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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장맛비 예찬론

2019.06.27 08:04

文學 조회 수:3


 마침내 반가운 천금같은 하늘의 은혜가 찾아 왔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며 애타던 심정이 단 번에 해결이 되고 모든 판도가 바뀌었으니까요. 고대하던 그리움이 애달픈 짝사랑마냥 혼자서 그리워 했습니다. 이토록 한 순간에 모든 상황이 역전될 수 있었던 당신이 엄청난 능력은 인간의 힘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아하면서도 멋진 장관을 연출합니다. 처음에는 장막을 치고 음침하게 계획하는 듯 싶었지만 이내 훌쩍 거리면서 찔끔 거리더니 점점 장단이 심해지고 거칠 것도 없이 세상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성심껏 자비를 배풀고 단비를 선사하나이까. 온 충만한 당신의 하해가 지금껏 매마르고 불타오르던 가뭄에서 해갈을 주는 순간, 세상은 좀더 은혜롭고 넉넉한 마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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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단비가 내리는 순간 내 모든 것은 격정과 흥분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오후 5시에 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뒤덮고 오전 11시부터 빗발이 점점 심해지고 대지가 축축히 젖는가 싶었다. 모든 짐을 싸서 청성의 밭에서 철수하면서 집에 돌아와서 정상 복구를 하려니 온 몸이 녹아 버렸다.

  그동안 물을 주기 위해 밤 11시까지도 청성의 밭에 가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들깨를 심어 놓은 밭에 물 조루를 두 통에 담아서 양 손에 들고 후레쉬 불빛을 비춰가면서 물을 줬었다.


  그 피로가 갑자기 몰려오면서 점심 식사후에 꿀잠을 잤다. 매를 얻어 맞은 것처럼 자고 일어났지만 몸이 피곤하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청성의 밭에서 물을 주고 있을 터였다. 그 고난의 순간이 끝나고 마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사에 온통 빠져 버린 듯 모든 걸 다 바쳐 버렸던 내 모습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왜, 농사를 짓는데 즐겁지 않고 고통을 안겨줄까?'

  하루하루가 지겹게 물 때문에 실강이를 하면서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매년 가뭄으로 농사를 망쳐왔던 과거의 후회감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줬다. 방치하고 하늘에 맞겨 버렸던 결과였고 결국에는 그렇게 어렵게 들깨모를 심었건만 수확이 전혀 없이 말라 비틀어진 죽쟁이만 밭에 남아 있었던 작년의 농사는 그만큼 내 마음에 그늘을 줬었다. 그러다보니 올 해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의 성의를 보여야만 한다는 우려감이 앞섰던 결과였지만 어쨌튼 물을 주워서 이제 갓 심은 들깨모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그나마 내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농사를 지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올 해는 장마가 오기 전에 들깨를 심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들깨 모를 모종하지 않고 직접 밭에 기계로 심게 되었으며 그것이 기간이 한 달 남짓 빨라졌다. 이렇게 빨리 서두른 것은 장마에 모든 게 맞춰져 있었으며 결국에는 들깨를 살리고 못 살리는 운명이 달렸다고 보았다. 그래서 들깨모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옮겨 심은 군서 산밭. 기계로 심은 청성의 아랫밭. 장마가 오기 전까지 내린 결정은 들깨를 모두 심고 최종적으로 그때까지 살려 내게 되면 뿌리가 내려 장맛비로 굳게 자랄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모든 게 장마가 오는 순간 판도가 바뀐 것이다. 죽음에서 삶으로...


  "오, 하늘이여! 부디 이 자비를 이 땅에 내려 식물을 살려 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오. 이 땅에 생명이 꿈틀대게 하여 축만함을 깃들게 하는 부드러운 비의 손길이 온누리에 뻗혔으니... 이는 곧 깨달음이요. 우리가 그동안 이루지 못한 성공에 대한 염원과 꿈을 성취함이로다. 비가 내리는 것은 곧 황금이다. 그 놀라운 효과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고 인위적으로 환상할 때 인간이 자연에 도전한 무모함에 대한 깨우침이다. 이제 오셨지만 정령 그 놀라운 힘은 모든 걸 바꿔 놓셨으니 걱정할 게 없 듯 하네요. 지금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기쁨을 어찌할까요!"


  이렇듯 내 마음은 장마철로 접어든 하늘의 우중충한 빗깔을 2층 안방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 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그동안 두 번이나 속였었다. 그 오보로 인하여 계획이 완전히 틀어 졌었는데 남 쪽과 북 쪽으로 비가 내렸고 중간 지점이 이곳에는 비가 오지 않았었던 걸 원망하였던 마음이 지금은 사라졌다.


  뒤 늦은 감이 없잖았지만 비가 내리게 된 것은 이제 변화를 주웠다.

  그토록 애타고 기다리던 마음이 일시에 녹아 버리리라도 한 것일까? 이제 자만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인 본 괘도로 돌아 왔다는 사실. 아마도 아직도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밭에서 물을 주고 있을 내 모습이 상상이 된다. 모든 걸 전폐하고 물을 주러 다녔을 터, 그렇게 하기까지 결국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라는 작년의 경우가 겹쳐 보였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었다.


  비가 내린다. 

   비의 부드러운 유연함.

  그 속에 깃든 축축한 어루만짐이 이토록 애를 태웠던 순간을 녹여 버렸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 앞서 일어났던 가뭄의 순간이 떠 오를까?

  그 과거의 전력으로 인하여 아무래도 후에 일어나는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뭄의 과거가 없었다면 비의 고마움을 결코 알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작년에는 비가 내리건 말건 관여하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안 했었다.

  그래서 농사를 망쳤고 들깨밭에 말라 비틀어지고 크다 만 성장을 멈춘 앙상한 들깨 농사의 실패작을 청성의 밭과 군서의 밭에서 발견하곤 그야말로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제 성과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1년 농사를 망친 실패자의 모습으로 각인한 상태. 올 해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후회감. 봄에 똑같이 고생하면서 들깨모를 심었건만 왜 가을에 건진 게 하나도 없었을까? 그것은 중간에 관여하지 않고 가뭄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은 무능했던 모습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올 해는 이렇게 더 애를 태우고 노력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건 나에게는 약간의 노력일 뿐이었다. 그저 농사꾼이 아닌 아직도 견습생이며 학생에 불과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농사를 지으면서 발생할 터인데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새로운 농사 기법을 터특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내 노력에 달려 있었다.


  그건 새로운 농사 방법이었다. 인간이 자연과 융합하여 함께 깃들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을 터특하기만 하면 이 농촌에서 새로운 봄이 올 수 있었다. 그것이 신 농사기법으로 새롭게 도입된 아주 작은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 아닐까요. 대지가 그 손길에 생명을 얻고 축복하니 기다려왔던 단비는 새로운 역사요, 결정적인 순간을 연결하는 새로운 역사로다.-



  2. 이제 다시 당분간은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여유가 있고 풍요로운 세상이 보장되리라!

  님이 왔으니까. 축축하게 적셔대는 감미로운 단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흐린 날의 수채화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전경이 이렇게 반가운 전경으로 비쳐 보인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가!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