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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37. 새로운 도전

2004.12.23 14:01

문학 조회 수:3164



(1982년도 그 시절 나의 가족관계. 4형제 중 장남으로서 어깨가 무거웠었다. 교복을 입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며 뒤에서 왼쪽편이 필자이다.)
  
  내가 벽보를 보고 찾아 간 공장은 도로변(길가)의 작은 철공소였다.
  밖에서 그라인더로 쇠를 갈았기 때문에 땅 바닥에 남아 있는 철가루가 녹이 슬어 나무로 된 미닫이문과 구석구석이 모두 녹물 색이다. 멀리서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였다. 왠지 초라하기만 한 나 자신이 그들에게 드러나자 부끄러웠다. 저들보다 나는 너무나 무지한 탓이었다. 왜, 그렇게 비참해 보였었는지. 그리고 숨고 싶은 생각뿐이었는지……
  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열 평 남 짓한 내부에 쇠를 깎는 6자 선반기계와 2호반짜리 밀링이 있고 그밖에 구멍을 뚫는 탁상용 드릴머싱과 대형 드릴머싱이 구석진 모퉁이에 처박혀 있다. 중앙의 바닥에는 이곳에서 생산 품목인 듯한 대형 드릴머싱이 짙은 녹색으로 도색된 채 진열되어 마무리 작업 중이었다. 모두 5대였다. 작업장에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며 무언가 설명을 하다가 내가 들어서자 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인지 언성을 높여 잘못을 따지고 있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좋지 못해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저어, 방금 전에 전화 드렸던 사람인데요?”
  “아, 그래요! 이리 와서 앉아요!”
  안경을 쓴 나이 들은 사람이 한 쪽 귀퉁이에 놓여 있는 책상 쪽으로 향하면서 불렀다. 그리곤, 의자에 앉으면서 맞은 편 의자에 앉기를 권하였다.
  “그래, 얼마나 해 봤어요?”
  “예? 아-예에! 전혀 모릅니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 염체 불구하고 찾아 왔습니다. 일만 시켜 주시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전혀 안 해 봤어요!”
  “예, 그렇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안 해본 사람은 어려운데……”
  내가 오히려 더 크고 강력하게 말한 반면, 노인네의 표정은 시큰둥하였다.
  “그럼, 돈은 그다지 바라지 않을 테니까. 일만 시켜 주십시오!”
  나의 애원하는 듯한 말에 결국에는
  “그럼,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하고 승낙을 한다.
  “내일부터 올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내 일부터 나와요.”
  “예, 고맙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회갑을 넘긴 노인네가 사장이었다. 5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기술자였지만, 시력이 안 좋고 기억력이 부족한지 항상 사장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었다. 그렇지만, 그 기술자 분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되도록이면 모든 것을 알려 주려고 했지만, 내가 전혀 따라가질 못했다. 그래서 재료를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장 앞에서는 선반으로 물건을 깎는 작업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점신조차 내 돈으로 옆의 칼국수 집에서 사 먹었으며 봉급도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였다. 그것은 전에 다니던 양식기 공장에서 조장으로 대우 받던 액수의 다섯 배 정도가 작은 액수였다. 실습생처럼 대우를 받았지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만큼 전혀 일을 못해서 뒤에서 보조만 하였으니까. 드릴로 구멍을 뚫던가, 그라인더로 주물 덩어리를 갈던가, 아니면, 골목 어귀에 거래처인 인쇄소에서 주기 적으로 갖고 오는 기계 부속에 용접을 하던가. 탭(taping)을 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일도 없으면 너무도 심심하여 밀링 기계 위에 기계 서적을 올려놓고 공부를 하곤 하였다. 선반으로 쇠를 깎기 위해 바이트 절삭 각이라던가. 드릴을 가는 법(法), 기계 도면을 그리는 법, 그리고, 용접하는 법을 상세하게 서술한 기술 서적을 읽고 통달 하였었다. 그러나 기술로 습득하다는 것은 산 너머 산처럼 너무도 멀어 보였다. 머리는 트였으나 몸이 따르질 않았다

  “우린 왜정 시대 때 굴욕적으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내가 앞서 배웠던 선배가 그랬었다. 자신들은 일본인 기술자에게 어깨 너머로 겨우겨우 배웠다고.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경을 쳤다는 거야. 그만큼,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고집해서 우리에게 전수하지 않았다고 했어. 얼마나 어렵게 배웠겠어. 그리고 해방이 된거지... 일본인 기술자들이 떠나 간 자리에 어깨 너머로 그나마 배운 보조자가 졸지에 사장들이 된 거지.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이었고. 그런데, 그렇게 배운 탓에 모든 용어가 일본말 일색이다.”
  황 씨라는 기술자는 내게 그렇게 말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에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웠다.
  나는 무엇보다 일본 용어를 배워야만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전수할 때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는 일본의 기술 속국(屬國)이란 말인가! 내가 아무리 개탄을 한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내가 만드는 기계의 중요 부품은 일제(日製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불과, 3개월 밖에 있지 못했다. 임금이 적은 것도 이유지만, 배울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가 없었다. 제품을 버린다고 선반기계를 맡기지 않았다. 언제나 견습공일 것이다.
  두 번째로 간 곳이 대전역 근처의 철공소 골목, 기어(Gear)를 만드는 곳에 입사하였다. 그렇게 잡고 싶어 못 견디던 선반기계 앞에서 반복해서 같은 작업을 수 없이 반복했다. 기어와 벨트를 거는 뿌리(Puly)라는 제품을 깎아 골을 내는 일이었는데, 주물(鑄物)이여서 쇠를 깎으면 검은 먼지 가루가 풀풀 날린다. 그런, 쇠 먼지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콧구멍이 시커멓고 손이 저렸다. 그렇지만, 핸들을 돌려 좌우로 이동하여 마음먹은 지점에 바이트를 이동시키는 기술을 눈을 감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할 수 있었다. 척(무는 곳)에다 쇠를 물고 둥근 원형으로 깎기 위에서 좌우 손잡이로 조금씩 이동 시키는 정도까지 되었을 때 다시금 그곳을 나와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나사를 깎는 곳에서는 나사를 배웠고, 구멍을 뚫는 곳과, 축(Saft)을 깎는 곳에서는 각각 그 것을 배워 이제는 일류급 기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생각이 들자, 이젠 영세 사업장이 아닌 공업단지의 큰 직장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