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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서...(6)

2019.06.05 23:08

文學 조회 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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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기 전과 갈았을 때의 전경. 물론 제초제를 뿌린 뒤에 갈았다. 그냥 갈게 되면 잡초를 근절할 수 없어서다. -  


 1. 내게 일어난 육체적인 변화는 젊음을 되 찾게 해 준 것처럼 육체적인 활동을 보장하였는데 그것이 경운기를 운전하여 밭을 갈고 노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기쁨을 느끼고 감격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큰 또 다른 은혜였다.

  왜냐하면 나는 쓰러지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최고의 가치고 깨닫게 된 터였다.


  예전에 외가집에서 외삼촌이 밭과 논에 나가서 농약을 치고 쇠꼴을 베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오던 모습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것을 물려 받아서 하고 있었다. 외삼촌들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농촌을 떠나서 도시로 나가 살고 식당을 운영하는 중이었지만 나는 되려 시골로 돌아와서 이 험한 노동일에 몸을 맡기었으니 오히려 거꾸로 바뀐 형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뀐 상황하에서 나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다. 오늘 햇빛이 내려 쪼이는 낮에 경운기를 가지고 가서 땡빛에 밭을 갈고 들깨를 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즐겁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밭에 가는 걸 꺼린다. 그래서 차라리 나 혼자 갔다 오게 되는 것이다.


  2. 작년에는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이 너무 바쁘다보니 농사 일에 등한시 하였고 망쳤었다. 가뭄으로 인하여 애써 심었던 들깨가 하나도 건지지 못하였고 군서와 청성 의 밭에 모두 흉작을 이룰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시간 부족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 해는 불경기로 인하여 시간이 남아 돌았으므로 밭에 더 많이 다녀오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놀라운 발전이며 변화였다. 힘이들고 어렵다면 결코 포히하고 단념하였을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받아 들이는 이유는 바로 오늘 같은 새로운 결정을 한 상황이다. 즉,

  '이왕 밭에 나왔는데 해수욕장에 왔다고 하고 썬팅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겉잡을 수 없는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즐거워 하였다는 점이었다.


  땡빛에 경운기를 몰고 밭을 갈면서 무얼 그렇게 즐거워 한단 말인가!

  하하하...

  정말 웃긴다 웃겨!


  아내가 새참을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함께 참여하지 않았는데 극도로 농사 짓는 것을 싫어해서다. 햇빛에 살이 타는 것도 싫었했다.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진다고...


  그런데 나는 달라졌다. 밭에 나와서 농사를 짓는 내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 오히려 계속하여 다음 상황을 연출하기 위하여 계획하지 않는가! 다음 일 거리를 뻔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농사 일에 미친 것처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전혀 돈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버렸다. 농사를 지으러 가서 경운기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을 오늘도 무릅쓰고 가게 된다. 왜냐하면 경운기 바퀴가 쇠바퀴였고 1톤 화물차에 내려올 때던가 올라갈 때 사라이에서 빠져 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늘 갓고 있었으므로 오늘 특히 로타리 날을 새것으로 갈았놓고 그것이 사다리에 끼어서 꼼짝하지 못하고 경운기가 고꾸라진다는 점을 상기하고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우려를 그야말로 직시하면서 또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한쪽 바퀴가 사다리에서 빠져나와서 화물차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태를 일으켰었다.

  하지만 상황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한쪽 사다리에만 걸쳐 있던 경운기를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게 한 건 행운이라고 받아 들일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출발을 하기 전에 그리고 어제 저녁부터 나는 경운기에 깔려 죽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한 불미스러운 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경운기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겪는 여러가지 우여곡절 속에서 나는 끔찍한 상황들을 만나곤 했었다. 아찔한 그 상황을 종합하고 정리해보면 그야말로 천운을 만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을 피해갔었다.

  군서 산밭에 추레라가 달린 경운기를 끌고 내려가는 중에 나무를 잔뜩 짐칸에 실었는데 그만 4륜이 빠져 버렸다. 겉잡을 수 없이 경운기가 급경사진 곳을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짐칸 앞에 고무바로 쳐진 의자에서 이제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구나! 하면서 절망하던 그 순간에 경운기가 내려가던 것을 먼추었는데 마침 길가에 나무 등걸에 걸려서 멈춰서 있었던 것읻.


  구읍의 언덕배기에서는 어떻해던가! 부레이크가 걸리지 않아서 계속하여 속도가 후진으로 증가하면서 내려오는 경운기를 받혀 주려고 잡고 있었지만 역부족이던 상황.


  실로 경운기로 일어난 여러가지 죽을고비를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련했다. 초기의 운전미숙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도 밭을 갈면서 옆에 밭으로 떨어져 내려갈 뻔 한 것을 겨우 후진해서 안전하게 돌아 나오기도 하였을 정도로 운전에 어느 정도 조예가 깊어졌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만큼 이렇게 되기까지 8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결과였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