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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하여...

자식에 대하여... (5)

2009.04.05 07:32

文學 조회 수:4840


                                                                                           - 오른 쪽부터 아들B.Min, 처남의 아들 D.Han 그리고. 나 -
  내겐 두 아이가 있었다.
  큰 아이는 딸이었으며 대학교 2학년 둘 째는 아들인데 대학교 1학년생이다.
  마침 어제는 아들 녀석이 집에 왔으므로,
   "일 좀 해 줘라?"하고 부탁을 했더니,
  "시험 기간이라 안돼요!"하는 것이었다.
  "그럼, 뭐 때문에 옥천에 왔지?"
  아들 녀석이 제 방에서 전날 밤 와서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깨웠지만 일을 거부했으므로 다시 위층으로 올라와서 아내와 옥신각신하였다.
  "오늘 토요일 볼 일이 있어서..."
  "대전에 나가 있는 놈이 뭐 때문에 오고 지랄이야! 흥, 교통비만 나가지...당신이 오라고 했어?"
  "아니요!"
  "그럼 뭐라러 왔데?"
  "낸들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 일을 하려고 오지 않은 것같아요!"
  "..."
  대전의 목원대학교 전자과에 입학한 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이곳 옥천에 있는 2년제 전문대학교에 다니라고 했지만,
   "학교 선생님이 큰 물에 가서 놀으라고..." 그렇게 내 뜻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마당이었다. 그리고는 입학과 함께 대전에서 생활하는데 학교와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고 통근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리는 제 엄마를 통하여 듣기는 했어도 내 뜻에 따라 이곳에서 절반 정도로 등록금으로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먼저 다니던 집 앞의 주유소에 시간제로 다니면  되었으라! 그리고 내가 하는 기계 만드는 공장 에서 가끔씩 도와주면서 기술을 터특하게 되면 충분히 용돈과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4년제 대학교의 전공도 아닌 전자과에 지원하였고 거기다가 대전에서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었다. 주유소의 아르바이트는 22세라는 나이 제한으로 금지 당했고 가끔씩 나간다는 빵집에서의 잔심부름과 그릇 닦기는 제 적성에 맞지 않고 시급이 작다고 투덜거리면서 한 번 나가더지 그만두웠다.
  "나는 집과 학교 그리고 헬스 그렇게 세 곳만 다니는데 누나들은 매일 밖으로 나돌아!"
   제 엄마에게 누나들에 관하여 모두 고자질을 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였다. 밥 상에 앉아서 챙겨주는 밥을 먹고 휑하니 인사도 없이 가버렸는데 그런 아들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불망이었다.
  "흥, 제 밥벌이나 제대로 할려나..."
  "그래도 제 딴에는 공부를 잘 하는데... 수학이 뒤떨어지나 봐요! 지금이 시험 기간인데 10등안에 든다고 장담하던걸요!"
  아내가 내게 그렇게 귀뜀을 해주웠지만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는것은 그 학교가 ROTC 로 지원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며 군대 장교로 입대하여 돈을 벌겠다는 이상한 내용을 고등학교 선생으로부터 듣고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등수안에 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또한 들었으므로,
  "군대, 군대가 감옥같은 곳인 줄 왜 모를까?" 하며 내 딴에는 자꾸만 어긋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벙어리 냉가슴이 되어 가고 있었다.    

  "흥, 자식도 품안의 자식일 때가 귀여운 법이지... 크면 애물단지야 애물단지!"
  그렇게 나는 앞집의 세 아이를 거느린 O.Mi 라는 사나이에게 말했었다. 어찌보면 그 집은 자식이 세 명이나 되었으므로 우리보다 더 바람잦는 날이 없으리라! 그래도 나처럼 속없이 빈강정을 쳐다보듯이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였다. 강압적으로 키우려고 폭력을 썼으며 가끔은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이는 막내 아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시도때도 없이 폭행하였겠지만 그 놈도 대가리가 커지고 사회에서 이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여 웅쿠리고 있는 고슴도치였으며 폭탄처럼 반항하리라!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래왔듯이
  폭력이 자식을 다르리는 매라도 되는 것처럼
  주먹과 발길질을 시도때도 없이 자행하여서
  무력의 폭군으로 불렸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자식에게 행하면서 그것이 잘못이라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날 불현듯 성장한 자식을 보면서 그런 폭력을
  이제 중단하여야 함을 깨달아 가는 게 아버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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