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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이 나서...

배탈이 나서는 배가 아파서 음식물을 먹지 못하는 경우 엄청나게 몸에서 거부감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할 정도로...

어제 저녁에는 군립 탁구장에 갔습니다. 월요일이었지만 6월 6일 오늘 현충일과 짐검다리 연휴여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적한 건 좋지만 탁구를 칠 사람들이 없다보니 수준이 낮은 사람들과 함께 단식 복식을 치게 됩니다. 한 사람무려 6점까지 네고로 주고 치기도 하였지요. 그러고도 막중세였고... 탁구장이 문을 닫는 밤 10시 전에는 4명이 복식 경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초보자에 가까운 여성 분과 함께였고 상대쪽은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중년 남성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맞춰서 탁구를 치게 된다는 건 단지 상황에 따라서 맞춰서 즐기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649. 앞서도 글을 쓸 때 제목에 구예 받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 쓰는 글의 제목이 "배탈이 나서.... (6)>으로 정한 것에 대하여 그다지 의의를 갖지 않는 이유도 딱히 마땅한 대답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왜냐하면 배탈이 난 후부터 어제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치게 된 과정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배탈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모든 길을 로마로 향한다."

  이처럼 하나의 결론으로 목적이 다라르는 이유 또한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기보다는 은유하고 시사한다고 보는 게 맞다. 내가 배탈이 나서 이틀 째 고생하였듯이 그 뒤, 회복하는 과정에서 며칠이 지난 아직도 배 속이 좋지 않았은데 소화가 오후부터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저녁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었다. 밥 두 수픈에 고기 몇 점, 그리고 김치와 전 날 먹다 남은 잡체 반 접시가 고작이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아서 계속하여 트림만 하고 머리가 지근 거리고 코가 맹맹하게 막히고 고열에 머리가 지근 거리면서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오늘 사람들이 없을테지만 이럴 때가 더 좋기도 해!"

  그렇게 오히려 더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탁구장에 회원 가입도 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사람들이 많아서 탁구대가 없을 때였다. 회원도 아닌 내가 탁구대를 버티고 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있지 않으면 회원으로 돈을 내는 사람들의 입지가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650. 윤 정희는 그 남자가 깽판을 놓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나이가 서른 셋이나 된 시댁에서 쫒겨난 이혼녀였다. 그리고 먹고 살녀고 하니 직장 생활은 못하겠고 마땅한 일을 찾을 수 없어서 식당을 차렸던 것인데, <목로 주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불과 세 평 정도의 가게에 개업식을 하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고 해야하나...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음, 안 되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지... 왜, 내게 자꾸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안 되는 일이 겹치고 겹쳐서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지경이니..."

  

   651. 초심으로 돌아가는 방법.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심이란 뭘까?' 를 설명하여야 될 듯 하다. 우선 내가 각각의 소설들을 여러 편으로 나누워 놓았는데 그 중에서 중구난방으로 이 쪽 저 쪽 내용을 쓰곤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한 생각에 몰일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소설로 출간하려던 바로 계획으로 삼았던 '윤 정희'라는 내용이 자꾸만 밀려 버린다. 그래서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었다. 다시금 전에 결심했던 내용이 전혀 수포로 돌라갈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다시금 과거의 실패했던 경우가 앞을 가렸다.


  이것은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었다. 


  다시 초심(初心)이라는 내용으로 설명을 해 보겠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견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의 장르의 소설을 쓰기 전에 갖게 된 매우 큰 결심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처음에 품었던 마음이다. 그러니까, 한 장르의 설정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며 절대로 다른 장르가 아니다. 


  내가 <윤 정희>를 다시 기본 내용으로 가지고 와서 글을 이어 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겪게되는 과정 중 하나는 생각을 다시 집중해서 몰입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초심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심으로 돌아 가자!"

  초심이라고 내가 명명하는 건 명백히 윤 정희를 쓰기 위해서 처음 결심했던 생각을 말한다. 그렇게 계속 내 마음 속에 암시를 하는 이유 또한 다시 흩어졌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일종의 나 자신에 대한 주문이었다. 


  이렇듯 내 자신에 대한 종용을 하게 되면서 가장 우선할 수 밖에 없는 초심이라는 마음가짐에 모든 걸 정갈하게 내면을 갈무리 할 필연성. 내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통하여 지금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만 했던 모든 결정체를 응집한다. 쓰기 위한 통용되는 내 자신에게는 신이 부여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을 일깨워 내고 계속하여 나를 몰아 세워야만 하였는데 그게 한 목적으로 일괄성 있게 모아져야만 하였다. 그걸을 애써 다시 꺼내든다. 잘 갈무리 된 내 마음에서도 다시 피어 오르는 글의 세계에 몰입하여 나가는 건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것을 괜찮다고 달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