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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김포로 출장(A/S)을 나가서...

2007.11.13 06:10

문학 조회 수:3073 추천:1



  "내 나이가 몇 인 줄 아나?"
  "사장님, 연세가..."
  "이른 넷이네!"
  "...."
  "그런데 서른 아홉살 먹은 여자하고 썸씽이 있었단 말일세!"
  "그거야 소문이 파다하게 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 억을 주웠어!"
  "그럼, 지금은 만나지 않습니까?"
  "가끔, 만나고 있지!"
  "그런데 성매매 단속법 때문에 여자를 돈주고 못사잖습니까?"
  "그러니 어쩌겠어! 과부하고 눈이 맞을 수 밖에..."

  김포의 거래처 사장은 몇 년전에 술집의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서 외도를 했다는 이유로 본처와 별거중이라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 사무실 옥상에 2층으로 주택을 지어 함께 살고 있었다.  
  사장은 호인이었지만 여자로 인하여 패가망신한 경우였다. 한마디로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부인에게 별거을 당하는 기가막힌 사연은 소문으로만 들어 왔었다. 그런데 직접 대면 하여 얘기를 들어본 바로는 전혀 달랐다.
  "자식 놈들이 뭐라는 줄 아나?"
  "....."
  "바람을 피워도 엄마 모르게 하셨어야지요! 그러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의기양양하였다.  

  정말 남자들은 괴롭다. 내가 어렸을 때 외가집의 수염이 허엿게 자란 할아버지에게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얘기를 듣곤 했었다. 그만큼 정력이 넘치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가끔씩 대전역전 옆의 창녀집을 간다는 거였다. 그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다른 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장사를 하던 거간꾼들이 술집에서 돈을 여자와 하룻밤 자는 것은 예사였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강금실 여성 범무부 장관'이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시켜 놓았다.  그 이후 남자들은 이제 범죄자가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욕구불만을 해소하던 술집과 하루 밤의 풋사랑은 이제 법으로 금지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성매매가 범죄자를 양성하지만 다른 동남아에선 그렇지 않으므로 해외로 원정을 나가서라도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사회가 변질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성욕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욕구불만으로 사나워지고 돌발적이고 우발적으로 변한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실연을 당한 이후 욕구를 자제할 수 없어서 창녀집을 전전하고 했었다.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법으로 금지 시킨 이후 남자들은 저돌적이고 변질된 방법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만약 청년 시절 실연을 당하고 뿌리칠 수 없는 육체적인 욕구를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 참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기회가 있는데로 여자들을 강간하여 지금은 콩밥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숫컷들의 성욕은 절제하지 못하도록 조물주가 만들었으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더 이상 후손을 양성하지 못하게 되어서 멸종의 위기를 당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 뜻을 얘기한 적은 없었다. 다만 성매매 단속법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은 확실했지만 악법도 법인데 따를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바람을 피우지는 않는다. 이것은 피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떤 남자건 나와 같으리라! 그렇다고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섹시한 여자들을 보면 흥분하는 것은 남자로서 당연하지 않은가!

  청년시절의 방황과 무절제 이후 나는 견딜 수 없는 육체의 성욕으로 인하여 자위행위를 하였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구원해줄 여자를 찾기 위해 결혼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굳게 결심하였고 결국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젊은 날의 그 방황을 지금도 잊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팔지 않고 있다. 이것은 특히 경험에 의한 것이며,

  '젊어서 바람을 피운 사람은 늙어서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하는 말이 내게 들어 맞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래서 사장은 74세 임에도 불구하고 외도를 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심경 변화를 갖은 케이스였다.  그는 분명이 젊어서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