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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농사일에 대한 육체적인 변화 (4)

2021.06.18 07:09

文學 조회 수:22

농사를 짓게 되면 새벽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낮 시간대는 한 여름철의 무더운 태양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무엇보다 밤에 일찍 자고 새벽에 눈을 뜨는 게 보편적인 생활이 되지요. 이 원리를 이제 오늘 새벽에 글을 쓰는 데 활용해 봅니다. 1. 어제 하루 비가 와서 다행스럽게 들깨모를 뿌려 놓은 군서 산밭에 가 보지 않아도 될 둣 싶었고 오늘은 습관 처럼 일찍 일어 났는데 다시 잠을 자지 않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단 1시간도 결코 허투르게 쓰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지요. 2. 농사에 대한 육체적인 노동력은 격한 작업이 필요했고 그것이 운동과도 연관됩니다.


  1. 오늘은 새벽에 농사를 위해서 밭으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은 청성의 위의 밭에 경운기로 로우타리를 치고 골을 파서 콩을 심을 예정이다. 


  작년에는 콩을 심었다가 싹이 돋자, 비들기가 모조리 떡잎을 물어 뜯어 완전히 농사를 망쳤었다. 그리고 실망감에 그만 농사를 포기하게 된 밭이다. 올 해는 작년처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대비를 하였으니까요. 우선 반짝 거리는 줄을 띄우고 허수아비를 세운 다. 그 다음에는 콩에도 빨간 약을 발라서 떡잎이 나왔을 때 혐오감을 비들기가 느끼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건 워낙 많은 약이여서 불가능할 듯 싶다. 600평 밭에 심을 콩을 빨간약을 칠하는 건 매우 힘든 노릇이다. 거기다가 콩 심는 기계로 심으려고 하는 데 사실상 기계 속에서 나올지 미지수다.  


  초기에 싹이 트면 비들기가 떡잎의 목아지를 쪼아 부러트린다. 하늘에 아무 것도 없이 내 방치하게 되면 비들기들은 떡잎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부러트려 놓게 된다. 그나마 요란 색색한 비닐 반짝이를 늘어 뜨려 놓아야만 내려 앉았다가 깜쩍 놀라서 다시 달아나게 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유다. 줄은 이 쪽 나무와 저 쪽 나무로 늘어 트려 놓게 되는 데 비틀게 회전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은 비들기가 내려 앉았다가 반짝 거리는 것을 주의해서 다시 달아나게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콩이 나왔을 때 싹이 틀 때까지만 예방 효과가 있었다.


  2. 오늘은 오랫만에 일찍 일어난 여세를 몰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 농사를 짓던 습관이 배어서 새벽 6시에 깨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잠들지 않는 이유는 농사를 짓기 위해 밭으로 향하던 습관이 배어서 시간을 허투르게 쓰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할까?


  어젯밤에도 10시까지 야간 작업을 했다. 부산으로 납품할 기계의 마무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로 이번에 농사를 다시 짓게 되면서 오전을 잃고 말자 더 진도가 느려졌었다.


  3. 어쨌튼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 날 밤 10시 쯤에는 잠들어야만 하는 데 늦게까지 공장에서 기계 제작 일을 하므로 퇴근하는 것도 늦고 조금 TV를 보게 되면 훌쩍 11시를 넘기고 12시가 되어서 잠을 잔다. 그런 상태로 새벽 6시에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는 잠이 캐어서가 아니었다. 소변이 마려워서 깨는 것인데, 졸음이 쏱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밭에 가서 농사 일을 하던 습관이 남아 있었으므로 겨우 의욕을 갖고 책상 앞에 높은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기댄 체 서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이고...


  4. 왼 쪽 눈을 안경 코걸이에 찔여서 눈을 아예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제부터 눈을 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탁구도 못 치게 될 듯하고...' 하고 불현듯 탁구를 못 친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가장 불운한 경우였다. 처음 다친 뒤에 물체가 두 개로 보였고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팠으며 왼 쪽과 오른 쪽이 짝 눈이다보니 눈이 시리고 아픈 가운데 멀미처럼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없는 극한 어려움을 느꼈었다.


  다행히 시력은 다음 날 되 돌아 왔지만 아찔한 느낌을 갖던 단 하루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몸으로 옥수수를 심은 밭을 예초기로 풀을 베어 넘겨뜨렸었다. 그 작업은 엔진 예초기로 등에 메고 조심스럽게 날을 고랑의 움푹 꺼진 잡초늬 밑단에 대어 넘어 지게 만든 뒤에 제초기를 두 번째 메고 다니면서 이번에는 남아 있는 풀을 향해 에어졸을 분사한 작업까지 마쳤을 때 오전을 거의 허비한 상태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2km 떨어진 청성의 밭에 왔을 때는 6시가 조금 못되었었고 그 때부터 시작한 예초기 작업과 농약통을 메고 제초제를 뿌릴 때까지 보낸 시간에 대하여 계산적인 이해 관계가 깔리지 않은 자연에 대하여 동화된 내 마음적인 순수함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은 전혀 돈 벌이와는 무관하다. 물론 내 경우를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농부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기서 내가 농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없었다면 농사 일로 뺏기는 시간을 갖을 수는 없었으리라는 점을 좀더 연구할 필요가 이었다. 그렇듯이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곤한 몸을 이끌고 그낭 눈이 다쳐서 왼 쪽 눈울 뜨지 못한 상태로 청성의 아랫밭에서 예초기로 벽풍처럼 쳐진 풀과 옥수수의 키를 넘는 곳을 풀을 제거하고 옥수수만 남겨 놓는 예초기 작업을 하고 후식으로 농약통을 짊어진 체 제초제를 뿌리기까지 걸린 시간에 대하여 소비하는 시간적인 부분을 감수하게 된 요인에 대하여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하였다고 본다.


  농사 일로 뺏기는 시간을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