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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제주도여! (1)

2009.12.20 10:09

文學 조회 수: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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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빰쁘라 빰 빰쁘라 빰 빠빰…….”

  어슴푸레한 새벽녘, 기상나팔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병영(兵營)에서 단잠을 깨우는 어김없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기상나팔소리.

  "어-헛, 총 기상 15분 전!"

  이윽고 중앙 현관에서 당직병의 총 기상 구호 소리는 쩌렁쩌렁하게 내무반의 복도에 울려 퍼진다. 새벽녘의 단잠을 깨우는 총기상의 구령 소리는 아직 꿈에 빠진 내무반의 중대원에게는 사실 매우 현실적이다. 마치 이곳은 군대라는 듯이…….

  야간에는 복도 중앙에 총을 들고 보초 근무자는 두 명이었다. 2시간 씩 교대를 했다. 철모를 쓰고 허리에 탄띠를 매었으며 현관 앞에서 야간에는 2시간씩 교대로 불침번(不寢番)을 서게 된다. 그리고 밖에 군대 울타리 주위에 세워진 망루 근무자가 또한 같은 근무자였다. 밖의 근무자와 다르게 병사 내에 중앙 현관에서 근무를 서는 근무자들 중에 하사관이 끼어 있었다.

  그 불침번이 현관 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밤새 2시간씩 근무자가 바뀌었고 근무 일지에 이름을 기록하였으며 지금 최후의 근무자가 시간에 맞춰 당직병을 깨웠던 것이다. 당직병은 주로 병장(兵長)들이 맡았다. 그리고 순서에 맞게 하루씩 완장을 차고 모든 구호를 소리쳐서 하달하고 각 소대별로 그 내용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당번이 또한 그에 맞춰 합창을 하니 중대 병사(兵舍)는 일대 소란하고 활기가 돈다. 기상나팔 소리는 꿈결처럼 가냘프고 멀게 느껴진 반면 당직병의 구령 소리는 그야말로 내무반에 기상을 뜻하는 것이어서 거역할 도리가 없었다.

"어-헛, 총 기상 5분 전!"

  첫 구령이 15분이었고 정확히 10분이 지나자, 다시 5분전 구령이 쩌렁쩌렁하게 굴속처럼 어둠침침한 복도를 울려 퍼졌다. 그리고 5분이 지나자,

"총 기상!" 이라는 구령이 뒤 이었다. 이것이 군대의 새벽 기상 신호다.

  모든 행동과 제약은 정해진 기틀에 바탕으로 행동과 실행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강도가 약하게 진행되었다가 점차 거세어졌고, 급기야는 전체가 움직이는 집단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게 특징이었다.

  군대(軍隊)는 사회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꼈고, 집단적인 생활에 따르다 보니 개인의 자유는 구속당하고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2

  1981년 6월 25일.

  군대에 입대한지 어언 2년 2개월째로 접어들어, 이젠 30개월 군 생활 중에 불과 4개월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야 내 자신이 군인(軍人)임을 실감한다. 군 생활이 무엇인지 알만하게 되니까 제대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정말 적응을 못해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겉돌았었다. 그러면서, 몸은 군복을 입고 단체 생활을 하여 명령에 따라 행동할 뿐이었지만, 내면으로는 정말 내가 군인일까? 하는 의구심으로 어찌하지 못하게 고민했었으니…….

  처음 훈련소에 입대를 하여 6개월간의 하사관 훈련 생활 때는 단풍하사라고 했다. 계급장에 네 개의 막대기 위에 v 자 형태가 올라간 계급이 하사라고 부르는데, 훈련소 때는 빨간색이었다. 아직 하사의 직책이 아닌 탓에 그 계급으로 일반 병(兵)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뒤 훈련소가 끝나고 임관 수료식을 마치고 곧바로 배치된 부대가 현재의 해병 3673부대 11중대였다. 왜, 상세하게 중대까지 나열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당시의 중대장이 나와 몇 사람을 착출하여 바로 제주도 전지훈련으로 출발하는 다른 중대에 배속시켰기 때문이다.

  월남 파병 때 짜빈둥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하여 “짜빈둥 부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중대에서 벌써 2년을 넘기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고참 축에 끼일 법도 한데, 하사관들은 장기 근무하는 선임이 많아 그런 대접도 받지 못했다. 말년까지도 그런 대접을 못 받는 것은 바로 단기 하사관들의 특색이리라!


  제대를 불과 4개월 정도 남기고 제주도 훈련에 낄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를 중대장에게서 찾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를 잘 보았던 것일까? 아니, 명확하게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단지, 중대에서 내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항상, 공책에 무엇인가를 적었었고, 지금 쓰는 내용도 그 당시의 일기에서 발췌(拔萃)하는 까닭에 이렇게 쓸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 당시에 많은 인원 중에 나를 뽑아 주신 중대장님께 감사드린다.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인원 가운데, 정령 나를 택했을까는 두고두고 의문으로 남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 중에 누군가가 모든 내용을 글로 남기는 사명을 태어났고 운명적으로 나를 선택했지 않았을까하는 조심스러운 판단을 내려본다.

"누군가가 뚜렷한 사명을 갖고 후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선대(先代)가 남긴 유산과 업적을 누구에게나 누릴 권한이 있지만, 모두가 똑같이 기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선택적으로 한두 명을 선택한다고 할 때, 명령에 잘 따르는 훌륭한 군인이 아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더 났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이제부터 내게 그럴 권한을 내리고 사명을 주신 3673부대 11중대장님께 이 소설을 삼가 바치는 바이다.

 

 

 

 

 

 

 

 

  어떤 설레임 부푼 희망에 관한 내용으로 일관할 것.

  중대장과 다른 중대장간의 연락.

  마침내 연대에서 중대장들의 회의로 영입한 다른 병사의 보충병들간의 조화

 

  '아, 제주도여!' 는 오래전에 쓴 글인데 '날아가는 오리 동화' 다음에 책으로 만들 생각이다. 편집과 탈고는 어쨌튼 지금으로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을 듯하지만 시간이 나는데로 짬짬히 하는 게 유리할 듯 싶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3개월 동안 다른 일을 모두 전폐하고 편집에만 집중했던 '날아가는 오리2' 편를 책으로 출간할 때처럼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책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가볍게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편집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처럼 조금씩 틈나는데로 내용을 수정하는 편이 유리하리라! 

 

  올 계획은 어떻던가!

  '아, 제주도여!'는 출간에서 제외 되는가!

  제단기의 구입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자금이 확보되지 않아서 구입은 보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 제주도여!' 의 출간은 보류되는 것이고... 대신 탈고를 마쳐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