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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서... (후기)

2015.06.29 15:29

文學 조회 수:247

Noname-166.JPG


해마다 나는 청성의 밭에서 농사 일을 한다.

이곳에 곡식을 심기 위해서는 이틀씩이나 경운기로 갈게 되는데,

돌밭 중에 돌밭.

 밭 가운데 돌과 바위들이 박혀 있다보니 경운기 로우터리가,

  "쟁그랑!"하는 쇠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회전하는 칼날이 땅에서 바위와 돌을 만나면서 갈지 못하고 도중에 튀어 오른다. 갈리지 않아서 반대로 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의례히 쇠 날이 부러지거나 볼트가 빠져 나오기도 한다.

새 것으로 전부 교체하여 그나마 튼튼하여 부러진 것은 없었다.

작년에는 로우터리로 갈지 않고 쟁기로 갈았었다. 그래서 고랑이 깊게 패여져 있는 곳에 키가 큰 들국화 꽃이 핀 체, 눈 물을 짓는 것처럼 줄기가 부러진다. 로우터리에 길고 가는 줄기가 끊기기도 하면서 땅에 쓸려 버리는 것이다.


Noname-165tm.JPG

어제는 왼 쪽 편과 오른 쪽 편을, 오늘은 오전 중에 중앙부분을 경운기로 갈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오른 쪽은 경사가 심해서 위에서부터 갈면서 내려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운기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경운기로 밭을 갈게 되면 관리기처럼 예쁜 골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무척 힘이 들다보니 약간의 기술(내가 자신을 하지만)도 필요했다. 무턱대고 경운기를 몰고가게 되면 자칫하다가 경사로에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만큼 핸들에 손잡이로 된 클러치가 유용했다. 그것으로 방향을 잡고 전진할 것인지 후진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관리기처럼 손에 <착> 달라붙는 감칠 맛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부터 경운기는 만능이었다.

  울퉁불퉁한 산밭에서 경운기만큼 유용한 것이 없었으니까?

  물론 트렉터와 관리기에 밀려서 지금은 많이 판매가 되지 않는 탓에 부품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단종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사람들이 이 좋은 농사 기계를 사용하기 힘들고 불편하다고 많이 꺼린다. 

  왜냐하면 기술이 필요하고 위험이 항상 따라 다니기 때문이었다.

  경운기를 운전하다가 다쳤다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한 게 비단 기계 탓일까? 싶을 정도로...

  경운기는 사실 죄가 없었다.

  다친 사람들마다 경운기가 무슨 죄인인양 하소연을 하고 법정에 세운다고 하지만 어찌 경운기 탓일까?

부주의한 인간들 잘못이지...


  내가 경운기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적절한 시기, 필요 불가결한 관계, 값싸고 막강한 힘을 가진 만능 농사꾼. 그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이 신비한 옛날 영웅에 대한 기계를 최고의 찬사로 극찬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기계를 다루는 것에 서툴던 시기에 죽음의 문턱을 몇 번 넘어갔다오기까지 했었다. 계곡에 빠지고 구렁텅이에 쑤셔 박고, 절벽에서 떨어트리기조차 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경운기가 내게는 농사를 짓는 1호의 농기구이기도 했지만 그 반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다. 차에서 내리던가 올릴 때부터 불안스럽고 힘이 벅찼다.


한 해 두 번 곡식을 심을 수 있지만 나는 한 번 짓는 것도 위험 천만했다. 


어제부터 이곳에서 농사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계획에도 없었다.

불현듯 경운기를 1톤 차에 싣고 와서 밭을 갈고 들깨를 심게 된 것이다. 지금 심지 않으면 너무 늦는다. 그러다보니 불시에 이렇게 밭을 갈고 농작물을 심게 되었다.


  이제 큰 농사 일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노는 밭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안 심었다고 불안 해 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상 오늘보다 어제 일이 더 힘들었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밭을 갈았었다.

  두 곳을 오고가면서...


1.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의 경우에는 밭을 갈면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0년도에 운동부족으로 쓰러졌던 기억 때문이다. 그 뒤에는 운동을 생활화하게 되었는데 밭을 하루 종일 갈면서 힘겹게 하루를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