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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21. 오리의 세계

2004.11.27 09:24

문학 조회 수:2970 추천:3



그들 오리 무리의 세계가
우리들 인간 세계마냥
같은 색깔 ,
같은 느낌이
있음을 봅니다.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리며
체계가 있고 계율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 세계는 인간이 못다한
한계 밖의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2001년 5월 23일-


  “형님, 전데요 지금 옥천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 어디까지 왔느냐?”
  “대전 시내... 버스차 안인데... 어머니도 함께 계셔요.”
  “그래, 알았다. 도착하면 전화해라!”
  “예……”
  서울서 대학원을 다니는 막내 동생이었다. 받자마자,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어젯밤에 모친과 아내가 통화하던 것이 떠올랐다. 거실의 장식장 탁자 앞에까지 걸어가서 전화를 받으며 벽에 걸린 쾌종시계와 달력을 보았다.
  오전 10.
  일요일.
  기계를 만드는 철공소를 운영하는 나는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일을 한다. 주문 받은 기계를 납기내에 완료하기 위해서 잔업과 일요일 근무를 계속해야만 했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여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구멍가게를 하나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누가 사업을 한다면 보따리를 싸고 가서 만류하리라! 그 정도로 영세업소(작고 소규모의 업소)의 실정은 힘이 들었다. 뼈빠지게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현상유지를 하기 힘들다보니 항상 남보다 더 많이 시간을 내서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힘에 부치는(들어 올릴 수 없는) 쇠덩이를 깍고 용접하는 무리한 작업, 하루도 거르지 않는 밥늦게까지의 잔업, 그리고 일요일도 쉬지 않고 특근은 예사로 하였다.
  '10년이 넘게 운영하면서 어디 마음놓고 쉬고 여행을 간 적이 한번이나 있던가!'
  이렇게 힘들게 운영한 탓에 조그씩이나마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곳 옥천에 100평 정도의 땅을 매입하고 3층으로 건물을 지어 1층은 공장, 2층은 창고, 그리고 3층은 살림집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반대로 대전광역시에 사시는 부모님과 동생들이 찾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어젯밤 11시까지 일을 한 탓에 거짐 늦장을 부리는 중이었다. 통화를 끊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앞으로 3~40분 쯤 뒤에는 옥천 역 앞으로 1톤 화물차로 마중을 나가야만 하였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구름이 보이지 않는데도 흐리다.
  2월 초순의 차가운 바람속에 이따금 진눈깨비가 내렸다.

  일 년 전이였던가……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막내 동생이 불쑥 친구들과 옥천에 찾아 왔었다. 여자 하나와 남자들 세 명. 그 당시에는 새끼 오리를 사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지 않았을 때이고……
  다른 젊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특색을 찾아 볼 수 없는 도시의 청년들과 처녀였다. 그들이 동생과 함께 잠시 들렸다 갔지만, 내게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었다. 아내가 차 한 잔씩을 끓여 준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키 작은 아가씨를 친구들이 막내 동생에게 소개를 해주고 한참 열애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나,
  "잘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한게 탈이지!" 하고 아내는 핀잔을 늘어 놓곤 한다.
  딱이나 맺여진 인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생에게 엄청난 빚을 남기고 헤어졌으니 연애치고는 너무도 값진 보상이었다. 그만큼 상대방을 모르고 사랑하면 많은 후회와 물질적인 빚(부체)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탓이리라!

  왜, 이런 젊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하여 거론하는가!
  왜냐하면 사랑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사기를 치려는 많은 남녀가 덧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게되면 눈이 멀게되고
  자신도 모르게 도박, 범죄를 저질르게 되고
  마침내 사랑이 식어버리개 되면(자연히 냄비처럼 뜨겝게 달아던 사랑은 식기 마련이다),
  남는 것은
  탕진한 돈과 늘어난 카드 빚으로 엄청나게
  불어난 값비싼 교훈을 배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무지하고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 연유에 대하여 아니면,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기까지에는,
  ' 아, 내가 이렇게 철부처럼 무지하고 어리석었을까?' 하고 후회하게 되리라!
  부모, 형제, 친구의 권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사랑에 눈이 멀어던 자신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고 자중하며 참회하는 도리 밖에는
  할일이 없음을 또한 슬퍼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 쓰는 갈퀴로
  쇠똥과 볏집을 긁어 내듯이
  가슴 속을 모조리 후벼파고 찔러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고통으로 몸부림칠때쯤에
  아, 내가 왜그랬을까? 하고
  후회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평생모은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어쨌튼 사람에게 사랑은 중요하였지만
  그 도구는
  예리한 칼날이 되고
  눈물처럼 슬픔을 간직하기도하며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을 밣히며
  자신의 인생을 값지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두 번째의 사랑만은
  절대로 첫 번째의 오점을 다시 밟아서는 안되다.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2004년 11월 29일 수정-
  
  지금까지도 막내동생에게 남은 빚을 청산하게 된 나와는 대조적인 사랑의 열병에 대하여 조금 밝혀 두고저 한다. '날아가는 오리 2편'의 내용들은 '사랑, 실연, 참회, 고통, 번민 그리고 다시 사랑'순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사랑은 예리한 칼과 총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패가 되어 자신의 죄악과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무슨 연유로 사람들은 사랑을 할까? 적어도 내가 돈을 쓰지 않고 절재하면서 사랑을 하였다면 막내 동생은 카드로 분에 넘치는 돈을 썼다. 내가 정신적으로 많은 방황과 번민을 한하였다면 동생은 높은 이자의 카드빛으로 결국에는 몇년에 거쳐서 부체에 시달리게 된다. 그 사실이 다르다면 다를까? 사랑이란 이렇듯 어떤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고 처음이라면 그것이 독버섯처럼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독제를 준비하고 사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하여야만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면서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그 노도와 같은 폭풍 속에서 가장 현명한 대처는 많은 상처와 빚을 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황에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하여 알지 못하리라고 감히 말하리라! 단지, 열꽃이 온몸을 감싸고 뜨겝게 달아 오르게 되면 최선의 방법으로 나중을 위해 자신에 맞게 사랑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만약, 그 정황에 대한 그만큼의 마음의 준비와 방향과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면 몇 년간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산다.그리고 떼론 페인이 되기도 한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 부모 형제를 버릴 참이냐!"
  그렇게 주위의 권고를 듣고도 무뎌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 막내 동생에게 소개해 주웠다는 임 양이 문제였다.
  아내와 나는 딱 세 번인가 보았을 뿐이다. 근 일 년 간 끌어오던 그들 두 사람의 교제가 종지부를 찍기까지 얼마나 깊은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관계만큼 고심하고 있을 막내였다. 바로 한 달 전에 내가 한 말로 인하여 막내가 결별하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으니까 내게도 책임이 있었다.
  바로 한 달 전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찾아와 이틀을 기거하면서도 여자와 전화를 하는 표정이 안 좋게 보였었다. 조카들과 금강 유원지를 놀러 갔다 오면서도 얼굴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이런 때는 무엇보다 여자의 육감이 빠른 법인가 보다.
  “근데, 도령님이 이상해요. 통 여자 분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좋아 죽을 듯이 행동 해 오던 예니 때와 달리……”
  “아빠, 금강 유원지에 놀러 가서도 삼촌이 전혀 전화를 하지 않아요.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불나게 전화 하더니 오늘은 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았어요!”
  나와 아내가 하는 말을 주워듣고 아들놈이 나서서 한마디 거든다. 그렇지만, 나는 감각이 둔했다.
  “오늘 만나기로 했으면 어서 나가봐라!”
  “괜찮아요. 저가 만나기 싫은 모양여요……”
  “어째, 이상하다. 너희들이 서로 좋으면 올 해 결혼하기로 하지 않았니?”
  임 양이라는 아가씨를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약혼식 겸 상견례 회식(會食) 자리에서다. 그녀의 집에서는 부친, 모친과 큰 언니가 나왔고 우리는 어머니, 나, 아내, 그리고 막내가 나갔었다. 결혼 날짜를 확답 받으려고 우리 쪽에서 만나길 원해 마련한 자리였다. 내가 듣기론 부여에서 농사를 아주 크게 짓는다고 했다. 한 여름에는 수박을 여러 통 얻어먹었고 가을에는 팔지 못해 밭에 굴러다니는 무를 자루에 담아 얻어 다가 내려놓고 가서 농사를 많이 짓는가 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부모끼리 대면한 석상에서도 결혼 얘기는 은근히 언급을 회피하는 여자의 아버지였다.
  “올 가을에는 안 되고……어쨌든 조만간 확답을 주지요. 가만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여자는 결혼하면 고생 아녀요. 좀더 있다 하는 편이 이롭지요. 호호호”
  여자 측에서 아버지와 큰 딸이 유독 만류하는 듯 했다. 도데체가 왜, 무슨 이유로 결혼을 한사코 미루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의심부터 했었다.
  “왜, 저렇게 결혼을 미루는 거지?”
  내가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사실은 큰 언니에게 얹혀사는데, 동생이 모은 돈을 다 썼는가 봐요. 시집갈 밑천이 없다보니 자신들이 없나보죠. 부모가 땅을 팔려고 내 놓았는데 경기가 없어서 팔리지 않는데요.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은 못하고 저렇게 핑계거릴 찾는가 보죠.”
  그렇게 아내가 코치를 해서 비밀스런 내막은 알았지만, 은근히 불쾌했다. 그들 식구들의 투박하고 경박한 말투가 바로 막내딸인 임 양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비쳤었다. 어찌 보면 교미가 되지 않는 순오리(아이들은 왕따오리라고 부른다.)처럼 어리석고, 못나고 또한 도도하였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말하는 투가 그렇게 경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막내를 위해 전혀 내색하지 않았었다.
내 딴에는,
  ‘콧대가 세구나!’
  ‘인물값을 하는구나!’
  ‘결혼해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겠구나!'
  ‘왜, 저렇게 예의가 없이 말씨가 톡톡 쏘고 드셀까?' 하고 처음 대화를 했을 때 알아 봤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막내가 좋으면 됐다고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게 아니니까. 둘이 좋으면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결혼해선 어데서 살 거냐?”
  내가 왜 그렇게 물었는지 모른다. 전혀 의도(意圖)가 없는 말이었다.
  “그냥 여기와 살고 싶어요!”
  이게 웬 동문서답이냐? 저희들이 알차게 계획을 했으련만 이건 전혀 딴판이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 옥천서 살겠다고 했냐?”
  제 딴에는 큰 형인 내가 성공한 것처럼 비쳤는가보다.
  “그래, 겨우 나처럼 되라고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했단 말이냐! 여기 옥천서 학원 차리겠느냐, 출판사를 차리겠느냐! 여긴 너무 비좁고 시장이 좁아 네가 놀 물이 아니다. 죽으나 사나 서울서 있어라! 거기서 네 연고지가 있잖아 대학을 나왔고 대학원을 나왔으니 아는 사람을 찾아가면 길을 알려주고 방법을 찾기 쉽지 않겠냐.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되지 말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큰물에서 놀아야 되는 법이다.”
  나는 일장 훈시를 했다. 동생에게 어떤 의향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뜻이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되니까. 할말을 했을 뿐인데, 어떻게 된 건지 막내는 그 동안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던 게 일시에 풀린 모양처럼 심각해 보였다.
  “요즘은 너무 힘들어요.”
  “왜?”
  “여자가 만나 주질 않아요! 그래서……”
  동생이 그 뒤의 내용을 밝혔기 때문에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서울과 대전에 떨어져 있다보니 서로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점, 계속 되는 불안으로 조바심이 나서 찾아 가면 벌써 의처증이 있는 게 아니냐고 구박하는 점, 또한 백화점에 다니는 여자를 퇴근 무렵에 찾아 가면 회식이 있다 야근이다 하며 만나주지 않는 점, 그런 모든 사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남자가 생긴 것 같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용을 알라 보고 만약 그렇다면 헤어질 생각이라는 것 등을 털어 놓았다.
  “그래, 그런 여자와 살면 네가 힘을 펼 것 같으냐? 모르긴 해도 평생 여자 뒷바라지만 해야 할 거다. 결혼해서 성격을 고쳐 나간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결혼은 서로를 구속하는 겻이 아니고 방임하고 존중하는 건데, 어떻게 믿고 산다는 거냐. 진작 하고 싶던 말이다.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잘 생각해라!”
  마지막으로 그렇게 충고를 했지만, 결코 다른 뜻은 없었다. 내 딴에도 막내에게 거는 기대가 컸었다. 서울서 대학원까지 나와 한 여자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와 여자 뒷바라지를 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자가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네 나이가 몇이냐! 서른 살이나 되어서 이제 시작하겠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사회는 냉정한 거다. 네가 크고 널 알아주는 서울에서 네 꿈을 키워야만 한다. 그곳에서 같은 뜻을 가진 여자를 만나 학원을 차리던가 해서 같이 일어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고 쉽게 자리를 잡는 방법임을 왜 모르더냐. 물론 이젠 다 부질 없고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네가 그렇게 처신하길 바랐었다. 되 바라지 않은 여자 치마폭에 가려 네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주저앉는 네 모습이 보였지만 언제 한마디 싫은 소릴 했었느냐. 그렇지만, 널 위해서 나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를 설득해서 서울로 올라가겠다. 그것이 빠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다.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올 해 결혼해서 내 여자로 만들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라!”
  “.......”
  막내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에게 들을 말이지만 그날 저녁에 여자를 만나,
  “자! 너도 내가 싫지! 이젠, 그만 만나자 싫은데 구태여 만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이젠 끝내자. 아주 영원히……” 그렇게 고별을 선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