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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오리 (2)

4. 비애(悲愛) 4-5. 아, 내 사랑 선영이여!(4)

2005.02.28 23:33

문학 조회 수:1938 추천:117



질척거리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온통 빗물에 스며들어 대지와 숲, 도로변의 잡초가 차가운 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유를 많이 먹어 입에서 소화되지 않은 우유가 스멀스멀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이 이젠 완전히 젖어 더 이상 포화하지 못하고 대지(大地)가 물을 토해 놓고 있었다. 합쳐진 빗물이 모여 계곡을 따라 황토 빛으로 쏟아져 내리다가 폭포를 이루었고, 물줄기는 이젠 하천을 만나 합쳐졌다.
  “부다다다다- 부웅”
  요란한 오토바이의 굉음이 처음에는 듣기 좋고 반갑더니 이젠 조금씩 기쁨에서 비관으로 다시금 변한 내 마음 따라 춤추듯 감정은 뒤바꿔 버리고 있었다.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슬픔이 앞을 가렸다.
  “하느님, 제발 그녀 좀 돌려주세요!”
  누가 있지도 않은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복받치는 슬픔을 어쩌지 못하고 목매게 울부짖었다. 슬픔이 강물이 되어 굽이굽이 범람하는 물줄기처럼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그처럼 지울 수 없는 환영이 눈앞을 가렸다.
  금강 유원지에서 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는 도로를 타고 계속하여 달렸다. 좌측 편으로는 끝 길 모르는 낭떠러지고 우측으로는 시야를 가리는 계곡의 야산이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 졌다. 도로는 그 강가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내가 다가왔지만 전혀 보이질 않는다.
  “어때, 내 말이 맞지! 너무 멋지잖아?”
  “그래요. 좋아요……”
  그녀는 등 뒤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내 가슴을 꼭 안고 있었다. 부드럽고 뭉실 거리는 감각이 등을 타고 전해져 왔다. 둘이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 넘치듯 샘솟는 기쁨, 주체 할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사랑, 그녀의 체취, 그 모든 것이 황홀 그 자체였다.
  부드럽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육체에서 육체를 타고 전해져 왔다. 그렇게 애욕으로 가득 찬 적이 있었던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함께 있으면 세상이 없어져도 좋을 듯싶었다. 오직 그녀만의 나의 전부였고, 그녀가 옆에 있으면 다른 무엇보다 좋았다.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순례자처럼 그녀와 함께 달리던 도로를 바람처럼 달리면서 등 뒤에 선영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마음속에서 그녀가 대답한다.
  “그래, 이젠 헤어지지 말자! 네가 하자는 대로 다하마! 제발 내게 돌아와 다오!”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네가 하자는 대로 하마! 그래, 아주 멀리 달아나자 응?”
  “그래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도 찾지 못하는 둘 만의 세상으로 떠나요!”
  “아! 내 사랑, 선영아 나를 부디 용서해다오. 흑흑-으흐흑……”
  결국에 나는 울고 말았다. 빗물에 섞인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뜨겁게……

  공장에서 끝나자마자, 미리 나와 기다리는 골목에서 그녀를 만났다. 울었는지 눈가에 슬픔이 가득하다. 무척 고심하였다는 것을 발견은 하였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만 나오게 될지도 몰라요. 부모님이 눈치 채신 것 같아요.”
  “그럼, 차라리 잘 되었네. 이참에 만나 뵈어서 사랑하니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릴까?”
  “안돼요!”
  그녀가 펄쩍 뛰듯이 놀래 소리쳤다.
  “왜?”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물었다. 그런 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것이다. 오직 사랑 하나면 충분히 결혼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절대로 안돼요. 너무나 완고하셔서 연애한다고 하면 기절초풍 하실 걸요. 무엇보다 저를 가두고 말거예요. 밖으로 두문불출 할 테고……”
  “내가 찾아 가서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어?”
  “안돼요. 제 다리를 분질러 놓고 말걸요.”
  “……”
  “그러지 말고 우리 달아나요.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아나요. 서울이던 부산이던 아무 곳이나 따라 갈 테니까 제발 부탁이니 달아나자고요!”
  그녀가 두 손으로 나를 꼭 붙잡고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장남이었다. 내가 집을 떠나면 가족들은 생계가 곤란하게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어엿하게 결혼해서 집에서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 꼭 그래야만 했다.
  “그건 안돼!”
  단호하게 내가 잘라 말했다.
  “흑……”
  그녀는 마침내 울었다. 슬픔이 복받치는지 어깨가 움찔거린다. 그러나 곧 좋아지리라!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자아-자, 그만 울어. 우리 사진이나 찍자!”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 마냥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사진관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울어서 눈가에 슬픔이 가득 찬 얼굴로 그리고, 결심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옹고집으로 똘똘 뭉친 야멸친 모습으로 우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마냥 우리의 관계도 흔들림 없길 바랐다. 결코 사진에 찍힌 두 남녀가 이별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듯이 그렇게 도장을 찍 듯 모습을 박았던 것이다.
  선영이가 출근하지 않게 되자 나는 조급해져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 퇴근 후에는 으레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게 되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탁!”
  골목으로 난 창가에 작은 돌을 던지는 소리다. 그렇게 신호하기로 했었으니까. 다른 때 같으면 눈치를 살피면서 밖으로 나왔을 텐데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도저히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아, 좀더 참고 기다렸어야만 했다. 그리고 만나는 것을 연기하더라도 계획을 세웠어야만 했다. 그렇게 무턱대고 부모를 만나기 위해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불쑥 찾아 간 내게 좋은 인상을 받았을 턱이 없었다.
  “너 뭐야! 아니…… 이 놈이!”
  그녀의 부모들은 달가워하질 않았다. 도둑놈처럼 생긴 낫선 사내놈이 다짜고짜 찾아 와 자기 딸을 사랑하니 결혼시켜 달라고 닦달을 하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 하는 얼굴로 쳐다보고 거절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가 궁궐처럼 으리으리한 주택업자의 집에 찾아가 둘이 찍은 사진을 내밀며 엎드려 절을 하자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는 부친이 입을 딱 벌리며 격양된 음성으로 소리쳤다.
  “선영이를 사랑합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허락해 주십시오!”
  “아……아니- 아이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육갑 떨지 말고, 나가! 나가-마!”
  노발대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편의 등살을 참다못한 부인이 보다 못하여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와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아니, 앞 뒤 분간하지 않고 불쑥 찾아 와서 그런 소릴 하면 어떻게 해요. 귀띔이라도 해 줘야지 다짜고짜 딸을 달라고 하니 좋아 할 애 아빠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내 딸애가 몇 살인 줄이나 알고 하는 소리여요?”
  “예, 열아홉 살 아닌가요?”
  그래도 선영이의 모친은 대 놓고 욕부터 하지는 않았다. 조리 있게 자기 딸이 너무 어리니 좀더 크면 그 때 다시 얘기하자는 권유와 부탁을 하면서 더 있으면 화가 난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등을 떠밀려 밖으로 내 민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강가의 도로를 휑하니 달려가는 오토바이에 몸을 실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선영이의 환각을 보았다. 그토록 애절한 모양으로 흐느껴 울며 손짓 하고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안돼, 안돼 선영이!”
  급커브였다. 빗물에 축축한 노면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오토바이를 여지없이 중심을 잃게 하고 말았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급히 밟은 브레이크 때문에 크게 기울면서 넘어지고 몇 바퀴 굴러 결국에는 절벽 아내로 곤두박질 쳤다.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다. 모든 게 백지처럼 하얗다. 그렇게 세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알고 나서 모든 사물이 반대였으니까. 전에는 따뜻한 양지만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음지가 있었고 죽음이 지척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오토바이가 부셔진 것을 알고 기겁을 한다.
  “아니, 왜? 사고 났냐!”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거 큰일이구나. 이러다가 애 잡겠다. 잡겠어! 무슨 조치를 취해던가 해야지……. 원, 참내! 그래, 크게 다친 것 같은데 병원엘 가야지? 어이구, 피나는 거 봐라. 잔말 말고 병원에 가자!”
  “글쎄, 괜찮다니까요!”
  내가 버럭 소리를 냅다 질렀다. 미리 입을 막을 속셈에서다. 그런데, 모친이 자고 있는 동안에 무당을 데려 와 굿판을 벌렸던 것이다.

  단 하루라도 집에서 쉬면 좀이 쑤셨었다. 먼저 다니던 숟가락 공장을 그만 두고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고 취직을 해 보았었다. 바늘 만드는 공장, 봉제 공장, 노동일을 임시로 해 보았으나 돈 벌이가 시원찮았다. 거의 두 달간을 이렇다 할 돈을 만져 보지 못하다 보니 눈이 안보였다. 걱정이 태산 같았고…… 직장을 갖고 있을 때보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더욱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눈이 돌아갔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경우였으리라. 사고가 난 것도 어찌 보면 그녀와의 이별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하지 못해 머리 속이 복잡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눈앞이 안보였었다. 무언가 직장을 잡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 필요 했는데 그 방법을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데 무당의 푸닥거리가 시작 되어 벌떡 눈은 떴지만 일어 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동네에 사는 무당을 불러 왔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굿판은 거의 두 시간 동안을 이어졌다. 그리곤, 돼지 머리에 꽂아 놓은 퍼런 지폐를 챙겨 들고 돌아가고 덜렁 혼자 남았다. 천정이 빙글빙글 돈다. 긴장이 풀려서 일까. 도무지 잡념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일은 다닐 만한 곳을 찾아보리라! 그것이 무엇보다 지금의 내게 필요하다고 재차 결심한다.


인용할 곳 ---> http://munhag.com/bbs/zboard.php?id=ilgi&page=9&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