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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오리 (2)

2절. 법조계 숙부와 양식기 사장 간의 밀월 관계

2007.10.07 18:43

문학 조회 수:3657 추천: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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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법조계 숙부와 양식기 사장 간의 밀월 관계

                            1

  숙부에 대한 평판은 친척들 간에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유독 잘 풀린 그는 법조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알려졌었다. 출세 가도를 달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위상에 변호사의 옷을 벗게 하는 대형 사건에 연루되어 1년형의 구속되었을 때는 내가 양식기 공장에서 퇴사를 한 뒤였다. 그 변호사 비리 사건으로 숙부는 법조계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었던 대형 사건으로 법조계가 들썩거렸었다. 만약에 그때까지 내가 양식기 공장에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한배를 탄 것처럼 함께 구속되지 않았을까?

  그는 기업의 약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무마시키려면 돈으로 매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시켰으며 아플 곳을 통하여 피를 주기적으로 빨아 대는 흡혈귀 같았다. 그는 법조인과 일반인의 중간에서 브로커로 자차 하였고 거기에 마땅하게 돈줄을 대게 하였는데 반드시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우 많은 사람의 고통을 쥐어짜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지위를 주웠으므로 나는 숙부와 그렇게 가깝지 않았었다. 숙부는 그 위치에 대하여 자신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늘 법 위에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변호사에 합격하였을 때만 해도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던 형편이 그야말로 벼락부자처럼 행세하고 다녔으므로 친척들 간에 좋게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주로 약점이 잡힌 많은 사람이 그를 알고자 했고 그를 통하여 법원의 연줄을 통하여 불법적인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였으므로 그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연관이 되어 이미 넘어오지 못하는 선을 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흔히 서민부터 시작한 관료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배고프고 굶주렸던 가난한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일약 높은 고관대작이 되어 국민의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면 그 뒤부터는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려고 해결사를 자청하며 돈을 들고 찾아오는 아부와 위선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그들을 문제를 해결하고 코미션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 눈은 흐려져서 들어오는 돈에 일약 부자가 되면 더 많은 욕심과 기름기에 살진 돼지가 되고 만다. 그런 정부 관료들과 이름 있는 국회의원들의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에 대하여 우선 국회의원들을 보자 100명을 채우면 원성을 듣게 되니 99명의 명수를 만들었고 각자마다 일곱 명씩의 보좌관들을 두었고 여름 피서철마다 외국으로 모두 나가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온답시고 나가는 모습들을……. 정부 관료들은 또한 어떻던가! 동네 동사무소에는 고위 공무원들이 이름을 올려놓고 근무하였지만 명세기 고위직 공무원들은 현장 일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하위직 공무원들만 서류 작성이라는 단순 업무에 혹사당하는 사실들은 또한 어떻던가! 법조계의 비리는 이런 종류와 는 또한 달리한다. 그들은 고객을 통하여 주민과 직접 연관이 있었다. 법으로 해결하려는 많은 국민의 고민과 고통은 기업인들에게는 암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 덩어리였다. 한편으로 불필요한 법조계 사람들과의 밀착관계를 만들었다.

                          2

  양식기 공장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 같았다.
  우선 소음공해였다. 연마실(硏磨室)에 부착된 거대한 송풍기에서 돌아가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항상 윙윙거렸다. 라인별로 외부로 환기를 시키려고 실내의 천정을 부착된 송풍 관들을 따라 건물 외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송풍 관을 타고 밖으로 빨려나간 연기가 주위에 퍼지는 광약이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 공해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빙산에 일각일 뿐이었다. 그 최고의 공해배출 사건은 내가 입사를 하고 일 년 정도가 되어 일어났으며 신문과 방송에까지 났을 정도였다.
  공장 주위는 포플러 나무를 울타리들을 둘러치듯이 심었으며 공장의 건물은 전체 토지에서 십 분에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삼만 평의 부지에 삼천 평도 되지 않는 건물이었다. 그 밖의 주위는 공장 주위에 포플러 숲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음이 주택가로 가지 못하게 방지하려는 목적일 것 같았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주택가에서의 소음 환경 고발을 지금까지 무마시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법조계에 근무하는 숙부와의 뒷거래가 작용했다는 점과 회사 측에서 내가 친척이라는 점을 내세워 계속 숙부를 협박했던 사실에 무엇보다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밀월관계가 나를 그곳에 붙잡고 있었으며 아마도 선영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반장 과장 부장 등으로 승진 가도를 달렸을 것이다. 또한, 내가 우려했던 일이 환경문제를 가지고 제기도 고발을 무마시키려고 법조계 숙부를 내세워 동네 사람들과 싸웠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까지도 그 문제는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회사 측에서는 공업단지로 다른 공장들처럼 이사를 할 수 없는 처지였고 차라리 주택가의 한복판에 남아서 근처의 직원들을 종업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집에서 불과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양식기 공장에 입사하여 광연마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뒤부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나는 한 라인의 리더인 조장이었으며 다섯 명을 데리고 모든 작업을 책임져야만 했다. 기계의 상태, 그밖에 제품이 되어 나오는 공정 라인, 작업자의 태도(기계에 손이 말려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기계의 상태(너무 압력을 조이거나 풀어놓으면 모터가 타고 제품이 닦이지 않는다.)를 점검하였으며 특히 첫 작업인 나래미(제품을 일 열로 정렬하여 집게로 무는 작업)를 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장은 인원이 여유가 있을 때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항상 부족한 작업자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래미를 놓던가. 부족한 중간 부분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래 그림처럼 제품을 쥐고 작은 홈이 파인 나무판 위로 지나가면 그 홈에 제품이 일 열로 정렬을 하게 된다. 그러면 제품의 손잡이 부분을 바이스(집게)로 물어서 앞에 놓게 되면 다음 작업자가 기계에 넣게 되고 그 기계에서는 물체를 감지하게 되면 아래위의 빠우(천과, 마 종류를 겹쳐 끼워 놓은 롤러)가 내려와 제품을 닦아 내는 것이다. 이때 매캐한 광약 냄새와 함께 고체인 광약이 액체로 되면서 제품과 마찰하면서 밖으로 뿌려지는데 그것이 작업복과 얼굴에 묻게 되면 눈만 남고 얼굴이 검은 그을림으로 범벅이 되곤 했었다.

  기계 앞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보다 앞에서 나래미를 놓으면 외형은 깨끗할 수 있었다. 하자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집게가 고장 나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바이스 뿌레이어와 같은 누름 쇠가 세 개나 붙어 있는 집게를 벌려 제품을 물려고 하는데 장석이 떨어져 있어 물 수가 없다. 그렇게 불량이 되어 던져 놓은 것이 벌써 네 개째다.
  “어이! 앞에 와서 나래미 좀 놓아!”
  나는 다음 사람에게 내가 하던 일을 맡기고 집게를 들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열었다.
  눈 부신 햇살이 충혈된 눈을 뚫고 몰려들어 오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이젠, 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나오면 너무나 눈부셔 현기증이 나는 것이다. 잠시 서 있다가 정문 옆에 있는 공무과로 뛰어갔다.
  “집게를 고치러 왔는데, 좀 고쳐줘요?”
  공무과 안에는 쇠를 까는 선반(旋盤) 기계, 밀링 기계, 부레나 기계와 기어를 깎는 홉삥 기계가 무서운 쇠 빛과 초록의 페인트칠로 번쩍번쩍 빛을 내며
위치하고, 세 사람의 기술자들은 여유가 있고 한가롭게 내 눈에 비쳤다.
  ‘아, 얼마나 좋은 직종인가! 나는 힘들게 몸으로 부딪혀 일하는데, 저들은 그저 기술로 전혀 힘이 들지 않고 일하지 않는가! 세상에 저렇게 좋은 직업도 다 있다니……’
  이렇게 마음속으로 그들을 흠모하고 질투했다. 아니, 그 표현은 정확하지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 눈에는 그들이 내게 머나먼 꿈이요. 이상이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그러면서 영원히 그들과 나와의 거리감은 너무도 절대적인 것으로 완전히 상반된 신분적인 차별을 갖게 하였고 그 차이는 내게 절망적인 고뇌를 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저들은 갖고 있었으며, 내가 그들처럼 편하게 생활하고 기술을 배우려는 시도는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서 적어도 그 당시의 내게 여기 광연마는 벗어날 수도 없는 천직이며 도저히 다른 직종의 선택과 모험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거기 놓고 가!”
  그들이 내가 급한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 것이 야속했다. 갖고 가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하던 일이 있다고 그걸 마무리 짓고 해주겠다고 놓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다른 때 같으면 기다렸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삼 일째 철야 작업을 하여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녹초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희는 5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그 심정을 헤아리기나 할까 싶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공무과 앞에 앉았다. 그리곤, 집게를 그곳 바닥의 철판 위에 놓고 용접기 고대(용접봉을 무는 것)를 집어들고 그들이 보건 말건 지졌다.
  “지지-직!”
  밝은 빛의 광채가 번쩍 일어나며 눈앞이 컴컴하다.
  “자, 이걸 써봐!”
  내가 잘 아는 윤 기사가 내게 용접할 때 쓰는 검은 유리가 달린 마스크를 건네준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아 와서 잘 아는 터였다. 그 유리 안으로 불꽃이 일어나는 부분을 살펴보면서 용접봉을 갖다 대었더니 너무나 잘 보였다. 눈이 아프지도 않다. 그렇지만, 용접하려는 부위가 자꾸만 벗어난다.
  “허허-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잘 봐! 이렇게 경사지게 들고 밀어내듯이 가까이 대면서 서서히 내리는 거지.”
  내가 하던 용접 고대를 뺏어 들고 윤 기사가 용접을 해 준다. 다른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는지라 나는 얼씨구나 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해 본 용접이었다. 그 뒤로는 곧잘 용접을 직접하곤 했다. 목마른 놈이 물을 마신다고……

                        4

  어둠침침한 실내가 밖에서 방금 들어왔기 때문에 전혀 보이질 않는다. 마치, 극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처럼 눈에 금방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작업 현장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남짓 되는 동안 손에 익을 대로 익은 기계들과 익숙한 작업장의 분위기는 그다지 어두운 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기계 위에 매달린 형광등 불빛을 따라 가동되는 기계 라인만 불을 밝혀 작업하면 사물을 분간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퇴근하면 밤 9~10시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런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장남으로서의 의무 때

문이었을까? 아니, 이 공장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이런 악조건하에서 그 나름대로 목적과 뚜렷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도 그렇지만, 이 생활에 대하여 고생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각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적어도, 군대에 갔다 온 뒤에 정해진 목적이 없이 직업을 선택하였던 내 탓이었을 게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공부와 담을 쌓다 보니 학교에서 보내주는 직장은 바랄 수조차 없었다. 막상 졸업을 하였지만, 별반 취직할 수 있는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하여 졸업하고 3개월 만에 군대를 지원 입대하였었다. 제대 후에도 뚜렷하게 다닐만한 직장이 없었다. 우선은 젊은 패기가 있었기에 이곳이나마 취직하였던 것이다.

  광연마(光硏磨)라는 부서는 양식기(洋食器) 제조업체에서 뒤에서 두 번째 부서에 속한다. 포장부 바로 앞이다.
  건물 내부에는 기계들이 들어차 있는데, 일정한 비율로 작업 공간을 형성하여 줄을 맞추어져 있고 기계마다 특색이 있었다. 자동 시설이었지만 물건을 넣고 빼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해야만 했다. 기계의 구분은 줄을 맞춰진 상태를 보고 1라인(Line)이라 한다. 그렇게 4라인을 형성하여 전체가 구성되었는데 라인 별로 특색을 두었다. (라인 별로 대개 6~7대의 기계가 구성된다.)
  1라인에서는 T-Spoon(차-숟가락), 2라인은 Spoon(중 숟가락), 3라인은 Fork(포크), 마지막으로 4라인은 Knife(나이프)를 작업 할 수 있다. 줄을 맞춰 진열된 30여 대의 기계 뒤편으로는 먼지를 빨아 낼 수 있는 원형의 파이프 시설이 거대한 동물 내장처럼 천정을 가로 질러 놓였는데, 실내가 어두운 것은 바로 그 길게 뻗은 관(파이프)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파이프는 라인은 4줄로 각각 벽을 뚫고 밖의 후황(공기를 빨아내는 송풍기)으로 연결된다. 거대한 후황에서 나오는 소리가 내가 어렸을 때 늘 듣고 자랐던 그 윙윙거리는 이상한 소리란 걸 비로소 알았었다. 요란한 후황소리는 귀가 먹을 정도로 심했다. 나는 그 소리 탓에 집에 돌아와 잘 때도 늘 귀가 윙윙거리곤 했다.
  무엇보다 매캐하게 일어나는 연기와 냄새 그리고, 분진 그런 모든 것 때문에 현장은 어두운 빛깔 그 자체였다. 작업하는 사람조차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두운 먼지로 뒤집어써서, 퇴근할 때는 반드시 목욕을 하여야 하는 것이 고역이라면 고역일까?

                        5  

  목각으로 작은 홈을 판 나무판에 스픈(Spoon)을 잔뜩 움켜쥔 오른손이 지나가면 일 열로 일정한 간격을 벌려 놓인다. 모두 열여섯 개다. 그런 다음 머리 위에 체인으로 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온 길이 60센티 정도로 긴 집게(바이스-뿌레야)를 내려 스푼의 손잡이 부분을 끼우고 뒤에 있는 세 개의 누름 장치를 힘껏 눌러 좌측 편에 비스듬히 세워 놓고 다시 스푼을 한 움큼 집어든다. 그리곤, 재차 나무판에 대고 그저 문지르기만 하는 것처럼 해도 그 작은 홈에 스푼들이 일정하게 정열 해 버리는 것은 노련한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래미라고 부르는데 보통 사람이 하면 작은 홈에 스푼이 끼지 않기가 일쑤고 두 개 세 개씩 떨어졌으며 또한, 나란히 줄이 맞지 않고 비스듬해지고 만다. 그렇게 물린 열여섯 개의 스푼은 다음 작업자가 광약이 묻힌 기계 속에 밀어 넣어 주웠다. 여섯 대의 기계가 있었지만 모두 네 사람이 뒤 작업을 하고 있다. 그나마 그 끝에 있는 두 사람은 아주머니였다.
  조장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이 내겐 가득했다. 이렇게 나래미를 놓기까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앞에서 하는 작업은 편했다. 그렇게 육체적인 노동을 혹사하지 않는 탓에 마술처럼 기술을 부려 제품을 정열 하여 집게를 물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놓는 것에 국한하였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조장으로서의 할 일을 그냥 접어 둔 채 한 사람 몫을 더 하는 형편으로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었다.

  “오늘도 철야 작업을 해야겠어요. 수출 날짜가 있어서 클레임을 먹으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알고 지시를 하십시오!”
  사무실에서 긴급 소집된 조장 회의에 반장은 황급히 말했었다. 그의 억양은 격양되어 있긴 해도 악의는 없었다. 누구보다 나는 반장을 믿었다. 6개월도 되지 않은 나를 조장으로 세워준 것도 그였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불러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오랜 경력으로 고래 힘줄처럼 버티는 그가 안쓰러워 아낌없는 조언과 충성을 약속하기도 했었다.
오늘까지 철야 작업을 하면 벌써 삼일 째다. 완전히 몸은 녹초가 되다시피 한데 쉴 새가 없었다. 그저 반복적으로 몸을 놀릴 뿐이다. 사무실에 거울을 보았을 때의 얼굴은 온통 검은빛이었다. 흰 살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검은빛의 페인트로 도포를 한 것처럼…… 그나마 두 눈은 아직도 광채가 나는데 징그러울 정도다. 마치 밤 고양이라던가 호랑이의 두 눈처럼. 그것이 내 눈이고 내 얼굴이라고 믿기조차 어렵지만 몸이 피곤하고 다시 작업에 들어가면 검은 먼지의 분진으로 이내 더러워지기 때문에 닦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삼 일 동안의 철야 작업으로 온몸이 녹초가 되면서 결국 작업을 끝내었다. 모두가 먼저들 퇴근한 모양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나와 목욕탕으로 향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항상 늦었다. 반장이 작업 일지를 맡겼기 때문이다.
  “오리 씨가 영어를 잘 아니까 작업 일지 좀 적어 줘요!”
  “그러지요.”
  정중히 부탁하는 반장의 권유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는 그 대신 내게 그만큼의 봉급을 인상해 주웠고 생각보다 많은 액수의 봉급을 어머니께 갖다줄 수 있는 보람으로 흔쾌히 승낙하였던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내게 이런 부탁을 하기도 하였다.
  “사실은 내가 영어를 잘 모르는데, 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예?”
  아직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하질 못하여 되물어 본다.
  “사실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서요. 영어는 그 나름대로 쓸 줄은 아는데, 도무지 그 발음을 모르겠더라고요!”
  “아, 예!”
  그 뒤부터 시간이 되는대로 반장에게 발음기호를 가르쳐 주웠다. 반장도 제법 열의를 갖고 배우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쉽게 배워지지 않는 듯했다. 내가 적어준 발음기호와 자신이 구입한 책을 갖고 공부하는 것이었으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에 더 이상의 선생 노릇은 하지 않았다. 너무나, 바쁜 일에 쫓기다 보니 모든 것을 잊었다고 할까.
  그 덕분에, 솔직담백한 반장과는 격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2년 동안 근속하게 하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고 본다. 아마도, 포장부(包裝部)로 부서를 옮기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회사를 그만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장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평생이라도 함께했으리라!

  사무실에서 나와 썰렁한 작업장을 돌고 뒤편의 탈의실로 향했다.
으스름한 달빛이 청승맞고 아직도 3월의 초순의 밤 공기는 매섭고 야멸치게 부는 찬 바람 탓인지 소름이 돋는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시계를 꺼내 내려다보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모두가 퇴근한 모양이군. 개미 새끼 하나 없으니. 그새 다들 부리나케 갔구먼, 코빼기도 안보이니’
  끝나자마자 후다닥 달아난 사람들을 탓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모두가 집으로 줄행랑을 쳤으리라!
  ‘사흘 동안 철야 작업을 했으니 오죽하겠어.’
  혼잣말로 지껄이는 내가 한심했다. 가슴 깊이 치미는 울적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없이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영원히 이런 비참한 생활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삶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자유를 무시한 노동의 착취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인 보상이 따르지만 인간을 너무나 비참하게 엮어가는 분위기에 이렇게 슬퍼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탈의실에도 아무도 없다.
  나는 덩그러니 옷을 벗어 벽에 걸고 열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썰렁한 분위기에 혼자라고 생각하니 무섭기조차 하다.
고독이 엄습해 왔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옷을 벗고 뜨거운 물을 끼얹어 본다.
  “쫙-악……”
  날마다 닦는 탓에 거친 피부가 되어 버린 걸까 비누를 묻힌 수건을 문지르자 불에 덴 듯 따갑다. 그렇지만, 온몸 구석구석 닦지 않으면 남아 있는 검은 광약 찌꺼기를 닦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이삼십 분가량을 닦고 나니 개운하다. 스르르 잠이 엄습하는 것이 참기 어렵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진저리를 쳐 보지만 잠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눈꺼풀로 모였다.
  목욕탕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걷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가느다랗게 물소리 같기도 하고 주룩 거리는 빗물 소리 같기도 하고 쩔걱쩔걱 물속에 넣고 흔드는 그런 소리였다.
  소리 나는 방향을 보니 남자 탈의실 위쪽에 있는 여자 탈의실이다. 탈의실이라고 해봐야 여기저기 나뭇조각을 주워 기워 짓듯이 못을 박아 덕지덕지 무늬가 고르지 않는 나무 가옥이다. 내부는 목욕탕이 딸려 있어서 한쪽 편에 옷을 벗어 놓는 장식장이 전부인 남자 탈의실은 좀 더 크고 높았지만, 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놓는 여자 탈의실은 그것보다 작은 편이었으며 좀 더 비탈진 언덕 위에 있었다.
  우수수하고 바람 소리에 여자 탈의실 뒤편의 포플러 나무숲이 흔들린다.
  음침하고 음산한 기운이 드는 여자 탈의실로 무턱대고 발길이 돌려졌다. 아무도 없을 텐데 귀신이라도 있는 걸까? 이상한 예감이 들어 한번 살펴보고 갈 참이었다.
  “덜컥!”
  닫힌 문이 힘없이 열렸다.
  “어머나!”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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