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서울 출장

서울 출장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곤란을 당하여 왔던가!그렇지만 그곳에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통일 전망대 앞에서... -
Noname1156.jpg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기계를 만드는 직업으로 납품한 기계의 A/S 요청를 거절할 수 없어서 가방을 둘러매고 출장을 많이 다니는 내 입장이고 보면 그만큼 기계를 납품한 곳에 직접 찾아 다니면서 내용을 파악해 두는 게 유동하였다. 그런데 그 곳 공장에서 기계의 잔고장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까지도 모두 쫒아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내가 기계를 납품하고 그 기계를 다루기 위해 한 명의 전문가를 양성해내고 그를 교육시켜서 완벽할 정도로 잘 해내게 되면 성공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기계는 이 전문가에 의해 차질없이 물건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그 때부터 생산과 제품에 차질이 생기고 불량품이 발생된다.  
 이런 경우 다시 나를 부르게 되는데 그 이유가,
  "기술자가 나가서 작업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작업자에게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요!"
   "그러지요!"
  지금까지의 경우에는 그럴 경우에는 1년의 경우에는 무상으로 A/S를 나가게되는데 기계 고장이 아니었으므로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출장을 다니다가는 내 일도 못하고 마치 목살이를 한 개처럼 끌려 다닐뿐이었다. 전국에 거쳐 300여대의 기계마다 고장이 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서울과 부산 두 곳을 돌아다니며 A/S를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기계를 판매하는 것보다 수리를 원할 경우에는 만사 제쳐놓고 A/S를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자 작업자들이 기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부속도 스스로 교체를 하였으므로 기계가 완전히 고장이라고 판단이 설 때까지는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편해지었지만 아직까지도 처음으로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내 인내력을 실험하게 된다.  

  B 라는 곳을 찾아 갔을 때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제단을 하는 사람은 사장의 친 동생이었는데 먼저 사장과 함께 있었지만 천성이 배우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러다보니 기계에 관한한 전혀 무지하였으므로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알려 주려고해도 벽창호와 같았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는 매우 배타적이었다. 사장은 종업원에게 봉금을 주고 일을 시키려고 한다. 반대로 종원원들은 봉급을 받지만 시간만 떼우기에 급급하다. 작업도 자신에게 필요한 경우외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기계를 다루는 기술도 철저히 자기 위주였다. 공장내에서도 서로 비밀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데 그것은 그게 밑천이였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게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자기 방어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기계의 기술을 가르쳐주면 다른 사람은 전혀 해당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 전문가가 퇴사를 하게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새로운 사람에게 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만큼 그 일에 전무한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 였다.
  이럴 경우에 사장이라는 사람이 기술자 출신이라면 문제가 달랐다. 그는 기계를 잘 다룰 수 있었고 사람이 바뀔때마다 교육을 시키는 것을 도맡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가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현장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A라는 공장은 바로 후자였고 그리고, B라는 공장은 전자와 같았던 것이다.
  '출장비를 주셔야 하는데요?'
  입구멍에서 이제나저제나 나올 때를 기다리는 그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인근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여전히 내 설명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압, 저압이 뭐죠?"
  "고압... 저압은... 칼(Nifke)의 압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에 있는거죠?"
  "....."
  그는 돌아 서면 방금 설명한 것을 새까맣게 까먹는게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런 입장이고 보니 출장비를 달라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고...
  "다음에 올 때 설명드리지요!"
  반복해서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악몽이었다.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무의미한 봉사를 할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밤 11시에 결국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집으로 출발을 했다. 
  "언제 옵니까?"
  "이 달 말일에 한 번 또 오겠습니다! 대구에 기계 납품하고..."
  "꼭 오십시요!"
  "예!"
  나는 대답을 한 뒤에 그 지옥같은 곳을 빠져 나오면서 한숨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또한 물질적으로 보답을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더욱 내 가슴은 찢어지고 있음을 깨닫았다. 그만큼 현실은 각박했고 부도가 난 회사를 인수한 사람의 처지는 절망속에서 그나마 내가 찾아가서 희망적으로 바뀌는 듯 했으리라! 그러나 보람없는 짓이었다.
   A라는 공장에서 내가 출장비도 건지지 못함으로 인하여,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으므로 다음에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해본다. 어쨌튼 사업이란 이윤이 없으면 진행할 수 없었다.
   '나만 적자만 나는데 어찌 운영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다. 기름을 낭비하면서 언양에서 덕계까지 갔을 때는 그래도 약간의 돈벌이를 뒤따라야만 했었다. 부도가 난 공장을 찾아가서 돈을 바란다는 사실은 기만이었다. 적선 사업자도 아니고 전혀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헛고생만 했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사실상 기계의 주문은 들어오지 않고 10년전의 가격 그대로 받았었다. 재료비는 두 배 세 배가 올랐지만 나는 여전히 이윤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었으므로 힘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안팎으로 위기 의식은 더욱 가중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만든 기계는 구형이되어 가고 폐물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옛날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었으므로 점차 적자를 면치 못하리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했다.
  새로운 기계를 개발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살 수 있는 최선책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더 나은 기계를 개발하여야겠나는 생각을 못하였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음, 내가 약을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거래한 사람들과 담을 쌓고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제는 그들 모두에게 등을 돌려야만 했다. 무정하게 소식을 끊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가장 현명한 판단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해서 피하고 회피하는 게 능사일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을 믿자! 아니, 내 마음의 정직함을 최고로 내세우고 그걸 미덕으로 여기자! 이렇게 내가 신념을 불태운다고 누가 알아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은 아직도 속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것이 어디까지 갈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