꿈을 키워 왔었던 결과였다. 그가 알기론 이 회사는 방위 산업체 일뿐만이 아니고 법정관리 회사였다. 회사가 부도가 나서 여러 차례 관리 회사가 바뀌다가 결국 지금의 신남방직이라는 모계 회사의 직계 회사로 소속되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주 생산 품목은 방직기계의 부품가공이 절반을 차지 할 정도였다. 

   그가 방위산업체로 입사하게 된 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특별한 이유였다. 나이 스무 살부터 한 가족의 가장이 된 것이다. 모든 게 자신의 선택으로 뜻대로 된 것이지만 사실 군복무로 가지 않고 5년간을 회사에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근무하게 되면서도 봉급은 박봉이나 다름없었다. 특례자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이 그에겐 가장 큰 불만이었다. 직원들과 똑 같이 일을 하면서도 월급이 많지 않다는 불편한 점은 특례병의 한결같은 공통점이었다. 그런 불리함에도 퇴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마디로 특례자로서의 말도하지 못하는 불이익라면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점으로 인하는 회사생활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잔업은 물론 철야작업과 특근으로 인하여 언제나 퇴근은 밤늦은 시각이던가, 새벽녘이었다. 한 가지 사실만으로 대책 없이 사회진출 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군복무 대신 선택한 방위 산업체 근무였다. 그곳에서 그는 순진하고 어리숙하고, 그리고 기계적인 일에 빠진 직공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