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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등의 통증으로...

2013.07.03 08:58

文學 조회 수:2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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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허리에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던 통증으로 기침도 제대로 못했었다. 대변도 힘을 주지 못하여 여태까지 3일간 보지 못했다가 오늘 아침 무더기로 보게 되었다. 쾌변이었다.

등에도 가슴과 마찬가지로 갈비뼈가 있는게 확실했다. 등쪽에 있는 뼈에 금이 간 듯 기침을 해도 아팠으며 특히 등을 대고 누웠을 때 찔리는 듯한 통증이 왔다. 아마 등쪽의 7~8번 뼈가 아닌가 싶다.

 

-아래 내용. (다른 곳의 내용을 중복 계제 인용하였씀)-

 

1톤 화물차가 농로길 옆에 빠졌는데...

 

6월 30일 일요일.

청성의 밭에 팥씨를 심으러 오후 3시에 출발을 한다.

그리고 12km 거리를 달려서 도착한 밭은 농로길 옆이었다. 오후 3시 30분정도에 도착을 하였는데 이제부터 경운기로 밭을 갈기 시작하면 내일까지 470평의 밭에 팥씨를 심을 수 있으리라! 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차량이 약간의 경사로를 따라 왔지만 내려가는 방향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는 50여미터를 올라가야만 했다. 

 

  도착하였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나는 우리 밭이 경사로에 있어서 차량을 오를 수 없었으므로 농로길 옆에 차를 대야만 했지만 돌려서 받혀 놓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돌릴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다음 밭인 감나무 밭의 농로 안쪽으로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곳에 풀슾으로 가려져 있는 움푹꺼진 풀숲으로 바퀴가 약간 빠졌는데 그대로 차고 오르려고 하다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고 차 바닥이 닿게 되었던 것이다.   

 

유압작기로 뒷바퀴의 스프링 뒷편에 대고 떠올리는 중에 미끄러지면서 차가 내려 앉게 되자 엎드려서 차 밑에서 유압작키를 펌프질하던 내 등으로 칼쿠리처럼 튀어나온 고리가 내려 쳤다.

  "욱!"

  그뒤 나는 그야말로 온몸을 엄습하는 통증으로 꼼짝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면서 다행히 뒤바튀쪽의 수박통처럼 생긴 데후가 받혀 있었으므로 더 이상 내려 앉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등에 뾰족하게 튀어 나온 밧줄을 묶는 갈코리에 걸려서 충격을 받았다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차량을 고랑텅이에서 빼내야만 했다.

  "빵!"

  앞쪽에서 차량 한 대가 와서 섰지만 나는 아픈 것을 참고 차가 빠져서 피할 수 없다고 몸동작과 말을 해서 알려 줬더니 후진해서 되돌아 갔다. 다행히 그 때부터 1시간 정도 지나서 차량은 빼낼 수 있었는데 그동안에 마음고생(?)과 몸 고생은 너무 심했었다. 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다시 빠졌을 때는 더 심하게 기울어져서 뒤바퀴의 한 쪽 바퀴가 하늘로 치솟을 정도가 되었고 운전대쪽의 안쪽 뒤바퀴가 빵구가 났다.

  이제부터는 더욱 놀라운 재량이 발휘한다.

  유압작기로 다시 뒤바퀴부터 올린 뒤에 그곳에 돌을 체워 넣고 앞바퀴쪽에는 경운기를 차레 실을 때 쓰는 사다리를 두 개나 걸쳐 놓고 그걸 타고 나올 수 있었다.

  그 때의 환희의 순간 나는 세상에 이처럼 상쾌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땡볕에서 차량을 빼내느라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2. 차량이 농로 옆의 고랑에 빠졌을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차에 실려 있던 경운기를 내리는 거였다. 

  첫 번째 빠졌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만 두 번째 빠지게 되자 심하게 차량이 기울어 졌음으로 그 무게 때문에 차량을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운기를 기울어지 운전대 쪽의 옆문을 열고 지면으로 내려오게 만들어야만 했다. 차량에 있던 모든 짐도 내렸고...

  그 뒤 뒷바퀴부터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씩이나 유압작기가 미끄러졌지만 첫 번째 시도 때 등어리를 다쳤으므로 그 뒤에는 타이어가 매달린 곳에 돌을 받혀 놓던가 다른 조치를 취하면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히 차량이 고랑에서 빠져 나왔는데 그 때의 심정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3. 3일이 지난 지금까지는 나는 등짝에 일어나는 통증으로 기침조차 심하게 할 수 없도록 내부에서 통증을 받는다.

  아무래도 등에 있는 갈비뼈가 금이 간 듯 싶었다.

 

4. 청성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모든 게 위급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위기에서 모든 것을 짧은 시간안에 끝마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앞으로의 삶의 방식에 대단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순간에 괴력과 순발력을 보여야만 했으므로...

모든게 너무 느리고 더디기만 한 것처럼 나는 일처리가 늦어진 점에 대하여 지금의 기계 연구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안이하게 굴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다시 한번 높이 평가하고 추진하여 나가고 싶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