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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이별을 할 시간이다.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고 눈으로 저윽히 깊은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곳에 뜻하지 않은 간절한 사랑이 보이는 듯 싶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젠 만날지 모르겠군요?"
  "군생활이나 잘 하세요! 꼭이예요...."
  그녀는 그렇게 당부를 또한 한다.
  돌아가야만 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만난 여자가 모든 것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아름다울까!'
  마주잡았던 손이 뜨겁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젖은 손을 그나마 떼지를 못하고 있다가 집 앞에 이르러서야 손을 놓았다. 축축한 땀이 배어나와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 가지 못한 채, 밖에서 기다렸었다. 별로 한 말도 없으면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모두들 밖으로 나오는 군요!"
  "......"
  이십여 가구 몰려 있는 비탈길을 내려오면 애써 서운한 느낌이지만, 태연한 척 군용 트럭에 올라 타면서 주인 집 내외분과 함께 걸어 오고 있는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히 가세요!"
  마지 못해 그녀는 포장이 씌워진 군용 트럭에 올라타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일까? 슬픔이 담긴 음성이다. 못내 서운한 모양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군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외출을 나왔기 때문에 귀대를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돌담 옆에 세워진 군용 트럭에 시동이 켜졌다.
  "부르릉!" 
  '왜, 이렇게 차 소리가 싫게 느껴지는 것일까?'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차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그녀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휘나래만 같았다.

  너무나 간절하게 마음은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데, 육체가 뒤따르지 못하는 사실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하여 그는 그 느낌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군대라는 거대한 족쇠로 인하여 서로 떨어져 있게 된 사실로 인하여 그들은 평생을 함께 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지 않았을까? 인생에 있어서 짧은 순간 느끼는 생각과 원망을 오히려 키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두사람이 꼭 그랬다. 그렇게 이별을 하면서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에 대하여 어쩌지 못하는 이들 작은 연인들의 눈가에는 보이지 않게 이슬이 맺혔다. 꼭 다문 입술에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사랑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도 어둠 속에서 거북한 모양인지 손을 흔들었다.
  가만히 있기가 민망하여 이쪽에서도 손을 흔들지만, 도무지 심감이 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잇었다는 사실이.... 

  차는 이윽고 육중한 차체를 흔들며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뒤편으로 희미한 어둠 속으로 방금 전까지 손을 잡았던 한 여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켜지나는 해안가의 전경은 유독 멀리서 고기잡는 배들이 불빛을 띄우고 검은 바다 위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밝은 광채을 빛낼 뿐이었다. 그 검은 전경으로 인하여 사물은 전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얘기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흔들 거리는 차량 속에서 환희에 젖는다. 그것은 일찌기 경험해 보지 않는 이성에 대한 애뜻한 욕망이었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그녀는 손을 흔들고 어둠에 묻히고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 손으로 주머니 속에 들은 그녀의 주소가 적인 쪽지를 꼭 쥐어 본다. 그것이 그녀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컴컴한 어둠속에 잠긴 해안가에는 짙은 그림자가 깔려 사물울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늘에 반짝이는 총총한 별 빛이 어둠에 잠긴 동네를 내려다 볼 뿐 그저 바닷가의 해안도로를 타고 한동안 달려 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화랑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탁!"
  "불 여기 있읍니다!"
  칙하니 옆에 앉아 있던 후임이 성냥에 불을 붙여 담배 끝에 대주웠다.
  "후!"
  가슴 깊이 후벼파는 것처럼 니코친이 온몸을 구석구석 몽롱한 현기증으로 내몰았다.

2. 그녀에게 편지를 쓰다.

  막사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그것이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방황의 마음을 뜻하는 것인양, 휘몰아치는 번민과 앞으로의 현실에 대한 암담함을 또한 나타내었는데, 그것은 제대(除隊)를 앞두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불안으로 인하여 늘 갖게 되는 고민이기도 했다. 
  그는 부대가 있는 돈테코 계곡 옆의 숲 속의 텐트로 돌아와 희미한 등불을 켜 놓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장문의 글을 편지지에 써내려 갔다.

  비구름에 잠겨 보이진 않는 저 높은 한라산의 봉우리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베일에 휩싸여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단지, 높은 봉우리 속에 막연하게 짐작하건데, 어떤 여인이 수줍은 듯 미소를 띄우며 내려다 보고 있는 것만 같읍니다.
축축히 모든 사물이 젖는 우기(雨期)입니다.
온통 제주도의 야영지는 빗물에 잠겨 있다보니까. 모든 사물이 축축한 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인 줄은 꿈에도 몰랐읍니다. 정말, 하루 건너 비가 오는 탓에 온통 젖어 마음까지도 우울합니다.

  박효순(朴涍順)씨!
  처음으로, 보았을 때의 감흥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따뜻함 이었읍니다. 그 마음에 깃든 애절한 사랑을 느끼면서 일종의 어머니와 같은 모성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모든 것이 꿈만 같읍니다. 갑자기 예상을 하지 않은 마음 속으로 상상을 해왔던 여인을 보았을 때와 같이 당신의 향기에 자뭇 황홀했었다고 할까요. 전혀, 흠집이 없는 티없이 맑은 우수가 얼굴에 피어나던 그 모습은 한떨기 목련화처럼 희고 순결해 보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간절히 원하는 만큼 육체가 따르지 못함은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불과 제대를 4개월 앞두고 있다보니 마음이 불안으로 착찹하기만 합니다. 제대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을 해 보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혼란과 번민으로 저 자신이 못 미더워 당신을 사랑한다는 용기도 갖지 못하겠군요. 단지, 앞으로 많은 시일을 한 여자를 향해 애뜻하게 마음을 기울여 보이겠습니다.  

이렇게 애절한 감정을 무어라고 하나요.
아니면, 병든 가슴이여서 빈 것처럼 훵한가요.
갑자시 불씨 하나가 내게
날라와 온통 뜨겁게,
내 가슴을 태울 줄이야!
일찌기 경험해 보지 않은 이성에 대한 감미로운
사랑을 알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나만의 느끼으로 불타올라 훨훨
타 오르는 애뜻한 마음으로 끝날지라도
오늘 본, 한 여인의 자태에 뜻하지 않은
새로운 파문을 일으키면서
앞으로의 생활에 더없는
환희를 느낌니다.......

  더이상 연결해서 쓰지 못하고 막사 밖으로 나와 어둠 속을 바라 본다. 가슴이 너무도 답답하였다. 무언가 숨통을 꽉 틀어 막고 도무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왜, 갑자기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 이 제주도 하늘 아래 함께 있었다. 그런데, 뛰어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거대한 장벽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말살하고 억압하는 부자유스러운 군복이 화랑 담배의 내용물에 있을 지도 모르는 호르몬 억제제보다도 더욱 자신의 욕구를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괴로워 몸무림 치는 것이고....

아, 눈물이 난다.
내가 군인이었기에 일찌기 알지 못했던
자유가 없는 억압된 생활을
이제사 거대한 벽으로 느끼기에
다시금, 말이 없이 내부로 불만을 쌓는다
그리고, 어느 병사의 자살을
기도한 사실과 탕영한 사건이
바로 내 일인양 느껴짐은
그것이 결코 남 같지 않기 때문이다.
태산이 무너지듯 군인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고 너무도 무섭다
이 몸, 조국에 선열을 바쳐
싸우려 하는데,
용감한 군인은 결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슬퍼도 슬퍼하지 못하는
꼭두각시을 만드는 일이라네.
인간의 감정은 온통 외면하고
오로지 군인정신으로 무장시켜
싸움의 전사로 키움이 목적일지라!
아, 이 구속과 억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각조차 가로 막고
험한 길로 내몬다.
그곳 전장터로....

- 2007년 7월 22일 수정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