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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日記)

부산 출장 (101)

2009.04.08 07:35

文學 조회 수:6118


  '기름을 만땅 체웠는데... 다시 넣지 않아도 될까?'
  내 생각은 차량을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부산까지는 적어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왕복 운행하게 되면 분명이 차에 기름을 더 넣을 것인데 기름을 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언던에서 비탈길을 내려갈 때 클러치를 밟게 되면 차량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그럴 경우 적당히 부레이크를 밟아 가면서 통제를 하게되면 적어도 안전하지는 않지만 기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방법을 써서 언덕을 내려가는데 적어도 90km 를 넘지 않았다. 가속도 만으로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속도라는 것은 사실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가속도가 붙지 않았는데 90km 로 달리던 차량이 클러치를 밟으면 엔진에서부터 힘이 분리되어 속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점차 속도가 떨어져서 80km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그리고 60km 상태에서 한동안 달려갈 수 있었다. 그것이 비탈진 언덕길에서의 일정한 속도였으므로 더 빨리 달리려면 클러치를 떼어 악세레다로 속도를 올린 뒤에 다시 클러치를 밟아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언덕에서도 결코 90km를 넘지 않았으므로 내 딴에는 안전한 편법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평상시에는 그 속도가 80km 였다.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속도를 더 내는 것이지만...
  이런 방법을 통하여 많은 기름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부산에서 밤 3시쯤에 돌아와서 기름을 확인한 바로는 아직 3분의 1가량이 남아 있었으므로 효과는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2만원어치의 기름을 더 주유했으리라! 사실 이런 방법을 남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위험한 곡예 운전이기 때문이다. 엔진의 힘을 끊고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린 상태로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운행하는 곡예 운정이었다. 이것을 모험이니 서스펜스니 새로운 방법이니 따지기 이전에 목숨이 두 개가 아닌이상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야만 했다. 지금은 화물차도 신형 엔진이 등장하여 내리막에서 엔진을 기름 비율을 현저하게 줄이는 (?) 신형차들이 부산과 서울을 왕복했을 때 5만원어치의 기름도 줄일 수 있다고 하여 그런 차량을 새로 구입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장거리 운행을 하는 화물차의 차주들은 기름값으로 도로에 뿌리는 돈을 챙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방법을 나처럼 클러치를 밟아가면서 곡예 운전을 하는 구형 차량의 화물차 운전수들은 언제나 간을 배 밖으로 내놓고 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한 달에 한 두번 밖에 이런 방식으로 운행하므로 사로를 당할 확률은 그들보다 훨씬 못미치고 기름값으로 절약할 수 있는 돈도 3만원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옥천 톨케이트로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부산 방향으로 타고 갔다.
  '대구까지는 두 시간, 언양까지는  1시간 반... 그렇다면 9시 30분 경에 도착하겠구나! 속도를 더 내지 않는다면 더 늦을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이 들자 90km 를 유지하면서 달렸다. 
  아직도 검은 하늘이었다. 장막처럼...
  좌측편으로  금강 휴게소였다. 비가 오지 않아서 강바닥은 마른 것처럼 거칠다. 마치 마른 동태의 배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고개를 돌렸다. 못볼것을 본 것처럼 시야가 무척 불쾌한 느낌이 든다. 전국에 비가 오지 않아서 타들어 가는 것처럼 매말르고 건조했으며 여기저기 산불이 났으므로 비가 오지 않으면 해갈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르므로 매마른 강바닥이 눈에 띄이지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조금 늦게 출발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보통 때보다 속도를 더 내어 90 km를 내면서 가급적이면 앞만 주시하기로 했다. 모처럼 운전을 하여서 일까? 너무도 지루하다. 김천을 지나고 구미를 지나면서 날이 밝아졌고 오전 8시가 예상 시간이지만 7시 30분 정도에 대구를 지날 때는 기분이 상쾌하기조차 했다.
  그처럼 막히고 체증을 일으키던 만성 체증 구간이었던 고속도로가 4차선이 되고부터는 시원스럽게 뚤려 있었다. 또한 옥천에서 대구까지의 고속도로 구간이 선형 구간으로 바뀌면서 많은 시간이 단축된 것 같았다. 하지만 대구에서 울산까지의 고속도로는 아직도 2차선이었으며 경주 근처는 직선이 아닌 곡선이 구역이 많았다. 이곳만 직선으로 선형된다면 많은 시간이 단축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해본다.
  고속도로 변으로 바라보이는 살구꽃과 과실수에서 피어난 꽃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집에서 나올 때는 서늘했으므로 히터를 틀었었지만 지금은 햇빛이 비쳐들어 차안의 온도가 오르자 히터를 끄고 찬공기가 유입하게 조절 스위치도 옮겨 놓아야만 했다.
 
  "지금 언양 톨케이트에서 나가는데... 어디로 가야돼?"
  내가 톨케이트로 나가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물어보았다.
  "통도사 쪽으로 대략 5km 가서 금강공업사가 보일꺼야 그곳를 지나지 말고 좌회전하니까... 내가 나가 있을께요!"
   그는 J.Won 이라는 공장에서 기사로 일을 했었다. 그런데 몇 년전에 그곳에서 그만두고 공장을 차렸는데 벌이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내와 둘이서 사업을 늘리지도 않고 근근히 연명할 정도로 운영하였으므로 5년이 다 되어 가도록 기계를 맞추지 않고 수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지에는 그래도 9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 부부가 일하는 언양의 K.Young 에서는 기계가 들어온다고 잔뜩 기대를 하였으므로 차에서 내려서 장치를 하게 되자 은근히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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