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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낙찰 받은 축사

경매로 낙찰 받은 축사 (143)

2009.11.21 09:14

文學 조회 수:4154

Noname15928.jpg

  -왼 쪽과 오른 쪽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함-

  

 벽돌을 쌓는 기술자를 이틀간 고용했었다.
그런데 이틀째 날 3시에 돼지 머릿고기와 품삯을 40만원 주고 왔더니,
  "다섯 시도 되지 않고 갔어요!" 하는 것이었다.
  오늘 마무리를 지으면서 느끼는 점은 부실하다는 것이었고...

 

  어제 아내, 아들과 함께 '경매로 낙찰 받은 축사'에서 외벽을 쌓는 공사를 했다. 이틀간 기술자를 불러다가 작업을 한 곳이었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하여 창틀까지만 작업한 곳에 천정까지 벽돌을 쌓아 나갔다.

  "다섯 시도 되지 않았는데 갔어요!"

  G.D 의 부인히 그렇게 말했는데 아마도 더 늦게까지 해주지 않은 것을 비꼬는 것같았다. 그렇지만 그 기술자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그렇게 밖에 해 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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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11월 4일 충북 영동 법원에서 사천 오백만원에 낙찰 받은 축사 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5년동안 나와 아내는 수리 공사를 했는데 그곳에 쏱아부은 노력, 정성, 땀, 의지, 그리고 물질적인 부담(돈)이 낙찰 받은 비용을 육박할 정도였다. 또한, 지금까지도 수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언제나 부담이 갔지만,

  '그러니 어찌 곤욕스럽지 않으리오! 지금까지도 수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언제나 부담이 갔지만, 세출자로서 어찌보면 그만한 노력은 감수해야하지 않을까?'하고 울며겨자먹기로 부담을 강요 당하고 있었으니...

 

 지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곳에서 노동일을 하였었다.

  대학교 1학년에 제학중인 아들, 고등학교 2학년인 이웃집 아들, 아내, 그리고 나 그렇게 넷이서 C 동 건물의 외벽에 불록 벽돌로 축대를 쌓는 공사를 한 것이다. 말이 축대지 시멘트, 모래, 자갈 을 1:2:2로 섞어 물과 혼합을 한 뒤에 스레트를 비스듬하게 걸친 흙담에 불록 벽돌로 한쪽 편을 계단식으로 6단까지 쌓아 나가는 게 작업 목표였다. 그런데 첫 단부터 구멍난 불록 벽돌과 뒤의 경사진 스레트 사이에 모두 콘크리트를 비벼서 가득 체워 주워야만 했다. 첫 단을 끝내면 두 번째 단을 그리고 연속적으로 6단까지 끝낸 뒤에는 바닥에 깔려 있던 철판을 옮겨서 다음 작업을 위해 3미터 쯤 좌측으로 이동을 한 뒤에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지만 한 번 이동을 하게되면 그곳에서 콘크리트 거푸집을 열 번 이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만큼 많은 양의 콘크리트가 필요했으므로...

  아들과 나는 철판 위에서 콘크리트를 혼합하여 벽돌 틈바구니로 넣어주는 일을 했고 옆집의 아르바이트 생은 운반을 맡았으며 아내는 시멘트와 모래를 혼합하여 운반을 하는 프라스틱 통에 넣는 일을 각각 맡게 되었다.

 

 

  첫 날은 무너져 내린 흙을 삽으로 파내면서 한 쪽 편을 군대의 맨홀처럼 만들었다. 왜냐하면 위의 밭에서 흙이 무너져 내려 진흙으로 범벅이 된 경사로가 전혀 없는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파내어 스레트를 경사지게 세우고 부록 벽돌을 쌓아 가면서 콘크리트를 체워서 계단식의 축대를 만드는 게 3일동안의 작업으로 미리 계획을 세워두웠었다.

 

  3일 동안의 중노동을 한 결과 오늘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드러누웠고 나는 팔다리가 쑤셔서 안아픈 곳이 없다.

  "으이구, 거긴 뭣 때문에 사가지고 이 고생인지 몰라! 이만 이때까지..."

  아내는 남자들이 해도 힘든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일을 하다가 삽질 중에 허리를 결질렀고 그 자리에서,

  "악!"하면서 쓰려져서 발랑 누워 꼼짝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틀 동안 삽질을 하다가 삼일 째 허리가 겹질었었다.

 

 

  아, 파로라마처럼 지난 5년동안 아내와 내가 이곳에서 축사를 공장으로 개조하기 위해 갖은 육체적인 인내를 실험하였었다. 그리고 번듯하게 만들어 놓은 건물를 임대 놓았는데...

 

  형용키 어려운 인내의 실험장.

  육체는 고달프고 힘이 들었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건물은 우리들의 정성만큼이나 조금씩 바뀌어 갔다. 

  시간이 나는데로 조금씩 할애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작업장이 기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축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기계의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 어김없이 이곳에서 수리를 하였으니까?

  처음에는 나무로 지붕을 짓고 높이가 3미터에 불과한 높이가 7미터로 바뀌로 기둥이 에이치-뷤(H-Bim)으로 보강되었으며 건물은 100평씩 A,B,C 동으로 나뉘어 졌고 현재는 30, 30, 20만원씩 월세를 들어오는 사람에 따라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