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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부음이 있기 전에...(6)

2009.09.23 14:05

文學 조회 수: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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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에서 가장인 안 씨에 대한 인식은 로마 시대 때 네로 황제와 같은 폭군이며 권력자였다. 무능력자이면서 모든 걸 폭력으로 일관하는 악마라고 서슴없이 말하였던 큰 아들. 부친의 폭력을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그의 입장에서 비쳐보자!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왜냐하면 그 존재는 유년기에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인 외가에서 나를 출산을 모친은 그곳에 갓난 아기를 맡겨 놓고 도시로 나가서 장사를 했다. 장사라고 해 봤자 나중에 알았지만 머리에 이고 다니는 양철 다라에 강냉이(옥수수) 티밥을 넣고 다니면서,

  "고물 팔아요!" 하며 그 시대에 성행했던 고물 장사였다. 그것이 없이사는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둘 째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고물 다라를 이고 다니던 모친. 철이 없능 어린 두 아이들은 장사를 나가는 제 어미의 등을 서로 찾이하려고 울고불고 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한 아이는 외가집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으니...

  유년시절의 큰 아들은 외가 식구들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그 때만큼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가 도회지에 나와 살면서 마치 그 유년기의 시절에 자라나면서 겪었던 감수성이 풍부한 생활이 얼마나 자신을 잘 가꾸웠는지 깨닫게 된 것은 성인이 되어 문학적으로 뜻을 품고 나서였다. 그는 유년기의 기억을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때의 느낌이 글에 잘 묻어나느데,

  '감'이라는 단편소설이 그것을 대표한다.

 

  모친은 머리가 무거운 고물로 눌리어 고개가 비틀어지도록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4명의 아들을 낳고 키웠다. 그녀는 남편이 돈을 벌어오지 않았으므로 장사를 하여 끼니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첫 째는 둘 째가 생기면서 아예 외가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외가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마치 왕자인양 느껴질 정도로 이곳에서 아직 친조카가 없었으므로 사랑을 독찾이하며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모습에 친부모 보다 외가집 식구를 더 좋아했고 그 느낌으로 인하여 매우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으니...

  "내가 학교를 다녀야하는 나이가 되면서 도회지로 나왔는데 그 때부터 부친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 졌지... 술탁주(알콜중독)였던 관계로 항시 만취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코를 골며 자는게 전부였지만 어머니를 때리고 그것을 만류하는 나조차 주먹으로 때기기 일쑤였지!"

  그렇게 큰 아들은 그 때를 회상하는데 어찌보면 전형적인 무능력자의 일대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을 먹고 어머니를 주먹과 손바닥으로 때려서 방바닥에 넘어지면 발로 밟고 짖누르는 거야! 그럼 나와 동생들은 울고 불고 난리를 치지! 그러다가 분이 풀리지 않으면 큰 아들이 나를 때기고 나는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 내가 일기를 쓰는 데 소상이 아버지 얘기를 씁니다. 나중에 그 죄를 어찌 갚으려고 하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어찌 그렇게 폭력을 일삼는 겁니까?"

  "아니, 이놈이... 너 마음대로 해라! 내가 무서워할 줄 아냐?" 그렇게 부친이 말을 했지만 기실 주춤한 게 사실이었다. 그때 큰 아들은 이를 악물고 결심을 한다. 이렇게 맞고 사는 어머니가 불쌍하고 내가 크면 반드시 아버지게 원수를 갚는다고... 그런데 어른이 되지도 전 고등학교 2학년 쯤에 부친의 폭력에 대하여 반항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힘에서 자식에게 밀리는 것을 절감한 부친으로부터 더 이상의 폭력은 당하지 않게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군대에 지원 입대를 하여 홀연히 19세때 30개월의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큰 아들이 부친과의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승리를 하였고 그 뒤 안 씨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데 그것은 4명의 아이들이 성장을 하여 자신을 능가할 정도로 우람해지었으므로 감히 자식들 앞에서 아내를 때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황혼기를 남들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50세에 중풍에 걸려서 쓰러졌으니까? 그 예고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수많은 뇌사 상태를 빠지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생활을 23년간 생명을 연장하며 고비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이빨빠진 종이 호락이로 전락하는 쇠도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모친에게는 폭력을 일삼았다. 그는 여전히 욕지거를 했으며 호시탐탐 습관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모친을 때렸었다.

  

  사실 이 집에서 가장은 안 씨의 부인과 큰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큰 아들은 상업고등하교 3학년 때 봉제공장으로 취직을 하여 취업증명서를 제출하여 실습을 한다는 명목하에 일을 하기 시작하여 돈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