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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눅스 서버... 일기 (日記)

하지만 기계 제작 일이 계속 주문이 들어와서 밀려 있는 상황. 조금 더 야간 잔업을 진중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 그렇지만 겨울철이다보니 너무 추워서 또한 야간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제 봄부터는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된 기계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더 많은 시간을 기계작업시간으로 충당하여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2011.01.22 22:21

文學 조회 수: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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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놓고 무궁화호 열차에서 글을 쓴다. -

 

2011년 1월 22일 오후 7시 경.
궁화호 열차 9호 차 앞 자석이었다. 그러니까 71석 맨 끝 번호다.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찬 바람이 몰아친다. 9호실과 8호실 사이의 통로가 밀패되어 있지 않아서 찬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이다. 기차는 직선으로 달리지만은 않았으므로 통로에는 체양이 쳐져서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틈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곳에서 밖의 차가운 바람이 유일되었는데 통로를 따라 입구를 통하여 문을 밀고 차가운 기운이 쏱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사람이 여닫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나는 구포역에서 동대구역까지 오면서 구포역에서 사들인 볼펜으로 종이에 몇 자 긁적거렸을 뿐 전혀 한 게 없었다. 우연히 좌측 편에 붙어 있는 전원 스위치와 같이 밀면 올리는 플라스틱 뚜껑이 보였다. 아이보리색으로 벽과 같은 색이었고 그것을 밀어올리자 220V(볼트용) 전원 콘센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까지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가 충전이 되지 않아 모두 사용하였으므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무척 무료했었다.
  항상 출장을 나가기 전에는 가방에 서너 개의 비상용을 갖고 다녔었는데 만 충전된 상태였었다. 한 개의 배터리가 2시간씩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교체를 해가면서 글을 쓰곤 했었는데 너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이번에는 충전을 시키지 못하였었다.
  ‘음, 이게 웬 떡인가! 그렇지만, 과연 노트북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을까?’
  내 눈은 반짝거렸고 곧이어 가방에서 노트북에 연결할 수 있는 전원 콘센트를 끼워서 연결을 시켰더니 노트북 컴퓨터가 켜졌다.
  일곱 개의 기차 칸에 연결된 중간의 휴게실에는 PC 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구태여 인터넷이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용이 상당하게 비쌌고 더욱이 인터넷이 너무 느리고 중간마다 끊기는 일도 있어서 나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가 우연히 콘센트를 발견하게 되어 연결을 시키게 되었으므로 무척 즐거운 마음이 된다.


늘 오전 11시 44분에 옥천 역에서 열차표를 끊으려다가 그만 돈이 없었으므로 여직원에게 사정하여 외상으로 끊고 아내에게 전화하여 역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부탁을 했다. 카드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차표를 끊을 수 없었다. 비밀번호 오류가 나서….
  “비밀번호 오류입니다! 이번에 두 번째고 다시 한 번만 더 오류가 나면 카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친절한 직원은 내게 다시 한번 내용을 설명해 줬다. 나는 카드를 내밀고 비밀번호를 쳤지만 두 번 모두 실패를 보았었다. 이상하게 은행에서는 비밀번호 오류가 나지 않는데 기차표를 끊으려면 오류가 났다.
  “그것은 비밀번호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정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
  언제부터인가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무인 매표기에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면 사용할 수 없다는 오류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영등포 역에서 국민은행 카드로 몇 번 시도했지만, 오류가 나서 발행을 중단하고 현금으로 끊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표에 명기된 시간을 잘못 보아서 차를 놓치고 다음 열차표를 끊었다가 그만 대전역에서 발이 묶였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는데 지금도 표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부산 가는 길
무궁화호 열차에서….

 

 

부지 딸 아이에 대하여...

나는 내 딸의 어리광을 무시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내 딸 아이가 다른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왠지 내 딸은 그러지 않기를 은연중에 믿어 왔던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본다.
어진 아이들처럼 남자 친구에게 의지하는 두 연인은 마치 소꿉친구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 딸 아이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함께 즐겁게 노는 모습에서 억장(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낀다.
잠에 취해 하루 종이 뒹굴 거리며 토요일을 보내는 남자와 이불 속에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낮잠을 자는 딸아이는 어쩌면 같은 통속적인 모습이 아닐까?
내가 우려했던 건 그들이 돌아서면 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새롭게 나름대로 성을 쌓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나이 든 아버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래를 알면 그 애들이 그처럼 철부지의 애정행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딸 아이가 말하는 콩깍지가 씐 남자의 모습이 어쩌면 지난날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보다 자유스럽지 못해 왔었다. 그처럼 돌발적인 상황에서 뛰어난 감각을 갖지 못한 우연한 기회를 맹목적으로 상량이라는 그늘에 가려서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내 과거의 기억으로는 그런 사랑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팽배하여 왔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은 과연 얼마만 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딸 아이가 그토록 남자에게 집착하며 모든 것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아내는 딸만을 먹이고 재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일찍 외도를 한 못된 망아지 같은 딸 자식과 그 남자 친구를 재워주고 먹여 주워야만 했다. 그것이 백년손님이라는 허울에 가려서 어쩌면 딸이 우리에게 일찍부터 그런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이것은 엄연한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역의 가장 큰 원인과 제공자는 철부지 같은 딸 아이에게 있었다. 그것을 맹목적인 종살이처럼 부양할 수밖에 없는 모성을 본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일까? 그렇지만, 딸 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너무 일찍 많은 고통을 안겨 주웠다. 일찍부터 남자 친구를 집에 불러들임으로써 나와 아내는 송두리째 자유를 매장당하고 딸 자식과 사위가 될 남자를 부양시켜야만 할 의무에 시달렸으므로…….
   나는 그 애들을 쫓아낼 수 있을까? 이것은 내가 너무 일찍 알게 된 두 아이에 대한 부담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부터 시작될 고역이었기에 나로서는 딸 아이가 집에서 기거하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조차 포옹하게 된 것이다.
  두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사실은 다시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하나 더 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 애가 조금 철이 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회에서 한 일원으로 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이 영구히 영구직이라는 남자의 직업 때문에 지금 당장은 두 아이가 결혼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계속하여 내 집에 찾아와서 아내를 괴롭히더라도 그것이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애써 태연하게 부려보지만,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딸아이가 너무 일찍 남자를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고역과도 같은 저희를 떠맡겨 주웠으므로 하나도 역겨울 정도였지만 다른 하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부담을 나와 아내가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모양이다.
  특히 아내의 친구인 B.Sug 이도 딸 셋을 혼자 키우면서 둘째 딸 아이를 몇 년 동안 그렇게 사위를 오고 가게 하였었고 내가 아내와 함께 그 집에 찾아갔을 때 눈으로 직접 보아서 확인했었던 것이다.
  ‘백년손님!’
   ‘백 년 동안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이다!’
  ‘왜, 무엇 때문에…. 백년손님을 어려워할까? 그리고 그 어려운 만큼 받아들이고 인식하기 위해서 마치 딸에 대하여 잘 보아 달라고 부모가 다 같이 넙죽 엎드릴 수밖에 없는 꼬락서니를 해야만 할까?’
  이것은 너무도 힘든 경우였다. 그 애들이 밖으로 나가면 돈을 써야만 했고 쓸데없는 경비를 쓰게 할 것이지만 우선 집에 함께 있게 하면 그런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것이 딸 가진 죄라는 것일까? 너무도 철이 없는 딸 아이의 모습은 감싸는 남자에게서 자신이 줄 수 없었던 행복을 그들은 일찌감치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너무 일찍 찾아온 두 아이의 연애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불안감과 함께 너무도 고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또한 몇 년에 거쳐서 보는 것이 힘들 것이다. 딸이 <국가 간호사 시험> 때문에 한 달간 집에 와 있는 동안 남자 친구는 주말과 일요일에 찾아왔었다.
  어쩌면 이것이 어버이의 마음이라는 것일까?
  특히 버릇없고 투정 잘하는 딸 아이의 모습으로 볼 때는 너무도 많은 주문을 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게 여자들이 남자를 바라보는 끊임없는 요구.

 

 

소설 「날아가는 오리 3」편의 후반부 도입을 할 내용 중에...

대한민국에서 북쪽의 시베리아를 거쳐서 Alladla(알라드라) 호수에 이르면 그곳에 세계에서 모인 지구 방위대 소속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훈련에 열중하는 열공실이 있었다. 반원의 유리처럼 되어 있는 1차 보호막의 캡슐이 여기저기 눈과 얼음 덩어리로 뒤덮인 새하얀 별천지에 눈과 바람을 맞아가면서 둠(dum) 형태로 서로 통로를 만들고 캡슐 속으로 왕래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개미굴을 연상할 정도로 둠과 통로 사이를 모두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 중의 하나였지만 땅속을 뚫고 들어가지 않고 지상 위에 세워져 있는 유일한 지구 방위대의 건물이 그 캡슐 속에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지에서 갖게 된 외부 방어막으로서 자연 그대로가 일종의 천혜 요새와 다를 바 없었다. 오리는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었지만, 외부에는 들어 올 수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수백 년의 세월동안 철새로서 북극과 남반부를 왕래하고 있었던 오리들이 가진 요새화된 비밀 기지였던 것이다. 이곳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 요새화된 기지는 땅속에 심어져 있다가 필요한 때에 돌출하기도 했으므로 외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도록 특화된 세계였다. 하늘을 날아 들어와야만 올 수 있고 그만큼 비밀스러웠으므로 계속하여 지형이 바뀌고 있었고 그 지형 덕분에 기지는 외부에서 발견되지 않아 왔었다. 그러나 오리들이 가진 과학의 진전으로 지형을 축적된 영상으로 뒤바꿔 놓는 기술 덕분이었다. 그런 보호막이 감싼 천혜의 요새가 적들에게 들키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곳에서는 아직도 지구의 고유한 모습이 남아 있었고 공기도 신선했으므로 적들에게 방어막을 쳐서 아직은 견딜 만할 정도로 충분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습이 겉으로는 전혀 윤관을 볼 수 없었다. 상층부의 공기는 이미 유독 가스와 운무로 서서히 뒤덮여 가고 있었으므로 조만한 모든 것은 암흑 속에 잠기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곳 지하 세계에 마련된 둠에서는 공격 개시 신호와 함께 계획적인 훈련 상황을 각국에 타전하는 연구 인원과 첩보 위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첨단화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제공한 곳은 오리들의 과학적인 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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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4일 토요일.

  먼저 쓰러진 것이 과로 탓이었을까?

  점심을 마치고 축사 앞까지 농노 길을 따라 화물차를 운전하였다. 조금 전에 집에서 나와 동네 입구의 슈퍼마켓에서 찰떡을 넣은 아이스크림을 아내가 컵라면과 함께 사왔으므로 차내에서 한 개씩 먹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들을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을 시키고 10만 원을 주기로 했는데 어제부터 일하여 이제 이틀째였다. 이곳 소읍(소읍)에서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여 틈틈이 돈을 모았고 그것으로 대학교 수업료를 보태었다. 그런데 도시에 나간 뒤부터는 전혀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웬걸…, 도시에서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22세가 되어야 한데요!”
  “그렇게 나이 나이를 높이면 이제 19세인 아들은 못하고….”
  그렇게 딸과 아내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을 때는 나조차 상심이 컸었다. 그래서 축사에 세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방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2층으로 방을 꾸미는 막일에 일해달라고 아내가 불러들였던 것이다.

  아들과 딸 둘을 낳아 키우면서 될 수 있으면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특히 딸보다 아들에 대한 무관심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으므로 외박을 하여 남의 집에서 자고 오는 날에조차 잔소리를 하지 않았었다. 못된 친구들과 도둑질을 하던가 싸울망정 관여하지 않겠노라고 천명하였었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
  “될 수 있으면 이곳에 있는 2년제 전문대학교 가는데 어떠냐?”라고 충고를 했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선생님과 상담을 한 뒤로 태도가 일변하였는데,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하였다고 찰떡같이 믿는 것이었다.
  도시의 모 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원서를 턱 하니 넣고 합격을 하였지만 무슨 기술이 있다거나 전문적으로 배우려던 것이 아닌 맹목적임을 알고,
  “네가 알지도 못하는 전자과에 원서를 넣었는데 지금까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무엇 때문에 배우려는 거냐? 그 계통은 1년의 빠르기가 옛날의 10년과 같은데….”라고 따지기도 했었다.

  맑고 청명한 하늘이었다.
  봄이 들녘에 오고는 있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논둑은 풀이 메말라서 갈색 빛을 띠었고 논은 짙은 회색빛으로 농노 길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야산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좌측 편의 야트막한 언덕을 배경으로 축사가 덩그러니 축대 위에 지어져 있었다. 농노 길옆으로는 농업용 수로였지만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웃한 다른 계곡에서 이곳으로 농업용 관정을 연결하여 물을 대기 전에는 건천(물기가 마른 하던)이었으므로 바닥에 약간의 물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집에서 먹고 오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까지 식사가 배달을 잘 오지를 않았으므로 으레 그런 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K.D가 1년 전부터 세를 들어왔었지만, 그전에 2년 동안은 전혀 세를 놓지 못하였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꼭 이맘때 K.D를 만났고 한 살배기 남자 아이를 등에 업은 부인과 함께 이곳에서 공장으로 세를 얻고자 찾아왔을 때만 하여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들이 원하는 살림집을 공장에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려고 500만의 비용을 들였었다. 그때도 이렇게 직접 벽돌을 쌓는 막일을 하고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므로 사실 이런 일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0분 후에 나는 극심한 어지럼으로 위급환자가 되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도 그 병명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축사 앞에 이르렀지만, 농로로 통하는 진입로에는 마침 두 사람이 1톤 화물차 두 대를 대놓고 수리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들어가고 저하는 방향으로 진입로를 막고 고장 난 차량을 고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옆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장 난 화물차는 모두 U.K의 차량이었다. 그는 고물상과 축사를 병행하였는데 차량을 두 대나 갖고 있었다. 오래된 형식의 차량이 고장 나면 남자 조카와 여자 조카의 남편을 불러서 고쳤는데 이들 두 사람은 내가 농로 길에 차가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와서 도움을 주고 내가 3만 원씩 준 적이 있었다.
  U.K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경매로 낙찰받은 축사의 원주인이었다. 그는 축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빚을 졌는데 세 곳의 은행에 무려 30개가 넘는 가처분은 축사에 등기부에 올려져 있었으므로 그것을 확인하고 해당하는 만큼의 비용을 더 내고 풀어야만 했었다. 극심한 자금난으로 경매 처분된 축사를 낙찰받고 나서 U.K 이와의 대립은 우려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옆에 조립식으로 3평 정도의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은 경계를 긋지 않은 진입로에 진출하여 차를 세워 놓는 것과 고물 더미를 쌓아 놓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항상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오는 것이었다. 지금도 차량 두 대를 세워놓고 진입로를 가로막은 탓에 나는 그 앞에 내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청명한 날씨였다.
  차 문을 닫은 탓일까 아니면 좁은 차 안에 세 명이 탔기 때문일까? 무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눈앞이 어질 거리며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나는 듯싶었다. 이 순간에 나는 가만히 차 안에서 기다리던가 안정을 취하였으면 아마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차에서 내리고 나서 힘껏 문짝을 힘을 주워 닫았다. 차 문이 잘 닫히지 않은 것을 염두에 두고….
  두 번째의 현기증이 어지럽게 몰아 닥쳤고 뒤이어 땅이 꺼지는 것처럼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태어난 척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때도 내 몸의 상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는데 두 번째의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눈앞이 흔들렸지만 참는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평상시만 같아도 이상이 없을 아무런 신체적인 변화에 대하여 나는 앞으로 닥칠 위험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으니….
  “차가 고장 났나?”
  “어이쿠, 미안합니다!’
  U.K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자기의 차를 조카들과 조카 사위에게 맡겨놓고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사에 불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과 무관하게 언제나 축사로 진입하는 길목은 그의 차지였다. 나는 언젠가,
  ‘본때를 보여주리라!’하고 벼르고 있던 차였지만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 못했다. 진입로에 울타리를 치면 그가 입구가 막혀 버릴 것이므로 곤란을 당하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내를 실험하는 것처럼 진입로 쪽은 각종 고물, 쓰레기로 저희 쪽으로는 잔뜩 쌓아 놓고 우리 쪽으로 이용하는 탓에 불편을 감수하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나는 U.K를 문제 삼고 길을 비켜달라고 할 참이었다.
  “보다시피 차가 고장이 나서…. 죄송합니다만 잠시 기다리시는 편이….”
  U.K의 조카사위는 다마스(봉고차)라는 작은 차량에 온갖 자동차 도구를 갖고 다니는 떴다 방(고장 수리차량)을 하는 듯했다. 지금도 그가 수리를 전담하였지만, 처남과 함께 수리를 하는 중에 두 대의 차량을 붙여 놓고 배터리로 시동을 시도하는 중인 듯싶었다. 불과 몇 분전에는 막혀 있지 않은 곳에 두 대의 차량을 세워 놓고 진입로를 차단하는 두 사람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금방 고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U.K의 조카가 말했다.`
  “트랙터에 운반용 수레를 연결하려고 하는 데 재료가 없지요?”
  “그래……. 운반용 수레는 어디 있어?”
  저쪽에 있는데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나는 보았는데 이웃한 또 다른 축사 옆의 논바닥이었다. 불과 50여 미터 거리였으므로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서 얘기해야만 할 듯싶었다. U.K의 조카는 나이가 서른 살이 약간 넘었고 아버지를 닮아서 말이 어줍고 걸음걸이가 저는 듯했다. 그 아버지가 병신으로 태어나서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늘 욕을 먹었었지만 그나마 여자를 구해 일 남 삼 녀를 두었고 그 막내인 아들이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주 보아왔던 터라 야박하게 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하는가! 기구한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를 나는 언제가 소설로 기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만큼 그 부모는 세상에서 부족한 삶을 살아야만 했었다. 지체부자유로 태어난 아버지 그리고 서커스를 따라 찾아왔던 이곳에서 의지할 곳이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시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찾아와 연분이 된 남자는 한없이 부족한 불구자이었으니...

2011년 1월 22일
무궁화호 열차 9호 차 앞 자석이었다. 그러니까 71석.
나는 구포역에서 동대구역까지 오면서 구포역에서 사들인 볼펜으로 종이에 몇 자 긁적거렸을 뿐 전혀 한 게 없었다. 우연히 좌측 편에 붙어 있는 전원 스위치와 같이 밀면 올리는 플라스틱 뚜껑이 보였다. 아이보리색으로 벽과 같은 색이었고 그것을 밀어올리자 220V(볼트용) 전원 콘센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까지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가 충전이 되지 않아 모두 사용하였으므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무척 무료했었다.
  항상 출장을 나가기 전에는 가방에 서너 개의 비상용을 갖고 다녔었는데 만 충전된 상태였었다. 한 개의 배터리가 2시간씩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교체를 해가면서 글을 쓰곤 했었는데 너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이번에는 충전을 시키지 못하였었다.
  ‘음, 이게 웬 떡인가! 그렇지만, 과연 노트북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을까?’
  내 눈은 반짝거렸고 곧이어 가방에서 노트북에 연결할 수 있는 전원 콘센트를 끼워서 연결을 시켰더니 노트북 컴퓨터가 켜졌다.
  일곱 개의 기차 칸에 연결된 중간의 휴게실에는 PC 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구태여 인터넷이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용이 상당하게 비쌌고 더욱이 인터넷이 너무 느리고 중간마다 끊기는 일도 있어서 나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가 우연히 콘센트를 발견하게 되어 연결을 시키게 되었으므로 무척 즐거운 마음이 된다.


오늘 오전 11시 44분에 옥천 역에서 열차표를 끊으려다가 그만 돈이 없었으므로 여직원에게 사정하여 외상으로 끊고 아내에게 전화하여 역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부탁을 했다. 카드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차표를 끊을 수 없었다. 비밀번호 오류가 나서….
  “비밀번호 오류입니다! 이번에 두 번째고 다시 한 번만 더 오류가 나면 카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친절한 직원은 내게 다시 한번 내용을 설명해 줬다. 나는 카드를 내밀고 비밀번호를 쳤지만 두 번 모두 실패를 보았었다. 이상하게 은행에서는 비밀번호 오류가 나지 않는데 기차표를 끊으려면 오류가 났다.
  “그것은 비밀번호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정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
  언제부터인가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무인 매표기에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면 사용할 수 없다는 오류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영등포 역에서 국민은행 카드로 몇 번 시도했지만, 오류가 나서 발행을 중단하고 현금으로 끊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표에 명기된 시간을 잘못 보아서 차를 놓치고 다음 열차표를 끊었다가 그만 대전역에서 발이 묶였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는데 지금도 표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부산 가는 길
무궁화호 열차에서….
때로는 내 딸 아이의 어리광을 무시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내 딸 아이가 다른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왠지 내 딸은 그러지 않기를 은연중에 믿어 왔던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본다.
어진 아이들처럼 남자 친구에게 의지하는 두 연인은 마치 소꿉친구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 딸 아이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함께 즐겁게 노는 모습에서 억장(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낀다.
잠에 취해 하루 종이 뒹굴 거리며 토요일을 보내는 남자와 이불 속에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낮잠을 자는 딸아이는 어쩌면 같은 통속적인 모습이 아닐까?
내가 우려했던 건 그들이 돌아서면 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새롭게 나름대로 성을 쌓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나이 든 아버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래를 알면 그 애들이 그처럼 철부지의 애정행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딸 아이가 말하는 콩깍지가 씐 남자의 모습이 어쩌면 지난날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보다 자유스럽지 못해 왔었다. 그처럼 돌발적인 상황에서 뛰어난 감각을 갖지 못한 우연한 기회를 맹목적으로 상량이라는 그늘에 가려서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내 과거의 기억으로는 그런 사랑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팽배하여 왔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은 과연 얼마만 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딸 아이가 그토록 남자에게 집착하며 모든 것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아내는 딸만을 먹이고 재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일찍 외도를 한 못된 망아지 같은 딸 자식과 그 남자 친구를 재워주고 먹여 주워야만 했다. 그것이 백년손님이라는 허울에 가려서 어쩌면 딸이 우리에게 일찍부터 그런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이것은 엄연한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역의 가장 큰 원인과 제공자는 철부지 같은 딸 아이에게 있었다. 그것을 맹목적인 종살이처럼 부양할 수밖에 없는 모성을 본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일까? 그렇지만, 딸 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너무 일찍 많은 고통을 안겨 주웠다. 일찍부터 남자 친구를 집에 불러들임으로써 나와 아내는 송두리째 자유를 매장당하고 딸 자식과 사위가 될 남자를 부양시켜야만 할 의무에 시달렸으므로…….
   나는 그 애들을 쫓아낼 수 있을까? 이것은 내가 너무 일찍 알게 된 두 아이에 대한 부담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부터 시작될 고역이었기에 나로서는 딸 아이가 집에서 기거하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조차 포옹하게 된 것이다.
  두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사실은 다시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하나 더 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 애가 조금 철이 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회에서 한 일원으로 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이 영구히 영구직이라는 남자의 직업 때문에 지금 당장은 두 아이가 결혼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계속하여 내 집에 찾아와서 아내를 괴롭히더라도 그것이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애써 태연하게 부려보지만,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딸아이가 너무 일찍 남자를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고역과도 같은 저희를 떠맡겨 주웠으므로 하나도 역겨울 정도였지만 다른 하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부담을 나와 아내가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모양이다.
  특히 아내의 친구인 B.Sug 이도 딸 셋을 혼자 키우면서 둘째 딸 아이를 몇 년 동안 그렇게 사위를 오고 가게 하였었고 내가 아내와 함께 그 집에 찾아갔을 때 눈으로 직접 보아서 확인했었던 것이다.
  ‘백년손님!’
   ‘백 년 동안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이다!’
  ‘왜, 무엇 때문에…. 백년손님을 어려워할까? 그리고 그 어려운 만큼 받아들이고 인식하기 위해서 마치 딸에 대하여 잘 보아 달라고 부모가 다 같이 넙죽 엎드릴 수밖에 없는 꼬락서니를 해야만 할까?’
  이것은 너무도 힘든 경우였다. 그 애들이 밖으로 나가면 돈을 써야만 했고 쓸데없는 경비를 쓰게 할 것이지만 우선 집에 함께 있게 하면 그런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것이 딸 가진 죄라는 것일까? 너무도 철이 없는 딸 아이의 모습은 감싸는 남자에게서 자신이 줄 수 없었던 행복을 그들은 일찌감치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너무 일찍 찾아온 두 아이의 연애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불안감과 함께 너무도 고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또한 몇 년에 거쳐서 보는 것이 힘들 것이다. 딸이 <국가 간호사 시험> 때문에 한 달간 집에 와 있는 동안 남자 친구는 주말과 일요일에 찾아왔었다.
  어쩌면 이것이 어버이의 마음이라는 것일까?
  특히 버릇없고 투정 잘하는 딸 아이의 모습으로 볼 때는 너무도 많은 주문을 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게 여자들이 남자를 바라보는 끊임없는 요

대한민국에서 북쪽의 시베리아를 거쳐서 Alladla(알라드라) 호수에 이르면 그곳에 세계에서 모인 지구 방위대 소속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훈련에 열중하는 열공실이 있었다. 반원의 유리처럼 되어 있는 1차 보호막의 캡슐이 여기저기 눈과 얼음 덩어리로 뒤덮인 새하얀 별천지에 눈과 바람을 맞아가면서 둠(dum) 형태로 서로 통로를 만들고 캡슐 속으로 왕래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개미굴을 연상할 정도로 둠과 통로 사이를 모두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 중의 하나였지만 땅속을 뚫고 들어가지 않고 지상 위에 세워져 있는 유일한 지구 방위대의 건물이 그 캡슐 속에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지에서 갖게 된 외부 방어막으로서 자연 그대로가 일종의 천혜 요새와 다를 바 없었다. 오리는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었지만, 외부에는 들어 올 수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수백 년의 세월동안 철새로서 북극과 남반부를 왕래하고 있었던 오리들이 가진 요새화된 비밀 기지였던 것이다. 이곳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 요새화된 기지는 땅속에 심어져 있다가 필요한 때에 돌출하기도 했으므로 외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도록 특화된 세계였다. 하늘을 날아 들어와야만 올 수 있고 그만큼 비밀스러웠으므로 계속하여 지형이 바뀌고 있었고 그 지형 덕분에 기지는 외부에서 발견되지 않아 왔었다. 그러나 오리들이 가진 과학의 진전으로 지형을 축적된 영상으로 뒤바꿔 놓는 기술 덕분이었다. 그런 보호막이 감싼 천혜의 요새가 적들에게 들키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곳에서는 아직도 지구의 고유한 모습이 남아 있었고 공기도 신선했으므로 적들에게 방어막을 쳐서 아직은 견딜 만할 정도로 충분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습이 겉으로는 전혀 윤관을 볼 수 없었다. 상층부의 공기는 이미 유독 가스와 운무로 서서히 뒤덮여 가고 있었으므로 조만한 모든 것은 암흑 속에 잠기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곳 지하 세계에 마련된 둠에서는 공격 개시 신호와 함께 계획적인 훈련 상황을 각국에 타전하는 연구 인원과 첩보 위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첨단화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제공한 곳은 오리들의 과학적인 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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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고 이곳에 옮겨 적는 것은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숙성을 거쳐야만 하는 데 그 진가가 발휘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료로 첨부될 내용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이 모든 내용이 언제 어느 때 충분한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문학적인 고취하 충분히 무르익어야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