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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 산밭

군서 산밭에 쏟는 정성은 가히 경이적이다. 불과 1년 만에 많은 발전이 이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처럼…….


  이틀째 저녁마다 청성의 밭으로 갔습니다. 어제도 대전으로 탁구치러 가는 날이었지만 밭으로 갔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들깨 밭에서 거름을 주고 물을 조루로 길어다가 주려고 합니다. 벌써 들깨 꽃이 피는 것도 있고 이제는 기르는 건 막바지에 이른 감이 없잖았는데 성장하는 속도가 다른 들깨 밭과 다르다보니 아직도 어린 게 많았습니다. 줄기가 가늘고 어리다는 건 그만큼 수확을 많이 할 수 없다는 걸 뜻합니다. 올 해의 들깨는 그나마 다른 때보다는 나았습니다. 여러가지로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하였으니까요.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역시 농사도 잘 되는가 봅니다. 그러지만 여전히 성장이 부실한 건 영양실조가 원인인 듯 하여 이틀 째 거름을 한 주 먹씩 뿌려 줍니다. 밤 늦게 10시까지 후레쉬 불빛을 비춰 가면서...



  1. 이틀째 저녁마다 청성의 밭으로 간다. 오늘 저녁까지 가면 삼일 째다.

  어제는 대전으로 탁구치러 가는 날이었지만 밭으로 갔다. 오늘은 첫 번째 토요일이여서 Nice 탁구 클럽의 정모날이었으므로 당연히 탁구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어제 탁구장을 가지 않은 건, 오늘을 위해서였다. 오늘 탁구장에 가지 않으므로 군서 산밭에 가서 거름을 주고 물을 조루로 주려고 한다는 계획을 미리 예정하고 있었으니까.


  전에 있던 Nice 탁구 클럽.

  그곳에 있던 혐오스러운 기억으로 인하여 정모날이 마침 토요일에 걸려서 불편함을 지금껏 참아 왔었다. 탁구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의도하여 회피하려고 하는 건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곤 무조건 그 날을 미리 알고 가지 않게 된 것이다. 먼저 달에는 첫 번째 주의 정모를 두 번째 주로 바꾸웠으므로 두 번이나 토요일에 탁구장으로 가지 않았었다. 그런 불편한 심기가 아마도 내가 탁구장을 만들 때까지 계속되리라!


  2. 군서(옥천군 군서면... 지명이름)에 들깨를 심고 가꾸면서 지금까지 최고의 수확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한다. 주변에 호박도 심어서 비록 고나니가 뜯어 먹어서 싹이 동강동강 끊어 졌고 제초제가 묻어서 피해를 봤지만 전에는 이렇게 호박 농사까지 함께 지을 수 있으리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 날 수 있을까? 그건, 불경기로 인하여 농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초현실적으로 일어 난 것이다.

  내가 농사꾼이라도 된 것처럼 완전히 올 해는 농사에 수확이 확실하게 나아질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어린 들깨 작물이 다른 밭의 작황보다도 부실하다는 것에 대하여 그 이유를 찾아 본다.


  우선 들깨모가 크지 않았다. 어린 들깨모를 가지고 남들보다 일찍 심으면 더 클 것이라고 오히려 과신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들깨를 심어 놓았던 모에서 분류가 잘 못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름을 주고 크게 키웠다면 성장이 더 빠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이 점에 대한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심는 밭에 거름을 주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심어 놓고서도 성장이 느린 것이다.


  3.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농사를 잘 지은 적은 없었다.

  우선 밭에 자주 찾아 가지 않았으므로 작년 같은 경우 들깨모를 심어 놓고 한 번도 찾아 가지 않자, 그야말로 가뭄으로 인하여 전멸하여 수확이 전혀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너무나 무더운 날씨로 어린 들개모가 모두 말라 죽는 쾌거(?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지하였지만)를 이루웠던 결과로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올 해는 작년의 부진함에 대한 반성이고 그에 대한 뉘우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봐도 남들이 농사 짓는 것보다도 더 못한 이유는 계속하여 연구 대상이었다. 나 자신에게는 최고의 경우였다. 지금까지 들깨 농사에 대한 불리한 상황을 되돌려 보면 들깨모를 옮겨 심는 것이 불편하다고 다른 농사를 지으려고 했었다. 예를 들자면 콩이나, 팥같은 작물이었다.

  물론 이 작물을 변경하여도 들깨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들깨를 수확하여 기름을 짜게 되는데 직접 농사를 지으면 들깨를 구입하지 않고 충분히 자급자족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게 된다. 작년에도 들깨를 두 말 정도 구입했다는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게 되면,

  '올 해는 그 정도 수확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군서 산밭과 청성 아랫밭에 모두 들깨를 심었으므로 두 말을 수확하리라는 짐작...

  하지만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게 과제였다. 들깨를 두 말 씩이나 수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같은 방에 심게 되어도 영양 상태에 따라서 들깨 나무에 열리는 들깨 씨가 많고 적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할 수가 없었다. 두 말을 수확하는 건 많은 양이었다. 씨앗이 너무 작아서 그만큼 양을 얻기 위해서는 최고의 크기로 자라야만 했지만 우리 것은 아직도 한 뼘도 되지 않은 게 많았다. 크기가 제각각으로 자란 만큼 작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곧 꽃을 피고 열매를 맺을텐데 그 작은 가지에 열리는 들깨 씨앗이라고 해 봐야 몇 알에 불과할 것이다.


  4.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아마도 군서 산밭에 심어 놓은 들깨를 보면 그래도 잡초도 많이 없었고 크기도 커서 무척 신기함을 느낀다. 이렇게 키우고 가꾼 적이 없었으니까.


 

2017.07.24 10:20 의 내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http://www.munhag.com/index.php?document_srl=53559&mid=guong_se_san_bat


Untitled_11372.jpg

 

 -이처럼 많은 풀밭에서 들깨를 찾아내면서 풀을 뽑아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들깨를 심어 놓고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다가 풀이 이만큼 자라서 들깨가 묻혀 버리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며칠 동안 풀을 뽑았지만 결과적으로 군대군대 자라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가을에 수확은 형편없이 낮았다. -


Untitled_11373.jpg


-풀이 너무 커서 두 손으로 부둥켜 안고 뽑아 내게 된다. 그러다가 중간이 뚝하고 분질러 지면 다시 그 밑둥이까지 호미로 캐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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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축축하게 땅이 젖은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딱딱하게 되었다면 풀이 뽑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밭을 살린 곳은 극히 일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의 몇 배의 양에 잡풀도 없이 들깨를 심어 놓았다. -


Untitled_11371.jpg


-풀을 뽑자 드러난 들깨는 띄엄띄엄 간격을 유지한다. 고랑도 없어졌고 그야말로 엉망인 농사 초보자의 손에서 엉성하게 자라고 있는 들깨 밭의 풍경. 섵부른 농사꾼의 어이를 상실한 실수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 날의 실수가 있었기에 오늘은 그나마 최고의 경지(지금까지 농사 짓은 경우)에 이른 자만심으로 과거를 돌아 본다. 왜햐하면 과거의 고통과 과정이 없엇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