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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하여...


  내가 작년 말에,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말)
  "네가 여기(충북 옥천)에서 2년제인 과학대학을 다니게 되면 주유소 알바자리도 잃지 않을 터이고, 학교 방과 후에 내일을 도와줄 수 있으면 충분히 차를 운영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을 터이고, 특히 그렇게 되면 승용차를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넌즈히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것은 엄격히 아들이 돈을 벌어서 승용차를 운행할 수 있는 운행비를 벌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둔 경우였다. 지금처럼 대전에 나가서 자취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학업 성적도 등한시하면서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해당이 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얼마나 모질라는 놈이기에 차를 살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기름을 넣으며 주유소의 사장이 그렇게 생각했지 않겠는가!
  내가 보기에도,
  '이건 미친 짓이다!'
   '한마디로 죽으려고 빽쓴다!'는 표현이 제격이었다.
 
  또 한가지 중대한 사실은 이제 대전에 나가 있었으므로  아무리 바빠도 아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너무 바쁜 와중에 조금도 도와주지 않는 아들에게 원망을 하지않았다.
  이곳에 있을 때도 토요일 일요일은 무조건 낮잠을 자면서도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곤 했었다. 부모라 눈코뜰세없이 바쁘다고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그런 행동으로 일관하여왔던 아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다.
  지금처럼 기계의 주문이 한꺼번에 연거푸 세 대씩이나 들어와도 모두 아내와 내가 할일이었다. 그것이 저희들 수업료와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사실조차 말을 한들 눈 하나 꿈쩍이야 하겠는가!
  
  워낙 게으른 놈이여서 일요일에는 집구석에서 하루 종이 낮잠을 자곤 했었다. 오늘 같은 일요일에도 나와 아내는 일을 했지만...
   '대학교에 가면 철이 들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한낫 기우였다. 전혀 그렇지도 않은 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꿈과 같았으므로 오히려 포기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자식에게 일을 가르쳐서 그나마 기술을 배우게 하겠다는 내 일념은 전혀 근거없는 내 생각뿐이라는 사실은 뼈저리게 뉘우칠 뿐이다.
 
  나는 아마도 다른 조치를 취하고 싶다.
  '자식이 아닌 다른 젊은이들로 선택하여 내 후게자를 양성하자!'고 이미 결정을 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는 끊고 산지 오래였다. 둥지를 떠난 자식이었다. 행여 미련을 갖으면 갖을 수록 마음만 아풀뿐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자식은 품안의 자식이다!"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내 자식조차 내 뜻에 어긋나게 살고 있는데 어찌 남의 자식을 훈계하고 그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단지 내가 추구하는 목적에 있어서 자식에게 기대하는만큼 내 마음은 공허로웠다.
  '빈 메아리도 이처럼 가슴아프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차라리 믿지않고 의지하지 않는 편이 훨씬 편하고 유용함을 절감하여 왔었다. 불현듯 나는 자식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편이 나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