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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집에 돌아오니 오후 6시였다.

그리고 저녁을 마치고 체육관 다목적실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운동화를 갖고 오지 않았다.


집에 다시 갔다가 운동화를 갖고 왔지만 탁구장 안은 목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세통을 이룬다.

탁구대가 빈 곳이 마땅찮아서 중간에 L이라는 여성분과 포핸드롱으로 1시간 가량을 쳤다. 그 뒤에는 A급들만 여섯 명 정도가 남아서 저희들끼리만 치고...


하지만 나는 묵묵히 그들이 치는 모습만을 관전할 뿐이었다.

내 실력이 그들에게 미치지 않았으므로 치고 싶어도 치자고 말을 하지 못하였다. 시간은 오후 9시 30분 가량.

탁구를 치러 왔지만 전혀 칠 기분이 아닌 형편. 지금은 그래도 많이 무디어져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탁구를 치자고 하지는 않으니까? 벽 쪽에 의자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그들과 나는 전혀 상관 없이 굴었다.


10시 경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서 흰 진돗개가 계단 앞에서 반겨 준다. 끈을 묶어서 개울따라 300여미터를 걸어 갔다가 돌아 오면서 오늘은 탁구장을 치러 가지말고 기계와 칠 걸 그랬다는 생각만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HSKH3W-w


  하지만 12시까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본다. 앞서 김택수의 경기가 있는 동영상도 보았고...

  옥천에서 동호회원들에게 선정된 부수가 낮은 사람들 여섯 명을 나는 그다지 선망하지는 않는다. 탁구를 치러 가기전에 나는 청성에서 밭에서 오후 내내 예초기로 풀을 깍았었다. 땀으로 젖은 몸을 튀어오른 돌에 왼 쪽 안경알까지도 깨진체 몸에 묻은 풀을 대충 씻어 내고 부랴부랴 탁구를 치러 갔었던 것이다.

 

  그런데 칠 사람이 마땅하지 않아서 지켜 서 있다가 올 수 밖에 없는 입장임을 나는 조금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할 일이 있었고 내 소임대로 나는 예초기로 풀을 깍았었다. 아마도 몸에 이상이 있어서 탁구를 치러 오기 전에 약간의 혼미한 상태로 왔을 때 정말로 탁구를 치다가 혈압이 솟구쳐서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불안초조한 상태로 6월 말일에 리그전 첫 경기를 할 때의 심정을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역부로 탁구를 치자고 해서 전혀 실력이 없는 내 자신과 쳐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망신만 당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입장에서 구태여 치자고 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겸허하게 받아 들인다.

  구태여 탁구에 한이 맺힌 것처럼 이들을 따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탁구을 치러 와서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여야만 하는가!

  하고 자중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는 입장을 나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지나서 실력이 좀 늘면 이들처럼 늦게 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도 않으리라!


  그리고 내가 본 입장에서 이들이 잘 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또 다른 외로움과 고독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본 견지에서 잘 치는 사람과 못치는 사람들간에 어떤 이질적인 거리감을 갖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은 남과 북과 같은 단절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받아 들여지지도 않는다.

  나는 낮에 예초기로 오후 내내 풀을 제거하느라고 햇빛을 쏘이면서 풀을 베었었다.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튼튼하다고 자부할 정도로 눈에 띄게 즐거웠었다. 그런데 탁구장에 와서 나는 기분이 잡치고 말았으니...

  이런 사항에서 좋은 탁구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는 않는다. 모두 끼리끼리 놀았던 것이다.


  못치는 사람들은 잘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반대로 잘 치는 사람은 또한 못치는 사람들과 탁구를 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고질적인 병과도 같았다.

  탁구장이 부족한 다목적실에서 그나마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는 중앙의 의자가 있는 공간에 지켜 서 있다가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만 했지만 적어도 자신을 받아 줄 곳이 없다고 보면 서러움은 복받치게 된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동시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함께 들어오기도 하고 사전에 연락을 하여 몇 시에 만나자고 하여 적어도 오후 8시 30분에 입장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잘 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7시 이전에 나와서 치지 았았다. 못치는 하수들이 바글바글대면서 한 번 쳐보기를 학수고대하는 모습을 꼴깜떤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동호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같았다.

  포화 직전에 이를 정도로 버글대는 사람들.

  다목적실에는 여섯 대 정도의 탁구대가 놓여 있었고 일반인들이 이 곳에서 짝을 이루워서 양쪽에 서서 탁구를 치게 되는데 번번히 초저녁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런 불유쾌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돌아가는 사람도 발생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띄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만큼 다목적실의 탁구대가 사람들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나는, '너무 번거롭게 찾아 갔구나!' 하고 후회를 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더 많은 내 시간을 누릴 수 있었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고...

  여기서 오늘의 느낌은 내가 탁구에 너무 빠지면 내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너무 늦게까지 탁구를 치는 일을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이 후회스러운 출근(?)으로 인하여 오늘은 큰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탁구를 치러 와서 탁구대가 부족하여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 질 수록 나는 염증을 느끼는 게 많아지게 되었다. 다목적실의 부족한 탁구대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런 입장을 갖고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탁구회원이 많아지게 되면서 이렇게 부족한 탁구대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을 같은 시간대에 대기하는 인원을 줄이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더 증설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내가 시설을 늘려달라는 목소리를 높이면 무엇하겠는가!


  앞서 나는 예전의 조폐공사가 공매되었을 때 옥천군에서 참여하여 낙찰되었다면 체육시설로 전환하였다면 이렇게 부족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기술한바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개인의 소견일 뿐이었다. 상황은 전혀 그렇게 바뀌지 않았고 지금의 탁구 동호회라는 옥천군 사람들이 다목적실의 여섯 대 정도의 탁구대에서 탁구를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