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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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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모음 100)

  이번에 2010년 8월 7일 금요일 부산 출장을 가면서 나는 오랫만에 글다운 글을 쓰는 듯했다. 특히 돌아오는 기차 내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많은 생각을 쓸 수 있었다.

  생각의 바다가 그럴까? 집중을 하면 할 수록 글을 쓰면서 깊게 몰입하게 된다. 왜, 기차 내의 의자에서 무릅에 어렵게 펼쳐 놓고 쓰는 노트북 컴퓨터의 글이 더 깊고 의미가 있게 느껴지는 것인지...

  마치 유수에 낙엽이 떠가는 듯 거침이 없이 흐른다. 그것은 낙엽이 물길을 따라 둥둥 떠가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아래 물이 그렇게 흐르는 것이며 다만 낙엽은 그 물의 흐름을 비쳐주고 보여줄 뿐이었다. 사실은 낙엽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물이 흐는 것이다. 

  생각의 흐름도 어쩌면 환경이 좋건 그렇지 않건 쓰겠다는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출장을 다니면서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를 몇 개씩 여유분을 갖고 다니는 것도 그렇게 생각이 나는 많은 내용을 애써 붙잡기 위해서라는 점이었다. 낙엽이 물길을 따라 흐르면서 그 흐르는 물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을 담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그처럼 깊고 온유함을 느낀다. 아마도 그런 깊이에 다가가는 것이 곧 내 문학의 정진이리라! 

 

( 생각 100)

2010년 8월 6일

 1. 내가 그리는 그림에 대하여...


  단지 그것 때문일까? 내가 그리는 그림을 삽화로 책에 넣기 위해서? 아무래도 그 의도는 많은 잇점이 있었다. 앞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비교해보고 대입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그림 그리는 방법을 터특해 왔으므로 삽화로의 전환은 의외로 쉽게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변화하고 전문가적인 표현은 아직도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므로 조금씩 더 노력하면 어느 정도 목적은 이룰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든다.


  나는 또 상황을 봐가면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다르게 변화시킬 생각이다. 천편일륜적인 그림보다는 조금 빠르고 쉬운 방식으로 하나의 책에 들어가는 내용은 총괄적으로 같은 표현 기법을 쓰고 다른 책에는 다른 새로운 기법을 쓰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2. 오른쪽 허벅지가 결린다.(오른 쪽 골반 위) 

  오른 팔꿈치가 아파온다. 걷기 운동을 하면서 경미한 증상이 오늘 부산으로 출장을 나가면서 심하게 온몸을 감싸왔다. 부산 역에서 내렸을 때 계단을 오르면서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가령 걸음을 걸을 때마다 오른쪽 바지를 걸쳐 놓는 부위가 아픈 것은 최근에 생긴 통증이었다. 이것은 걷기 운동을 하는 중에 계속하여 느껴지고 신경이 쓰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통증을 감내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 부산 역에 내려서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느끼는 통증은 유독 강하게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1시간 전에 나는 잠을 자면서 아내에게 말했었다.

  “12시에 깨워줘!”

  아내가 잠을 자지 않고 12시에 깨웠으므로 무척 졸렸다. 11시에 잠을 자면서 왠지 TV 소리가 신경이 쓰였었다. 인터넷으로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었는데 새벽 01시 08분 차였다. 부산 역에 새벽 4시에 도착한다고 쓰여 있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그다지 아픈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열차에서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잤지만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으므로 피로가 누적이 된 듯싶었다.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에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가 만원을 이루자 나는 계단을 타고 오를 것을 선택하고 난 뒤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려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허벅지에서 통증이 온몸을 감싸왔었다.


  부산 역 앞의 광장에서 잠자리를 찾았다. 마침 군데군데 놓여 있는 가로수 주위에 놓여 있는 원형의 나무 의자 위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는데 넓적한 판자를 원형으로 붙여 놓은 나무 의자 위에 네 칸에 하나씩 위로 솟구친 원형의 돌기둥이 등에 닿지 않게 허리와 목뼈를 애써 누워서 등만 판자에 밀어 넣고 잠을 청해 보았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른 곳을 하나씩 시야로 살펴보다가 돌출한 곳이 없는 다른 곳을 찾아냈다. 열 개가 넘는 가로수들 사이에 두 개가 돌출 부분이 없었으므로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잠을 청해본다.  


  잠에서 깨어 목에 끈으로 걸어 상의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본다.

  ‘6:00’

  4시에 도착하여 그럭저럭 잠을 잤지만 깊은 잠은 들지 못했었다. 6시부터는 전철이 다니는 시각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가방을 둘러맨다. 광장을 지난 뒤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지하고 내려가는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그래서 계단 끝부분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종이 페이퍼로 보이는 것이 붙어 있는데 양쪽에 알루미늄 금속으로 감싸 있었다.

지하도를 타고 내려가서 전철을 타고 명륜동역까지 가는 동안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들고 글을 쓰다가 7정류장을 지나서 범어사에서 내려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L.K는 여전히 무능해 보였다. 무능하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공장을 운영하는데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매우 투자에 인색하다는 뜻이다. 영업을 확대하여 생산성을 높이려고 하지 않고 현재의 공장 운영에 만족하고 그에 따라 영업, 생산, 투자를 맞춰 나가려는 경향이 심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이번 지역구역 의원으로 출마를 하였는데 7번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는 것이었다. 1번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들였지만 보기 좋게 낙선. 그 영향 공장 운영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절약하겠다고 말하였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운영이었으며 앞으로의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요연이었다. 그는 청추에 있던 제 2공장도 문을 닫고 그에 따른 건물 매각의 모든 것을 헐값이 매각하였으며 그 돈을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하는데 쏟아 부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 남자에 대하여 결혼 이후에 모든 게 의지하였으므로 건강하던 관계가 나이가 들면서 정상적이지 않고 비만으로 불치의 병을 앓게 되면서 가족적인 관계는 파탄을 맞을 정도로 심각하게 전개되고 말았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원을 잃게 되면서 자신이 생활비를 벌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남편은 생활력이 강했지만 의외로 비만한 편이었다. 갑자기 뇌경색으로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기구하게 살고 그렇게 독수공방 독신으로 산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건강이란,

‘건강할 때 챙기라! 과연 젊은 시절 건강에 대하여 한번쯤 뒤돌아 본적이 있었던가!’

  이웃집의 남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 증세를 느끼고 있었지만 40 대에 고혈압이 찾아 왔고 뒤 이어 당뇨라는 변명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사회생활을 해왔다면 그는 언제나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그다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다. 과로사가 많은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건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에 조금만큼도 의혹을 갖지 않았음을 뜻했다.


  아내와는 구미의 대기업에 같은 동료로 근무했고 결혼 후에 단란한 가족을 이루는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연사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4. 어떤 불편함.

  부산 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에서 5호 56호 앞 사람이 앉아 있는 5호 60호에서 의자를 뒤로 젖혔는데 노트북 컴퓨터와 그만 붙어 버리는 것이여서 완벽하게 앞으로 젖힐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면을 절반 정도만 열고 자판을 두두리고 있다. 그것을 앞에 앉은 중년 남자는 전혀 모르고 잠을 취하고 있는 듯한데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컴퓨터의 자판을 두두리고 있다. 조금의 불편함을 인내하고 세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기 때문일까?


5. 방금 전에 2시간 동안 여유가 있어서 들어갔던 PC 방에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6. 강력한 갈증을 느꼈다. 부산역에서 무궁화 호가 출발을 하여 청도역까지 오는 동안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잤으므로 시달려 왔던 것을 볼 때 졸음을 느꼈으므로 잠들었었다. 의자에서 잠을 자는 것은 아마도 습관이 들어서 괜찮았지만 에어콘이 약한 탓일까 무척 갈증을 느끼고는 앞 자의 휴게실에서 게토레이와 음료수를 1800원 주고 사서 마셨다.

  음식물을 사서 먹을 때마다 고형압과 함께 가려 먹어야만 하는 가공 식품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음식품에 독소들을 혼합하고 있던가! 콜레스톨이 높은 음식물들, 일테면 감자로 만든 포테토칩같은 기름에 튀긴 음식물을 먹으면 즉시 혈압이 상승을 할 수 있었으므로 음식물을 가려 먹을 필요가 있었다. 커피가 그랬고 위해한 음식물을 먹고 150을 오르락 내리락하던 와중에 나는 내 몸에 대한 자각 증상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내 몸이 정상적이지 않았으므로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목록을 계속 추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아마도 그게 최선책인 듯싶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 식품이 아닌 인공식품들이었다. 무엇인가 혼합을 하였는데 위해 식품인 경우에 내 몸에서 반응하여 고혈압을 유발하였었다. 가공식품을 그만큼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음식물 반입을 꺼린다고 할까? 음식물에 대하여 이제 가려 먹는 식생활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이제부터는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서 양파를 생으로 식사를 할 때 즐겨먹곤 한다. 오늘 명륜동의 자판을 하는 포장마차에서 만들어 주는 토스트를 두 번 먹고 또한 칡즙을 두 번 먹었는데 그 중에 칡즙은 몸에 유익한 듯 했다. 입에 쓴 맛이 들지만 목을 넘기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일회용 종이컴에 따르니 한 잔도 되지 않았는데 천 원이었다. 토스토도 계란을 넣고 야체를 넣고도 천 원에 불과하였었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에 토스트를 먹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칡 즙을 아주머니을 위해 구입한 것이었고 두 번을 먹고 사셨다. 점심까지도 먹는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배가 고파서 부산 역 근처의 식당에서 돼지 국밥을 사먹지 않을 수 없었다.


7. 열차는 어느새 동대구역에 도착을 하였다.

  입구로 진입하는 중에 공사 현장을 보았다. 동대구 역의 지하쪽으로 기차가 진입을 하기 시작하였고 건물은 플랫포옴에 굵직한 교각을 세우고 높게 지어져 있는 것이 역사의 한결같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플랫포옴은 어둠침침하고 컴컴해 졌으며 음침했다. 지하 화 한 것처럼... 그런데 여기서 굵은 기둥은 처음에는 아이 뷤(I-Bim)의 구조로 세워졌고 그 기둥에 시멘트를 몰타 형식으로 들어 페인트를 칠하듯이 발랐다는 점이었다. 기둥과 천정까지도... 모든 역사가 그렇게 세워졌는데 그것이 현대식은 건물 모습이었던 것이다. 서울역, 대구역, 부산역.... 그리고 고속전철화로 인한 초 현대식 건물의 외곽들은 모두 그렇게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가리기 위한 시멘트의 도포였다.

  동대구역의 입구쪽에 붉은 색으로 다시 연결해서 건물을 짓고 있는 전경이 바로 그렇게 골격을 형성한 모양으로 새로 연결되어 나온 돌출된 새로운 아이뷤 철제 기둥과 가로 놓여 있는 서까래 형태의 같은 기둥이었다. 마치 성냥 개비를 본드로 붙여서 높이 쌓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렇게 칸칸히 덧대여 놓고 각 층마다 데크프레트라는 골이진 철판을  그 위에 콘크리트 거푸집을 부우면 콘크리트로 바닥면이 생선 되는 형태였다. 기둥은 외곽이 드러나는 것을 페인트 칠하지 않고 흰돌가루 같은 석분을 본드와 시멘트로 섞어서 콤프레샤로 뿌려서 접착시키는 형태로 건물의 외형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현대식 건물의 모티브였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펌프카를 고치러 오는 Goan.Seng 이라는 사람이 매일 어렵다고 울상을 짓는 게 어찌보면 엄살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건물을 모두 콘크리트로 타설해서 짓는 현대식의 건물들을 볼 때 펌프카가 필요한 부분이 그만큼 더 많아진 게 사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부분이었으므로 나는 갑자기 내가 그의 요구에 너무 수궁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의 요구라는 것은 저렴한 가격으로 고장난 부분을 수리해주고 용접하였으며 또한 늘상 어렵워 하는 그의 모습에 애처럽게 느끼곤하던 내 자신의 모습이 깊이 부각되었다는 점이었다.


8. CNC 조각기계에 대하여.....

  Queen을 만들어 놓고 나는 여러 부분에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문제를 접어두고 새로운 구상을 시도할 생각이다. 그것은 마하를 연결하여 조각기로서의 작업을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조만간 그런 의도가 선행될 것이며 그렇게 시도를 해봄으로서 기계의 성능을 높여갈 생각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응용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앞으로의 사활에 전제조건이 되었으므로 조금씩 발전하여 나가는 방법은 프로그램을 일러스트와 연관하여 마하로부터 완벽한 프로그램을 응용할 수 있게 하는 거였다.


  지금까지의 NC 기계로서의 작업은 합격점에 이르렀지만 마하와의 접목은 시도해보지 않았으므로 프로그램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더욱 개박되어야만 했고 그 문제가 앞으로 높은 비중을 이룰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직도 갈 수 없는 가보지 않은 높은 벽을 느낀다. 왜냐하면 고강도의 프로그램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최선책이었고 그렇게 될 필요성이 절실했으므로....

그런데 아직도 내가 그 부분에 접근을 불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환경적으로 아직 때에 이르지 않았음이다. 능력적으로 돈에 대한 여러 가지 능력이 가로 막고 있었다. 그래서 돈벌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도 연구는 뒷전으로 미뤄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연구가 선행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일이 요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수 밖에 없음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기계에 얼마만한  프로그램을 접목 시키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조각기로서의 일케면 수많은 변화무쌍한 작업 방법에 있을 것이다.

  우선 봉황새를 그려내는 것을 보자!

  그리고 용의 형태와 각종 비너스 인어공주의 형상을 조각해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프로그램화하고 그림을 그려야만 하며 2도, 3도의 입체적인 조각상을 기계가 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했다.

  조각기계가 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그것을 운행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얼마나 응용할 수 있느냐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그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연구를 위해서는 생활이 안정될 필요가 있었다.


9. L.K의 인물됨에 대하여...

  그는 어떤 식으로 든 투자에 대하여 등한시 한다. 대신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정치에 뛰어 들고자 방향전환을 모색해 왔었음으로 이번에도 자신이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매우 분개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였는데 결국에는 낙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그만 좌절을 했고 이제는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정치란 그에게 있어서 달콤한 유혹이었다. 시의원에 도전할 때만해도 승승장구하던 와중에 그만 공천에서 미끄러진 이유가 순전히 당의 고위공직자들이 낙하산인사를 하듯이 지역구에 뛰어들게 된 직후에 자신이 받지 못한 공천으로 무소속을 출마하게된 것이 패인의 하나였었다.

  그가 경쟁업체에서 밀린 사업운은 그다지 따르지 않은 것은 그 시점이었다. 공천을 받지 못하고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낙선을 한 것과 같은 시기에 부산에 인맥을 둔 1공장과 청주에 있던 2공장의 생산력이 극감하게 되었고 급기야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공장을 처분하고 패업 신고를 하였으며 공장도 매각처분하고 그 돈으로 선거바람에 합류하게 되면서 그는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돈으로 자신의 공장에 투자를 해야만 했었다. 안팍으로 시련의 시기였다. 공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높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것을 대신하여 자동화 시설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생각으로 투자 시기를 놓치게 되었는데 그가 그렇게 조금 한눈을 파는 동안 B라는 다른 업체가 강력한 현대적인 시설로 등자을 하였으며 최신식의 기계와 기술자를 불러들여서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던 것이다.


   우선 안팎으로 새로운 변수가 발생되었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그 첫 번째로는 원자재 값의 인상이었다. 불과 몇 년 시기에 원자재의 값이 폭등을 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다양한 거래처의 확대를 하지 못하였다. 안이하게도 자신이 유명한 국대 몇 째 안가는 대기업의 임원이었고 그것을 내세워 납품 경로를 확보하였었지만 그것은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납품을 하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의 대기업들이 시대에 역행하지 않고 다양한 구매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연고가 있는 기존의 거래처만이 아닌 다른 업체와의 경쟁을 통하여 남품 단가를 낮추는 세계적인 기업처럼 투명성을 내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살아남기 세계화의 추세였고 그만큼의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판로가 다양화 되었음을 뜻했다. 그렇게 변화된 분위기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신생업체의 등장을 표면화 시켰고 그런 업체가 같은 업체에서 도약을 하고 발전을 하고 우위에 설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존속은 예전처럼 안정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조건이 괜찬으면 아무리 연고가 있고 그동안 관계를 맺어 왔던 하청업체도 하루 아침에 바뀔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단가 관계도 나빠졌으며 가장 불리하게 된 것은 원자재의 상승으로 단가 가격을 맞출 수 없다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특혜와 온실거래가 끊긴 것이다. 한 번 맺은 거래처와는 불변한다는 그동안의 절대불변이라고 여겨져 왔던 대기업의 아성과 위상이 무너진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단가가 일반 중소기업에 납품하는 단가보다도 더 저렴해졌다. 단지 안정적으로 결제가 이루워진다는 조건이 가장 매력적이긴 해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청업체 입장에서 볼 때 기존의 방식으로는 존립기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일로에 빠진 것이었다. 그동안의 오랜 거래 관계만을 유리한 조건으로 내세울 수 없는 처지.

  누가 말했던가!

  ‘오랜 관행은 깨지기 마련이다! 구태의연한 자세는 버려라!’하는 새로운 방식의 진리를 깨닫는자가 유리한 상황이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급변하는 외부 상황을 그대로 벼락맞듯히 고스란히 맞게 되었고 그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악화된 모든 조건을 극복할 수 없다고 점차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건강까지도 좋지 않았으며 자식을 데려다가 인수인계를 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남들은,

  “그 아비에 그 아들이 오죽하랴!”하고들 그들 부자를 욕하기에 이른다.

  도중하차하는 중소 기업으로 서서히 토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퇴출기업.


  대기업들은 다른 하청업체와 복구거래를 했고 그 단가에 기존의 거래처의 단가를 맞추라고 요구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단가는 낮아 졌고 그만큼 이익은 감소하게 되었다. 구태의연한 공장의 작업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종업원들은 계속하여 바뀌었다. 기술자가 사라진 공장은 저임금으로 유지하는 노인들로 체워졌고 그들은 고급화되지를 못하여 계속되는 여러 조건들에 제품이 좋아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거래처는 자꾸만 끊겨 나갔다.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서 구태의연한 자세로 대기업의 거래처를 유지하려다보니 이익은 계속 반감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적자야 적자! 그런데 뭣 때문데 공장을 운엉해... 대기업이 더하다니까 형편없는 납품가를 보라고 원지 가격은 올라가고... 더러워서!”


10. 뚱뚱한 체격의 남편.

  그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더러 다른 사람과는 조금 불안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두고 마치 한통속의 무리는 같은 생각을 한다.

  부인은 계속하여 자신의 몸이 비만하지 않게 활동을 하는 편이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살이 쪘고 살이 찐 것만큼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단지 비상한 머리가 그것을 받혀주는 탓에 재물운이 있어서 돈에 구애 받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남편을 믿고 따랐으며 의지하게 되었으므로 가정불화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운동부족으로 비만해지는 것을 보다 못하여 운동을 하라고 권유하는 게 지쳤다. 구태여 남편과의 관계를 편하한다고 생각이 들까봐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런 싫은 소리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 가장 나은 방법이고 유용한가?'

  '어떻게 그 방법론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은 무엇인가?'

  '내게 있어서 정도를 논할 수 있는 건 시기상조였다!'

  그렇다면 가장 현명항 방법으로 지금의 처지에 대하여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삶의 진정한 방향을 따져볼때 아무리 잘 되고 정확한 이론에 근거한 실제적인 작업이라고 할지라고 그곳에느 모순이라는 게 있었다. 그건 방법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최악의 악수(나쁜 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잠시 착각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