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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24. 내 손으로 건물을 짓다.

2004.12.01 09:02

문학 조회 수:3142





  윈치(a winch; a hoist.윈치, 권양기(捲楊機); 굽은 축, 크랭크; (낚시용의) 릴. 기중기. )
  윈치로 감아올리다.
  내가 윈치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세 개의 부속으로 나뉜다. 모타(moter), 감속기, 와야가 감긴 드럼통 그렇게 세 부분을 연결시켰다. 전기를 넣으면 스위치에 따라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모타가 돌게 되고 모타와 연결된 감속기가 속도를 줄이면서 힘을 높이게 되고 그것이 다시 와야가 감긴 드럼통을 돌리게 되며 줄에 매달린 물체가 높은 곡세 위치한 힘의 방향이 반대로 바뀐체 하늘로 들어 올려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윈치기계를 만들어 사용한 이유는 크레인을 빌리면 하루 임대료가 24만원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순전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되는데 무엇보다 전기를 미리 가설하여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윈치로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물건을 들어올릴만큼 버틸 수 있는 기둥이 있어야만 하였다.


  I. M. F(긴급 구제 금융)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현재의 땅을 구입했다.
  조립식으로 9평 정도의 사무실이 져 있었다. 그 사무실을 헐고 기초 공사를 한 뒤 10 미터 철재 빔(H자 모양의 건축용 쇠)을 세웠다. 사람을 전혀 쓰지 않고 나와 아내 둘이서 기둥에 용접으로 3층 높이로 세웠던 것이다. 윈치라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철제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철재를 들어 올려 연결을 시켰다.
  크레인을 하루 빌리는데 30만원이여서 윈치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윈치(기중기, 크레인, 호이스트의 일컬음)에는 바퀴를 달려 이용을 할 수 있었으며 들어 올리는 자리의 기둥에 가로로 도로레을 달고 그곳부터 중앙으로 다시 가로대를 들어 올린 뒤에 양쪽을 용접으로 붙여가면서 계속하여 건문을 지어 나갔는데 그 속도가 무척 느리고 상단부에 가로걸친 뒤에 그 아래쪽으로 도르래를 내려뜨렸서 들어 올리게 되었다.
  건물을 짓는 순서는 우선 10미터짜리 기둥을 세우고 9미터 부분에 가로 지르면서 옆으로 길게 가로누워 다시 대어 나간 뒤에 아랫부분과 옆부분을 연결해 나갔다.
  윈치의 사용으로 크레인을 빌리는 임대료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반반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3층부터 시작하여 2층 1층 그렇게 서로 연결시키는 가로 기중을 대어 놓고 그 위에 데크프레트라는 철판을 깐뒤에 콘크리트를 부웠으며 다시 벽면은 벽돌을 쌓았는데 그 때마다 윈치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되어졌다.
  벽돌과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린 때는 모두 윈치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마치 승강기처럼....    
 
  아내와 단둘이 건물을 짓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무슨 오기란 말인가!
  그렇지만 윈치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1편에서 약간 기술하였지만 예전에는 1층에서 3층에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게를 지듯이 져 날라야만 했었다. 그런데 윈치로 승강기를 만들어 건축 자제을 올렸던 것이다. 또한 기둥과 서까래등은 모두 철재 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윈치를 손수 제작하여 바퀴를 달고 이동을 하면서 기둥을 세우고 옆으로 대어 나갔고 벽돌을 쌓고 자제를 실어 나를 때 모든 들어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둘이서 3층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층과 3층 옥상에 철근을 엮어 넣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쏟아 부었다. 펌프카를 불러 아내와 단 둘이서 말이다. 그것도 예전처럼 합판으로 받치고 수없이 많은 받침목을 대주던 공정을 생략한 채, 질통을 지고 모래와 자갈을 나르지 않고 펌프 카와 레미콘 차만으로 3층 높이의 콘크리트를 쳤던 것이다. 레미콘 여섯 차를 쏟아 부었다. 그렇게 쉽게 콘크리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되면서 삽으로 모래, 자갈, 시멘트를 섞어 대던 일은 먼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 얘기처럼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랜 숙원이던 내 집을 직접 내 손으로 짓고 그 높은 옥상에서 오리를 날리게 되기까지 바탕이 된 나만의 주제는 그렇게 탄생되었으니……


  격동기의 25세였다.
  여기서 잠시 과거를 접어 두고서 현실로 돌아 와 보자.
  그럼, 지금 42세인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떤가! 물론 대 변혁을 했다. 결코 그 당시의 우울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런 어려운 과정이 무엇보다 지금의 내게 커다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인생이란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다고 했던가!
  한번 현재의 내 모습을 비쳐보겠다.

  우선 생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25세부터 새로 찾은 직업으로 오직 한 길만 파고들었다. 우선 적성에 맞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또한 남들 못지않게 주야로 일하고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노력과 험난한 과정을 기술하는 일을 생략하기로 하자. 적절치 않으니까? 단지 단지 지금 이곳에 정착하게 된 동기와 의지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아야만 할 것이다. 오직 하나로 몰입하고 매진할 수 있게 한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바탕을 둔 현재의 모습을 암시할 필요가 있었다.
  '왜?'
  '무엇때문에?'
  '삶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인생역로이며 이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문해본다
  
 
  그 옥상 위에서 날리는 오리들의 활공을 보라!
  두 번째의 사진 촬영이 있는 날.  날씨는 구름이 끼어 햇볕이 오락가락 했었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인가 보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사직 찍어도 되겠어?”
  “구름이 멋있는데요. 거기다가 간혹 햇빛이 내 비쳐서 좋은 작품이 되겠는데요.”
  막내 동생이 서울서 휴일을 맞아 내려 와 두 번째의 사진을 찍겠다고 했지만, 날씨가 잔뜩 구름이 끼어 흐린 탓으로 다음으로 미루면 어떻겠느냐고 하려 했지만, 사진기로 하늘을 바라보던 아우는 반대의 의향을 나타냈던 것이다. 구름이 끼어 있기는 했어도 간혹 햇빛이 났다. 지지난 주 일요일에도 날씨가 흐려 사진 촬영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먼저는 하늘 전체가 흐렸기 때문에 도저히 힘들었지만, 오늘은 구름이 끼어 간혹 어두워지기 때문에 태양 빛으로 인하여 더욱 화려할 것 같은데요.”
  “그래, 알았다. 그럼, 오리를 몰고 오마!”
  아주 좋다는 막내의 의향에 따라 나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오리를 쫒아 오기로 했다.

  
  집을 내 손으로 졌는데,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너무나 많은 고초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채……

  그리곤, 매일매일 3층에 올라 와서 아래를 바라보며 이곳 전경에 취해 꿈인 듯 의심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나름대로의 벅찬 즐거움이 그저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