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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째 동생

2004.06.22 20:58

문학 조회 수:2329



  부친과 똑 닮은 성격의 소유자가 둘 째 동생입니다.
  둘 째 동새은 바쁘다는 핑게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전화를 걸어서,
  "내일 아버님 성묘에 간다...."
  "그래? 뭐하러..."
  동생은 분명히 내일 현충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말했지요. 빨리 끊고 싶었습니다.
  "내일 현충일 아니냐? 다들 현충일에 국립묘지 가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근데.... 요즘 바빠서 밤새 장사하느라고 낮에는 잠 좀 자야만 하잖아!"
  '그래, 너 바뿐 줄 모르냐? 우린 안 바쁘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옆에 있으면 한 대 갈겨 주고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그 것 때문에 한바탕 싸웠고 몇 년간 두문불출하던 위인이신데... 아주 귀해서 얼굴 잊어 버리는가 했었지요. 그것도 부친의 임종 다음 날 친구들이 억지로 끌고 왔었지만 그게 어디 사람이라면 할 도리입니까? 저를 낳아 준 부모가 돌아 가셨는데 냉큼 달려오지 못할망정...
  그게 둘 째 동생의 본심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저의 과거를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한편으로는 경멸하지조차 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잘못으로 여전히 못살고 빚을 지고 사는 현재의 현실에서 그것이 모두 가족들 탓으로 돌립니다.
  "너보고 참석하라는 게 아니다. 단지 알려 주려는 것 뿐이고..."
  "알았으니까 잘 갔다 와!"
  여전히 볼멘소리만 늘어 놓았었지요.
  "좀 자야 겠으니까 그만..."
  "그럼, 전화 끊는다!"
  그렇게 끊었습니다.

  둘째 동생은 나보다 두 살이나 적으니까 마흔 셋입니다.
  "나도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앞가림을 못하겠어!"
  그렇게 대들듯이 말대꾸를 할 때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내가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잘 다니던 한국통신 직장을 그만두고 그 퇴직금으로 여태 버텨오다가 다단계에 빠져서 얼마를 썼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포장마차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제가 몇 해전 명절에 휭하니 가족들과 불화를 갖고 제 식구들을 데리고 떠난 뒤로 두 해 동안을 전혀 연락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올 2월 4일 부친이 상을 당하던 날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지요.
  2월 5일날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왔을 때에도 그가 마땅히 상주로서 참여를 하는 게 자식된 도리라고 여겼지만 전화도 끊고 연락을 아무리 해도 안되여서 그만 잊고 말았었는데 예전에 다니던 한국통신 전화국 직원들이 집으로 쳐들어가서 붙잡듯이 데리고 왔고 그뒤 소월하던 관계가 어느 정도 풀렸지만 그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아니는 넷이나 낳고 밤에는 포장마차를 한다는 핑게로 참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화는 해 줘야 하겠기에 미리 알려 주긴 했었습니다. 어디 이런 일이 한 두번이었겠습니까만는 명절날에도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못박아 둘 정도였으니 무슨 기대를 할까요.

  만사에 귀찮아 하고 나몰라라 하는데 예사였습니다. 형제들도 또한 둘 째 동생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얘기는 해야 뒤탈이 없을 겁니다. 무언가 트집을 잡으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형제들에게 그는 늘 부담만 되고 염치업시 굴었지요. 아니, 우리집 안에서 스스로 퇴출되어 나갔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요? 그만큼 그는 다른 사람으로 치부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가 모든 것을 거절하고 가 버린 뒤로는 전혀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2월 4일 부친의 사망때 한 번 얼굴을 비친 걸로 다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끼리 소월한 게 어디 우리 가족 뿐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