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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빼는 노인

2009.01.14 11:37

文學 조회 수:3303

  못 빼는 노인과 못 빼는 노인의 오리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

작년 봄.


  작고 귀여운 오리 새끼 열 마리를 충청북도 옥천(沃川) 우(牛)시장 앞에서 샀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벽이 없는 스레트 지붕 아래 소를 들여 놓기 위해 쇠파이프를 구부려 칸칸을 막아 놓았을 뿐, 장날이 아니어서 소는 코빼기도 안 비쳤다.  훵한 공터는 임자를 만났다는 듯 불어오는 바람으로 흔들리는 것처럼 썰렁하다. 쇠파이프로 된 정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겼고, 그 앞의 도로변에 차가운 공기를 그냥 맞으며 두꺼운 겉옷에 목도리를 둘러 맨 아주머니 두 분이 추위에 떨며 작은 쇠망으로 쳐진 우리에 오리, 병아리, 강아지를 담아 놓고 지켜 서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아무 것도 막은 것 없이 터놓은 이곳 공터에 불어 와 금방이라도 쓸려 갈 것만 같다. 도로로 달리는 차량 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데, 아주머니들은 잔뜩 웅크리고 앉아 앞에 진열하여 놓은 새끼의 동태를 바라보며 추위를 이겨 내기라도 하듯이 몸을 흔들거린다.

  반대 차선으로 왔기 때문에 왼쪽 창문을 내려 그곳을 바라보다가 마주 오는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먼 거리로 회전을 하여 두 사람 앞에 1톤 봉고 화물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내리자, 반가운 기색이 여태 어두운 얼굴에 번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시간? 아님, 두 시간일까? 그렇게 추위에 떨며 앉아 있었던 것은 누구 때문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태연한 척 성큼성큼 다가가자, 우리에 가득한 새끼 오리가 시야에 들어 왔다.  사뭇, 개선 장군마냥 거들먹거리며 오리가 있는 곳에 허리를 굽히고 털이 뽀송뽀송 거리는 새끼오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가격을 물었다.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던 느낌을 애써  숨기며…….

  "한 마리에 얼마씩 이예요?"

  "한 마리에 이천 오백 원인데요!"하고 머리에서부터 턱까지 얼굴만 남기고 뒤집어 쓴 보자기를 벗으며 한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생각보다 무척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방금 차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이런 차가운 날씨 속에 앉아 있으려면 오금이 다 저리고 손발이 떨릴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럼, 열 마리 주세요!"

  "어떤 걸로 줄까요?"하고 아주머니는 옆에 준비해 놓은 작은 종이 박스를 들고 물었다. 아마, 암놈 수놈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무 것이나 주세요, 상관없으니까요! 청둥오리처럼 예쁘네요. 암 놈 수놈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털이 유독 미끄럽고 광택이 돋는 오리 새끼의 모양은 그냥 검은 빛에 가깝기도 한 것과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것, 검은 빛에 흰 무늬가 있는 것 세 종류였다. 모두가 그게 그거 같아 보여 내가 묻는 말이다.

  "더 커 봐야 알 수 있어요!"

  오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손에 불이라도 있는 것처럼 재빨리 오리 새끼를 내게 쥐어 주며 말했다.  판매에 능수능란한 자세다. 다리를 저는 노인은 아마도 이렇게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는 대로 받지 않고 하나 씩 토실토실한 놈으로 골라서 샀을 테니까?


  "아저씨!  오리, 어데서 팔아요?"

  "우(牛)시장 앞에서 보따리 장사처럼 내놓고 파는데…….가서 크고 토실토실한 놈으로 골라…….본인이 직접 말이지. 그냥 주인이 고르게 하면 비실비실 약한 놈이던가! 수놈만 준다오."

  "살 때는 꼭 직접 골라잡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는 노인의 음성과 대조적으로 지금은 가장 모자라는 놈으로 내게 안겨주는 그이에게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적어도 좋은 것만 골라가지 않으리라는 마음적인 외침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우리보다 한 달 앞서 오리를 사다가 개천에 풀어 놓고 옆집 노인은 다리를 절면서 가끔가다 오리를 쫒아 다니곤 하였었다.  멀리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리라…….물에 놀고 있는 오리를 뚝 위에서 내려다보면 욕심이 굴뚝같이 났었다.  그도 그러려니와 도시(都市)에서 살던 내게 이런 자연적인 경관은 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그윽이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으니까. 이런 욕심이 어디서 나는 것일까? 문득 스쳐 지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외가 집에는 소, 돼지, 개, 닭 등 온갖 가축을 키웠었으니까. 그런,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우리 애들에게도 가축을 기르는 재미를 갖게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오리를 팔고 있는 곳으로 향하게 하였던 것이다.

  오리를 작은 상자에 넣고 파는 그 장소를 알 게 된 것은 옆 집 노인에게다.  칠순에 가까운 그 노인의 몰골은 병자와 같아 보였다. 한 쪽 발을 쩔뚝쩔뚝 절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으니까.

  "왜 다리를 저시는 거예요?"

  언젠가 옆 집 노인이 찾아오자, 들어오라고 권한 뒤에 냉장고에서 어제 먹다 말은 술을 꺼내 잔에 비우며 내가 하는 소리다. 아직 대낮이었다. 딱 한 잔만 권할 참이었다. 우리와 알게 된 첫 노인네였다. 바로 우리 공장 옆의 목공소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헌 송판에서 못을 빼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공단지에 있는 전선회사에 납품하는 중고 자재인 모양이다. 항상 못 뺄 재료가 쌓여 있고 그 목재 더미 안에서 못 빼는 기계 소리만이 망치를 때릴 때처럼 나곤 했었으니까. 못 빼는 노인은 기력이 없어 힘든 일은 못한다. 못 한 개를 빼는데 20원이라고 한다. 하루 2만원을 벌려면 일천 개를 빼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성 싶었다.

  "양산에서 개를 좀 길렀지……."

  "양산이 어디에요?"

  나는 아직 이곳의 지역에 익숙지 않아서 누가 찾아와 어디서 왔다고 하면 다시 묻고 그곳이 어디냐고 반드시 묻는다. 그래야만, 다음에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 대전이라서 이곳 지리는 모른 탓이다. 대전시라면 무슨 동, 무슨 지역에서 왔다고 하면 대번에 짐작했지만 이곳에서는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았다. 구역이 너무나 방대해서다. 영동서 옥천에 이르기까지 거리도 거리려니와 도무지 생전 들어 보지 않은 마을 이름이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민가(民家)는 없는데 드넓은 자연이 끝없이 펼쳐져 도로 주위를 장식해 있는 곳이 많았다. 도로변과 표지판에 마을 이름이 쓰여 있기는 해도 그곳에 관심이 없던 관계로 쉬 잊었다. 그렇지만, 이제 양상(樣相)이 달라졌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옮겨 살 게 된 탓이다.

  "영동으로 가다 보면 있어!"

  설명은 했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부산 못 미쳐 양산은 잘 안다. 그곳에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수없이 다녔었다. 통도사라는 절이 지척인 양산은 잘 아는데 영동에 있는 양산은 전혀 모른다.

  "아마, 몇 백 마리는 길렀었지. 그곳에서 내가 최고였으니까 그렇게 대규모로 기른 사람은 아마 예나 지금이나 없을 거야!"

  "정말 그렇게 많이 기르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으시잖아요?"

  나는 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 마리는 길렀겠지만 수백 마리 정도는 아닐 터였다. 오리를 사올 때도 너무 고르다가 이 곳의 아주머니에게 혼이 났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다리를 저시는 거예요?" 하고 내가 재차 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짠 밥을 실어 나르다가, 오밤중에 뒤에서 달려오는 화물차에 치어 버렸지 뭐야!"

  입에서 침이 튀어 상 위에 있는 내 소주잔에 빠진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소주잔을 휘 젖어 얼른 입에 털어 넣었다. 다시 재차 빠지기 전에 마셔 버리는 게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불결했지만 다음 말을 듣기 위해 참았다.

  "아, 그래서 오토바이는 포삭 찌그러들고 나는 가짐 다 죽었어. 의식이 가물가물 하였지만 모두 알고 있었지. 의사가 아주 죽었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시체니까 진료도 안하더라고.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런 대접을 받았지 뭐야.

  "쩝쩝……."

  술을 마시고 입이 쓴지 입술을 다신다. 내가 재차 노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술을 얼마나 잘 먹는지 벌써 여남은 잔을 연거푸 마셔댄다. 그렇지만, 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왜, 다쳤는지가 궁금하였으니까.

  "모두들 다 죽었다고 사람 취급도 안하는데, 내가 잘 아는 한방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살아 난거야! 의사가 내 동생뻘이라 지금도, 찾아가면 아이고! 형님 어서 오세요하고 깍듯이 인사부터 하지. 그래, 좋다는 한약을 몽땅 먹고 원 없이 치료를 하니 대번 나았지. 좋은 약을 쓰는데 낫지 안 낫고 배겨!"

  "아하, 그러지요!"

  내가 노인의 기세를 세워줄 요량으로 박자를 맞춰 준다.

  "그 뒤부터 연신 개고기만 먹고 보신을 하였지. 그만하기 다행이지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게 어딘데……."

  왠지 사연이 있는 듯 말끝을 흐린다. 그것이 노인네가 다리를 다치고 절룩거리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냥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좀 친절하게 대했을 뿐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직 집은 이사를 오지 않았었다. 공장만 천막을 쳐서 임시로 거처를 마련하고 옮겨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이 없을 때 조금씩 집을 지었던 것이다.

  현장은 너무도 어지러웠다. 그도 그러려니와 대전에서 세를 내고 있었지만 절약을 위해 지붕도 씌우지 않은 가건물에 이사를 와서 그럭저럭 겨울을 넘긴 것이다. 이런 생활에 이젠 이골이 나 있었다.  88년도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이라고 차린 것이 조금씩 그나마 번창하여 내 공장까지 가지게 된 것이니까. 나도 참 대단한 놈이라고 자만하기도 하나 아내의 내조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은 부인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