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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肖像)

sample_23.JPG 초상(肖像)[명사] 1. 사진,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 2.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모친을 바라보는 관점

2014.08.05 11:41

文學 조회 수:524

 말 안 듣는 어린아이.

고집센 게으름쟁이.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고 "이것 해다오, 저것 해다오!" 잔소리와 요구만 해대는 양반(양반, 노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물론 현재 시대에는 그런 건 구분하지 않음).

아무래도 모친의 모습은 천상, 밉고 말 안듣는 종기(암적인 존재, 거부 반응, 면역체, 싫은 존재)등으로 나뉘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뽑아낼 수 있으면 뿌리체 뽑던가 결별을 선언하여 더 이상 만나지 않으면 좋으리라!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효가 상실된 현재의 보편성을 따져보면 요양병원(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차이가 많은 것 같음)에 맡겨 버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차마 낳아 주신 부모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관념에 근거함이다. 함께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 하지만 그것도 힘이 든다. 병자가 함께 기거함으로서 생활에 균형이 깨지고 이런 저런 불편함으로 피해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고민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부모 입장은 자식과 사뭇 달랐으니...

  '아, 그것을 극복하려는 존재성 가치(?)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그로 인하여 모친과 항상 충동을 한다.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으름의 극치.

그러면서도 온갖 싫은 소리는 다 해댄다. 

물론 당신의 요구가 모두 들어졌다고 하기에는 모순이었다.


  구속과 속박을 당하였는데 그것이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로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훌쩍 거리곤 했다. 

  정산인과 다른 것은 뇌속에 혈액이 장시간 흐르지 않게 됨으로서 사라진 기억력과 판단력이 정상인보다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로인하여 신체구조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었고 지각과 지혜력 등 각종 판단력이 부족하였다. 자주 웃고, 울고, 그리고 혼자서 중얼 거리리도 하였다. 깜빡깜빡 기억력도 잊을 때가 있었으므로 아마도 치매도 올 듯 싶었으므로 신체 전반적으로 많은 휴유증을 야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불안, 초조, 두려움으로 지각이 뒤 떨어져서 혼자서는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으므로 늘 보호자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정상인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침해 당하여 지장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보호자의 입장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친족은 이해를 하였지만 배우자는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곤욕스러움으로 다툴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내는 자꾸만 요양병원에 보낼 것을 주문한다.

  "집에서 언제까지 모실지... 저런 상태로 잔소리만 하고 온갖 간섭을 하다고 잔소리만 해대는 데 누가 좋아 하겠어!"

  "그럼, 어떻게 하자는거야!"

  "싫어! 집에 데려다 놓고... 매일 상전 모시 듯 해야 하니... 뭐가 좋다고..."

  아내는 요양원으로 보낼 것을 주장하며 매일 시위라도 할 기세였다.  

~~~~~~~~~~~~~~~~~~~~~~~~~~~~~~~~~~~~~~~~~

 

  모친은 오늘 아침에는 운동도 가지 않았다. 아침에는 200여미터 떨어져 있는 이웃 동네 운동기구에서 팔, 다리 등을 단련시키곤 했었다.

  "엄마, 운동 가요!"

  말이란 건 어떤가! 내가 노모에게 엄마라고 하는 것과 내 자식들이 제 엄마에게 그렇게 부르는 것하고 똑같은 글자였다. 이곳에 글을 쓰는 것도 그런 글자체를 인용하자면 그랬다. 하지만 엄연히 현실에서는 내가 부르는 소리와 아이들이 하는 소리는 전혀 다르기 마련이었다. 

  "안가~" 

  "왜, 안가?"

  "글쎄, 가기 싫어!"

  병원 침대 맡에서 앉은 자세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데 강제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으므로 그냥 둔고 나만 밖으로 나간다. 다음에도 도 그럴 것이지만 조금 귀찮다고 나서지 않는 탓에 어쩌지 못하였다. 어제는 왜관에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 또 하루 쉬었으므로 오늘쯤 갈 법도 하련만 앞장서서 나서지 않는 건 그만큼 지능이 떨어지는 탓이었다.

  몸은 성했다.

  정상인가 다를바 없었는데 머리에서 생각하는 게 부족한 것 같았다. 뭐 든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각의 부족, 심적인 부담, 통찰력의 부족, 판단과 지령을 내리는 명령 계통의 불량, 단절 등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데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았다.

  그로인하여 정상인이 자신을 간병해야만 했는데 그게 나와 아내가 맡게 된 것이다. 나보다 아내가 더 간병드는 것을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어짜피 인간이므로 싫어하는걸 부담한다는 것조차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힘들 것이다. 내 부모가 아니었다면 나도 똑같은 입장이었다. 그것을 아내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다가 오늘도 다투었는데 그 점이 견해 차이를 느꼈다.  

 

  처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났다. 세 사람이 오붓하게 앉은뱅이 원형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아내가 제의를 한다.

  "엄마, 침 맞는다는데 까지만 바래다 줘요!"

  "오전에 구읍 밭에 가서 예초기로 풀을 베려고 하는데..."

  나는 영 불편했다. 침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동행하여 한방병원에 가게 되는데 먼저 주에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모친은 침을 맞으면 나을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배여서 아내에게 주문을 하였다. 내게 부탁을 하면 소용이 없을 것을 뻔히 알고 있어서다.

  "엄마, 병이 침을 맞아서 나을 병 같으면 다 그렇게 하게요! 그렇지만 침을 맞아서 나을 병이 아니고 저와 같이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자니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쓸데 없이 침만 마즌다는 거예요!"하고 쏘아 붙였다.

  며칠 째 운동하는 것을 아예 대놓고 싫어하니 나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목소리는 '쇠 귀에 경 읽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또한 그것이 싫다고 아내와 있을 때 내 흉을 보기도 했다.

  "게는 왜, 운동만 하라는지 모르겠다.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그 얘기를 나는 아내를 통하여 듣고는 아예 운동을 가자고 권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 8시에 근처 군서초등하교까지 구보를 한 뒤에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니 너무도 개운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지하수로 샤워기로 몸에 뿌려 대면 그처럼 시원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욕조에 받아 놓은 물로 머리를 감고 비누칠을 한 뒤에 몸을 씻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샤워기를 틀어서 머리에 댄다.

  "어휴!"

  입에서 절로 비명이 새어 나올 지경이다. 방금 뛰어 갔다온 뜨겁게 달구워진 몸이 차가운 100미터 암반수로 식혀 지는 건 그야말로 백미라고 할 것이다.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았으므로 몇 번에 거쳐서 차가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머리와 등에 뿌려 대었다.

 

  모친은 목욕탕 문 바로 앞에서 병원용 침대 위에 누워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아내는 저녁 걷기 운동을 나선다고 왕복 5km 거리를 이웃 아주머니와 함께 동행하여 나갔다.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3층에서 1층 공장으로 내려왔다. 밤 8시였다. 밤 10시까지는 작업을 할 참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아침에는 청성의 밭으로 제초제를 뿌리려 갈 것이다.  벌써 팥을 심어 놓은 밭에 잡초가 무성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태풍으로 흐렸던 날씨여서 그동안에 가보지 않았지만 얼마나 잡초가 자랐을지 짐작이 들었다. 이 시기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잡초가 엉켜 버려서 농사를 망쳐 버릴 수 있었으므로 그냥 방관할 수 없었다. 작년에 혹독한 경험을 치뤘으므로 올 농사는 그 전철을 밟을 수 없었다.  

 

생각 모음 (205)

  주변에서 모친을 요양병원에 맡기라고 권유를 한다.

  심지어 모친까지도 요양병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오늘 옥천 시내의 <**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파마하게 하기 위해 아내가 집에까지 가서 휠체어를 끌고 나와서 모친을 태워서 미용실까지 모셔다 주웠으므로 내가 나중에 밭에서 돌아온 뒤에 크게 진노하였는데 그 이유는,

  "걸어서 천 미터 쯤 되는 거리를 왜 휠체어를 끌고 갔어!"

  하고 소리쳤다.

  아내는,

  "힘들게 휠체어를 태워서 노모를 미용실에 데려다 줬는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고 따졌다.

  "에이구, 그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잖아! 집까지 와서 휠체어를 가지고 나간 뒤에 태우고 미용실에 데려다 놓고 다시 집까지 끌고 와야하니 번거롭잖아! 그럴바에는 아예 걸어서 미용실까지 가면 될 것을..."

  내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노모는 걸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걷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시어머니를 중환자 취금을 하려 드는 것이다.

  "내가 편해서 그랬다. 어쩔래! 그래, 요양 병원에 모시면 이런 일도 없고 편하잖아..."

  "..."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문다.

    아내는 나보다 어떤 면에서 다혈질 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질리고 만다.

  '아, 아내를 버리고 엄마와 산 속에 들어가서 살까?'

  한 순간 이지만 입을 다물고 많은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정답이 없었다.

  '그럴다면, 요양병원에 데려다 주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

  

  내가 밭에서 돌아 왔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오후 1시 30분에 노모를 미용실에서 데리고 나오는데, 주인이 따라 나오면서 안쓰러운 듯 말했다.

  "우리도 할머니를 요양 병원에 보냈어요! 요양원과 요양병원 중에 그나마 좀 나은 요양병원에는 시설도 좋고 또 노인들끼지 놀이도 할 수 있고 재미 있게 지내기 때문에 더 좋아 한답니다."

  하지만 나는 일시에 거절한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봐요! 아직 잘 걷고 좋아 질 것 같아서요!"

  나는 아침부터 노모와 티격태격 싸운 것은 전부 발설하지 않고 그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짐짓 이런 주변의 시선을 그처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동네에 부녀 회장도 그런 얘기를 했다.

  "왜, 고생을 해요! 병원에 모시면 될테데... 내가 아는 병원에 수간호사를 통해서 입원 시키면 할인해서 저비용으로 맡길 수 있으니까? 꼭 얘기 해 줘요!"

  그렇게 나와 아내가 있는 곳에서 직접대고 설명(설득에 가깝다)하였었다. 

  언제까지 나는 내 고집을 부릴 수는 없으리라!

  아내는 그런 말을 들으면 기고만장해서 더 나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저 봐... 우리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조언 해주는 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

  "...."

  나는 주변에서 내게 그토록 몸이 성치 않는 노모를 요양원에 맡기도록 종용하는 사실로 인하여 고민에 빠져 있었다. 또한 노모까지도 한 통속이 되어 대들었다.

  "아들아, 나... 요양병원에 보내다오!"

  "왜요?"

  "내 몸이 성치 않아서 내게 부담만 줘서 그런다."

  "..."

  나는 노모가 얼마나 나를 극진히 위하는 줄 안다. 그래서 차마 요양원에 버릴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노모가 더 악화되는 시기에 그렇게 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가 바로 내일이 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