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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 4.0의 일기(日記) 이곳은 '제로보드 4.0'에 있던 내용을 추출하여 되올린 곳인데... 간혹 게시판의 하단 내용에 이상이 생긴다. 그렇지만 봉사로 있다가 무려 6년만에 다시 눈을 뜬 것만 같다. 또한 글을 쓰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정도만해도 과분한 것 같다.

35. 강변에서… 날아가는 오리 (2)

2004.12.15 08:20

문학 조회 수:3064 추천:1



  금강의 폭이 이백여 미터는 됨직하다. 상류에서 거칠 게 내려 온 물살은 이곳 구부러진 곳에서부터 완만해지고 깊은 탓에 짙푸른 색을 띄어 호수처럼 눈앞에 파란 융단으로 펼쳐져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반대편은 깎아지른 벼랑인데, 바위를 칼로 베어 놓은 것처럼 예리하게 부서진 바위들이 아래로 굴러 떨어져 물 속에 처박혀 있고 그 곳 절벽을 형성한 훤한 벽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겁다. 아마도, 그 벽면에 눈과 코와 입을 그릴 수만 있다면 거대한 거인이 딱하니 버티고 있는 형상으로 보였으리라.
  ㄱ자로 구부러진 계곡의 중간 지점이여서 수북이 쌓인 고운 자갈과 모래가 물로 쓸려 내려와 쌓여 있는 탓에 텐트 치기가 제격이여서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장사진(長蛇陣)을 이루며 떠들며 놀고 있다. 물 속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사람, 텐트 앞에서 뛰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과 그 모양을 바라보며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소리치는 아주머니는 옷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물에 푹 젖어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앞에 놓여 있는 그릇에 다슬기가 가득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물살이 세지만, 깊지 않은 상류 쪽에서 옷을 입은 채 잡은 모양이다. 그리곤, 이제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내 눈에 상의를 벗은 등에 걸친 흰 색의 부라자가 보였다. 한 사 십이나 먹어 보이는 그녀는 그 좁은 공간에서 주저앉아 치마 속으로 팬티와 바지를 주워 입고는 다시금 밖으로 나왔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야외여서 그럴까.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하여 오히려 내가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하며 그 옆에 텐트를 쳤다. 친구는 내가 텐트를 치는 동안 물을 길러 갔다. 먼발치에서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술과 음식을 앞에 놓고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이 돋보인다. 춤을 추며 몸을 흔드는 아주머니가 사이사이에 한 아저씨를 부여잡고 몸을 맞댄다. 그리곤, 블루스를 추는지 몸을 끌어 안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까짓것 지구는 도는데, 춤이라도 춰서 남 주나!
이 세상 실컷 일을 한들 누가 알아줄까.
돌고 도는 세상, 한 바탕 춤이라도 추워보세!

하는 노래 가락이 들려온다.

  8 월의 무더운 여름날 새로 취직한 공장에서 일찍 퇴근하여 적적하던 차에 절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리야, 기분도 울적한데 이 무더위 속에 집에 처 박혀 있을 셈이냐! 내일이 일요일인데. 우리 놀러 안 갈래?”
  “그래, 어디로 갈까?”
  “먼저, 갔던 곳. 금강 유원지 상류인 그곳 모래사장이 어떨까?”
  “좋아, 기분도 전환할 겸 그럼, 그곳에서 만나자!”
  급히, 배낭에 쌀과 반찬거리를 넣고 기타를 등에 맨 채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 친구는 텐트와 취사도구를 갖고 나올 것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리고 그가 반찬 가게를 하는 어머니 탓에 반찬을 갖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쌀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도 미리 짜여진 각본을 읽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친구는 전에 있던 봉제 공장에 근무 할 때 만났었다. 군대를 갖다 오고 나서 다시, 우린 예전처럼 들로 산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함께 배낭을 메고 기타 하나 들고 훌쩍 떠나곤 했었다. 기차를 타고…… (완행열차를 타고 다닐 때의 전경은 언제나, 낭만이 있었다. 학창 시절 단체로 직지사를 가던 어느 날에는 기차 한 칸을 전세 내 듯 기타 치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친구와 둘이 오붓하게 여행을 갈 때는 조용하게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감상하길 원하였으며, 어느 분은 기타 쳐보겠다고 빌려 달래기도 하였었다. 그럴 대로 멋이 있고 낭만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구경할 수 없다.)
  버스를 타고 때론, 이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진 채 여행을 떠날 때면 우린 정말 죽이 잘 맞았다. 친구 이름은 강 채수(姜採收)였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 25세이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의 생활력으로 근근이 살고 있었다. 형이 있기는 있으나 직업이 없이 방구석에 틀어 박혀 공부만 했었다. 고시공부라고는 했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른다. 홀어머니는 변두리 시장 작은 코너에서 각종 젓을 팔며 장사를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뵌 적은 없었다. 단지, 그가 버는 돈으로 세 식구가 먹고 사는 모양이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친구는 곧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봉제공장을 전전하다가 재봉틀 기사를 하고 있었다.
  우린, 한 봉제 공장에서 만났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어머니의 소개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 곳 봉제공장에서 근무한다는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면 실습을 나올 수 있었으니까. 3학년 초기부터 나는 곧바로 봉제 공장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곤, 완성부에서 카톤 박스(봉제용 의류를 넣는 누런 종이 박스)에 완성된 상품을 넣고 겉면에 매직으로 숫자를 적어 수출 선적용 컨테이너 차량에 싣는 일을 맡았었다.
  재봉틀을 고치는 기사로 있던 강 채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는 결코 미남은 아니었다. 왜소한 체구에 키는 훌쩍 컸다. 말씨는 여자 음성처럼 가늘고 찢어 졌으며 사무적인 투로 나를 깔보곤 했었다. 먼저 사회에 나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50명도 안되는 작은 공장에서 우리는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절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는 늘 못 배운 것을 한탄했다.

친구와 함께 강변에 텐트를 쳤다.
그리곤, 밤새 모닥불을 지피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오래간만의 외출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이었네.
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을 그리도 그리워했소.
오직, 그대만을 영원히 사랑한다 말하리라.
그렇지만, 그 한여름 밤의 꿈이었네.
이젠, 꿈으로 깨어나 다시금 그대를 바라지만,
아무 곳에도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 할 줄이야.
사랑은 이리도, 그리움인가요.
불타오르는 사랑을 모두 그릇에 담을 수만 있다면
한 아름 가득 담아 그대에게 드리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강변 반대편 절벽에 부딪힌  노래 소리는 처량하게 다시금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