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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오리 (2)

2. 오리의 교미 2-4. 오리의 세계 2

2005.02.28 12:10

문학 조회 수:2030

   일 년 전이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막내가 불쑥 친구들과 옥천에 찾아 왔었다. 여자 하나와 남자들 세 명. 그 당시에는 새끼 오리를 사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지 않았을 때이고……
  다른 젊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특색을 찾아 볼 수 없는 도시의 청년과 처녀였다. 그들이 동생과 함께 잠시 들렸다 갔지만, 내게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었다. 아내가 차 한 잔씩을 끓여 준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 키 작은 아가씨가 나중에 친구를 막내 동생에게 소개해 주웠다는 임 양이 문제였다.
  아내와 나는 딱 세 번인가 보았을 뿐이다. 근 일 년 간 끌어오던 그들 두 사람의 교제가 종지부를 찍기까지 얼마나 깊은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관계만큼 고심하고 있을 막내였다. 바로 한 달 전에 내가 한 말로 인하여 막내가 결별하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으니까 내게도 책임이 있었다.
  바로 한 달 전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찾아와 이틀을 기거하면서도 여자와 전화를 하는 표정이 안 좋게 보였었다. 조카들과 금강 유원지를 놀러 갔다 오면서도 얼굴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이런 때는 무엇보다 여자의 육감이 빠른 법인가 보다.
  “근데, 도령님이 이상해요. 통 여자 분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좋아 죽을 듯이 행동 해 오던 예니 때와 달리……”
  “아빠, 금강 유원지에 놀러 가서도 삼촌이 전혀 전화를 하지 않아요.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불나게 전화 하더니 오늘은 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았어요!”
  나와 아내가 하는 말을 주워듣고 아들놈이 나서서 한마디 거든다. 그렇지만, 나는 감각이 둔했다.
  “오늘 만나기로 했으면 어서 나가봐라!”
  “괜찮아요. 저가 만나기 싫은 모양여요……”
  “어째, 이상하다. 너희들이 서로 좋으면 올 해 결혼하기로 하지 않았니?”
  임 양이라는 아가씨를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약혼식 겸 상견례 회식(會食) 자리에서다. 그녀의 집에서는 부친, 모친과 큰 언니가 나왔고 우리는 어머니, 나, 아내, 그리고 막내가 나갔었다. 결혼 날짜를 확답 받으려고 우리 쪽에서 만나길 원해 마련한 자리였다. 내가 듣기론 부여에서 농사를 아주 크게 짓는다고 했다. 한 여름에는 수박을 여러 통 얻어먹었고 가을에는 팔지 못해 밭에 굴러다니는 무를 자루에 담아 얻어 다가 내려놓고 가서 농사를 많이 짓는가 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부모끼리 대면한 석상에서도 결혼 얘기는 은근히 언급을 회피하는 여자의 아버지였다.
  “올 가을에는 안 되고……어쨌든 조만간 확답을 주지요. 가만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여자는 결혼하면 고생 아녀요. 좀더 있다 하는 편이 이롭지요. 호호호”
  여자 측에서 아버지와 큰 딸이 유독 만류하는 듯 했다. 도데체가 왜, 무슨 이유로 결혼을 한사코 미루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의심부터 했었다.
  “왜, 저렇게 결혼을 미루는 거지?”
  내가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사실은 큰 언니에게 얹혀사는데, 동생이 모은 돈을 다 썼는가 봐요. 시집갈 밑천이 없다보니 자신들이 없나보죠. 부모가 땅을 팔겠다고 내 놓았는데 경기가 없어서 팔리지 않는데요.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은 못하고 저렇게 핑계거릴 찾는가 보죠.”
  그렇게 아내가 코치를 해서 비밀스런 내막은 알았지만, 은근히 불쾌했다ㅑ. 그들 식구들의 투박하고 경박한 말투가 바로 막내딸인 임 양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비쳤었다. 어찌 보면 교미가 되지 않는 순오리(아이들은 왕따오리라고 부른다.)처럼 어리석고, 못나고 또한 도도하였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말하는 투가 그렇게 경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막내를 위해 전혀 내색하지 않았었다.
내 딴에는,
  ‘콧대가 세구나!’
  ‘인물값을 하는구나!’
  ‘결혼해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겠구나!'
  ‘왜, 저렇게 예의가 없이 말씨가 톡톡 쏘고 드셀까?' 하고 처음 대화를 했을 때 알아 봤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막내가 좋으면 됐다고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게 아니니까. 둘이 좋으면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결혼해선 어데서 살 거냐?”
  내가 왜 그렇게 물었는지 모른다. 전혀 의도(意圖)가 없는 말이었다.
  “그냥 여기와 살고 싶어요!”
  이게 웬 동문서답이냐? 저희들이 알차게 계획을 했으련만 이건 전혀 딴판이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 옥천서 살겠다고 했냐?”
  제 딴에는 큰 형인 내가 성공한 것처럼 비쳤는가보다.
  “그래, 겨우 나처럼 되라고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했단 말이냐! 여기 옥천서 학원 차리겠느냐, 출판사를 차리겠느냐! 여긴 너무 비좁고 시장이 좁아 네가 놀 물이 아니다. 죽으나 사나 서울서 있어라! 거기서 네 연고지가 있잖아 대학을 나왔고 대학원을 나왔으니 아는 사람을 찾아가면 길을 알려주고 방법을 찾기 쉽지 않겠냐.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되지 말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큰물에서 놀아야 되는 법이다.”
  나는 일장 훈시를 했다. 동생에게 어떤 의향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뜻이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되니까. 할말을 했을 뿐인데, 어떻게 된 건지 막내는 그 동안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던 게 일시에 풀린 모양처럼 심각해 보였다.
  “요즘은 너무 힘들어요.”
  “왜?”
  “여자가 만나 주질 않아요! 그래서……”
  동생이 그 뒤의 내용을 밝혔기 때문에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서울과 대전에 떨어져 있다보니 서로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점, 계속 되는 불안으로 조바심이 나서 찾아 가면 벌써 의처증이 있는 게 아니냐고 구박하는 점, 또한 백화점에 다니는 여자를 퇴근 무렵에 찾아 가면 회식이 있다 야근이다 하며 만나주지 않는 점, 그런 모든 사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남자가 생긴 것 같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용을 알라 보고 만약 그렇다면 헤어질 생각이라는 것 등을 털어 놓았다.
  “그래, 그런 여자와 살면 네가 힘을 펼 것 같으냐? 모르긴 해도 평생 여자 뒷바라지만 해야 할 거다. 결혼해서 성격을 고쳐 나간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결혼은 서로를 구속하는 겻이 아니고 방임하고 존중하는 건데, 어떻게 믿고 산다는 거냐. 진작 하고 싶던 말이다.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잘 생각해라!”
  마지막으로 그렇게 충고를 했지만, 결코 다른 뜻은 없었다. 내 딴에도 막내에게 거는 기대가 컸었다. 서울서 대학원까지 나와 한 여자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와 여자 뒷바라지를 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자가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네 나이가 몇이냐! 서른 살이나 되어서 이제 시작하겠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사회는 냉정한 거다. 네가 크고 널 알아주는 서울에서 네 꿈을 키워야만 한다. 그곳에서 같은 뜻을 가진 여자를 만나 학원을 차리던가 해서 같이 일어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고 쉽게 자리를 잡는 방법임을 왜 모르더냐. 물론 이젠 다 부질 없고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네가 그렇게 처신하길 바랐었다. 되 바라지 않은 여자 치마폭에 가려 네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주저앉는 네 모습이 보였지만 언제 한마디 싫은 소릴 했었느냐. 그렇지만, 널 위해서 나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를 설득해서 서울로 올라가겠다. 그것이 빠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다.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올 해 결혼해서 내 여자로 만들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라!”
  “.......”
  막내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에게 들을 말이지만 그날 저녁에 여자를 만나,
  “자! 너도 내가 싫지! 이젠, 그만 만나자 싫은데 구태여 만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이젠 끝내자. 아주 영원히……” 그렇게 고별을 선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