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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은 자꾸만 커져서 머리 속을 가득 체워 놓는다. 결국 모두 토해 놓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 된다. 그렇다면 이 때 필요한 만큼 조정을 하자! 우선 그 내용을 조합하여 엣세이 형식으로 쓰면 어떨까? 또한 그것을 나중에 조금 수정하면 책이 될테고... 그래, 이곳을 삶이 충만한 얘기체 형식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삶의 엣세이 (essay)

악한 남자 착한 여자

2013.10.08 20:07

文學 조회 수: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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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예전에 농가주택을 구입했던 곳에 찾아 갔었다.

   내가 그곳을 구입했던 건 20년도 더 된 오래된 탓에 지금처럼 일기를 쓰지도 않았으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의 건물은 지붕이 바뀌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게 다른 것같았다. 집수리를 하였다는 데 새로 지은 것이 아니고 지붕만 수리한 형태였다. 집의 구조는 모두 같은 형태로 유리창과 현관등이 모두 같았다.

  '2,600만원'

  그것이 구입 가격이었다. 또한 돈이 없던 우리 실정에 있어서 가장 적당한 가겼이었는데 그것은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안정적인 투자라는 점에 의심한 여지가 없었다. 사실 이 당시에 나는 창고의 필요성에 대하여 누누히 가슴 아픈 경험을 갖고 있었다. 기계를 만드는 개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기계를 제작하게 되면 부피가 커지는 탓에 마땅하게 보관할 창고가 부제하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공장을 빌려서 갖다 놓았었는데 그만 그곳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도 못찾게 된 점이었다. 그 뒤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 보관을 했었는데 적발이 되어 그것도 여의치 않았었다. 그 뒤부터 계속 보관할 창고를 구입하여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부동산 경매를 찾아 다녔고 교차로 신문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 뒤, 우연찮게 이곳을 찾게 되었고 마땅하게 물색하던 곳도 없었지만 그나마 내 땅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구입하고 흡족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착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첫 째, 거리상 너무 멀어서 자주 찾아 올 수 없다보니 마당에 풀이 사람 키만큼 자란다는 점이었다.

  둘 째, 아내가 이사를 꺼린다는 점이었다. 출퇴근이 힘들고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거였다. 그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었다.

  세 째, 창고로 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시골집이었으므로 살 수 있는 거주 공간은 되었지만 물건을 저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붕만 달랑 있는 외딸린 건물에 기계를 넣고 보관을 하였지만 바닥이 습기가 많다보니 녹시 슬었다. 그래서 창고를 지으려고 하였는데 미처 건물도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곳을 구입할 당시 대전광역시에서 옥천으로 이전을 하기 전이었으므로 창고 건물이 필요했던 만큼 대략 20km 거리 정도가 되는 곳에 자주 찾아 올 수 없는 실정이었다. 교차로에서 찾아내었던 만큼 가장 현실적인 거라면 가격 조건이었다.

 

그래서 세를 놓게 된다.

동네 주민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하였고... 

우린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게 되었지만 방안에 넣어 놓았던 그동안의 내 원고들도 모두 분실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진다. 또한 그들 부부도 이혼을 하고 어느날 갑자기 부인이 아니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척집으로 가버리게 되고 남자 혼자서 살았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기세만 왕창 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마침내 이 집을 팔게 되는데... 그리고 옥천으로 다시 새로운 터전을 구입하여 이전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이렇게 간단 명료하였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상황이 뒤바꼈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시간적으로 5년 정도 흘렀는데 그렇게 세월이 지나는 동안 과연 이 집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짜 맞춰야만 할까?

 

이 집을 구입했을 당시의 상황은 내게 그다지 좋은 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개인사업을 한다는 자체로 인하여 근 10년을 내리 고생만 했었다. 다행히도 2년동안 8번이나 실패를 거듭했던 연구하던 기계가 성공을 했고 그나마 판매가 지속되었으므로 가게를 큰 길가에 두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골목진 주택가에 허름한 옛날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곳은 다행히도 내가 어렷을 때 살던 동네였으며 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다. 또한 어렸을 때 놀던 친구도 만나게 되었고 그가 갖는 계 모임에도 참석을 하여 옛 우정을 다시 한번 성인이 되어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으로 세 들어 사는 곳은 불과 10평 남짓한 낮은 흙벽돌 짐으로 5평 정도의 창고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생산하는 기계들은 모두 부피가 컸다. 1톤 화물차에 싣게 되면 가득될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차량에 싣고 가는 것이 아니고 판품되어 오는 기계였다. 또한 낡고 오래된 기계를 회수하게 되면 그것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교차로 신문을 보고서였다. 창고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내 욕구와 맞아 떨어져서 시골 농가주택으로 나온 저렴한 가격만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우연히 시야에 들어온 광고물을 보게 되었고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시골 농가주택 판매. 가격 2,600만원. 외딴터. 250평. 문의 전화 (042)168-1688 충남 진산군 마전면 용진리 298번지'

  깨알같이 쓰여있는 광고들 중에 이 광고물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가격이 우선 저렴해서였다.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을 비교하여 2,500만원 선으로 책정해 두웠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역이었다. 진산면 마전면의 경우는 대전에서 근교였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것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무난한 듯하여 광고란에 볼펜으로 표시를 해 두고 아내와 상의를 하였다.   

 

  이 당시에 우리 부부는 아주 어려운 개인 사업의 길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1988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대전역 근교의 철공소 골목에서 3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개인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정도 되었었다. 길고 어두운 최악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하였으므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괘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