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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출장은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그것은 인내의 실험이었고 또한 새로운 도약이었다. 도전과 시련에 대한 극복 해 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허로운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어찌보면 눈물겨운 고뇌 뒤에 절망의 순간이 해방으로 바뀌었고 오랬동안 가슴을 후벼팠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하여 비로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고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과 설계를 수정하고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할까?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휴유증으로...

2014년 2월 17일

2014.02.17 09:23

文學 조회 수:547

 

오산출장이후.

계속하여 난관에 봉착하게 된 이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오산 출장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불운의 시작은 어쨌튼 인재였다. 예고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하여 그것을 나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50세의 나이에 나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계의 납기를 맞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기계가 고장이 났으므로 오산까지 출장을 나가게 되었고...


기계 제작에 있어서 좀처럼 납기일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위압감으로 다가왔는데 점차 새로운 NC 기계의 개발을 하는데 있어서 완벽하지 않은 여러 가지 사실을 아직도 완벽하게 자신할 수 없었다. 또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였고 그것이 무리하게 작업을 하게 만들었다. 부속품의 가공을 직접 선반머싱, 밀링머싱으로 직접 가공을 하게 되는 것부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주문량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으며 그것 때무에 조립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몫으로 남게 된다. 낮에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은 물질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납기일을 못함으로 자꾸만 겉돌게 된다.


  그가 50세라는 나이에 벌써 노년의 증상에 시달리게 된 것은 처음부터 주기적으로 시작한 걷기운동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일의 무게에 짙눌린 탓이다. 또한 자신의 신체적인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중년인들에게 흔하게 찾아오는 고혈압의 원인이었다.

  그는 운전을 하단 중에 안전벨트를 매다가 자신의 뱃살을 오른 손으로 쥐어 보았다. 한웅쿰의 뱃살이었다. 50세로 들어서면서 그는 비만과 함께 신체적으로 이상한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또한 오른 팔목과 목결림과 함께 손목에 결림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짜게 먹는 슬관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다. 그는 유달리 짜게 먹고 고기 종류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리하여 체중이 167cm의 키에 70kg까지 나가게 된다.

  복부비만과 함께 엄습해오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나타났다.

  우선 치통과 함께 찾아온 풍치였다.

  “어금니를 빼러 왔습니다.”

  나는 어금니가 아파서 치통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래서 찾아간 치과는 여 의사가 새로 바뀌었다고 그의 아내가 궈유했었다.

  “그곳 D.J 치과는 무척 꼼꼼히 잘 하던데요!”하고 칭찬하지 않은가!

  “언제 가 봤어?”

  “S.O 하고 먼저 번에 가 봤잖아요!”

  S.O 란 딸아이였다.

  애초부터 잘 알고 있던 치과가 없던 차였다. 이곳 옥천에 이사를 온 뒤 10년이 다 되어 갔지만 이상하게 병원 신세를 지기 싫어 했던 그의 성격으로 치석 제거를 한번도 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가 썩어 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고 여기 저기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병원 신세를 지기 싫어 했던 그의 성격으로 치석 제거를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부실한 치아가 계속 쑤셔 되었던 것이다.

  ‘왜, 유독 이가 부실할까? 불과 1년 전만해도 오징어를 씹어도 끄떡없던 이였는데... ’

  그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석이 잔뜩 끼어서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앞니도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를 하나도 뽑지는 않았었다. 그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석 제거 수술을 하지 않은 앞니는 괜찮았지만 멀쩡하던 이금니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작업 현장에서 중오한 작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와 함께 일을 하면서부터 더욱 많아진 탓에 언제나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그 이유는 낮에 출장 A/S를 나가던가 뜨네기 손님이 찾아와서 가공을 의뢰하는 경우 어느 때는 하던 일이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었다. 대신해서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밀한 작업은 하지 못했다. 언제나 이제 아내가 할 수 없는 그 일들이 모두 자신의 몫이 된다. 아내는 정밀한 작업을 하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자신의 몫이 된 일거리가 산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남은 일은 언제나 자신의 괴롭혔다.


1. 서론. 고혈압으로 쓰러진 기억.

  그가 88년도에 노사 분규로 폐업을 된 회사에서 나오게 된 사연.

그리고 지금의 공장을 운영하여 키우게 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 자신감.

노사분류에 외부 세력이 분규를 조성한다.


2. 본론.  노사 분류가 일어나는 공장에서...

  노동자의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가고...


3. 결론.

자신의 공장에 대하여 병원에서 4일만에 돌아와서 회유책을 추진하지만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폐쇠하고 용역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잔업으로 맞춰나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두 사람의 직원이 분담해야만 했던 일을 결국 아내와 둘이 하게 되면서 공장 운영비를 건질 수 있었지만 과중된 작업으로 야간 잔업에 시달리게 된다. 공장 운연비는 건질 수 있었지만 과중된 작업으로 야간 잔업에 시달리게 된다. 


  두 사람의 젊은이들. 그들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중태하고 집을 나와서 사회에 적응하는데 엄청난 실패를 거듭한다. 그 중에 직원을 구하기에는 너무 무리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결코 마땅한 사람을 써봤지만 무척 부담이 갔다.


초창기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온갖 고초. 친구의 권유로 직장을 나온 뒤에...


  불안한 직정의 상황

압연 공장으로 공단 내에서 스텔레스 앵글. 마루모. 평철을 압연 생산하는 곳이다.

어느날 갑자기 두 사람이 호이스트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전기과 직원이 5m 높이의 호이스트 위에 올라 섰고...

노사분규의 현장 사장이 멱살을 잡히고...

식당에서 한찬 유행하던 88년도의 노사분규는 마치 등불의 바람처럼 번졌다. 지금까지 그런 고용주와 관계를 갖던 우발적인 상황들이 모두 뒤바뀌게 된다. 사회의 인식. 하나 둘 씩 88 올림픽을 유치하는 해에 인금인상안을 기화로 중소기업까지 번지고 있었다.


  일은 중단되고 노동조합에 가입된 회원들은 식당으로 모여들었는데 납품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거래처가 끊기게 된다. 직원들은 봉급의 인상안을 들고 일어 났으며 다른 사례들로 인하여 협상안은 난항을 거듭한다.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거핏하면 노동조합이 들먹였다. 그 압박으로 1년에 무려 세 번씩이나 임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돈이 모아질 수 있었던 계기는 어쨌튼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고부터였다. 여기서 직원을 쓰지 않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시설을 개발하게 된다. 이때부터 돈을 벌리기 시작하였고 공장을 확장하여 직원들도 거의 200명 가까이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보상을 받게 된다.


  고혈압의 등장이었다. 졸도 이후... 병원 신세를 졌다.


  갑자기 고혈압이 생겼는데 그로인하여 만성 피로를 느꼈던 것이 증세같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활기 왕성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돈을 모았고 걱정도 사라졌지만 병을 얻었다.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악착같이 일을 한 결과였다. 여기서 그가 돈을 갖게 되기까지의 고충을 아내의 분담이 큰 몫을 했다. 그들 부부는 매우 협조적이었는데 싸우기도 많이 했었다. (함께 붙어 있게 되면서...)


  그는 아내가 있음으로 해서 공장을 운영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참으로 무리한 일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그는 모든 부속 품을 직접 자신이 가공하였다.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갖게 하였다. 또한 여자인 아내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전가 시켰다. 그중에 하나는 용접이었다.(전선회사에 인용할 때는 기계를 사용하여 철야 작업을 하는 것) 두 번째는 전기 배선.


  부부간에 맡은 역활이 있었지만 여자로서의 제약이 또한 어쩔 수 없게 만들었다. 부속품의 정밀한 작업은 모두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안팎으로의 여건은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고정적인 기계 제작일이 새로운 기계의 등장으로 끊기게 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면서 다시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기계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생각이란 이처럼 특별한 경우 새로운 돌파수를 만들고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열게 한다. 그는 자신의 처음 연구하던 시절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의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양보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가혹한 시련을 몰고 오게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오랫동안 많은 투자를 했었다. 초창기에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 포기하기도 했었다.

  유행처럼 번지던 청계천의 연구실을 방문하게 된다. 그렇지만 돈을 들여서 기계를 만들려고 하였는데 여러가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의 함께 함. 내가 스스로 터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개발자들이 PLC에 2축 제어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이르고 PC 서보 모터에서 AC 서보 모터로 제어 시스템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운 상가에서 연구를 의뢰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렇지만 그들이 전담하고 있던 몇 사람의 연구 인력이 상호 보완하고 개발하기에 이른다.

   3사람 중에 전기 C 언어 함수의 조합을 연결하고 있었다. 도면 개발자는 기판을 만들 도면을 떠서 그것을 세 사람이 협조하고 ㄱㅇ조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운상가에 이른 장사치들이 윗골목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사람을 물러 모드는 뒷골목 세계였다.

  “DC 모터의 제어 시스템입니다.”

  “가격은 얼맙니까?”

  “250만원...”

   “...”

  그는 믿을 수 없다고 쳐다보는 나를 데리고 상점 밖을 빠져 나왔고 직접 세운가가 건물의 3층에 위치한 한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 뒤 내가 돈을 주고 사온 DC 서보 모터와 기판들은 그 뒤 전혀 쓸모없이 쳐밖게 된다. 우선 연세한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A/S는 내 몫이었고 고장이 나게 되면 전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외 다른 것이 있다면 얼마나 오래 이 사람들이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손수 내가 직접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직접 만들기 전에는 기계를 만들 수 없었다. 

  내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이사람들에게 문의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화 받기에도 무척 힘들 지경이었고 간혹 미루기도 한다. 아무래도 문제점이 많은 것같았다. 그만큼 고장률이 많다는 사실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몇 사람이 서로 연구 목적으로 사무실을 차려 놓고 DC 서보모타를 이용한 1축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그만큼 문제점이 만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렇게 전기 부분을 이사람들에게 모두 떠 맡기게 되면 내가 무척 힘들 것이다. 부속품을 모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면 결국 만들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세 사람의 동업자 관계였다.

  한 사람은 C 언어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듯 싶었다. 다른 한 사람은 키가 훨칠하고 까칠한  체격에 바짝 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가장 큰 노력을 경주해왔던 모든 사실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왜, 갑자기 죽은이 그처럼 크게 부각되어 왔던 것일까?

그것은 결국에 자신을 어떻게 하여야만 최고의 가치를 형성하게 될까? 여기서 무엇보다 깊은 자각과 인식이 팽배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행복은 무엇인가!


  오산 출장은 결국에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게 하였다.

  나는 10년 전의 세운상가에서 연구를 하던 세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 뒤 일본의 대기업에서 PLC에 2축 스탭핑 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LS산전에서도 같은 종류의 PLC를 판매하게 된다. 또한 일본에서 수입되는 AC 서보 모터의 제어를 우연히 대화동 공구상가에서 발견하게 된다. 


  삼성 반도체 회사에서 기계 제어를 하던 사람 같았다. 나는 그 사무실의 간판을 보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고 새로운 제어를 하는 방식을 그에게 의뢰하게 된다.

  “서보 모타의 출력이 얼마나 됩니까?”

  “2분의 1마력이고 샨요 모타입니다.”

  우연하게 그를 만났는데 그곳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서보 모터 제어를 해주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었다. 그는 체격이 뚱뚱한 30대 되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미닫이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두 사람이 서보모타를 가지고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서보모타 제어를 의뢰하고 싶습니다만...”

  “어디에서 알고 왔습니까?”

  “옆 집의 타임벨트를 판매하는 상점에서 소개해 주더군요!”


  “무슨 일로...”

  한 사람을 비쩍 말랐는데  좀 견습생처럼 보였다. 그들 두 사람은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으면서 얼마되지 않는 듯 싶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계셨습니까?”

  내가 한 눈에 어수선한 5평내외에 불과한 사무실을 살펴 보면서 물었다. 한 눈에 임시로 마련한 곳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천안에서 가게를 개업하려고 했지만 대덕 연구단지도 괜찮다 싶어 내려온 겁니다. 아무래도 천안으로 다시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

  “그럼, 이 사무실은...”

  “임시로 빌려 쓰고 있답니다.”

  책상 하나 없는 사무실을 대부분의 부속품들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대화공단 공구상가는 길쭉한 3층 건물이 15 체 한 눌로 늘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통로는 서 쪽편으로 건물 측면쪽이었고 반 때쪽인 동쪽은 벼랑처럼 높아서 한 바퀴 돌아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앞에 있는 통로 쪽의 상점들만 성황을 이루웠고 반대쪽과 중간쪽은 전혀 영업이 이루워지지 않았으므로 상가가 아닌 창고. 공장으로 이용되던가 임대되었다. 그 중의 하나인 탓에 다른 사람이 소개를 받지 않으면 이곳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이곳 대화 공구 상가는 그래서 좀처럼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앞의 통로에 붙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외면 당했다. 대부분 판매가 부진하여 활성화되지 못하는 게 그 이유였다. 멋모르고 상점을 개설했다가 페업이 속출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뒤쪽에 있는 상가를 분양 받았던가 임대했던 사람들이었다. 차량이 지나다니는 통로 쪽의 양쪽 상점들만이 호황을 누릴뿐안쪽은 전혀 판매가 부진했다. 그래서 대부분 앞쪽에 진출된 장점들만이 살아 남았다.(길게 연한 여러동의 건물들은 첫동부터 정문과 후문으로 나뉘었다. )

  그렇지만 이곳은 다른 곳과 특별한 차이를 갖고 있었다. 나는 정문 쪽에 있는 전기 부속, 중간 부분에서 에어부속. 그리고 후미 쪽의 다른 상점에서는 모터등을 구입했다. 모두 통로를 바라보고 있는 상점들이었다. 뒤에 있는 다른 상점은 아무래도 찾아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가격도 비쌌다. (그 이유는 판매가 부진해서 할인을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분양을 받을 때부터 통로 쪽은 많은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이곳에 몰려 있는 상점들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사활 방식에 투철한 이유는 의뢰자를 소개하고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보다 한꺼번에 모두 구입하는 것이 가장 유리했다.

  내가 두 집을 걸쳐서 그곳을 찾아가게 된 것은 그만큼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집고 넘어갈 것은 이곳이 많은 기술의 집합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몰려 있고 또한 최고의 기술을 활용하여 그에 필요한 부품을 구매, 가공, 또한 판매도 가능했다. 예정의 세운상가처럼...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 왔는데 호황을 누리는 곳은 계속하여 사업을 확대하게 된다.

  아마도 세운상가에서 보았던 그건 발전일까?

  크고 작은 규모의 사무실들이 통로 쪽에 이어 뒤에도 들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첨단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구하는 사무실이 뒷에 위치한 사무실과 2, 3층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운상가에서 보았던 그런 발전일까?


  크고 작은 규모의 사무실들이 통로 쪽에 이어 뒤에도 길게 늘어선 건물을 마주 보며1층부터 3층까지 모두 운영되었는데 통로를 사이에 둔 서쪽의 상가들은 대부분 3층까지 모두 함께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안쪽으로 들어 갈 수록 그러 경향은 흔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 다른 형태로 분리되어 사무실이던가 공장으로 활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역시 규모를 축소하여 지출을 줄이고 싶은 구입자의 바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첨단을 다룰 수 있다고 했고 서로 보안하고 공존하는 길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보았던 통로 쪽의 상가에서 다시 뒤에 이른 전기업소는 적어도 PLC를 제어하는 부분을 통괄했다.

  “어떻게 해 주면 되겠습니까?”

  “기본적인 것만 만들어 주시면 그 응용은 내가 하겠습니다.”

  내 딴에 PLC에 대한 명령문을 나는 잘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기계적인 명령은 필수적인 거였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짤때마다 기계 앞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해야만 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PLC를  함부로 잘한다고 할 수 없었다.


  초창기의 기술력은 개인들이 연구 목적으로 1축 제어를 시작했다면 제 2세대는 대기업들이 PLC와 접목으로 복잡한 구조의 Z-80 계열의 CPU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된 전기업자와의 만남은 기술의 진보를 갖고 왔던가!


  그렇지만 여전히 암흑기에 빠졌다.

  기계적인 부분의 복합물에 대하여 과중한 피로도가 그 이유였다. 끊임없이 구상한 끝에 겨우 납품한 기계가 정확도에 문제가 발생되면서 취소되어 반품처리 왔던 경우 너무나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기계 연구외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자영업자에 있어서 개성은 매우 중요한 구심점을 제공하게 된다. 인간의 능률은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갖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면서 결국 하나의 기계를 완성해 내게 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최고의 실패를 거듭한 뒤에 마침내 성공하기에 이르고 계속하여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였다.

  소규모의 영세업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과 인내의 결과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순탄한 환경이 제공되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이 길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과정이 쌓여 있었지만 그게 매번 성공적인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두 번째의 도전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그 시기를 늦출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이미 시작하였으므로 첫 번째의 모험보다 오히려 모방을 하게 됨으로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생략해도 되었다.

  마침, 수리를 의뢰받은 기계를 대구에서 부도가 난 업체의 기계였다. 대부분의 경우 전자 쪽과 마찬가지로 기계 쪽에도 두 가지의 분야로 나뉘게 된다.

  ‘기계 쪽과 전기쪽’

  기계를 만드는 다른 경쟁업체의 경우. 통상적으로 전기는 자신이 담당하지 않았다.

  전기업체와 도움을 받아서 나누워 연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대화 공구상가’에서 만났던 A 라는 업체도 일종의 그 담당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값싼 방법을 주문했다. 그가 와서 연구에 협조하는 것 대신 간단한 다룰 수 있는 기본지식을 프로그램에 넣어 달라고 하는 것으로 끝내자고 했다.

  그래서 복잡한 과정은 모두 생략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순전히 내 몫으로 남게 된다.

  “서보 모타는 조작하는 방법을 최소한으로 설정해서 주십시요! 그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혼쾌히 수락했다. 부속값을 제공하고 그는 조금 더 수수료를 챙기면 되었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얼맙니까?”

  “백 오십만원정도...”

  “아, 좋습니다. 그 수준이라면 계약을 하죠!”

  물론 그 이후 몇 일 뒤에 찾아 가서 간단한 조작만 할 수 있게 구성된 세 가지의 연결만을 받아 왔다. 그는 복잡한 내용을 설명하고 그 이후의 상황을 종료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설명한데로 3가지의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쓰비시 서보모타, 터치판넬, PLC 중에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명서를 보면서 배웠다.


  그 세가지 방법은 미쓰비시 AC 서보모타였다.

  그가 제공한 첫 번째 부속품은 서보모타, 서보모타 드라이브, PLC, 터치판넬 그렇게 4가지 였다. 그런데 이것들을 모두 전선으로 연결해 놓고 상호 작용을 한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 다음에는 PLC 에 관한 거였다. PLC라고 모두 같은게 아니었다.

  2축 제어를 할 수 있는 별도의 PLC가 필요했다. 대기업의 PLC 에서 PLC 와 결합한  2축 제어가 가능한 별도의 PLC 였다.

그것이 소니, 미쓰비시, LG 라는 거대한 공룡 회사에서 앞 다투워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LG의 경우 설명서가 잘 되어 있었고 자체 서비스가 가능하여서 별도의 기술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령 내가 연구하는 곳에까지 찾아와서 기술 지도까지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접근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 그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 자체는 무엇일까?

  생물이 무생물과 다른 점은 학습의 효과가 있고 그것은 통하여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나름대로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을 처음때보다 났다고 볼 수 없었다. 어지보며 첫 번째 기계가 계속적으로 판매가 잘되고 수익을 낼 수 있었다면 두 번째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구는 이 시기에 가장 적절했다. 왜냐하면 첫번째 기계가 자신의 바램처럼 잘되지 않았다. 하향기에 점어 들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50세의 나이.

  그가 자신을 성공한 축에 추켜 세우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한 순간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고 그 뒤에 자신을 재차 뒤돌아 보게 만들었다. 너무 급히 앞만 보고 달려 왔던 결과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세계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50세부터...’

  적어도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였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늙음에 비친 모든 환경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고혈압이라느 병명을 얻게 되면서...


  직업적으로 많은 초례를 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어떻게 변하여야 살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 방금 전에 병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다녀갔다. 그리고 분위기가 쇄신된다.-

  1. ‘은행나무 열매’ 의 진코민 효과. 은행잎에서도 축출할 수 있다고 하다.

  2. 보리순에서 가장 효과적인 건 무엇일까?

  3. 내가 추구하는 건 내 몽의 임상실험이었다. 고혈앞 약을 식물성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4. 농축액을 만들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

  5. 임상 실험으로 제공하는 신체를 나는 꾸준히 연구를 하기에 이른다.

  6. 현재 엔진톱으로 얼굴을 다친 것. 글고 이렇게 불편함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만약에 지금의 상황이 그 때와 같더라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조금만 피를 흘려도 어지럼증이 도졌었다. (이게 중요)

  극심한 어지럼증.

  조금만 피를 흘려도 어지럼증이 찾아 왔었다. 분명한 사실은 어지럼증으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서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내려야 할만큼 힘들었다.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는데,

  ‘출장을 가다가 쓰러져서 꼼짝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우려였다.

  7. 어지럼증이 찾아온 이유에 대하여 종내 알지를 못했다. 원인은 알수 없는 것과 함께,

    ‘자신이 어떤 처지에 처했던 것인가!’ 를 상상해 본다. 어지럼증에 대하여 분석해 보건데...


   8. 앞서 얘기했듯이 조금더 과거로 흘러갈 필요가 있었다. 과거로 조금난 들어서도 근본적으로 그 이유가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과로를 계속 누적되고 있었고 무리하게 야간 작업을 지속하였었다.

  새로운 기계를 연구하면서 1호기를 만들었을 때 완벽하지 못하였었다. 그렇지만 2호기를 조금더 완벽하게 해내게 된다. 그렇지만 근교의 위치에 있지 않았으므로 서울까지 수시로 다녀올 수 밖에 없었다.

  그 2호기를 부산으로 납품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하였고 300호까지 판매가 되었다.

  정밀도가 높은 기계의 제조.

  ‘인생은 50세 부터...’

  일기체 형식으로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신체적으로 혈압약을 끊고 난 뒤에 시작되는 자신과의 싸움.

  계속 걷기 운동을 시작한다. 조금만 이성이 있는 듯하면...

  2년 동안 걷기 운동을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대신해서 운동을 하긴 해도 그다지(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보지 못한 듯 싶었다.


  10. 딸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던 것.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하다. 호흡이 힘들고 어지러웠다.


  11. 군대 생활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구보 , PT 체조가 있었다. 그것은 늘상 정례화된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듯 무심해 졌다. 너무도 바쁜 생활 탓이다. 그 뒤 두 번의 (봄. 가을) 같은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갔다 온 뒤에 생활 패턴이 달라 졌는데...

   저녁 5시. 작업을 멈추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 경우 곰순이가 유일한 벗이다. 동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 운동을 위해서 개를 끌고 나온게 문제였다. 임신한 곰순이는 새끼를 낳지 않았다. 배도 부르지 않았다. 아마, 유산된 모양이다.

  얼음이 얼어서 빙판길을 걷는데 곰순이가 뒤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불러 낸 뒤 개줄을 목에 묶어서 잡아 당기자. 질지 끌려왔다. 아무래도 발바닥이 까질 수도 있었지만 오늘 따라 이상하게 걷지를 않으려고 했다.


  그 때 조그만 곰순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으면 다음날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말못하는 곰순이가 질질 끌려 왔지만 나는 꽤병(목줄을 끌어주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서 한참만에 돌아오는 전례) 방임할 수 없었다. 


  12. 학교 운동장에서 원형트럭을 뛰었다. 달밤에 제조하듯이...

  인조 잔듸가 깔린 초등학교 교정. 이곳에 분산되어 전국 체전이 열리게 된다. 트랙을 도는 운동 경기가 유치되었고(장애인들의 주자가 있음직한 날 조명시설이 환하게 불을 밝혔었다. 학교 우농장이 불야성을 이루면서 야간에까지 시합이 이어졌었다.


  그 뒤, 학교는 경기가 끝난 뒤에 주민들의 체력달련장이 되었다. 주말을 버리고 매일 밤 10시까지 불이 켜진체 운동장을 조명 시설이 밝혀 주웠는데 주민들이 한 두명씩 축구, 조깅, 트렉을 도는 등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곤 했었다.

  어느날에는 학생들이 축구 경기를 하였고 다른 날에는 썰렁하게 비가 내렸으며 그 다음날에는 몇몇의 주민들이 트랙을 돌며 걷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가을이 깊어 지면서 학교 후문에 심어져 있는 은행 나무잎이 노락헤 물들고 하나 둘씩 바람에 불려 떨어져 내렸다.

  “우수수!”

  마치 은방울 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은행이 익으면서 땅에도 떨어질 정도가 되자 사람들은 은행을 줏었다. 후문은 뚝방길로 철대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뚝방길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하던 나와 아내는 이내 나무에 올라가서 흔들어 댔다.

  “후두둑!”

  은행이 제법 떨어져 잔듸 밭과 보도부럭 사이에 떨어지자 아내가 비닐 봉지를 줏어다가 은행을 담았다.

  그렇게 몇 일 동안 은행나무는 몸사리를 쳤고 나무에 보기 좋게 매달려 있던 은행은 우리 손에 들어 왔다.

  나와 아내는 뚝방길을 따라 오르면서 그 끝부분에서 돌아 왔는데 원각이라는 마을에서 4차선 도로가 가로 막혔으므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이렇게 돌아오는 길을 제 1코스라고 불렀다.


  한동안 제 1코스는 여름철 내내 계속되었는데 그 이유는 하천을 따라 걷다보면 시원한 공기가 땀을 식혀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겨울철에는 오히려 바람이 많이 불고 어두웠으며 길도 눈이 오면 빙판길로 변하여 미끄러웠으므로 다른 코스를 개발하게 된다.

새로 개발된 코스는 중간 지점에서 새로 개설된 고속도로 터미널과 소정리까지의 4차선 도로를 따라 걷는 거였다. 이쪽으로는 가로등이 켜져 있고 길가에 인도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운동삼아서 많이 걸어 다녔다.

  한참을 걷다가 주유소 앞에서 돌아 섰는데 마침 그곳이 적당했다. 다음에는 개를 여러마리 함께 기르는 목장이었으므로 개짖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차마 그 앞으로 걷는 게 힘들었다.

  제 2코스는 새로운 코스가 만들어 지기 전까지 한동안 지속되었다.


  13. 봄에는 꽃이 피고 딸기가 익었고 가을에는 은행이 영글었다.

  걷기 운동을 하는 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어둠 속에서 서로 교우하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다가 가까이 다가오면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 중에 보일러 집의 안주인은 조금 어색했었다. 내가 인다른 하는 데도 깜짝깜짝 놀라는 바람에 괜히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함께 걷는 다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밤 눈이 어두워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였으므로 다음에는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밤눈이 어두워서 놀라는 것이고요! 차라리 인사를 하지 마세요! 코앞에 다가오는 것도 분간하지 못해서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도 공포를 느끼는 것이고요!”

  “아, 그렇군요!”

  다음 말을 하지 않은 체 다음 날부터는 반갑다고 인사도 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그럴 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제 1코스는 작은 개울의 둑길을 따라 원각마을까지 걷는 것이고 그곳에서 하천에 날아오르는 홍학(두루미), 오리 떼를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심심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 코스가 냄새나는 개 사육장이 있는 곳을 지날 때 곤혹을 치루게 된다. 둑길 위로 개집에서 나온 시커먼 똥물이 훌러 내리고 악취가 너무 심하여 코를 막고 걸어가야할 정도였다. 또한 길옆으로 야외에 있는 개장에서 짖어 대는 개짖는 소리가 도사견의 우렁찬 소리여서 깜짝 놀랄 정도로 컷다. 담은 조립식 판넬로 된 양철로 C형강에 피스볼트로 박아서 벽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담장 안 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데 그 옆에 스레이트 지붕의 30평 내외의 건물 속에서 불이 켜져 있는 야간에는 무슨 작업이 이루워지고 있었다.

  “기를 잡는가 보네!”

  “불이 켜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는 것같아요!”

  “그래, 이곳에서 도살장까지 겸하고 있는 것 같군!”

나와 아내는 그런 날이면 마음이 무척 심난해 져서 그곳으로 가지 않고 맞은편의 하천 반대쪽 뚝 길를 따라 걷곤 했다. 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도살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듯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상상으로 개를 잡는 풍경과 함께 수없이 울어대는 개들의 집단 울부짖음. 그리고 도살행위위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차량(병숙이와 함께 갔던 다른 개잡는 농장의 방문)

  이 1코스는 지붕이 없는 야외에 2층으로 세창살을 한 개장을 조립식 철판 하나로 가려 놓은 둑방길을 따라 가야만 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는 그곳에서부터 검은색의 개똥이 물에 불려서 흘러 나와 하천으로 내려 갔는데 도로를 타고 연이어 한참을 흘러가기 때문에 온통 똥밭이 되고 말았다. 발을 디딜곳조차 없어서 발디끔치를 올린 체 살금살금 걸어야 할 판이었다.

  “으이구, 냄새!”

  “악취가 말도 못하게 나요!”

  극심한 오염물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겼으며 또한 그곳으로 걷게 되면 개들이 집단으로 짖어댔다.

  “컹컹컹...”

  그 개집 옆으로 걷다보면 고양이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후다닥!”

  많은 고양이들은 개를 잡은 뒤에 쏱아내는 하수도의 내장 찌꺼기를 먹고 하는 듯했다. 아니면 쥐들이 극성을 부려서 주인이 고양이를 풀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개들이 먹다가 흘러버린 개사료을 먹기 위해 쥐들이 많이 서식하는 것이여서 고양이가 떼를 지어 몰려 다니고 있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 이곳 옥천에 이사를 왔을 때의 외로움은 개를 기르게 하였었다. 사료를 많이 주다보니 쥐들이 극성스럽게 늘어 났다. 뒷마당에 톱기계를 놓았는데 그 속으로 쥐들이 숨어들어서 전기선을 끊어 놓아 기계가 고장 났을 정도였다. 쥐가 어찌나 극성인지 이제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 새끼를 낳았고 지붕위를 들락달락했다. 옛날 시골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슬라브 지붕인데도 들어갈 틈이 어디 있을까? 했지만 조금만 틈이라도 보이면 들어갔던 것이다. 방 안에 들어와서 쥐몰이를 해서 잡아낸 적도 있었다. 사무실의 천정에 들어간 쥐는 새끼를 낳기도 했도 숫자가 늘어나더니 결국 형광등 전선까지 갉아 먹어서 합선을 시켰으므로 응급선을 밖으로 설치하여 불을 켜야만 할 정도였다. 들어갈 구멍조차 없을 것같은 천정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의심을 들 정도였다. 하다 못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쥐를 퇴치하기에 이른다.

  쥐들이 사무실의 천정에 올라가서 마침내 전선을 끊자 전히 합선이 일어 났고 그곳을 찾을 수 없어서 부착된 형광등과 콘센트가 모두 못 쓰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별도의 선을 천정 외부에 달았다. 그 뒤에는 전화선이 끊어졌다.

  쥐들이 전화선까지 타고 다니면서 끊어 놓은 것이다. 창문에 전화선과 전기선을 넣어 두웠는데 그 구멍으로 쥐들이 들락달락하였던 것이다.

  어느날에는 어미 쥐가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제 집인양 뒤를 돌아보며 힐끗 거렸는데,

  ‘이 집은 내 집인데 넌 뭐냐?’고 노려보는 것 같았다.

  마주친 눈이 찌릿하고 천연덕스러워서 하마터면 놀래 자빠질 뻔 했다.

  어떻게 지가 주인이고 내가 손님이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주인과 객이 바뀐 것처럼 쥐가 나를 노려볼 수 있다니...'

  어미 쥐가 사무실에 새끼를 낳고 낮에는 무더운 여름철의 뜨거운 공기를 환기하기 위해 열어 놓은 유리문을 통하여 제집처럼 들어가서 새끼까지 낳았던 것이다.

  사무실에 넣어 놨던 개 사료를 먹고 살았고 여름철에는 더위를 쫒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 놓았는데 열려진 문을 통하여 마음껏 쥐가 들락날락 했던 것이다.

  마치 제집으로 들어가듯이 쥐가 사무실 쪽으로 튀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커다랗게 생긴 어미쥐였다. 결국에는 약국에서 쥐약, 쥐덧, 끈끈이를 사다가 벽을 따라 길목에 설치를 하여 모두 퇴치를 하였는데 새끼들은 끈끈이에 붙잡히고 어미쥐는 쥐덧에 잡혔다.

   온집안에 쥐가 극성을 부리자 나는 그 원인부터 분석에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개를 뒤담 밖으로 내 놓고 묶어 놓게 되고 개사료는 가급적이면 안에서 주지 않고 내부에 들어온 쥐는 쥐덧과 쥐약으로 소탕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쥐를 잡기 위해 쌀약을 뿌려서 근절시키려고 하였지만 완전히 집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집안에서 모두 잡았지만 외부에서 다시 들어 오는 것이 확실했으므로 쥐 한 마리가 보이면 다시 쥐약을 뿌렸다.

  극성스러운 쥐들의 세상. 쥐덧은 작은 쥐는 잡혔지만 어미 쥐는 힘이 세어 내려온 쥐덧의 문을 밀고 번번히 달아 났다. 그래서 큰 쥐덧이 필요해씨만 그런 쥐덧을 구할 수가 없었다.


  오일파동이 일어나고부터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기름 보일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사는 삶은 대체로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오일 파동으로 기름 값이 치솟자 나는 도저히 유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뫄목 보일러를 만들었다.


  세 차례나 초등학교 게이트 볼장에서 나무난로를 주문 받아서 설치해 주게 되었다. 게이트볼의 활성화로 시골에 조성된 노인들의 운동이 게이트 볼로 바뀌었는데 초등학교의 운동장 한곁에 게이트 볼장이 들어 서게 된다. 그리고 콘테이너가 놓여 사무실로 쓰였는데 마침 난로가 없어서 나무 난로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던 것이다.


  이원면의 초등학교에서 게이트 볼을 하고 있는 A라는 노인네는 내게 자동으로 나무를 자를 수 있는 톱기계를 의뢰하게 된다. A라는 사람은 손재주가 있어서 게이트볼을 세워놓은 게이트볼대를 제작하여 무료로 다른 게이트볼장에 설치해준다고 했다. 그 분이 내게 의뢰한 합판을 절단하는 기계는 상당히 긴 나무를 넣고 반듯하게 제단할 수 있게 만들게 된다.


  이때 필요한 자제는 전선회사에서 나오는 못쓰는 전선드럼의 둥근 원반(세겹으로 못을 받아 놓은 것을 모두 빼낸 뒤에)을 뜯고 난 뒤 벌어지는 세 겹의 원목 송판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수선 세 겹으로 포갠 원판의  구부러진 못을 빠루로 뜯어서 세운 뒤에 모두 못을 빼면 길게 늘어져서 겹겹이 쌓인 송판의 결을 다듬고 게이트 볼의 원형 손잡이에 맞게 홈을 파낸 뒤에 쓰러지지 않게 다리를 만들어 조립을 한 뒤 니스칠을 하면 감쪽같은 게이트볼 걸쳐 놓는 지지대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군대에서 총대를 세워 놓을 수 있는 걸이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멋진 게이트 볼대(걸이)가 된다고 했다.

  이곳에 있는 전선회사는 지역의 중추적인 역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건비등과 노사분규로 인하여 회사는 베트남으로 이전하려고 했다. 지역사회의 여론과 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류하기에 이른다. 그냥 남아 있었지만 베트남에 이미 제 2공장을 두려고 공장을 세우는 중이었다.

  때마친 노사분규가 일어 났다. 협상안은 난항을 했고 마침내 외부세격이 노동자들에게 유입되어 폭력화로 치닷게 된다. 노사간에 2년간의 분규는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었다.

  그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 났다. 전선회사에 납품을 하는 하청업체 중에 목재 드럼을 새것으로 납품하는 A라는 업체와 중고 드럼을 납품하는 B라는 업체, 그리고 PVC 납품업체, 구리를 납품하는 업체 등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 그 중 몇 곳은 페업을 하고 결국에는 말은 곳도 있었다.

  새전선드럼을 납품하는 A라는 업체는 결국 납품을 하지 못하자 도산하고 말았다. 그동안 납품하던 가장 큰 공급처가 납품이 중단되자 종업원의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밖에 크고 작은 하청업체들이 도산하거나 다른 곳에 복수 거래처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처럼 지역 사회에 많은 피해를 주게 되었지만 여전히 분규는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납품을 하던 KT, 한전 등에는 납품 중단을 하기 위해 폐업의 극단적인 신고를 하고 말았다. 그동안 쌓아 왔던 신뢰가 무너져 버리고 대부분의 거래처를 잃게 되었다.


  나는 이 회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일어 났던 88년도의 노사분규는 기억을 한다. 결국에 회사가 노동자들(200명)을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동안의 싸하 놓은 신뢰가 하루아침에 잃고 결국 도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오갈데 없는 상황 끝에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섰다. 엄청난 노력과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조차 잃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다시 되살아 나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무실의 기물이 부서지고 난투극이 펼쳐졌으며 그 누구도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없도록 훼방을 놓았다.

  외부 세력이 들어와서 노동자들을 부추겼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결성된 노동조합장은 폭력주의 양상으로 번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장은 종업원들에게 못매를 맞았다. 그리고 회사는 결국 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앚기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업은 결국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 시켰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회사내에서 이제는 회사 밖으로 내 쫒기게 된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는 모두 회사측에서 지었지만 노동자들도 봉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2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직장에서 쫒겨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게 된다.

  명분도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관리자들이 나서서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고 납품을 시켜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관리자들에게 폭력적이었다.

  “너희들이 일을 하는 게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하고 근무하시 시작한 동료들을 못매로 때리기도 하였다.

  그들 관리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그런 내용이 지역 순문에 계속 오르내렸다. 사무실을 부구고 집기류를 쌓아 놓고 경찰들과 바리케이트를 쳤었다. 진입하려는 경찰 인력과 대치를 하였지만 곧 회사에서 쫒겨 나기에 이른다.

  말 그래도 아수라장으로 변한 현장.

  지역 신문에 대대적으로 오르내렸다.

  두 번째,

  옆집의 중고 전선드럼 수집상의 고민.

  대형 드럼을 구입해 달라는 의뢰를 회사측에서 주문 받음. 그리고 거래처를 바라보고 전국의 도매상에게 부탁을 하여 납품할 재고품을 획득하게 된다. 지금까지 대형 드럼은 취급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회사 방침으로 변경된 새로운 납품에 대하여 잔뜩 기대를 하고 납기일까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전국에서 준비된 물량이 속속들이 도착하게 된다. 그러자 야적장은 납품하지 못하는 대형 전선드럼으로 쌓였지만 계속적으로 비를 맞아 썩기에 이른다.

  처음에 받은 물량이 야적장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비가 맞아서 축축해지면 나무는 썩기 시작하고 대부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 회사가 재가동될지 알 수 없는 사항이여서 없앨 수도 없었다.

  회사의 방침으로 변경된 새로운 납품은 그렇게 썩어갈 것이다.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할 수 없이 천막을 사다가 씌워 보았지만 워낙 많아서 그것도 힘들었다. 바람이 불게 되면 천막이 흔들리고 날아가서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원형 드럼의 경우 칸막이에 송판을 덧대어 중간을 막게 된다. 부피가 커지게 되고 모든 납품은 분해한 상태로 납품을 하였다. 그렇지만 일부 전선 회사에서는 자체내에 조립 인원이 없다보니 완제품으로 조립된 상태로 납품을 해야만 했으므로 야적장에서 조립을 하였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고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동네에서 C라는 사람을 한 달에 100만원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키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두 A라는 회사가 노사분규로 납품할 수 없게 되면서 달라진 변화였다.


작업 순서는 우선 4개의 철심을 박고 중간 부분에 원형의 안감 작업을 한다. 중간에 턱진 곳에 가로 질러서 휭목을 박는 것이다. 빙 둘러 가면서 못을 박게 되면 마치 중간이 막혀 버린 실타래 같은 양쪽에 원형으로 테두리가 생기고 안쪽에는 전선을 감을 수 있는 물레 형태의 드럼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럼은 양쪽 원형쪽에 노란색 수성 페인트 칠이 칠해졌다. 조립 인원을 이제 필요하게 되어 동네에서 경비일을 보다가 정년퇴직한 C 가 그자리를 꿰어 찼다. 

A는 60세의 나이에 경비 일을 맡지 못하고 계속 밀렸다. 봉급이 깍이다가 나중에 부녀회장의 눈치에 비위를 맞추지 못했다고 추천을 받을 수 없어서 잘렸다.

  “아파트 경비! 아, 옛날 말이지 부녀회장에게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떠는 개지 뭐! 봉급도 점점 깍이고.... 나이는 젊은 사람 위주로 뽑으니 우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만 둘 수 밖에... 그렇다고 체면 구기고 들어가면 못할 것도 없지만 전선 드럼을 조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업종을 바꿨더니... 너무 좋네!”

  그렇게 자화자찬을 했었다. 최저 임금에도 못미치게 되는 박봉을 견딜 수 없어 했다. 또한 아파트 경비일이 자꾸만 어려워져서 분리 수거를 하게 되고 부녀회의 눈 밖에 나면 2년 단위로 재 입사를 하는 명단에서 빠져 버렸다. 그는 경비일보다 한샘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과 100만원의 봉급을 받으면서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경비 일이 더 낫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묻자,

  “무슨... 그것도 옛말이지! 지금은 임금도 줄고 인원도 불과 아파트 한 동에 한 사람씩 밖에 쓰지 않아! 그러다 보니 온갖 허드렛 일을 다할 수 밖에 없고 부녀회 등살에 온갖 설음을 다 참아야하고... 어쨌튼 경비 일은 이제 염증이 나!”하고 말했다. 그가 마침내 그런 한숨 소리를 토해 낸 것은 그만큼 경비 일이 힘이들고 박봉이었으며 안팎으로 눈치코치를 봐야만 했던게 힘들었다고 했다. 환명,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그 일이 최고인양 떠들던 사람이...

세 번째 이웃에 사는 C라는 사람.

  전선 회사의 공무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였고 이번에 일어나 노사분규는 모든 분위기를 송두리체 뒤바꿔 버렸다. 그래도 회사 입잗에서는 우호적으로 보였다. 1년 가까이 봉급을 타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나마 아내가 식당에 출근하게 되었으니까? 그것으로 연명을 한다고 했다. 회사는 언제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극과 극의 대립.

  노동자와 관리자들의 싸움.

  세상은 모두 이곳에서 대치하는 듯 싶었다. 처음의 진흙탕 싸움으로 희생된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이글을 쓰는 순간에 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맞은편 침대에 먼저 들어온 환자가 내게 사과 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제 엄마에게,

  “엄마에게 고추를 보여줘요?”하고 물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저씨, 사과 하세요!”

  “왜, 그러지...”

  “고추를 보여주냐고 했잖아요!”

  그는 20대의 대학생이었다. 내가 물었을 때 군대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제 엄마에게 고추를 보여 주냐? 고 했다고 사과를 하란다.

  참으로 당돌한 젊은이였다. 오줌을 넣기 위해서는 누군가 일으켜 줘야만 했다. 절립선(소변을 볼 때)의 수술로 소변을 패트병을 자른 프라스틱 병에 누워야만 했는데 그 때마다 누군가 부축해 줘야만 하는 것이다. 나도 보호자가 없을 때 제 옆에서 부축을 해 줬었다. 그런데 이 당돌한 태도에 나는 그 다음 부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말았다.

  “아, 그게 그렇게 싫었나 보지요! 그럼 고추라고 한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 하듯이 젊잖게 말한 거라고 생각되는데... 자지, 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고추라고 한 말이 그렇게 듣디 싫었어요?”

  “...”

  “미안해요! 그말이 그렇게 거슬렸다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지만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 다음부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밥을 먹고 빈 그릇도 걷어다가 식당용 손수레에 갖다 넣지도 않았다. 몇 번 그렇게 해 줬었지만 그런 당돌함에 이제는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심히 제 엄마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워낙 싸가지가 없이 굴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젋은 사람의 흥분하는 즉흥적인 모습을 글에 대입하게 되었음이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대든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그렇게 대드는 것을 못보았던 나로서는 내 아들과 비교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제 어머니와 말을 할 때 무척 신경질적으로 따지려 들고 독보적으로 말을 했는데 그것은 거치른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오냐오냐 해줘서 큰 뒤에는 고쳐지지 않는 그런 못되먹은 버릇이 신경직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존칭을 하게 되는 그런 하극상이라고 할까?

  전선회사의 노사 분규가 그랬었다. 젊은이들의 폭력이 극에 달할 지경으로...

  이 양분된 세력간에 첨예한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서 어떤 사연히 싹트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내부에서 사측으로서는 폐업을 신고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역 사회에 있어서는 너무도 큰 손실이기도 했다.

  얼마나 갈까?

  무려 2년 동안이나 질질 끌었다. 


  1. 이곳은 자신이 있던 곳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발휘해야만 했다. 젊은이들의 충돌적인 성격은 매우 독설적이었다. 그들은 젊음을 앞세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들었다. 회사의 존립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과 분위기에 휩쓸렸다. 자칫 노동자들 편에 서 있다고는 해도 끝도 모를 지옥구덩이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짓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당장의 이익과 분위기에 휩쓸렸으며 자칫 노동자들은 그들의 파워에 겉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래서 사측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사측은 사설 경비업체를 불러 들이게 된다.

그 폭력은 다시 겉잡을 수 없이 번졌다. 그래서 피해를 입은 사측이 노동자들을 경찰에 고소하게 된다. 중립을 선언한 군수와 공무원들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적어도 사측에서는 노사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 노조가 내세우는 조건에(상당한)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2. 언제나 인내하는 사람이 승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물리적인 압력에 극복을 당하게 되면 전체적인 이익에 도회시 당하고 마침내 동반 하락한다. 그것은 자신이 근무하던 A라는 업체가 무조건 노사분규에 내세운 조건에 무당성을 주장하면서도 수락하게 된 것과 회사의 부도는 예고된 상황이었다. 그만큼 현실적인 이익에 추가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많을 수록 그 회사는 순탄하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사장이 직접적으로 노동자들과 대화를 유도해 보지만 그것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나는 여러분께 최선을 다해 왔지만 지금의 조건은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협상은 결여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계속 요구할 것이요. 적어도 작업장에서 어떠한  운전도 용납할 수 없소!”

  “납기를 하지 못하면 회사는 그 거래처를 놓칠 것이다.”

  사장은 노동 조합장에게 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무리한 요구에 따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상황은 어렵게 전개외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책임을 모면하려고 했다.

  문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부채 비용이 높은 회사로서는 당장 사정이 악화되고 말았다. 회사는 점점 더 위험해 져 갔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더 이상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폐업 신고를 하게 된다. A라는 업체의 수입선의 변경이었다. 자신들도 불이익을 받아 가면서 거래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3. 생각만큼 뿌리 깊은 불신

  차협점은 없는 것일까?

극한 상황의 분위기가 최고점에 달한다. 경직된 노자측의 입장에서 사측만이 유연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이젠 급할게 없었다. 끝장 토론이었다. 이제는 갈 때까지 가게 된 것이다. 모든 납기는 끊겼다. 사측으로서는 언제까지나 노조측에 끌려 다닐 수만은 얺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납기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바로 폐업 신고를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노사분규를 이들은 다음 상황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끝장 토론이 된 것이다.  


  4. 수없이 많은 시행 착오.

A는 자신이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공중분해되어 버리면 이제 다닐 회사도 없었다. 사측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노사분규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폐업 신고를 한 것을 보면 이제 봉급을 받을 생각은 말아야만 했다. 질질 끌고갈 명분도 없었다. 그렇다고 노사분규에 참여하여 노동자 측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아, 어디로 가야만 할까?’

  ‘무슨 일을 하여야 하까?’

  그는 아내를 볼 면목도 없었다. 노사분규의 극단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회사내에 무르익어 가던 흥분의 도가니도 점차 가라 앉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제 자신이 처한 입장을 볼 때 갈 곳도 없었다. 텅빈 공장을 빠져나와 농공단지를 쓸쓸하게 걷어가면서 행여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던 자신의 예전의 모습이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기약없는 방황을 언제가지 하여야만 할까?

  텅빈 공단을 쓸쓸하게 걸으면서 행여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몇일 전까지 보았던 동료들은 싸움에 지친 것처럼 피로한 기색이 역역했다.

  “몇 개월 째 놀다보니 무일푼이 되고 말았네!”

  “이렇게 갈곳없이 방황을 할 처지가 과연 노사분규 때문에 좋아닌 구석이 아무데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갈곳없이 외톨이가 될 줄 누가 알았나?”

  “자업자득이지 뭐!”

  “나는 집에 들어 갈란다.”

  “이제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다른 곳에 가야지...”

  그들 각 부서의 독특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 가령, 주조 부 반장 압연부 조장, 주물부 차장 등 명목상 자신이 맡고 있던 나름대로의 책임자들은 물려 받은 집과 땅을 모두 다시 돌려보겠다고 팔아서 쏱아 부웠지만 노사분규동안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면 주식은 모두 감가상각되기 마련이었다.

  “최악의 경우 깡통주가 되는 거지, 뭐!”

  “그래, 그럼 회사는 재생하지도 못하는 거 아냐?”

  “어림 없다는 군 워낙 빚이 많은데다 그만 노사분규로 인하여 계약 위반이 되고 위압금, 배상금 등 거래처에 납기를 하지 못한만큼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군! 노사협의가 부당하게 진행되어 분규는 더 악화되었니 이젠 부도 직전까지 내 몰리게 되었다는군!”

  “정말이었구나!”

  “그렇지만 회사측에서는 항상 어렵다고만 하는 거야! 그걸 믿냐?”

  그들은 자주 가는 목로주점에서 막걸리 사발을 기울였다.

  벌써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3월의 체감기온은 한결 따듯했다.

  “그럼, 회사가 모든 걸 포기하고 남겠다는 얘기는 터무니 없는 소문이었구나!”

  “누가 퍼트린 소문이겠어!”

  “노조측에서도 이번만큼은 승낙하지 않을 걸...”

  “노조 위원장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붙잡혀 갔어!”

  “그렇지 처음에는 회사측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운영하려고 노동조합측에 합의를 하려고 했지! 그렇지만 너무 시일을 오래 끌어서 거래처가 모두 끊기게 되었고 위압금까지 변상하는 마람에 어쩔 수 없이 부도가 난 거고...” 


  12. 이그린의 납품(신재) 거래처였다.

  목공소였지만 업종을 변경하고 전선회사에 신재를 만들어서 납품을 하기에 이른다. 신재는 사실 중고 드럼보다 이익이 많이 남지 않았다.

  중고제품과 프라스틱으로 대체한 뒤부터는 신재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상태였다. 중고제와 함께 프라스틱 드럼의 납품은 결정적으로 직격탄을 맞을 정도로 심각했다. 목재 가격의 인상분만큼 납품할 제품에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황까지도 도래하였다. 이것은 매우 불이익을 주웠다. 울자겨자먹기로 납품을 하면서 다른 곳과 병행하여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너무 낮은 단가 때문에 사업을 접느냐? 그렇지 않는냐? 의 기로에 서게 된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전선회사의 노사분규는 최악의 상황를 불러왔다. 1년여동안 기다릴 수가 없었으므로 회사는 결국 문을 닫기에 이른다. 


  13. 그가 이곳에 이사를 오게된 이후. 조금씩 벌게된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되는데...

유일한 돌파구는 새로운 제품의 창출이었다. 적어도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언제나 과중한 작업에 시달렸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가장 우려 했던 일은 현실적인 외면을 어떻게 해보지 못하였고 마침내 최고의 희망이 연출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내일은 축사에 가야할 것 같아!”

  이사를 온다는 사람들은 2층에 살림집을 이어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털털 떨리는 그라인더 작업.

  콘크리트를 자르고 시멘트를 비벼서 바닥에 바른 뒤에 벽을 쌓기 시작했다.

  손그라인더에 인조다이아 몬드 칼날을 끼워서 넣은 뒤에 벽을 부수고 쌓아 나갔다.

  “웽웽... 웨에엥!”

    그라인더의 얇고 가느다란 소리아 함께 벽돌을 자를 때마다 먼지가 일어 났다. 그 먼지 속에서 계속하여 동릉 쌓아 나가는 작업. 이곳 2층을 쌓아 올리는 작업을 아내와 보조를 맞춰 나가기 시작하면서 벽면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사물들이 생동하는 초원이 창문너머로 바라 보였다. 한쪽 벽면은 창문을 박고 벽면을 쌓아 놓은 상태였다.


이번 겨울을 너무나 길고 지루했었다. 병명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아파왔던 뒤목. 뻐적지근한 오른 쪽 팔목. 그리고 머리가 항상 무겁고 피로가 가시질 않았었다. 방금 전에 파릇파릇 돋아 난 새싹. 그렇지만 논에는 아직도 얼음이 얼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푸릇한 싹은 논바닥까지 이르기에는 아직 멀어 보인다. 삐죽삐죽 솟아오는 벼 밑둥이가 발을 밟을 때마다 딱딱하게 뉘어 버렸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아찔한 현기증이 솟아 올랐지만 이내 심호흡을 했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옆에서 내게 다가왔던 D라는 사람은 말이 어눌했다. 그는 F라는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말을 하기는 하데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아서 휑설수설했다. 무척 심난하여 말을 시켜보면 마치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지껄여 대곤 했었다. 아마도 자신의 신세타령이라 여길 정도로 내역을 줄줄이 외고 다닐 정도였다. 같은 내용의 넉두리는 부분적으로는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불싸하게 생각이 들었다.

  1남 2녀를 두웠는데 남편은 소아마비 환자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결혼을 하였다고 했다. 두 딸은 연애를 하다가 모두 결혼을 하였고 그 사위들이 근처에 살고 있었으므로 자주 찾아 왔다. 그렇지만 언제나 인생이 재미 없다고 입에 달고 다녔다. 자신은 지지리도 운이 없는 여자라는 둥. 자신의 불행을 이제는 체념하였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 자신이 항상 말해 왔던 대로,

  “내 팔자가 이 것 밖에 안되니까? 이런 삶도 감지 덕지 하지!”

  “처음에 여긴 어떻게 왔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글쎄 서거스단을 따라 이곳에 왔었지 뭐요! 이곳에 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기구하게도 지금 남편의 시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어 결혼 제의를 받아서 올다구나! 결혼을 하면 밥은 굶지 않겠구나! 하고 큰맘을 먹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구먼요! 지금의 시댁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참한 총각이 있다고 거짓부렁으로 말했던 거지만 그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어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핸지요! 캄캄한 방안에서 남편과 첫 날밤을 함께 하면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병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오! 아무래도 부부인연을 맺은 뒤에는 결국 이곳에 정착을 한게 후회는 되지 않지만 너무 가난해서 그게 싫었어요!”

  “그랬어요!”

  “그게 평생 불구하고 나 아니면 다른 여자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드니 왈칵 눈물이 흐르지 뭐요! 해서 구재해준답시고 큰맘먹고 살게 되어 요모양 요꼴이 되었네요! ”

  그녀는 구구절절 자신의 신세 타령을 늘어 놓았다. 키가 작달만하고 똥똥한 체구였다. 얼굴은 둥글고 납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슬픈 빛이 감돌기까지 한다. 


언제나 한쪽 말을 쓰지 못한 체 절룩거리며 걸었고 말을 할 때마다 침을 흘렸다. 그녀는 옥천역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갈 곳이 없던 차에 결혼 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그녀는 키가 작달만 했고 똥똥한 체격에 그다지 예쁜 얼굴도 아니었다. 헝크러진 머리에 납루한 옷차림이 거지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 집에 가면 밥도 주고 잠자리를 줄테니까... 따라와요?”

  “그럼, 일 자리도 주는 거예요!”

  “어디 일 뿐이겠어요! 맘만 들면 결혼도 할 수 있는데...”

  결혼이라는 말에 그녀는 눈이 번쩍였다. 지금까지 결혼을 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제 1 충격파.

  움찔한 느낌. 그 뒤를 따라오는 아찔한 현기증. 순간 눈 앞이 핑 돌았다.

   “고혈압을 안고 사는 것은 저격병으로부터 총을 맞는 것과 같다. 언제 어느 때이건...”

   처음에는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났다.

  “왜, 이러지!”

    발걸음을 한 걸음씩 내 디딜때마다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이 온통 새하얗다. 지상 위를 걷지만 마치 허공을 밟는 것처럼 흔들렸다. 아찔한 현기증을 참아가면서 ‘서 군’이 말하는 곳으로 나는 걸어 갔지만 점점 현기증이 커져만 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지겠지...”

  육소를 키우는 축사 옆의 논바닥에 트렉타에 연결하는 추레라(수레)가 세워져 있는 곳까지 왔지만 어찌나 어지러운지 앞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앞에서 먼저 걸어가는 서군을 따라 가면서 10여미터를 왔을까? 추레라가 있는 곳에서 그가 설명하는 곳을 살펴본다. 조금 약해서 트렉타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쪽이 제가 약하다고 하는 곳인데요!”

  “그것을 보강하려고?”

  “예, 이곳 추레라의 끝에 트랙타 걸쇠를 걸치게 되는데 고리 부분이 약해서 자꾸 휘어져요! 혹시 두꺼운 철판을 떼워도 될까요?”

  “그럼 좀더 두꺼운 철판으로 부착하는 게 좋겠군!”

  서군은 용접을 해서 보강을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트렉터에 연결하는 추레라가 달랑 놓여 있는 논바닥에 나는 그만 고꾸라졌다. 무거운 고무바퀴가 옆에 서 있었지만 마치 바위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왜그러세요?”

  “우욱!”

  나는 엎드려서 계속 토하기 시작했다. 점심때 먹은 밥과 음식물이 모두 넘어 왔다.  그 때 두 번째의 충격파가 머리 속에서 일어 났다.

  “쿵!”

  마치, 망치를 들고 세게 맞았을 때처럼 머리 속을 지나갔다. 이 충격파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였는데 나는 치명타를 입고 마치 총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맨 흙의 논바닥이었다.

  “울컥!”

  목구멍을 타고 음식물이 넘어 왔다.

  논바닥이 얼굴에 닫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얼어 있는 진흙이 땅땅한 감촉을 느끼게 했다.

  그 논바닥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오가집에서 논두렁에 똥장군을 짊어지고 뒷간에서 검은 재를 논바닥에 군데 군데 엎어서 쏱아 내곤 했었다. 잰간에 겨울내내 검은 재를 퍼내어 쌓아 두웠다가 똥과 함께 논바닥에 뿌려대고 했었다.

  “똥은 다 거름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외할아버지는 똥장군을 짊어지고 논고랑을 따라 걷던 내게 말하곤 했었다.


  마침내 논에 퍼질러지게 거름덩이가 쏱아 부워진다. 외양간에 잔뜩 쌓여 있던 거름덩이와 소가 내질렀던 오줌과 소똥을 모두 지게질로 퍼내야 했었다. 경운기조차 없던 그 옛날은 금세 현대식으로 바뀌어 갔으면 이제는 트렉터가 소똥을 치우는 기계로 대치된 상태였다.

  “울컥울컥!”

  나는 마루 토사물을 입으로 토해냈다. 그렇지만 어지럼증은 종내 사라지지 않고 있어났다. 계속 뇌 속에 일어나는 경련은 바늘로 신경을 찌르는 듯 날카롭고 아팠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모든 사물이 빙글빙글 돈다. 겨우 서군에게 의지하여 축사로 왔는데, 아내가 놀래서 묻는다.

  “왜그래요?”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논바닥으로 쓰러졌어요! 마구 토하고...”

  “무슨 일이지?”


20. 50세 때 부친이 쓰러지던 모습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


21. 반항을 한다. 당돌함.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도전적인 젊은이들에게 휩싸인다.


22. 헤모글로빈 수치가 9였다. 원래 14, 17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떨어졌고 이렇게 떨어진 수치를 보면 다시 또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해서 수혈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다.

  “괜찮습니다. 수혈을 하지 않겠습니다.”

  피를 많이 쏟았다. 


23. 참으로 많은 이들이 내게 왔다 갔다. 나를  견딜 수없게 만드는 건 상처의 통증이 아니고 인간을 시기하는 마음이었다.

  종업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해 왔었지만 배신을 당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싸움. 사장이라는 직함이 이제는 별 것 아니지 않은가! 직함을 들고 유산 받은 회사의 사활이 이제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폐업을 하게되는 안타까움이 든다.

  -옛 회사의 사장의 심경 고백- 


  24. 맥없이 노사 분규에 끌려 다니는 젊은이들의 심경고백.

  나는 왜 이렇게 앞장을 설 수 밖에 없었던가! 누구를 위한 싸움이며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과감하게 도전을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폭력과, 난폭행위와, 그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과감한 시도. 난투국은 사회로부터 우려를 낳는다. 난투극을 벌인 사람들은 처음에 노조위원들이었지만 그 두에는 사설경비업체가 투입되고 자신들이 당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부정을 하면서도 시대에 이끌리고 분위기에 따라 흥분하였으며 그 끝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가장 극적인 흥분을 애써 미화하고 과대포장하였다. -행동 대원의 생각-

25. 왜 우린 폭력주의가 난무하는 이기중의 자들이 되었는가!

  가족들이 우려하고 끝이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내림에도 불구하고 책임질 권리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일까? 오직 그동안 몸담고 있던 근면한 노동자들이었는데 들풍처럼 피어오르는 노사분규의 분위기에 휩싸여 서서히 인간의 존업성을 포기하였다.

  -충격적인 고백 중에...-


  “직장을 뒤 흔들었어요! 너도 나도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일감을 갖고 있는게 아니고 몽둥이와 의자를 집어 던지고 이 군집에서 집단 행동을 오로지 동참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라고 말했다.


26. 오 신이시여!

  내가 인간이길 거부하게 하고 깡패처럼, 늑대처럼, 괴수처럼 돌변하게 된 것을 용서하소서...


  27. ‘쌍팔년도(88년도)에 노사분규의 황금시대가 도래될 것이다.’라는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 누구도 노사분규의 황금시대를 예언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국가의 이미지가 손살될 수 있어서 탄압을 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구실을 내세워서 노사분규가 마치 들불처럼 일어나서 겉잡을 수 없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것은 국가의 이미지가 폭력을 공권력으로 무력화 살 수 없는 경찰국가의 위상이 세계의 미목이 집중되어 강력하게 실행하지 못하리라는 예상을 노조측에서 기회로 삼고 노동조합 산하의 각 지부에 명령.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돌려하며 지원하였다. 그래서 가장 노사분규가 많이 있어 났고 기록적으로 증폭되었다. 노동자들의 주장으로 노조의 권위와 위상이 높아졌으며 기록적인 한 해였다. 노동자들의 주장도 한몫을 하였다.

  세계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한국의 실정이 그동안 탄압되고 억압된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고 외신으로 보도했다. 노조들의 위상이 얼마나 골이 깊었는지 앞다퉈 소식을 전했다.

  그 해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사업주였다. 조사분규를 처음 겪게된 사업주들은 대처하는 방법을 원만하게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무조건 노조들의 주장에 굽히고 들어갔으며 합의 조건 사항에 승인을 하였다. 불합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들어 주게 되자 노조측에서는 자신들이 노사분규를 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계속하여 재2, 제3의 노사분규를 일으켜서 사업주를 괴롭혔다. 마침내 모든 주장을 다 들어 주게 되었을 때 회사는 빈 껍대기만 남게 되고 도산되고 말았다.

  노사 분규의 열기는 한번에 걸쳐 시작된 게 아니었다. 두 번 세 번씩이나 같은 해에 반복되었으므로 무조건 합의점에 승복을 하게 되어도 다시 재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주장은 그냥 재미삼아 분규를 하는 단계에 이를 정도였다.

  초기에 노동조합측에서 제시한 조건은 어쨌튼 무리한 것이었다.

  첫 째 조건으로 대부분 노사 분규 기간동안 무임금무노동이 없어지고 무노동 유임금이 되고 말았다. 이 조건에 동의한 사측은 대부분 알화 일로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당연한 궐리인양 노동분규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노동분규를 격변기라고 불렀는데 사측은 대처하는 방법에 유연하지 못하였던 당시의 상황을 뼈저리게 후회한 해가 되었다. 그 뒤 노사분규는 사업주들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대폭적인 직원들을 신규로 모집하지 않고 공장의 시설을 자동화로 교체하게 된다. 그리고 임시직을 모집하여 정규직과 함께 사업장에 투입시키게 되었다. 자동차의 경우 왼쪽 바퀴는 정식직원이 오른 쪽 바퀴는 임시직원이 조립하는 웃지못할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똑같이 자동차 바퀴를 조립하는데 임시직원의 봉급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채용 인원을 임시직원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면서 용역 회사가 생겨났다. 임시직원은 모두 용역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하여 현장에 투입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배치하는 방법은 새로운 고용 방법이었다. 임시직원은 노사분규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튼 88년도의 노사 분규는 한국의 시대 흐름에 역행하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게 해 줬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점에서 다시 권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양면의 칼이었다. 그래서 권위를 찾았지만 대신 많은 이들이 불안전한 직업을 얻었다. 신규인원은 뽑지 않고 임시직원으로 대치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높은 임금의 상승 때문이기도 했다. 정식직원과 임시직원의 임금 격차는 계속하여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들중에 이익을 취하는 새로운 신종업체들로 용역회사와 사설 경비업체였다.  


점차 사업주들은 노사분규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권익을 무조건 주장하게 되면 동반자살할 수 밖에 없으며 더욱 불한한 고용시장에서 언제 퇴출될지 몰라서 좌불안석 이었다. 불만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고...

  한국인들의 노사분규는 세계적으로 많은 이슈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정부는 과거처럼 강력하게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세계인들의 눈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권력이 회사 내부에 침투하지 못하였으며 많은 회사가,

  “때는 이때다.” 하고 노사분규를 따라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폭력주의가 난무하였고 한국사회에 열병처럼 번졌다.


  그렇지만 올림픽이 계최되는 10월부터 서서히 식어갔다. 그리고 너도나도 할 것없이 올림픽 기간내에는 노사분규를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가장 잔혹한 올림픽으로 국가 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했지만 노사분규로 인하여 다시 퇴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5. 정작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많은 이들이 쇠사를 잃었다. 그들은 자신의 직장이 공중 분해되는 사실을 참담하게 지켜봐야 했다.

26. 그는 직장을 다시 출근할 수 없었다. 정문은 쇠사슬로 굳게 닫혀 있었다. 작업 현장은 광분에 휩싸인 직장 동료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미 폐업신고를 하여 굳게 닫힌 정문 앞에 삼삼오오 나와 있던 동료들은 점차 발길을 끊었다. 기다림에 지친 상태에서 회사가 부도가 났고 경매 절차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회사가 인수 되었다. 기존의 기계와 시설은 모두 분해되어 빚쟁이들에 의하여 다시 경매에 올려 졌다.

 

  노사분규를 시작한 뒤 처음에는 임금을 받았지만 거듭된 상태에서는 회사측에서 지불을 정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종업원들은 노사 분규가 시작된 직후부터 근 1년가 봉급을 받지 못했다.

  회사측에서는 그것을 기화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회사는 납품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동안 쌓았던 실뢰를 잃게 된다.

  이미 다른 경쟁업체가 거래처를 빼앗아 갔다.

그 거래처들은 신규회사였고 아주 영세하였지만 사업주가 직접 친척들을 작업 현장에 투입하는 소규모 단위의 회사였다. 분업화된... 

  영업을 하던 관리직원들은 남품처가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해 갔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한 공장에서 해결하던 작업을 두 세곳에 나누워 복수 거래를 유도하고 남품 단가를 후려쳤다.(낮췄다) 그에 맞서 신규로 사업을 시작한 사업주들은 종업원의 수를 최소화 했다.

  시골에 새로 세워진 농공단지와 하름하게 생긴 공장에서 새로 생긴 회사에 그는 찾아갔다.

  “아, 한국이연에서 공부과에 있언 이 아무개 입니다.”

  “그럼, 노사분규를 반대하셨다는 그 분 맞군요!”

  “예!”

  “그래서 제가 이곳에 와서 일 좀 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이곳은 그 때와 다른 사업장입니다.”

  다른이가 추천을 해 줬는데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간에 유대감을 갖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각자의 부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강반장은 가장 성공한 사례에 꼽혔다. 관리직은 임차장을 A라는 주물 공장을 차려 놓고 물량을 확보한 것까지 기존의 납품 거래처를 빼앗아 갔다. 그러므로 예전의 공장은 공룡같았다면 분업화된 공장은 현대식으로 날씬한 체구를 갖충 표범 또는 하이에나 같았다.

  훨씬 소규모였다.

  찢어진 것이다.

22. 공중 분해된 체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기술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작은 단위로 쪼갰다. 소규모 단위로 사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3. 그리고 그도 이곳을 나온 뒤에 새로 시작한 사업주가 되었다.

24.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길이었다.


2. 공중 분해된 회사가 변두리에서 다시 재 창출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그때와는 다르게 직접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모으로 직접 느낀다. 얼마나 변화 무쌍하지... 얼마나 보호되지 않는 직접 피부로 느끼는 체감 기온은 너무도 싸늘했다. 살얼음 판을 걷는 것처럼 하루 하루가 위기였다.

3. 그는 자신도 영세한 사업을 차리게 된다.

4. 썰렁한 건물. 앞에는 주조부가 있었다. 주물 공장에서의 생활. 그가 맡은 부서. 로우러 가공부서. 공무과에서의 하루.

5. 누군가 뛰어 간다. 그 뒤를 따라 떼거리처럼 몰려가는 사람들.

  “퍽!”

  각목이 난무하고...

  나무에 맞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이따른 폭력. 난투극. 일방적으로 노동조합원들의 선재 공격으로 관리직 사람들은 몾매를 맞았다.

  “일을 하지 말라면 그만 둬야 할거 아뇨!”
  “우린 회사의 부도를 방관할 수 없어서 그래!”

  “그렇다고 너희들만 일하면 충신이 되는 거 아냐? 우린 개털이 되고...”

  맞는 사람과 때리는 사람. 일방적으로 맞는 사람들은 쪽수에 밀렸다.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뒤에 정문쪽으로 뛰어 갔다.

  “붙잡지 말고 그냥 둬!”

  “회사측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을 거요!”

  일으켜 세운다.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웠다. 머리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질건한 피가 얽힌 피투성이의 얼굴. 사람들은 그를 끌고 앞서 다른 사람을 감금했던 창고로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경꾼이었다. 모두 회사에서 일어라는 일을 일거수일투족 보고 있었지만 간섭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일하던 작업현장이 돌연 폭력장으로 돌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들이 일하던 작업 현장에 돌아 왔지만 하던 일을 멈춘 뒤에 그 누구도 일하지 않았다.

  지루함.

  공장의 전기 스위치를 올리기만 하면 기계 소리가 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듯 구경을 했다.

  회사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원형 연못. 그곳에는 금붕어가 놀고 있었다. 그리고 깔끔한 회사의 사무실 앞에 조성된 화단 등 휴게시설은 처음 입사할 당시 무척 회사가 깔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 그만두구 임금 책정에서 유리한 곳으로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점차 그 느낌이 퇴색하여 갔다. 어둠이 짙어가는 밤까지 퇴근하지 않고 모여 머리끈을 질근 묶고 주먹을 쥔 손을 뻑어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노동자들의 조건. 권리를 보장하라!”

  “우리고 다 같은 인간이다. 상생의 정당성을 갖고 함께 나아가자!”
  “으싸으싸!”

  처음에는 그렇게 시시하게 느껴지던 생각. 우리들에게 다른 곳도 같이 동참하고 있다는 사회 통념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 했다. 열병을 앓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현실감이 부족했다.

  ‘왜, 내게 그런 일이 찾아 올까?’

  ‘왜, 나는 이곳에 쓸데없이 참여 했을까?’

  금히 노조위원이라는 사람이 들고 와서 노동조합의 가입을 권유했었다. 그리고 싸인을 하고 직인을 찍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자신이 노사분규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냉각수를 만드는 중앙의 연못이 멈춰 버렸다.

  겨울철에도 얼음이 얼지 않던 인공 연못이었다.


  “이제 이 회사도 끝났구나!”

  이 회사를 버린 사업주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모든 게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지금 이 심정은 전혀 마음과 육체가 합쳐 있지 않았다.

  신비주의, 초 현실 주의, 88년도의 노사 분규도 역사적인 기록에 해당할까?

생로병사라 함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품성과 행복 추구. 그리고 가족력. 짐단 결속력. 행동주의. 역사적으로 우리는 노동쟁의에 깊이 동참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폭력주의가 만연된 회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들고 폭행을 일삼고, 기물을 파손하기까지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엎지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수조차 없었다.

  그것을 항변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인양 우쭐된다. 그 위치에나 전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불만이 폭력사태로 발전하게 되고 결국 끝도 없는 추락을 가져온다. 

 

  인간은 자신의 심성을 다스리지 못할 경우 동물적인 폭력을 양성하게 된다. 맹목적으로 폭력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서곡에 있어서 서로를 불신하고...

  처음에는 노동조합측에서 쟁의를 불러 왔고 다음에는 사측에서 방어를 위해 경비업체를 불러 들였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낫선 사설 경비업체의 힘을 빌어 회사는 종업원들을 모두 밖으로 쫒아내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장을 가동했다. 운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 종업원들을 불신하면서 관리자들과 일용근로자들이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러지만 회사는 납품할 수 있는 거래처를 지킬 수 있었다.

  고용주들은 사설 경비업체의 힘을 빌어 방패로 삼았다. 이들 사설업체의 인원은 충원하는 비용이 회사가 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타산지석이 된 것이다. 이들 사설업체에서 지원된 인원들은 회사를 경비하고 기물을 지켜낼 수 있었다.

  <폭력대 폭력의 충돌. 난투극>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동 조합측이 폭행으로 다시 쫒겨 났다. 처음에는 이들이 사용하던 폭행과 폭력이 밪대로 자신들에게 자행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입원 중이었고 이 노사분규의 희생되었다. 그들은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만 것이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동조합측이 무지막지한 사설경비 업체에게 다시 쫒겨 났다. 처음에는 이들이 사용하던 폭행과 함께 자행되던 악행(?) 만큼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희생자가 노사측에서 발생되었다. 불리하게 전개된 것은 노동자들이 무서워서 복수를 하지 않았다. 무력에 무릎을 꿇고 말은 것이다.

  정부의 묵인하에 고용주들이 사설경비업체를 사주했고 난무한 폭행으로 무자비하게 얻어 맞은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신문과 방송에 떠들석하게 나왔지만 정부는 침묵으로 묵인했다.  고용주들은 사설경비업체의 힘을 빌어 관리직웓릉 작업 현장에 투입시켜서 생산을 재개하게 된다. 길고 지루한 싸움. 연쇠적인 도산을 하게 되자 정부에서 묵인하여 폭력을 행사한 사설 경비업체를 옹호하기에 이른다. 연쇠적인 기업 도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자행되어 졌다.  

  사설 경비업체와의 싸움에서 졌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투철한 전투력을 갖고 있는 경비업체에게 폭력을 당하게 된다.

  노사분규로 인하여 종업원들이 회사측에 손해를 입힐 수 있게 동참을 선동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협상은 불리하게 전개 되었다. 그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처음부터 노사분규 중에 ‘무노동 무임금’을 고수한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하고 합법성을 사측에서 내세웠다. 그렇게 되자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게 되었다. 결국 노동쟁의는 오래 끌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생계 걱정을 하게 되어 마냥 노사분규에 참여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노동재이의 최대 쟁점은 많이 약해졌다. 사람들은 고용시장에서 많은 부분에 권리를 잃어 갔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정식직원과 일용직 근무자의 차이였다. 한 직장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서도 서로 조건이 다른 것이다. 


2. 위의 예를 들어 노사분규는 88년도 때를 정점으로 많이 약해졌다. 예전처럼 물리적인 힘을 갖게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측의 일방적인 주장과 달리 사측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주정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회소화하는 넌략을 수립하게 된다. 그것은 충돌과 함께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폭력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하는 무력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했다.      

  그것은 충돌과 함께 무력 사용으로 기선을 제압할 때 사설업체의 힘을 빌려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었다. 경찰들은 노동조합원들을 보호하지 않고 사측의 사설업체를 옹호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원들은 경찰을 등에 업고 싸우는 사측을 입장을 증오했다.

  그러다보니 협상은 늘 난항을 거듭했다. 시일이 1년을 걸렸지만 노사분규는 이제 그 힘을 완전히 잃었다. 경찰을 등에 업고 있는 사측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던 것이다. 물리적인 압력에 굴복한 노동자측은 굴복하려고 했지만 점차 노조원들은 사측에 협조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인생은 애초부터 악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원천에 근간의 뿌리를 둔다. 그러므로 뿌린대로 거두리라! 는 충분한 (생각이 기반을 두는 것처럼 그 기반에 근거하여 정치적으로 권리자가 지적 재산권을 보장 받는다. 국가 헌법의 기초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가 구현되지 못했다.”

  생명은 누가 주는 것인가!

  곧 국가의 권익에 따라 생산자돠 관리자 간의 무력 충돌이 혜성 충돌처럼 태어 났다가 소명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영원무궁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근간은 어떤 기반위에 생활력을 두는가!

  무력은 침묵과 어떤 차이점을 부여할까?

  대부분의 사람드른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아 왔다. 노사분규에서 보듯이 젊은이들에게 팽배한 불신과 용기는 일종의 만용과도 같았다. 그들은 물질적인 보상에 따라 자신의권위의식을 희생한다. 그것이 보수주의자들에게 사상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젊은이들과 사설경비업체의 무력 충돌 사이에는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사상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육체는 정신을 보전시키는 대지다. 육체가 무너지게 되면 정신도 무너진다. 육체가 건강하고 튼튼하지 않으면 정신은 곧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무너지고 만다.

  과연 집단화된 노사분규의 정점에서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인생은 모두 공평하지가 않다. 어떤 조건이건 행복을 추구할 수만은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노동자와 고용자의 관계가 성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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