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협조에 대하여...

2008.05.10 18:10

문학 조회 수:3533



  - 옥상에서 바라본 ** 토건 회사 사람들...
  정화조와 하수도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통합하여 폐수처리 하기 위해 동네 골목을 파혜쳐서 관로를 묻는 공사를 하기 위해 바로 옆 논을 2년간 빌려서 필요한 장비와 도구등을 진열하듯이 놓아 두웠다. 아침 체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3층의 집안에서 문을 열고 디카로 사진을 찍었다.-  

  오전 6시에 핸드폰의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 났다. 어제 오후에 김포로 출장을 나갔다가 밤 11시 30분에 집에 돌아 왔으므로 하루종일 공친 것이어서 오늘을 아침부터 서둘러야만 했다. 어제 하지 못한 일을 해야겠지만 이미 잃어버린 시간만큼 보상받을 길을 없었다. 기계를 납기한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사실은 기정사실이었으므로...

  일찍 일어났지만 나는 공장으로 내려가서 서둘러 일하지 않았다. 대신 어제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차 안에서 공책에 쓴 내용들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옮겨 적었다.

  밖에서는 체조 소리가 들려 왔는데 '**토건' 이라는 회사의 직원들 20여명정도가 모여 아침 체조를 시작하였으므로 3층에서 베란다 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의 일은 굴삭기(포크레인) 2미터 깊이의 땅을 파고 그곳에 관을 묻는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폭 1미터로 깊이 2미터를 지하로 파서 그 아래에 푸라스틱 관과 콘크리트로 만든 중간의 수집관 넣어 연결하게 되는데 불과 1년 전에 한 사람이 흙더미에 깔려 죽었다고 했다.
  "물 좀 줘!"
  "망치도 주고..."
  "핸드드릴을 찾아 주고..."
  아래에 내려간 사람과 위에서 보조를 하는 사람들 간에 협조가 무척 중요한 듯 했다. 골목골목을 파헤쳐 관을 묻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하천 쪽에 가까운 우리 집 앞으로 연결지어 내려오기 시작하자 나는 어제 전혀 차를 운행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흙을 쌓아 두웠으므로 무척 곤란했었는데 지하로 내려간 사람과 위에서 필요한 것을 건네주는 사람들간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간간히 나가서 작업하는 모습을 살피곤 했었다.    

  무척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굴삭기를 이용하여 일사천리로 진행하여야만 하는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속도를 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2미터 깊이의 지하에 내려간 사람들은 기술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전문가 답게 둥군 원형의 멘홀로 보이는 시멘트 관을 세웠는데 깊이에 따라서 1층, 2층, 3층으로 겹쳐서 체결을 했다. 그 상층부에는 둥근 원형의 멘홀 뚜껑이 닫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양쪽으로 다음 멘홀까지 200미리 정도의 푸라스틱 관이 연결되게 되는데 그 각도가 다르므로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자그만치 200미리고 구멍을 뚫는데 엔카볼트를 박고 그 곳에 드릴을 고정하여 물과 함께 원통형의 드릴을 대고 손으로 밀였다. 드릴머싱의 스위치를 댕기자,
  "엥엥...."하는 기계 소리를 내면서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였다.    
  "구멍이 다 틀리네요?"하고 내가 위에서 2미터 아래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보조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묻자,
  "다음 맨홀과 방향이 틀려서 맞춰 뚫어야 하니까요!"하고 말했다.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집앞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나는 개미를 보는 것처럼 행동이 매우 빠르고 민첩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별로 사진을 찍던가 측량기계를 세우고 망원경으로 계속 위치를 확인하였으며 머리 위에서는 굴삭기에서 들어 올려진 시멘트의 관이 아래로 내려뜨려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었다.
  "작년에 땅 속에서 작업하던 사람이 흙이 무너지면서 죽었다는 거야!"
  "그래!"
  "그래서 작업이 중단되고 다시 재계되기까지 많은 시일이 걸리니까 회사측에서도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어! 우선 죽은 사람 가족들은 어떻고...."

  우리 옆집의 포크레인 기사가 하던 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몇 일간 일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타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런 얘기를 내게 해주곤 했었다. 그렇지만 토목공사를 진행하는 대규모의 프로텍스는 '하수정화시설'를 위한 것이었다.

  수질관리구역으로 묶여 버린 이곳 충북 옥천은 대청댐이 인접해 있어서 대전광역시로부터 엄청난 물세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공업화가 되지 않고 폐가와 폐농이 되면 수자원 공사에서 그 땅을 매입하여 헐어버리고 자연화 시키곤 했다.  아마도 그런 수질관리 차원으로 정화조를 개선하려는 새로운 배관을 땅 속에 묻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온 똥이 이제는 정화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데..."
  "그럼, 어떻게 되는데?"
  "지금 다른 곳에 먼저 한 곳에서는 정화조가 필요없다네요!"
  "그럼, 편리하겠다! 똥차가 오지 않아도 되고..."
  "그럼, 똥이 내려가다가 막히는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러겠어! 물하고 같이 나가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정화조 차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하던데, 자기들 밥줄이 끊기니까!"
  "그래, 아래 우리집 변을 펐는데 똥차가 절반이 없어서 자기들만 바빠졌다고 하더군!"
  "그럼, 맞긴 맞는 말인데..."  

  그렇게 공사가 시작하기 전에 궁금증을 유발하여 동네 사람들과 나는 의견이 분분했었엇다.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면 집안에 묻어 놓은 정화조로 들어가서 그것을 일년에 한번씩 정화조차를 불러서 퍼내곤 하던게 기존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화조가 필요없어진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