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날아가는 오리 (2)

3절. 막타워에서 공수훈련을 받다.

2007.10.05 20:25

문학 조회 수:3817 추천:152

..


3절. 막타워에서 공수훈련을 받다.

-KUKDONG 79 SEP라는 사진의 날짜가 선명하다. 이 날짜로 공수 훈련을 9월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에 있는 낙하산은 예비 낙하산이며 완전무장을 거꾸로 매달고 있다. 뒤에 맨 낙하산은 주 낙하산으로 그 끝에 노란색의 끈이 끊어지면서 비행기에 남게 된다. -

                     1

  후반기 훈련은 길고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진해 훈련소에서 전반기 훈련을 4주 동안 받고 후반기 훈련을 위해 포항으로 이동해 왔지만 별도로 마련된 병사(兵舍)조차 없었다. 임시로 빌려 쓰는 중대급의 건물 내부는 중앙에 복도가 있었으며 좌우 측으로 내무반이었다. 소대별로 구분하여 내무반에 들었는데 1, 2층으로 되어 있는 침상은 마룻바닥으로 뒤편은 침구가 개어져 있었으며 각자의 사물함이 있었다.
  나는 두 번째 내무반 좌측 2층의 유리창에 배정받았으므로 그곳에서 밖을 바라보면서 둥글게 넣은 곤봉(군대에서 이동을 할 때 짐을 넣는 자루. 둥글고 어깨에 멜 수 있는 끝이 달렸다.) 속에서 짐을 풀었다. 그 짐들 속에서 누런 휴지를 바늘과 실로 기워 만든 너덜거리는 일기장이 띄었다. 손바닥만 휴지를 묶음으로 묶어 깨알 같은 글씨로 일기를 썼던 것이다. 이 일기를 지금도 간혹 들여다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싶다. 전반기의 훈련 기간에 쓴 내용이 사실적으로 쓰여 있는 일기장이었다. 휴짓조각의 일기장을 군복 사이에 숨겨 놓고 나자, 아침 식사를 알리는 구령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하는 호각 소리가 나더니,
  “허-어-엇!” 기합 소리와 함께 잠시 정적.
  “아침 식사 15분 전!”하고 멋들어지게 구령 소리가 들려 왔다.
  짐들을 재빨리 정리를 끝내고 군화를 신고 끈을 매었다.
  잠시 후,
  “삐-이익!” 다시 호각 소리가 났고 이어서,
  “중대……. 운동장으로!” 하는 구령 소리가 들려오자,
  “중대……. 운동장으로!” 그렇게 복창을 하며 각 내무반에서 앞을 다투면 뛰쳐나가 밖에서 줄을 섰다.
  그리고,
  “중대……. 뒤로 돌아!”
  “식당 앞으로 갓!”하는 명령 소리에 일제히 걷기 시작했다. 식당은 병사(兵舍)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블록 벽과 지붕이 콘크리트로 슬래브 지붕이었다. 벽돌들이 그대로 드러난 외벽에 위장 무늬가 칠해져 있었다. 대략 200여 평의 건물에 뒤쪽의 절반을 강당으로 이용하여 학과 수업을 실내에서 진행할 때 그곳을 교실로 이용했다.
  “헛……. 둘…….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구령 맞춰 갓!”
  “하나, 둘, 셋, 넷, 하나, 두-울!”
  활기찬 구령 소리는 후반기 훈련 생활의 시작과 함께 젊은이들의 패기가 넘쳐흘렀다. 전반기를 끝내 하사관 훈련생으로 나는 어느 듯 군인이 되어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전반기 훈련과 다르게 후반기 훈련은 학과와 실기로 나누어져 있었다. 배정된 시간 동안 강당과 야외 학습장에서 브리핑처럼 걸려 있는 차트를 넘기면서 교육관이 교육을 받았다. 무료한 훈련병들은 책상에 앉아서 졸았지만 전반기 때와 다르게 제제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실기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가 연병장에서 각개 전투, 총검술, 경계근무, 60밀리 박격포 훈련, 사격연습을 하며 빠르게 지나갔다.
  여기서 5월 초에 후반기 훈련소에 도착하여 9월의 공수 훈련을 받기 전까지 우리는 무료한 훈련을 지속했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점은 없었다. 사격장에서 귀를 울리는 총성을 들으며 실탄을 지급받고 M16 사격을 했으며 각개 전투를 하였던 야산에 올라가서 함성을 지르던 기억을 애써 떠올려 보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후반기 훈련을 받으면서 쓴 일기장을 나는 결혼 후에 일기장과 기억을 더듬으면서 '제주도 전지훈련' 해안방어' 같은 군대 얘기들을 습작으로 썼었다.


                           2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공수 훈련 중 지상 훈련을 받았다.
  이제 지상 훈련의 꽃으로 일컫는 막타워 짬뿌(낙하를 그렇게 부름)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4층 높이(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미터)의 철탑 꼭대기 네모로 갖춰진 방(Room)의 양쪽으로 열린 문으로 뛰어내려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면서 자세 교정을 하는 곳이었다. 와야 줄이 길게 다섯 개 정도 양쪽 문으로 끌고 들어가고 나서 우리가 바라보는 곳에서 조교들 중의 한 명에게 X자 모양의 멜빵을 몸에 착용하고 그곳에 세 개의 고리를 걸었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비상용으로 마지막 한 개를 더 걸었는데 고리 끝에는 스프링 장치가 되어 있어서 걸친 상태에서는 절대로 빠지지 않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중에 고장 난 걸쇠 때문에 뛰어내릴 때 두 개가 빠져서 한 개만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적도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조교가 뒤에서 세 개의 고리를 걸었을 것이고 지금 막타워의 문 앞에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세 개의 고리가 튼튼한 것으로 골라서 끼웠을 것이지만…….
  “준비되었나?”
  대략 200명 정도의 훈련병들이 숨을 멈추고 지켜보는 가운데 앞에서 교관이 위를 향해 소리치자,
  “예!”하고 막타워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교가 대답했다. 그리고 교관의 뛰어라 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막타워에서 조교가 뛰어내렸다.
  “그럼, 뛰어!”
  “뛰어! 일만, 이만, 삼만……. 예비 낙하산 하나, 둘, 셋…….”
  V 자 형태로 허리와 다리를 구부린 모양은 합격점이었다. 아래에서 교관과 훈련생들은 주의 깊게 자세만을 관찰하는 것이다.
  밖으로 뛰어내린 조교는 8미터의 지점까지 추락하다가, “덜컥!” 소리와 함께 멜빵에 걸친 줄이 팽팽하게 탄력을 받으면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와야 줄을 타고 롤러가 줄을 따라 굴러가다가 언덕에서 기다리는 차출[差出] 된 훈련병들의 도움을 받아 땅을 딛고 걸쇠를 풀었다.
  “준비된 조교의 실습을 잘 보았느냐?”
  “예!”
  “그럼 지금부터 너희가 실습을 할 것이다.”  
  그 뒤부터 우리는 막타워에서 뛰어내리는 실습으로 들어갔다.


                           3

  지상 훈련. 지상(地上)에서 이루어지는 공수훈련이었다.
  나는 11미터 철탑 위로 올라갔다. 내가 있던 자리는 바로 뛰어내리기 직전 훈련용 막타워 내부에서 밖으로 열려 있는 출구를 통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동기생들이 아래쪽에서 목이 터지도록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군가 소리 봐-라!”하고 조교가 지휘봉을 들고 때리는 것처럼 허공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흘러가는 물결구름 아래……, 편지를 띄우고……, 라일-라일 차차차!”
  희미하게 들려오던 군가 소리가 악을 쓰듯이 커졌다. 그러나 조교의 화는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축구 골대까지 선착순!”하고 소리쳤는데, 으르렁거리는 늑대 소리처럼 들려왔다.
  “우르르……, 와!”하며 A 소대에서 선착순이 시작됐다. 뽀얗게 흙먼지가 일어나면서 연병장을 가로질러 축구 골대를 향해 줄잡아 사오십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하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구보를 시작하였다.
  B팀은 연단처럼 보이는 높이에서 착지연습을 하느라고 모래 위로 뛰어내리고 나서 낙법을 하듯이 모래 위에서 몸을 굴리고 있었다. 온몸에 하얗게 먼짓가루를 뒤집어쓴 것이 멀리서도 바라보였다.
  나는 C 팀에 속하였고 우리는 막타워에서 뛰어내리는 준비를 하였는데 다른 곳에 비한다면 가장 편하였으므로 안도를 하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룩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웠지만 11미터 탑 위에서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멀리 높은 구릉지대로 줄이 늘어서 있고 그곳으로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면 그만인 것이다. 탑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대기하고 있는 순간이 영원히 지속하기를 은근히 빌었다. 조교가 자신의 안전 고리를 도르래에 연결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감독관(심사의원)들이 아래에서 책장이 있는 의자에 앉아 위를 향해 호각을 불고 깃발을 흔들며 소리쳤다.
  “시작!”
  나는 첫 번째로 뛸 차례였다.
4월 6일 입대를 한 뒤 5개월이 지나서 9월 초순이 되었다. 낮에는 푹푹 찌는 한낮의 더위 때문에 입 안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쪼이는 탓에 황토 빛의 운동장은 뛰어다닐 때마다 먼지가 펄펄 날렸다. 공수훈련은 명찰 계급장을 모두 떼어 내고 번호표를 붙였는데 나는 164번이었다. 철모의 앞과 뒤에 흰 페인트로 숫자를 가는 붓으로 썼고 앞가슴에는 이름표 대신 번호표를 바늘로 기워 달고 다녔다. 조교들과 감독관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불렀다.
  “164번 뛰어!”
  마른 땅에서 열기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온통 타들어가는 마른침으로 연방 묻혔지만 갈라지고 터져서 이따금 쓰라린 입술, 거칠거칠하게 그을리고 깡마른 얼굴, 쑥 들어간 검은 눈, 발갛게 그을린 손등과 땀에 젖어서 등에 달라붙은 푸른빛의 군복 속에서 숨이 턱턱 막혔다. 황량한 벌판의 훈련소 연병장으로 내리쪼이는 뜨거운 태양빛으로 입술은 타들어 갔으며 군복(軍服)의 등으로 온통 땀이 축축하고 그나마 물기가 마른 부분은 소금기가 배어 나와 하얗게 묻어났다. 혀끝으로 침을 묻혀 바르자 갈라지고 터진 입술이 쓰리고 아팠다. 목에서는 침과 함께 쓴 내가 물씬 풍겨왔다. 그것은 훈련소에 입대를 한 뒤로 줄 곳 따라다니는 육체적인 고역이 계속되면서 이미 한계를 벗어나는 듯 몸은 명태처럼 메말라 갔고, 입술은 터지고, 그리고 입속은 언제나 소태같이 썼다. 유격 훈련장에서 밧줄을 탈 때까진 손바닥이 아직도 아물지를 않았으므로 물집이 나면서 쓰리고 아파져 왔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만하다. 누구나 군대에 입대를 하면 겪는 일인데 여기서 돌아가면 남자도 아니다. 훈련 기간만이라도 참을 수 있다면 군대생활은 무엇인들 못 하겠어?’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6개월의 훈련 중에 절반을 넘겼고 어느 정도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뛰어내리기 전에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으니 정말 이 순간만큼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공수 훈련장 옆으로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다섯 마리 남짓의 하얀 빛깔의 집오리들이 헤엄을 치면서 놀고 있었다. 그 모양이 너무도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보니 멀리서도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연못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연못 전체가 오리 똥으로 범벅이 된 것처럼 시커멓게 보였다. 그 똥물이 온몸에 묻어 버린 듯 미끈거리고 끈적끈적한 감촉이 온몸에 느껴지곤 했었다. 오리를 보면 따라다니는 혐오스러운 똥물을 뒤집어썼을 때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불결했었다.
  “164번?"
  갑자기 조교가 옆에서 소리쳤기 때문에 깜짝 놀라면서 생각에서 돌아왔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고소공포증이 일어나면서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예, 164번!”
  조교는 내가 겁을 먹고 뛰어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앞에서 물었던 내용을 다시 시작했다. 높은 탑 위로 올라서고 나서 어깨 고리에 세 개의 걸쇠를 연결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을 지탱해줄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11미터 아래로 V자 형태로 뛰어내리면 줄에 걸리게 되고 그때까지의 자세를 심사받게 되었다. 무릎이 굽혀지던가. 고개가 위로 쳐 들리면 안 되었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관계로 훈련병들은 기를 쓰고 뛰어내렸다. 마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그곳에 있기라도 하듯이…….
  “애인 있습니까?”
  조교들은 양쪽으로 뚫려 있는 출구 앞에서 안쪽을 향해 말했는데 매우 의례적이며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꼭대기에 대기하고 있는 1조는 양쪽으로 다섯 명씩 뛰어나가게 위에 멜빵에 고리를 걸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뛰어내리지 않자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중요한 순간에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없습니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며 뛰세요!”하고 조교가 어깨를 치면서 내게 뛰라고 소리쳤다.
  “어머니!”
  나는 큰 목소리로 목청껏 소리쳤다. 이윽고 아래에서 감독관들이 자신들의 책상을 찾아 앉아서 위를 바라보며 신호를 했다. 조금 전까지 혐의한 내용이 반영될 것인데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것인지 두고 보아야만 했다. 나는 멀리 먼지를 날리며 선착순을 하는 A 소대원들, 연못에 한가롭게 헤엄을 치는 하얀 빛의 집오리들을 내려다보면서 뛰어내렸다.
  “뛰어!”
  “뛰-엇……, 비상 낙하산 하나, 둘, 셋…….”
  막타워(탑) 위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습관적으로 뻣뻣하게 내리뻗은 자세의 다리를 아랫배로 끌어올리며 V자 형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덜컹!”
  안전벨트 고리로부터 힘이 가해지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4

  도르래와 연결된 걸쇠는 모두 세 개였다. 왼쪽 오른쪽 두 개의 멜빵에 각각 하나씩 걸었으며 마지막으로 뒤편에 보조용으로 하나 더 거는 것이다.
  조교가 세 개의 고리에 걸쇠를 걸어 주웠는데 두 개가 빠져나갔고 한 개만이 걸린 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그것도 빠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한 줄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지만, 안전 고리가 떨어져 나간 탓에 허공에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추락하기 시작하였는데 내 몸은 허공에서 멈춰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두렵지도 않았다. 몸이 솜털처럼 가벼웠다.
  ‘어떻게 된 것일까?’
  본능적으로 팔을 내 젖는데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누군가가 나를 떠 바치고 있었으므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순간 나는 흠씬 놀랐다. 오리 한 마리가 날면서 나를 밀어올리는 것이 아닌가! 아래에서 미는 오리는 연못에서 놀고 있던 오리들 중의 한 마리였다.
  “어!”
  도르래와 연결된 안전고리가 스프링으로 밀려서 빠져나올 수 없지만 고장 난 고리 중에 수리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다 보니 한 개가 빠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나 나처럼 두 개가 빠지는 경우는 없었다. 또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나머지 한 개의 고리마저 결국에는 빠졌으므로 이제 곧 추락할 것이다.
  “우……. 와!”
  모두 나를 보고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전혀 무섭지도 않았다. 죽음이 임박한 그 찰나의 순간에 수없이 많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곽 오리야, 너 죽을 뻔했는데 괜찮아?”
  나중에 동료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니, 전혀…….”
  그렇지만, 내심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 위기의 순간에 떨어져 내린 걸쇠를 손으로 붙잡고 다시 걸었는지를…….
  나를 보고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졌어도 대롱대롱 매달려서 도르래를 타고 미끄러지듯 나아가면서도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가상하였던 모양이다. 아래에서 채점을 하는 감독관은 위기의 순간을 탈출하여 한쪽 걸쇠만으로 목숨을 부지한 나에게 합격이라는 녹색 깃발을 들어 주웠다. 이 순간 합격만이 내게 중요할 뿐이었다. 생명은 뒷전 인체…….
  ‘휴-우, 이제 겨우 두 번이구나!’
  막타워는 양쪽에 열린 출구가 있었고 훈련도 마찬가지로 양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한쪽만 이용했었다. 그것은 지상에서 책상을 놓고 의자에 앉아 심사를 하는 채점관이 두 사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내리는 순간의 자세를 심사하여 기준에 적합한 자세를 유지할 때는 합격 점수를 주는데 모두 다섯 번을 받아야만 다음 주에 있을 실제 저공 비행기 낙하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세 번의 낙하를 하게 되면 공수 수료를 모두 끝내고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연하게도 막타워 반대편에서 연못에 있던 오리들을 날렸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자신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에 서로 부딪히는 바람에 몸이 떠오른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것이며 그 순간 팔을 뻗은 상태에서 빠져나오려는 고리에 손이 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한 개의 비상용 고리는 빠지지 않았었다. 그것 하나로 지탱하여 그나마 매달렸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었으므로 완전히 세 개의 고리가 빠졌었다는 사실은 나만 가졌던 착각이 분명했다.
  ‘왜 그런 착시현상을 느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므로 오리들과의 교우에 대하여 나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낙하하는 순간에도 두 번째의 그런 현상을 목격하였는데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 오리가 된 것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5

  “오리를 막타워에서 날리면 어떻게 될까?”
  “한 번 날려 보자!”
  C 조에서 연못에 뛰어들어가서 바닥을 기다가 유유히 노는 오리들을 붙잡아 놓고 그렇게 제의를 하자 호기심들이 발동하여 막타워로 갖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것을 내가 뛰어내리는 순간에 함께 날리게 되었고 우연하게도 함께 추락하는 순간에 충돌을 하여 서로 깜짝 놀랐으므로 서로 상대적인 동작을 하였다. 나는 움츠러들면서 우연하게도 어깨 위로 손을 들어 올리다가 고리를 만졌으며 그 오리 또한 요란한 날갯짓을 하면서 연못까지 날기 시작했다.
  내가 도르래를 타고 가는 것처럼 오리는 내 주위를 날면서 나와 함께 나란히 날았는데 내 눈은 오리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연못에서 놀던 오리들을 C조에서 붙잡아 막타워까지 갖고 올라가고 나서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었지만 결국 내 생명을 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와, 정말 집오리들이 날았어!”
  “신기한걸…….”
  그렇게 감탄을 연발했고 이어서 연못을 향해 다섯 마리의 집오리들이 줄을 지어 비상을 하였는데 도대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자유자재로 유유자적 날아다니면서 고저(高低)를 마음대로 조절했는데 그것이 들오리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모두 놀랐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조교와 소대장에게 그 내용을 알게 되고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오리들은 비행기에서 낙하도 했다. 그리고 앞서 교육받은 훈련병들에게 똑같은 제의로 막타워에서 일찌감치 날렸었다.”  
  지금에서 그 오리들이 내 생명의 은인이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오리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오리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곽 오리 씨, 정신 차리고 팔을 아래위로 흔들어 봐요!”
  “예……. 누구요?”
  “빨리 날개를 흔들어요!”
  “날개라고…….”
  그 순간 내 팔은 태양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날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퍼덕거리며 마구 젖는 동안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고 그 순간에 재빨리 도르래에 달렸던 걸쇠 중 하나를 멜빵의 고리에 걸었다.
  “잘했어요! 안녕…….”
  “안녕…….”
  급히 인사를 했지만 오리의 눈을 통해서 잠시 나 자신이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육체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고 그 순간을 통하여 위기를 넘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 내가 오리가 되다니!’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오리를 통하여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6

  공수훈련은 명찰 계급장을 모두 떼어 내고 번호표를 붙였는데 나는 164번이었다. 철모의 앞과 뒤에 흰 페인트로 숫자를 가는 붓으로 썼고 앞가슴에는 이름표 대신 번호표를 바늘로 기워 달고 다녔다. 조교들과 감독관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불렀다. 그렇게 한 이유는 대략 이 백여 명의 훈련 받는 군인들은 모두 같은 훈련병들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일반병과의 지원자, 하사관 후보생, 사관후보생들이 섞여 있었다. 오직 번호만으로 불렸고 그렇게 해서 체크되어 반영되었는데 도중에 탈락하는 군인과 막타워에서 다섯 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제외된다고 했다.
  “164번 합격!”
  나는 오늘 막타워에서 지상 낙하를 하였는데 모두 두 번에 합격하였고 다른 동기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따라 합격 점수가 높지 않았으며 인색한 이유로,
  “훈련생들의 군기가 풀렸어!”
  “자세가 도무지 나오지 않아! 모두 한결같은데…….”
   세 명의 감독관들은 막타워 아래쪽에서 책상을 놓고 심사를 하여 모두 다섯 번의 합격 점수를 주웠는데 벌써 이틀째였다. 일주일 동안 심사를 하여 다섯 번 합격 해야만 했는데 오늘은 합격을 시키지 않고 자세가 좋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결국에는 오후에 못하겠다고 철수를 하였다. 자세가 V 자 형태로 되는 것을 원했지만 그에 근접한 합격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대곤 했었다. 그리고 조교들을 불러 놓고 크게 꾸짖는 것을 좀 전에 보았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책상에는 덩그러니 빈자리만 남았으며 우리는 감독관이 화를 내고 가버리고 나서 단체 기합만 받았다.
  5개월의 후반기 훈련 기간에 3주 동안이나 지속하여 받게 되는 공수훈련도 그 중의 하나였다. 공수 훈련장은 부대의 가장 한적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인적이 드문 지역이었다. 야산과 평지가 펼쳐진 대평원으로서 중앙에 타원형의 늪지대를 연상시키는 연못이 위치하였다.
  부대의 오물들이 하수도를 타고 이곳 연못에 고였으며 온갖 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가 발에 밟히고 몸에 묻어날 지경이었는데 공수훈련을 받으면서 퇴근에 가까워지면 이곳에 빠트리는 것은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 막사로 돌아가면 냉수욕과 함께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찬물로 씻어내야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을 더욱 강화된 다른 방법이 요구되어 졌다.

                      7  

  “삐-이……. 익!”
  세 명의 조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길게 호각을 불면서 소리쳤다.
  “모두 집합!”  
  집합하는 명령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유, 이제 끝났구나!’
  이제 남은 1시간 남짓. 연병장에서 낙은 포복에 이어 “좌로 굴러!”, “우로 굴러!”에 맞춰 좌측 우측으로 굴러다니던 이백여 명의 훈련생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두 기진맥진한 체 연단을 바라보며 뛰어갔다. 그나마 땀으로 젖어 버린 군복에서는 허옇게 소금기가 배어 나와 있었다.
  “다른 때보다 일찍 집결하여 오락 시간을 갖으려나 보지!”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데…….”
  “그렇지만, 오늘 훈련은 땡볕에서 했잖아!”
  “그래, 그 말은 맞아!”
  “엇-쭈- 동작 봐……. 지금부터 하수도를 통과하여 똥통으로 들어갑니다, 실시!”
  “실시!”
  연못과 인접한 구식 변소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막사 형식의 간이 화장실은 커다란 똥통이 지하실처럼 묻혀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가자 허리까지 닿는 인분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서로 다투듯이 출구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몸에 묻어 있던 똥들이 얼굴에도 튀었다. 변소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 변을 푸는 밖에 난 두 개의 입구로 빠져나가려고 밀치는 바람에 더욱 똥칠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 뒤편은 오리들이 노는 연못과 인접하여 모두 뛰어들어 옷에 묻은 똥칠을 닦아 내면서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얼굴에 구더기 묻었다!”
  “너도!”
  희고 살이 통통한 구더기가 얼굴을 타고 내리기도 하고 군복을 벗어 던지자 몸에 붙어서 기어다니기도 하였다. 나는 하수도 물이었지만 군복과 몸을 씻는 중에 오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흰 빛깔이 저물기 시작한 태양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섯 마리의 오리들은 저마다 윤택이 돌았으며 오늘 일을 계기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공수훈련의 선배이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선(神仙) 같은 존재처럼 경이롭기조차 해 보였다.
  아까 막타워에서 뛰어 내릴 때 나와 부딪힌 오리도 있었다. 나는 내가 추락하기 직전에 들은 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팔을 힘껏 내 저으세요!”
  내가 그 소리를 듣고 팔을 힘껏 내 젖자 몸이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부양했던 것이다. 그리고 빠져나오는 마지막의 고리를 연결할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우연한 일치고는 너무도 생생하여 왠지 모르게 오리를 보는 순간 숙연해졌다.
  “오리야 고맙다.”
  “꽤에엑……. 꽥!”
  오리는 내가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를 듣고 회답하듯이 울면서 나와 동료가 몸에 묻은 구더기를 떼어 내는 동안 오리들이 포식을 하는 것처럼 물속을 자매질 쳤다.
  서산에 기우는 해를 바라보면서 동기생들과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막사로 돌아오는 행렬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과정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계획의 일환의 하나라는 사실을 안다.
  “너희는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면 똥통에 빠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것은 그런 상황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공수 훈련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훈련을 받을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열외를 해도 좋다! 만약 이 자리에서 도저히 못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라!”
  “…….”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몸을 씻고 다시 병사(兵舍)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 '디지털 인쇄'로 책을 만들려는 진정한 이유 문학 2008.09.20 2660
124 여우님에게 책 한 권 보내 드릴께요(2)! 문학 2008.08.29 2657
123 여우님에게 책 한 권 보내 드릴께요! file 문학 2008.08.26 2737
122 날아가는 오리 (2) file 문학 2008.06.26 3486
121 '날아가는 오리 2' 편이 책으로 나오기까지...(4) file 문학 2008.02.27 3684
120 '날아가는 오리 2' 편이 책으로 나오기까지...(3) file 문학 2008.02.26 3130
119 '날아가는 오리 2' 편이 책으로 나오기까지...(2) 문학 2008.02.26 3275
118 '날아가는 오리 2' 편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문학 2008.02.26 2708
117 드디어 책이 나오다.(3) file 문학 2008.02.18 3073
116 7절. 포장부에서... 문학 2007.10.14 3007
115 6절 포장부서로 자리를 옮기다.(3) 문학 2007.10.12 3524
114 3절. 이상한 소리에 끌려 여자 목욕탕에 들어가다. file 문학 2007.10.07 5235
113 2절. 법조계 숙부와 양식기 사장 간의 밀월 관계 문학 2007.10.07 3657
112 제1막 3장. 양식기(洋食器) 공장에서 일을 한다. 문학 2007.10.07 3705
111 2절. 금강(錦江)에서 친구와 함께 야영을 한다. 문학 2007.10.06 3312
110 제1막 2장. 봉제 공장에서 저임금과 임금 체납에 시달렸다. 문학 2007.10.06 3498
109 4 절. 비상(飛翔) 문학 2007.10.05 2954
» 3절. 막타워에서 공수훈련을 받다. 문학 2007.10.05 3817
107 2절. 사단급의 군부대는 군인들로 이루어진 도시(都市)였다. file 문학 2007.10.05 3162
106 1절. 군대 훈련소에서 후반기 훈련 file 문학 2007.10.04 3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