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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장

서울 출장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곤란을 당하여 왔던가!그렇지만 그곳에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통일 전망대 앞에서... -

人間과 人間적인 삶.

2004.01.18 16:28

문학 조회 수:1887 추천:36

人間과 人間적인 삶.
그것은 眞心어린 상대를 위해 배려는 아니었던가!

아, 오늘을 차분하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각박한 世上에서 얼마만한 人情이 통용되는 것인지 깨닫으며 그런 보이지 않는 선의적인 따뜻함에 또한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너무나 참든 여정이었다.
아침 9시 22분 차를 타기 위헤 옥천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으며 불과 5분 남겨두고 부랴부랴 허둥대며 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흠찟 놀라고 말았다. 바로 지감을 챙겨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울산과 부산 중간 지점인 웅상에서 밤 11시에 집에 도착했었는데, 아침에 작업복에서 외출복으로 갈아 입는 중에 지갑을 빠트렸던 것이다.
아, 이럴수가 있다니.... 낭패였다.

"저, 옥천 응천리 사는 사람인데요 지갑을 놓고 와서 그러는데, 차 표좀 빌릴수가 없을 까요? 표를 끊는 사람과 검표원이 내게 뒤따라 오더니 처지가 안되었는지 급히 핸드폰으로 집에 연락을 취하는 내게,
"차표를 끊어주워요! 내가 책임질테니까......하고 검표원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결코 이런 식으로 빌려야만 하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마웠다. 이곳은 옥천이여서 조그만 소읍(小邑)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인성이 통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급해 서울로 출장을 가려고 집에서 나왔지만, 지갑을 챙기지 않아 수중에 돈이 한푼 없었던 것이다.

여행은 내게 유익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삶의 연장이며 직업에 따는 필수적인 부가적인 산물이었다. 안다닐수가 없었다. 기계를 납품하고 A/S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주파 기계에 자부심이 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를 고치지 못한는 것이다. 나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방법만 알 뿐이다. 고주파 기계를 제작하는 관계로 수리는 엄연히 내 몫으로 남는 탓에 먼저 광주에 갔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고 오늘 서울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또한 내 삶에 충실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내 몸의 안일을 떠나서 다른 사람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항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은 항시 이렇게 적병을 만나 눈물을 머금고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지갑을 갖고 나오지 않았다니. 그래도 시간에 맞춰 가야만 했다. 역무원에게 사정을 하고 융툥성을 얻어 냈다.
"내가 보증할테니까? 이사람에게 차표를 끊어 주게!"
"감사합니다!"
우선 보이는데로 매표원에게 감사를 드리었지만, 사실은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시간에 맞게 갈 수가 있었을까? 먼저 언젠가는 역에 들어와 커피를 마시는 개인택시 기사에게 사정을 했었다. 그분이야 돈 2000원 가량을 벌기 때문에 내게 돈 만원을 빌려주고 내가 전화를 하여 아내에게 아래로 내려와 택시 기사에게 운행비와 빌린 돈을 주라고 했기 때문에 달려 갔을 테니만, 지금의 역무원들은 그런 의도도 아니었을 것이지만, 다행이 내게 그런 아량을 배풀어 주워 감사드린다.

이런 생활에 때론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너무도 힘이들었다. 어젠 울산 부산 중간지점인 웅상과 정관에 들렸었다. 왕복 10시간에 정도를 차를 끌고 다니며 보내다가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파김치가 되다시피하였었다. 한시라도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었다. 그런데,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는데, 또 먹통이다. 물과 이틀 전에 복구해 놓은 컴퓨터였다. 토용일 아이들에게 게임을 깔아 준다고 예전에 DOS(도스) 게임을 깔았다가 그냥 먹통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새벽 5시까지 포멧(fotmat) 시키고 컴퓨터를 복구해 놓았었는데 불과 이틀만에 다시 똑같은 상태가 되고 말은 것이다. 그렇게 밤1시간 넘게 새로 깔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8시였다. 다시 책상에 앉아 다른 내용을 깔다가 시간이 늦어 옥천역에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도착했지만, 지갑을 갖고 오지 않았지 뭔가?

컴퓨터가 이틀이 멀다 않고 다운되다니.....
이렇게 이상한 프로그램도 다 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windows M.E"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단히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컴퓨터 제조회사에 문의를 하면,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에서 만든 거니까요.... Windows 2000를 까세요!"하는 것이었다. 메가페스 직원들도 "윈도우 M.E"에 대하여 그런 말을 했었다. 대단히 불안하다는 말을.....그리고, 다운된다는 사실을 알고 바꾸기를 종용하였는데 나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냥, 최신형으로 제공하였다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것 그리고, 다시 2000으로 깔면 새로운 내용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주 다운되는 탓에 어쨌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은 다시 까는데서 오는 것이고 노력은 내용을 백업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지워져서 다시 공을 들여야하는 어려움이었다.

내가 부산에 기계를 실고 가 있는 동안 아이들이 컴퓨터를 하였던 모양인데 다시 다운된 모양이다. 내가 돌아와 컴퓨터를 켰더니 하는 소리가,
"아빠, 또 컴퓨터 고장났어요!"
"아니, 어제 고쳐 놓고 갔잖아?"
어이가 없었지만, 수궁이 갔다. 계속 그랬으니까.....많지도 않은 시간을 컴퓨터를 고치는 것으로 보내니 이 또한 피고가 가중되시켰다. 내일은 서울로 출장을 가야하는데 부산소 10시간에 가까운 운행과 그곳에서의 납품과 시운전을 하고 돌아온 까닭에 너무도 피곤이 상첩해 있었다. 무엇보다 엇그저께 새벽 5시까지 컴퓨터를 다시 고쳤었기 때문에 그 때의 피로가 누적되어 눈까지 충혈되었지만, 어쩔 것인가! 부팅이 되지 않는 컴퓨터는 내게 많은 시간을 뺐고 있었다. 그것이 글을 쓰지 못하게 가로 막기 때문에 너무도 가중된 시간을 낭비하는 탓에, 아무래도 "윈도우 M.E"를 포기하고 "윈도우 2000"를 깔아야 할 것같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야간의 고속도로 운행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집에 빨리 돌아와 쉬고만 싶었었는데, 컴퓨터가 고장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복구를 해 놓고 아침에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지갑을 챙겨 나오지 않았고.....

화물차를 운행할 때 나는 라디오 소리를 크게 틀고 다닌다. 습관적이었지만, 졸음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운행하여 부산서 올라 올때도 있었고 서울 포천까지 왕복 6시간 거리를 밤새워 가다 온 적도 모두 음악의 힘을 빌렸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항상 이렇게 음악을 틀며 쓴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다. 그 음악의 힘을 빌려 글을 쓰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였다. 그냥 듣고 졸음을 쫒는데 목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