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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오리 (2)

1. 비상 1-2. 비상(飛翔) 3

2008.12.04 17:39

문학 조회 수:2095

 

  “낙하산이 펼쳐지기 전에 돌게 되면 낙하산은 펼쳐지지 않고 지상으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게 된다. 예전처럼 낙하산을 접을 때 자동으로 접기 때문에 거의 100 퍼센트를 보장할 수 있다. 문제는 비행기에서 뛰어 내릴 때 자세가 올바르지 안하면 바람에 의하여 빙글빙글 돌 수도 있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세를 갖추면서 뛰어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조교가 설명을 할 때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몸이 회전하게 되면 그 때는 끝이다. 낙하산도 펴지지 않은 채 지상 위로 추락하고 말기 때문인데 그 때는 정신만 차리면 앞가슴에 매고 있는 보조 낙하산을 펴야만 한다. 이렇게 말이다!”
  “예비 낙하산 하나 둘 셋!”
  조교들은 아랫배에 차게 되는 보조 낙하산의 고리를 오른손으로 잡아당기면서 낙하산을 두 손으로 끄집어내는 시늉을 했다.
  “낙하산을 되도록이면 빨리 빼내야만 한다.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니까!”
  “…….”
  그렇게 예비 낙하산을 빼내는 동작은 막타워에서 뛰어 내린 뒤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

  “일만! 이만! 삼만! 보조 낙하산, 하나 둘 셋…….”
  주낙하산이 펴지지 않았을 때 다음 동작이었다. 우리가 땅 위에서 내려 앉아 다음 조들의 짬뿌(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그렇게 부름) 때 그 담배 말림의 낙하산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짬뿌를 많이 하면 할수록 두려운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였다.

  “덜컥……”
  무언가 등 뒤에서 끌어 올리는 느낌과 함께 나는 공중에 떠 있었다. 비행기에 타기 전 그 두려웠던 죽음의 공포는 이제 모두 간곳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보면 거대한 낙하산이 부풀대로 부풀려 구름처럼 떠 있다. 내 낙하산뿐이 아니고 여기 저기 동료들의 낙하산과 함께……
  아득히 먼 땅 위의 전경 (全景)이 손바닥 안에 잡힐 듯 잡힐 듯 바라보인다. 소나무 숲은 잔디처럼 쿠션이 들어 있고 높은 산은 작은 둔덕처럼 낮아 보였다. 모두가 내 것인 것이다. 하늘도 땅도 모두가 내 품에 있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은 그대로 오리들에게 전가 되어 내 꿈이 되어 날고 있었다. 그 옛날 나의 가슴에 가득 불어 왔던 하늘들이 훨훨 날아가는 오리의 날개 짓마다 찬란한 꿈으로 무지개를 품으며 여기저기 흩어진다. 그리곤, 마침내 오리의 비상처럼 내 눈도 날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옆에 공수 훈련장의 연못에서 보았던
  집오리가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오리들은 비행기에 함께 태우고 날린다는데…….”
  “그래, 집오리를 비행기에 함께 태운다고?”
  “그러고 보니 몇 번을 날렸던 것 같아! 우리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이상한데?”
  “마치 졸병을 보는 듯이…….”
  “필승!”
  우리들은 연못의 오리들을 바라보면서 거수경례를 하였다.  
  그 오리중의 하나가 바로 옆에서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승!”  나는 낙하산에 매달린 채 유유히 날고 있는 오리를 바라보며 경례를 했다.
  우리는 오리와 함께 날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불과 19세에 불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4월에 초에 군 입대를 하여 불과 삼 개월이 지났던 것이다. 집을 떠나 단체 생활을 하게 되면서 크게 성숙하고 어른이 된 것 같았지만 이 잠복기에 젖비린내 나는 육체가 군용 색으로 도포를 하듯 군복으로 포장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만약 입대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 불과하였으리라! 환경이란 것은 그만큼 중요했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뒤바뀐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주워진 환경변화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사회적인 요인과 국방의 의무를 따라야하는 외부 요인에 기인했던 탓이다.
  그만큼 미경험자로서 변화무쌍한 주위의 여건에 변화하지 못하였다. 그것을 두고 몸과 마음의 분리 현상이라고 깊이 인식하게 된다.  막사 주위에 우거진 포플러 나무 숲에 둘러싸인 병영을 야간에는 교대 근무로 초병이 되어 경계근무를 설 때, 까까머리로 연병장을 한 바퀴 돌면 선착순만 예외 하는 기압을 받으면서 몇 사람 남지 않았는데도 계속 뒤쳐져서 돌때, 아침에 일어나면 입에서 쓴물이 넘어 오고 계속하여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짐을 느낄 때마다 불현듯 집에서 편하게 있던 생각을 그리워하곤 했었다.


  몸은 군대에 있었건만 마음은 아직도 사회인이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기이한 느낌이 군대 생활 내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한 이후에는 반대로 군인이라는 인식하게 사회인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평생을 따라 다니게 된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마음과 정신의 분리현상은 그렇게 극적인 환경 하에서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다가 군대에 지원 입대하게 되었고 훈련소에서 박박 기는 신세로 뒤바뀌었지만 이 순간 낙오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