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오산 출장은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그것은 인내의 실험이었고 또한 새로운 도약이었다. 도전과 시련에 대한 극복 해 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허로운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어찌보면 눈물겨운 고뇌 뒤에 절망의 순간이 해방으로 바뀌었고 오랬동안 가슴을 후벼팠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하여 비로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고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과 설계를 수정하고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할까?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휴유증으로...

대전 동부 시외버스 터미널 (10)

2009.11.03 01:11

文學 조회 수:3327

 

UNI00ef.gif

  -내가 만든 기계..

  이 기계는 원통형의 지관(紙管)을 카팅하는 기계였다. 그렇지만 사람이 작업하던 것을 기계가 작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작업 방법을 숙지하고 그것을 응용할 수 있는 작업자가 필요했다. 아울러 점차 기계의 부속품을 교환하는 시점에까지 견문을 넓혀야만 정확하게 기계를 숙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자들은 기계의 고장 유무를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기계를 납품하고 계속하여 A/S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UNI00ed.gif

  -어떤 방식으로든 기계의 사용 용도가 있기 마련이였다. 간단한 것같으면서 복잡했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또한 전문가들에게 기계의 작동 유무를 숙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견문하고 견식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기술 지원을 하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순전히 공장에서 자신들의 후개자를 양성하여야만 했다. 하지만 때론 그게 잘 되지 않았고 다급할 때늠 누조건 내게 A/S를 요정했었다. 물론 공장마다 제각각이었다. 어느 공장은 조금만 이상이 있었도 불렀지만 다른 곳은 한 번도 가지 않아도 되었다. -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경기도 용인으로 가는 직행 버스 안이다. 원래는 멀미가 심하면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참을 정도여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들고 글을 쓴다.

  충북 옥천에서 대전까지 오는 도로에서 노랗게 핀 가로수 단풍나무의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전경이 가을이 깊어짐을 느낀다. 성큼 다가선 추위로 옷깃을 여민다. 엊그저께 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 뚝 떨어져서 내린 아침 기온이었다.


  엊그저께 어제 이틀 동안 아들이 일을 하고 갔다. 사실을 기름 값이 없어서 기름을 넣으려고 오는 것이었지만 기실 딴 속셈이 있음이다.

  “네가 기름을 넣어 줄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아들이 차를 사서 기름으로 제공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부터는 외상은 사절이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이제 호언장담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적어도 제가 기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가슴이 찔리는 대목이었다. 왜냐하면 7만원에 이르는 기름 값은 내가 2주에 한 번씩 부담한다는 것은 그만큼 역겨웠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공짜로 기름을 넣어 줄 정도의 아량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있을까? 적어도 내가 클 때는 그렇지 않았었다.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기름을 넣어 줄 바에는 차라리 개나 주는 게 나으리라!’

  기실 이것은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또한 중차대한 고민으로서 나는 자식에게 2주에 한 번씩 돈을 털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중대한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게 내용인즉 기름을 공짜로 넣어주지 않는다는 발표였던 것이다.

  “네가 계속 아비 속을 썩이는 걸 왜 모르더냐?”

  “…….”

 

  신종플루로 다 죽어 간다고 제 어미가 말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서울 출장을 갔다가 오후 5시 무렵에 돌아 왔는데 방 안에 아들이 떡하니 누워 있지 않은가!

  “넌 왜, 또 왔어? 오늘이 목요일인데…….”

  아들을 얼굴만 보면 내 불만은 다시 피어난다. 기름이 떨어질 만하면 집을 왔으므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도움이 도지 못하는 자식 놈 때문에 계속하여 속이 끓는 것은 젖혀두고서라도 학생이 차를 갖고 다니면서 기름 값을 아비에게 타가는 그런 몰상식한 불효자를 두고 극심한 고민을 계속 해 왔으므로 이제는 사생결단을 내릴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신종풀루에 걸려서 다 죽어가는 걸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타다가 먹고 해서 지금 겨우 낫은 거예요!”

   “신종풀루?”

  그러고 보니 아들이 누워 있던 이불 속 머리맡에는 타미플루 약상자가 놓여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두 신종풀루에 걸렸다는 데 옮긴 거죠! 대전 건양대학병원에 주사도 맞고 했다는데 낫지 않았나 봐요. 관저동(대전에 있는 아파트 아들, 딸, 장모님, 옆집의 그리고 옆집의 딸이 살고 있다) 아파트에서 건넛방에서 혼자 하루종이 누워 있었다는데 먹지도 않고 했으니 누가 거들떠도 보지도 않아서 그만 더 나빠진 거죠. 그래도 학교에 가야 된다고 등교 했다가 붙잡혀서 체온을 무려 37도나 되고 해서 집에 가라고 쫓겨 난거죠! 제가 갈 데가 여기 밖에 더 있어요! 다 죽어가니 와서는 누워만 있기에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 맞고 약국에서 처방전 데로 타미풀루약 타다 먹고 이게 좋아진거죠...”

  아내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 나는 아들에 대한 신상을 알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혹심을 품었다. 적어도 기름 값은 주지 않겠다고 못을 박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름 값은 네가 벌어서 넣어... 난 못준다!”

  “...”

  아들은 내가 다구치자 아무 소리를 못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다시 넣어주곤 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선언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어떻게 보면 실효성이 없었지만 이번 만큼 절대로 굽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2

  지금 용인으로 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내게 중요하던가!

  사실상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전혀 여유를 갖지 못했으므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행 중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다니면서부터였다. 또한 노트에 글을 적게 되면 나중에 집에 가서 옮겨 적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어쨌튼 이 시간에 나는 차량을 갖고 다니지 않으면서 그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사실을 집중도를 떨어트릴수 있는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녘(보통 상행선 첫 기차가 5시 44분이었으므로 4시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일찍 깨어 잠을 자지 못한만큼 기차 여행 중에 잠을 보충하게 되는데 그 것 때문에 극심한 신체적인 불균형을 일으킨다. 가장 큰 것이 멀미였다.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피로하여 멀미로 인하여 글을 집중하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의자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쓴 것을 홈페이지에 옮겨왔었다.

  오늘 용인에 가는 첫 차는 9시 20분 출발 용인에 10시 50분에 도착했다.


                             3.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3시 차였다.

  용인에서 신갈을 경유하여 수원 IC로 진입을 하는 듯하였다. 신갈에서 겨우 세 사람 태우기 위해 한참을 돌아가는 데 승객들은 반응이 없다. 직행버스측의 코스 조정은 아마도 일방적인 듯하다. 그렇게 돌아가는데 조금 시간을 할애한다고 복잡하게 생각할 께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시외버스 배차 시간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들 중에 신갈을 경유하거 운행하는 차량이 끼워져 있었으므로 그 내막을 잘 몰랐었는

데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