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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 산밭

군서 산밭에 쏟는 정성은 가히 경이적이다. 불과 1년 만에 많은 발전이 이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처럼…….

군서 산밭에서... (2)

2019.06.30 15:23

文學 조회 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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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곳 중간 부분에는 작년에 조성한 가족묘가 위치했다.

  장마 전선 영향으로 비가 내렸고 어제 다시 비가 내려서 가뭄은 해소 되었으리라 여겨지는 가운데 모친을 보신 묘 자리를 찾아 갈 때마다 내 마음은 냉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작년 8월 4일 모친이 작고하셨고 3일 뒤에 바로 이곳에 모셨었다.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항상 밭에 오게 되면 먼저 상태가 눈에 뛰였다.


  잡풀이 오히려 잔디보다 더 왕성하게 자랐고 그 외형이 전혀 묘지와 딴 판이었던 모양. 그러다가,


   예초기로 두 번이나 깍아 주고 난 뒤 지금처럼 형태를 유지하게 된 점. 봉분이 없이 항아리만 묻고 그 위에 비석만 달랑 세워 놓은 형태.

   모친은 모셨지만 부친은 임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므로 서로 합장을 하지 않은 상태.

  내가 혼자서 묘자리를 조성한 걸 동생들이 싫어 하여 거부하던 억지로 이곳으로 모시게 된 사연.

  두 명의 동생들이 거부하여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도 부친을 이곳으로 옮겨오지 못한 상태.

  세 째와 막내 동생에게 전권을 위임하면서 내가 참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이유.

  그 것은 세 째와, 막내 동생에게 향하는 내 불만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기도했다.


  2. 애초에 나는 두 동생의 거부감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그들이 드러내는 적의가 모친의 영구를 화장하여 유골함에 넣고 그것을 묘지에 묻어 놓고 비석만 세워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친은 이곳에 모시지 않았다. 두 동생의 반대에 부딪혀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둔 것이다.


  내가 대전 법동에 위치한 증조모를 이장해 온 것도 혼자서 다 할 정도로 동생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아예 관심이 없어서라고 할 수 있었다. 참여를 하지 않는 두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은 부친의 이장을 맡겨 버린 것이다.

  "너희 둘이 아버지 이장을 책임져라!"

  내 말에 코방귀도 뀌지 않을 두 동생이었다.


  "관리도 해주고 이장 걱정도 없는 국립묘지에 모시고 있는 아버지를 왜, 이곳에 모셔요?"

  그렇게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보니,

  "너희들이 그렇게 나오는 이유는 물질적인 부담을 들어서라고 하는데,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는 우리가 돈이 없어서 묘자리를 잘 구입할 돈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밭도 있으므로 이곳에 모시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두 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왜, 관리를 하고 힘들일 필요가 뭐 있어요. 그곳에 가면 다 국가에서 해 줄텐데..."

   "그래, 무료라고는 하지만 우리 것은 아니잖아! 언젠가 그곳에서도 이장하라고 할테고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파와야만 할 텐데 구태여 우리 것도 아닌 곳에 모실 필요가 뭐 있니... 그리고 너무 멀어서 가지도 않고..."

  "왜, 안가요! 막내와 나도 현충일 날 꼬박꼬박 갔다오는데..."

  "너희들 둘이만 간다고 대수냐? 우리 가족들 전체가 가지 않는데도 그게 좋을 곳이라는 거지! 그럼, 너희 둘이 그곳에 있는 납골묘를 이전하는 게 어떻겠니! 난 아예 간섭을 하지 않으마!"

  그렇게 마지막으로 장례식을 끝내고 난 뒤 선언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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