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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오리 (2)

제1막 3장. 양식기(洋食器) 공장에서 일을 한다.

2007.10.07 18:09

문학 조회 수:3705 추천: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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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3장. 양식기(洋食器) 공장에서 일을 한다.  

    1절. 양식기(洋食器) 공장에 취직을 한다.

                          1
  어렸을 때 보았던 양식기 공장은 대략 3만 평 정도의 비스듬한 언덕 위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위치하였다. 부지의 절반으로 나누어 볼 때 남쪽은 도로와 연결하여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공장 건물들이 몇 채 모여 있었지만 북쪽으로는 경사가 심한 언덕으로 울창한 포플러 숲이 성곽처럼 공장을 감싼 풍경이었다. 도로와 인접한 곳에는 축대 위에 담을 세워놓았으므로 안을 볼 수 없었지만 우리 집은 거리상으로 오백여 미터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으므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쳐다볼 수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판자촌처럼 무허가로 주택들이 달동네에 들어섰었다. 그렇지만, 이제 어느 정도 생활들이 펴서 그런지 이웃한 공장을 공해 배출업소로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소음공해 때문인 귀속에서 윙윙거리는 이명(귀울림)은 난청의 위험까지 있다고 민원을 넣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가 나중에 후황(바람을 뿜어내는 거대한 공업용 송풍기)과 기계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라면서 동네를 뛰어다니며 보아왔던 공장을 나는 무척 호기심을 많이 갖게 되었었다. 그곳 담에 차를 세우고 위에서 고철 더미를 차에 실을 때는 으레 생산제품의 불량품들을 줍곤 했었는데 그중에 가장 흔한 것이 포크(Fork)였었다. 하지만, 그곳에 다니게 되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꾸지 못하였다.
  대략 주택가와 인접한 양식기 공장에 대한 궁금증은 내가 군대에 갔다 오고 그곳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 풀렸지만 무슨 마음으로 회사의 정문에서 경비에게 입사원서를 들이밀며,
  “취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아침 일찍 출근 시간에 맞춰 입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내게 경비가 친절하게 보내준 곳은 광연마(光硏磨)라는 곳이었다. 공장의 정문에는 항상 사원모집 광고판이 버젓이 붙어 있었다.

  ‘생산직 사원 항시 모집
  생산직 남녀 00명’

  여기서 내가 양식기 공장에 취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시대적인 배경이 깔렸음을 밝혀 둔다.
  나는 상업 고등학교 3학년 초에 학교에 가기 싫어서 인근의 봉제 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그리고 취직 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하여 실습을 나간 것으로 체크가 되었다. 부친의 무능력으로 모친은 온갖 허드렛일을 하였으며 그중에서 머리에 다라(광주리)를 이로 강냉이(옥수수) 튀밥과 세탁비누를 갖고 다니면서,
  “고물 팔아요!”하며 고물 장사와 대 도로면에 야외용 아이스크림 장사를 시작하여 여름 방학 내내 내가 대신하여 장사를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삥땅을 치기도 했었다. 그런 실정에 사형제 중에 장남인 내가 빨리 졸업을 하여 취직을 하는 것이 집안 사정상 형편이 나아질 가장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는 하지 않고 책상 밑에 세계 문학을 펼쳐 놓고 섭렵하였으니 학교 성적이야 오죽하겠는가! 지금에서 그것이 내게 문학적인 꿈을 키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내 헌책방에서 값싼 세계 문학 책들은 여성 잡지에 부록으로 나온 책이어서 두툼하면서도 값이 무척 쌌다. 나는 헌책방을 전전하면서 값싼 책만을 골라서 샀으며 그 딱딱한 내용의 책들을 학교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 펼쳐 놓고 있곤 했었다.
  ‘테스, 제인 에어, 페스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좁은 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방인…….’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계 문학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는데 그 당시에 어찌 보면 학교 수업을 별로 관심이 없고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을 준비하는 상업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그렇게 성적에 대하여 단속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어쨌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처음 취업한 봉제공장에서 카톤박스에 완성된 와이셔츠를 각 색상 사이즈별로 분류를 하는 완성부에서 시다(견습공) 생활을 했다. 많은 작업 시간, 저임금, 단순 박복, 외주 하청한 실밥을 따는 와이셔츠의 숫자를 세고 검사하는 일 등을 도맡았었다. 그중에 카톤박스를 어깨에 메고 대기하고 있던 컨테이너 차량에 싣는 데 규모 있게 여러 차례 재시도해가면서 공간 없이 남는 분량을 모두 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기지를 발휘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카톤박스는 걸레처럼 찢기고 제품만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 실은 뒤에는 좁고 꼭 막힌 컨테이너에서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었다. 이렇게 노동일을 하면서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바로는 기술을 습득하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중노동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벌이를 해야만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은 내게 일대의 혁신과 전기(前期)를 몰고 왔었다.
  ‘봉제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을 찾아보자!’
  우연한 기회에 출근한 봉제공장 앞에서 회사가 밀린 봉급을 주지 않는다고 여종업원들이 모두 작업을 중단하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2

  삼 만평에 가까운 양식기 공장의 대략적인 전경이다. 인근 주택가와 학교에 둘러싸여 있었고 주위로 하천, 철길, 그리고 둑길과 인접하였다. 초기에 들어설 때만 해도 개발이 되지 않은 산동네들이 도시의 중심지가 되어 도시 개발로 현재는 모두 아파트 단지로 매입된 상태였다. 양식기 공장은 현재 중국으로 이전을 하였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50십 년은 되어 보이는 포플러 숲으로 둘러싸인 배경이었다.

  아, 옛날이여!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왜일까?
  검은 분진과 소음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사람들은 최악의 조건과 싸우면서 일을 하였었지.
  나는
  이 환경과 싸우는 가정을 가진 아주머니들의
  순결하고 고결한 모습을 보았으며
  그녀들이 앞에 서 있는 생산직의 남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머리에 먼지 때문인
  분진을 막으려고 스카프를 두르고 마스크를 쓰고
  손에 목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일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은 집에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루에 한 번씩 지급되는 빵과 우유를 꼭꼭 싸서 집에 갖고 가는 것도 소중하게 절약하여 모인 장갑을 테이프로 기우고 그 나머지를 갖고 가는 것도 모두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3년 정도를 지내는데 대략 22세에서 25세까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아마 운명적이지 않았나 싶다. 선영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 무단결근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직장도 잃고 여자도 잃게 되었지만…….
  나의 비애(悲愛)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모두 근원적인 바탕은 여기 양식기 공장에서 깔렸었으며 운명을 뒤바꿔 놓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아직도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혈기는 때 묻지 않았었다. 그것이 최고의 재산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두를 알아 버렸다면 이곳에 취직하지 않았을 테니까?
홀연히 내게 사랑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그다지 밝은 빛을 주지 않았었다. 사랑은 그다지 내게 행복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어쩌면 불행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 닥칠 인생의 태풍을 나는 잉태하려고 어쩌면 이곳에 입사를 하였던 것인지도…….
  내 인생(人生)에 있어서 이때처럼 아름다운 적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최악의 조건과 싸우면서도 오직 자신에게 주워진 육체적인 작업에 기꺼이 종사하였다. 이곳이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건을 가미한 최선의 직업이었다. 물론 배우지 않은 탓에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직업을 갖게 하였겠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조건을 고려하여 그나마 만족할 수 있었으므로 그만두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주로 중년 부인들과 중년 남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봉제 공장에서 밀린 봉급을 받지 못하였다면 이곳에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봉제공장을 전전하다가 이곳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모두가 자신의 소중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으로서 수출품을 생산하는 양식기를 공장의 직업이 최악의 노동조건이었으며 현재의 산업들의 현주소였다. 더 나은 생활이 있었음에도 돈을 벌려고 직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이 비참한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몇십 년 뒤에 이 공장은 중국으로 이전을 하고 그 자리에 재개발 건축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때와 다르게 지금의 환경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은 어떻던가! 예전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추억에 젖다 보면 악조건의 환경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많은 시사(다른 표현으로 교체)하는 바가 크다.
  '일자리가 없어서 굶어 죽느냐? 아니면 악조건이어도 일을 할 수 있는 공장이 필요한가?' 하는 두 가지 의문에서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를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그 당시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무조건 일할 수 있는 공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이라던가! 환경을 찾아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그만큼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은 그만큼 많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그 당시의 사회적인 현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봉제공장과는 다르게 임금이 잘 나온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이곳의 생산품들은 그만큼 봉제공장에 비한다면 훨씬 고가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주위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환경고발문제로 인하여 언젠가는 폐업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음과 분진 공해로 사라질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몇십 년 뒤의 일이었다.

- 위의 두서없는 글들을 10분 정도의 시간에 쓴다. 아, 생각의 끝은 어디인가!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하니. 다시금 나중을 위에 중간을 접는다. 잠깐 무엇인가를 생각했었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나는 항상 수정한 글에 대하여 칼(Knife)을 대곤 했었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즉흥적인 내용의 글을 쓰기를 허락해 왔었다. 그러므로 인하여 공과 실은 무엇인가! 공은 새로운 내용을 얻은 것이고 실은 오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매킨토시로 편집하는 것은 바로 책으로 되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즉흥적인 내용을 삽입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미리 모든 것을 수정하고자 한다.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책이 될 수 없었다. 그리도 최종적으로 책으로 내놓을 일이다. -

        -사람의 모습은 반소매로 바꿀 것-

                              3  

  경비를 따라 들어 곧바로 걸어가서 넓은 마당을 곧장 가로질러 갔다. 반대편 건물은 블록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을 슬레이트로 얹은 허름한 건물이었다. 정문에서면서 좌측으로 경사진 언덕이 보였다. 그곳에 울창한 포플러 나무들이 둘러쳐진 방책처럼 언덕 위에 숲을 이루고 서 있었다. 그 언덕배기가 내가 사는 집에서 바라보였으며 그 아래쪽의 공장들은 포플러 나무로 인하여 시야가 가려져 있었으므로 마치 비밀의 통로처럼 생각됐었다. 이제 그 비밀스러운 장소를 직접 들어와 여기저기 살피게 되니 한편으로는 의문스러운 모든 장소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비밀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좌측으로는 비탈진 언덕 위에 사무실, 완성부(完成部), 식당 건물이 자리 잡고 그 뒤로 병풍처럼 포플러 나무숲이 울창하게 들어찼다.
  우측 편으로 두 동의 같은 크기의 건물이 길게 위치하였는데 그곳은 프레스 기계들이,
   “쿵쿵……. 쿵!” 거리면서 엷은 철판을 물고 들어가는 롤러를 따라 연속해서 찍어 누르는 기계의 금형 가다에 따라서 그 모양들이 떨어져 내렸다. 두루마기처럼 감겨 있는 철판이 주기적으로 이동하면서 찍혀 나왔으며 그 아래로,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온 제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나뒹굴었다. 넝마처럼 주위만 남은 기레빠시(찌꺼기)만이 가닥가닥 떨어져 나온 알맹이를 빼앗긴 체 뒤쪽으로 밀려나왔는데 그것이 마치 갈치를 먹을 때 살을 빼먹고 남은 가시처럼 보였다. 우측의 기계실을 지나치면서 그곳에 배정받으면 5톤에 가까운 육중한 기계들 앞에서 금형 가다에 박혀 나오는 제품들을 광주리에 담고 갈치 뼈처럼 앙상한 기레빠시를 치우는 작업에 적응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본다. 어제는 봉제공장에서 카톤박스에 포장된 와이셔츠를 담는 일을 했었다. 그 일과 이 일을 비교해보면서 이상하게도 적응하는 데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문에서 중앙 쪽으로 계속하여 100여 미터 정도의 넓은 마당을 중앙으로 걸러 가더니 이윽고 한 건물의 출입구 앞에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경비는 기계실 앞을 지나쳤으며 200미터쯤 되어 보이는 마당을 가로질러서 빠끔히 열린 건물 쪽으로 계속 걸어갔는데 그곳은 어둡고 컴컴했으며 요란한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는 입구의 머리 위 벽에 붙어 있는 나무 위에 인두로 새겨진 듯한 간판이 보였다.
  ‘광연마(光硏磨)’
  나는 광연마라는 글씨를 보고 그 안으로 경비를 따라 들어가면서 마치 지옥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실내는 창문조차 없었으며 형광들과 천정에 달린 네온 빛의 대형 조명이 켜 있었지만 사물을 분간하기에 조금 시간이 걸릴 정도로 어둡고 침침했다.
  잠시 후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커다란 창자 모양으로 천정을 가로 놓인 둥근 원통형의 관이 우선 띄었다. 나는 마치 창자로 둘러쳐진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음습한 분위기에 그만 얼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기계 앞에서 집게 같은 것을 밀어 넣었다가 다른 기계로 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계 속에 대형 집게가 걸치자 롤러가 내려와 집게에 물려 있는 제품을 닦으려고 맞물려 회전을 하였다. 이때마다 매캐한 연기가 솟구쳤으며 그 연기는 뒤에 있는 창자 같은 원통형의 관을 따라 빨려 들어가는 듯 사라졌다. 그러나 그 일부는 회전하는 연마기계(硏磨機械)의 회전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솟아 나왔으므로 이 창고 같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는 그 검은 먼지와 냄새로 범벅이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사람의 얼굴과 작업복으로 튀어나와 두 눈만 멀뚱거리는 검은 형체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작업자들 대부분이 기계 앞에서 집게에 물린 제품을 집어넣고 빼내는 동작을 취하고 있었는데 모든 일은 집게에 물린 상태로 이루어졌다.
  집게는 아래의 그림처럼 이루어진 대형의 바이스였다. 세 개의 바이스뿌레야의 손잡이가 달여 있었으며 길에 벌린 집게를 물게 되면 그곳에 여러 개의 제품들이 물리게 된다. 집게는 라인의 뒤에서 작업을 끝내고 상자에 담고 나면 체인으로 된 이송 컨베이어에 걸면 앞으로 이동을 해 와서 처음 작업자가 손으로 떼어내고 물리고 있었다. 작업 공정은 단순해 보였으며 제품의 크기와 종류가 달라 보였다. 그것 때문에 기계의 라인별로 구분을 짓고 다섯 라인 중에 3라인만 운영하는 것 같았다. 작업하는 라인의 머리 위에 켜진 형광들 불빛 아래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략 대여섯 명이었는데 그들은 손목에 토시를 끼고 있었고 허리 아래로는 앞치마를 내려뜨리고 있었다.
  ‘음……. 경비 아저씨, 제발 기계실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하고 애원을 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앞서 보았던 기계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4

  광연마라는 건물 내부의 벽을 따라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나무합판으로 만든 사무실이 나타났다. 그곳에 들어가자 천정에 형광 불빛 아래 책상 하나에 벽면에는 상황판과 제품을 걸어 놓은 게시판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안에서는 한 사람이 서서 상황판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반가운 듯 웃었다.
  나는 그가 책임자이며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있었지만 내면으로는 부드러운 듯한 인간미가 넘쳐나고 있다고 느꼈다. 한눈에 뜨거워 보이는 감정의 소유자임을 간파한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나는 양식기 공장에서 모두 3년을 근무하였는데 광연마(光硏磨)에서 1년 동안은 포장부에서 근무하였다. 그리고 광연마에서 반장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따뜻한 그의 인간미에 감히 반감을 갖지 못하였다. 그는 내게 대하는 태도를 부드럽게 하였고 자석처럼 꼼짝 못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나는 감히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으로 그를 위해 온 힘을 다했으며 우리는 이 검은 먼지구석에서 끈끈한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함께 동고동락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그곳에서 2년간을 근무하게 된 이유는 적어도 봉제공장에서 저임금과 체납 인금으로 겪은 불이익 때문에 안정된 직장을 찾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양식기 공장에서 주야로 일을 한 덕분에 가정에 어느 정도 생활이 윤택해졌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모든 결과는 일과 무관하게 바뀌기도 하며 자신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양식기 공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은 전혀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공무과에서 집게를 고치려고 직접 용접을 한 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렇게 불꽃이 번쩍이면서 눈에 자극을 주는 도구를 이용하여 쇠붙이를 붙이는 새로운 기술과 공무과라는 기계를 깎고, 조이고, 그리고 만드는 부서가 무척 편하고 기술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중에 양식기 공장을 그만두게 되면 이 기술을 배우리라!’하고 결심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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