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36. 강변에서...(2) 날아가는 오리 (2)

2004.12.22 08:30

문학 조회 수:3142 추천:1



  서산 하늘에서 만월(滿月)이 산에 손을 짚듯이 둥실 떠올랐다. 산마루에 걸려 잔뜩 늘어져 찢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떠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씩 텐트를 접더니 모두 가 버렸다. 멀리서 낚시꾼들이 낚시 하는 불빛이 물에 반사하여 길게 다가올 뿐이다. 고요함이 계곡에 가득 차서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괴기스럽다.

그대를 보낼 수 있는 마음으로
젖어드는 향수에 취해보지만
오직,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보낸 나이기에
이제와 후회면 무슨 소용.
영영 다시 못 올 내님이여
사랑한단 말을 한들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것을……
오직, 당신만을 기다리고,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가슴에 사무치는 구나!

  노래 가락은 때론 거칠고 둔탁하다가 이내, 바람처럼 시원하고 맑고 청명하는가 싶더니 돌연 애수에 젖은 슬픈 음색으로 피어난다. 낮고 부드러운 음색의 노래가 고요 속에 노을 젓 듯 흘렀다.
  애수에 젖은 음정으로 나직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듯 기타의 선율에 맞춰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슬프고, 낮은 듯 하면서도 높고, 애절하고 구성지게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내 어둠에 묻혀 사그라졌다가 다시금 피어오르더니 가장 높게 강한 억양으로 점점 더 크게 차오른다.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과 번민을 가득 지닌 애절한 울음 섞인 슬픔 덩어리로……

  식사를 하고 자정 무렵까지 부른 노래 탓일까 목이 쉰 듯하다.
이젠, 그만 부를까하고 기타 내려놓고 텐트 속에 눕는다. 등짝에 자갈이 있어 불편하다. 그렇지만, 자갈 반 모래 반인 땅바닥을 고르는 것은 이미 포기했다. 계속하여 속에서 자갈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 새로 시작한 일은 어떤 일이냐?”
  누워서 잠들었는가 싶었더니 채수가 묻는다. 아마도, 무척 궁금하였던 모양이다.
  “음, 쇠를 깎는 공업사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영세 사업장에 취직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넌 그런 용기가 있어 대단하다. 난 어머니와 형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해. 처음부터 나를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었어. 그렇지만, 내 인생이 오히려 벗어 날 수 없는 가족 탓에 안정된 생활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넌 용기가 있어서 그렇게 새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난 뭐냐!”
  어둠 속에서 친구의 음성이 약간 격양되어 있었다. 술을 한잔 걸쳐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봉제 공장에 다니는 것이 이젠 너무 지겹다. 지겨워서 쓴 물이 난다. 하청의 하청 업체이다 보니 영세하고 어려워서 직원들 봉급도 못주고 있어!”
친구는 나와 함께 다니던 공장에서 벌써 여러 차례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봉제 공장에 다니지 않으려고 하잖아.”
  “원미산업도, 풍안 방적도, 이화실업도, 충남방적도, 큰 회사들은 모두 외국으로 나가고 있어. 국내에선 타산이 안 맞는다고.......그러니, 우리 같은 하청업체야 오죽하겠어.”
  그는 개탄 하 듯한 음성으로 사회를 질타했다.

  1984년도 현재의 봉제 공장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사라졌다. 이젠, 중화학 공업 일변도의 정책과 함께 전반적으로 국민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되자 인권비가 상승하였다.
  봉제 공장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필요하면서 값싼 인건비를 요구하는 생산 코스트이여서 점차 퇴보하는 듯 했다. 그것은 곧 인금을 체불(滯拂)을 초래하여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무역사무소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 하청을 받아 오다(물량)를 따오는 공장일수록 그런 현상은 더했다.
  전에, 채수와 함께 다니던 공장도 이미 문을 닫고 그곳에서 몇 개월 씩 봉급을 못 받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 하소연도 못하는 실정으로 다른 곳을 찾아 전전 긍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생리(生理)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여기저기 나붙은 봉제 공장 모집 공고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술을 배우느라고 실습중이하고 생각하고 있어! 돈은 바라지도 않아. 단지, 기술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야. 그것이 참기 어렵지만, 어쨌든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어. 결심대로 행동할거야!”
  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얼마나, 강렬한 욕구였던가! 만약에, 손 안에 달걀이라도 쥐고 있었으면 깨졌으리라!
  “그래, 잘 해 봐라! 나도 도울 수 있는 한도까지는 도와 줄 테니까.”
  “도와 줄 게 뭐 있어!”
  대단하지도 않는 것을 추겨 세우는 것 같아 멋쩍게 내가 하는 말이다.
  “나도 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늘 마음을 먹었었어. 공업 고등학교라던가 직업 훈련 과정을 거쳐야 배워지는 것이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현 직업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지. 우리 미싱 부속을 깎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늘 사람이 북적북적 대고 있어. 미싱이 일본제가 많잖아! 일본 놈들이 어떤 놈들이데! 씨 팔! 나사 하나 맞는 게 없어! 모두 특수 나사여서 수입 해 써야 할 형편이지. 미싱을 팔아먹고 이젠 그곳에 쓰는 나사부터 전부 수입해야 해! 그렇게 머리 좋게 만들어 놓아서 안사 쓰면 안 되니, 놈들은 계속 돈을 벌 수 밖에…… 시간이 없어도 수입 부속 가게를 자주 나가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곳에서도 못 구하면 가공하는 곳에 가서 적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 씩 주고 깎는 거야! 그곳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기계라고는 선반기계와 밀링 기계뿐인데도 못하는 게 없고……”
  “그래, 그런 것을 깎는 기술을 배우고 있어. 나도!”
  그렇지만,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들어가서 무엇 알겠는가! 도무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기술이란 것은 쉽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수없이 반복하고 노력하여 얻어지는 산물이다 보니 지금의 내게 기계를 만지게 하지 않고 시다(견습)만 맡기는 탓에 어느 세월에 기술을 익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음, 좋은 기술이니까 잘 배워 봐라!”
  “좋아 멋지게 해 볼 참이다. 나도, 나름대로 눈썰미가 있잖아. 그래서 뒤에서 보고 배우고는 있지만, 어째 늘지를 않는다. 그것이 어려워……”
  계속하여 주절주절 말을 했지만,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벌써 잠들은 모양이다. 얘기를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코를 곤다.
  멋쩍은 나는 앞으로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가 겉잡을 수 없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타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계곡과 계곡 사이의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이 어두워지는 만큼 앞 다투어 반짝인다. 졸음에 지친 낚시꾼들의 불빛이 길게 물 위에 비친 곳에서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