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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장

부산 출장 (139)

2013.12.19 12:04

文學 조회 수: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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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에서 양산으로 가는 전철에서... 전철 아래 쪽의 철길은 경부선 열차 길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대한민국에서 철도 파업으로 교통 지옥을 경험하다니... -

 

  2013년 12월 18일 나는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기계제작을 하고 있는 내가 A/S를 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 항상 애용(?)하는 게 있다면 열차였다. 그것도 무궁화호만을 고집한다. 지금까지 고속전차는 단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막대한 노열티를 지불하고 막중한 국가 채무를 안겨주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고속전철의 도입과 대도시의 역사(驛舍) 건물의 신축을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만은 빚을 떠안고 승객들에게 전이할 높은 통행료(?)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순수 국내 기술을 개발한 일본의 고속전철이 부러웠다. 이 또한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죽을 때까지는 고속전철을 타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한 것이다. 

 

  우선 내가 이 글을 쓰게 되는 동기가 우리 나라 철도 사업의 후진성을 맹렬히 비난하고 싶어서였다. 이번 철도 파업의 여파로 결국에는 실이익은 KTX가 얻는 것이고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국민들이었다. 짐짝처럼 입석표를 끊어서 무궁화호에 탑승을 하고 발디딜 틈도 없이 서 있어야만 한다. 또한 차량은 감축되어 그마저 빈자리에는 모두 고속열차로 운행되었으므로 서러운 이용객들은 울며겨자 먹기로 막연히 기다다가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그것이 서러우면 고속열차를 타라는 횡포에 기가 막히다. 구포에서 오후 3시 41분 무궁화호 열차 이후부터 옥천까지 가는 옆차표를 끊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다. 구포역에서 뒤편으로 오르는 고가 인도를 걸어 오다가 세워진 차량이 오후 3시 41분 열차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뒤에는 야간 10시에 출발하여 밤 12시에 도착하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혼잡함을 막으려고 무인개표기에 서 있는 아르바이트 생(남자)가 재빨리 다가와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시고... 그리고 다음을 누른 뒤에 카드 번호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하고 친절하게 차표를 끊어 준다.

  "나도 할 줄 아는데... 그냥 둬요!"

  해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화면에서 차표를 꺼내서 내게 건제 준다.

  나는 경악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밤 열 시에 출발해서 열 두시에 도착!"

  차표를 반품(취소)하고 이번에는 대전을 뒤에 선택하고 다시 끊기 위해 시도해 본다. 대전에서 옥천까지는 불과 12km 에 불과했고 시내버스가 다녔으므로 되돌아 내려오면 되었다. 무인발권대에서 시간대를 살펴 보았더니 구포-대전 간에 모두 고속전철로 도배가 된다. 그 뒤에는 전처럼 밤 10시에 무궁화호 열차 한 대.

  "우-씨~~~"

  아무리 끙끙대고 재차 시도해 보았지만 똑같은 내용.

  나는,

  '차라리 무궁화호 열차를 포기하고 고속열차를 탈까? 고속열차를 도입한 김영삼 대통령시절. 왜, 우리 기술로 고속전철을 구입하지 않고 막대한 세금으로 기술료를 지불하면서 외국차량을 도입할까? 과연 남과북이 단절된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고속전철이 아직 필요할까? 우리 기술로 순수하게 개발하면 막대한 외화 자본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또한 국가 부채도 경감될 수 있을 것인데...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절대로 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맹세하였고 지금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안아왔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깨트리게 만드는 중대한 상황으로 나는 한참동안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대구까지만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시 대전가는 열차를 타기로 하고... 그리고 생각하기를,  

  '이 놈들아, 너희들만 잔재주만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편법을 쓸 줄 아니까?' 하며 KTX의 처사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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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역에서 16시 21분에 탑승구로 입장을 한다. 16시 29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기 위애서... 대구가 목적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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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다시 16시 48분 열차를 기다린다. 13번 출구에서 승차를 하라는 표시가 전광판에 뜰 때까지 나는 구포역(16:29발)에서 출발하여 동대구역(17:49 도착)까지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왔었다. 그리고 18시 48분에 출발 20시 41분에 대전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렸다. 동대구 대합실에서 1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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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에 보이는 전투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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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 역사(驛舍)내의 깨끗한 신축 사옥에서... 1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면서... 2층으로 오르는 층계 난간에 디카를 올려 놓고 시간 타임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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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동대구 역사의 한 장면 이런 홀이 중앙 통로를 통하여 계속 되고 있었다. 한편으로 허영에 가득찬 역사들로 신축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고속전철의 개통과 함께 시작된 각 지역의 역사가 유리와 철기둥으로 지어졌다는 초호화식 역사들로 바뀌는 것도 고질적인 적자 운영의 방만화에 한 몫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물로 대구 역사뿐이 아니고 대도시의 역사가 얼마나 외형적인 부분에 집착하고 방한방열을 무시한 체 유리로 지어진 것과 함께 서민들의 모습에는 더할 나위없이 낭만적이지 않아 왔었다. 그 뒤에는 얼마나 많은 빚이 더 KTX의 운영에 적자를 남기게 되었을까? 하는 외향 지향적인 저돌적(?) 이고 앞 뒤 구분없는 무분별한 처사에 분노가 치민다. 앞 뒤 분간하지 못하고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의 관리자들에게 "과연 적자가 나는 방만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으면서 그것을 계속한 이유가 무엇이고... 이제와서 적자가 난다고 국민들에게 더맡기는 그 무책임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영이냐? "하고 묻고 싶다. 또한 철도파업 노동자에게는,

  '국민들을 위한 노동자로서 과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작금의 운영에서 얼마나 힘든 국민의 고통을 더 자아내야 멈추겠느냐? 너희들은 서민들의 등을 치고 호위호식하며 고급 공무원로서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봉급과 보너스 퇴직금을 받으면서 국민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느냐!"하고 소리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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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20시 41분 도착이라는 대전역에 그보다 한참을 늦게 나오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궁화호 열차에 가득한 승객들로 인하여 얼마나 혼잡했던가! 를 역역히 지켜 보았었다. 출구, 통행로, 출입구 등에 발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화호 열차의 증편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고속전철만 승객이 몰리도록 차시간을 끼워 맞췄는데 그것은 한 눈에도 어떤 의가 있었을까? 짐작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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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전역에서 열차에서 내려 옥천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6시 37분(발) 옥천역에서 구포(9시 42분도착)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갔던 것에 비한다면 지금은 길고 지루하며 멀미로 가득찬 짜증나는 여행길이었다. 또한 이렇게 두 번씩이나 열차를 갈아타지 않았으면 2시간을 더 길에서 허비하였을 것이라는 생갈을 하면 한마디로 지옥철의 철도 여행이었던 셈이었다. 승객들로 만원을 이룬 틈바구니에서 입석으로 대구에서 대전까지 오는 동안 나는 바닥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겪은 가장 험난한 열차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난 뒤에 마치 후진국형의 지루한 열차 여행과 더불어 망국으로 향하는 철도파업의 파행을 낱낱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언제나 참다운 여행이 될까? 예전에는 열차 여행이 그토록 낭만적이었다. 내가 해병대 하사로 진해 훈련소에 입대를 하던 날에 삼랑진 역을 통과하던 낭만적인 모습이 그토록 그리운 이유는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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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랑진 역에 서 있는 열차에서... 군입대 할 때 이곳에서 진해까지 가는 열차를 타고 갔었다. 그만큼 삼랑진 역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

 

  구포에서 대구까지 갔다가 대구에서 대전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고 다시 대전에서 옥천 간의 버스를 타서 집에 돌아 왔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그 지루함과 멀미로 피곤함은 가중되어 곤죽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