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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서... 2020.07.17

2020.07.19 09:06

文學 조회 수:101

1. 오늘 오전에는 청성의 아래 밭에 가서 제초제를 뿌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탁구를 치러 대전으로 나갔고요. 어제는 일산에서 기계를 갖고 갈 사람이 내려와서 시운전을 하였습니다만 기계 성능이 높여야만 할 듯 싶어서 청계천 세운상가에 있는 코일 판매점에 주문을 넣었습니다. 트렌스(도란스)을 새로 감아서 고주파 기계의 출력을 높여야만 할 듯 싶어서지요. 2. 기계 제작이라는 일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해결점을 찾는 게 그만큼 성공을 가름할 수 있었는데 간과하게 되면 크레임을 당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래저래 품평만 나빠질 수 있어서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적인 부분을 새로 개발한다는 건 그만큼 별도로 충족을 요구할 때까지 재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야말도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어야만 합니다.


  1. 오늘 오전에는 청성의 아래 밭에 가서 제초제를 뿌리고 왔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자동으로 의식적으로 밭에 가게 된다. 장마 중에 풀밭으로 변하였을 청성의 아래 밭에는 들깨를 심었었다.


  그리고 풀밭으로 변한 상황을 보고 그만 찾아오지 않은 탓에 완전히 점령해버린 밭에 제초제를 뿌려 준다. 170평의 밭에 고랑마다 풀약을 뿌렸는데...


  2. 주변의 경치가 시골 풍경이여서 마음이 편안하다.

  윗밭에는 하얀콩을 심었지만 싹이 나오는 족족 비들기와 고라니가 줄기를 댕강 끊어 놓아서 완전히 콩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아래 밭에 심어 놓은 들깨는 잘 자랐지만 풀로 뒤덮어 버렸으니...


  3. 군서의 산밭에는 감자를 캐고 난 뒤 들깨모를 뽑아다가 심어 놓는 동안 청성에는 두 곳의 밭에 풀로 뒤덮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들깨밭에는 제초제를 뿌리면 되었지만 콩밭은 전혀 복구할 수 없는 상태. 그나마 아래 밭에서 제조제를 뿌리고 위 밭에 심어 놓은 콩이 전멸한 것같아서 마음이 착찹하다. 내년에는 위밭에도 들깨를 심어야 할 듯 여겨진다. 


  4. 옥천에서 청성으로 출발할 때 옥천 버스 종점 앞에 위치한 김밥집에서 천원 짜리 3줄을 구입한다. 그리고 오전 7시에 출발을 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흐린 날씨가 햇빛이 들었다. 하지만 밭에는 이슬이 묻어 있는 풀이 체 마르지 않아서 농약을 뿌릴 수 없었다. 그래서 밭고랑 사이로 돌아 다니면서 비름나물을 뽑는다. 들깨가 자란 모습보다 더 불쑥 솟아 오른 탓에 찾아 내기가 쉽다. 들깨 잎과 구별이 잘 가지 않은 닮은 꼴이다. 170평의 밭에 들개와 잡초가 어울려져서 잔뜩 풀밭을 이루웠는데 겁이 났다. 매년 하는 제초작업이지만 올 해는 더욱 잡초가 기승을 부리는 듯 여겨진다. 그리고 며칠 장맛비 속이다. 일요일부터는 다시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잠깐 장맛비가 멈춘 화창한 날씨에 농약을 하면 적기였다.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농약을 하기 위해 청성의 밭을 찾았지만 아래 밭만 농약을 했을 뿐이다. 위 밭은 아예 처음부터 작물이 싹을 나오면서 피해를 봤다. 콩이 싹트면서 떡잎을 꺽어 먹는 비들기 피해고 여기저기 싹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농사를 망쳤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지금쯤 중간까지도 자라났을 싹이 전멸을 당한 것처럼 풀만 잔뜩했다. 이곳에도 제초제를 뿌려서 풀을 제거해야 했지만 농사를 벌써 망쳤으니 의욕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콩을 심고 난 뒤 반짝거리는 줄을 띄우지 않았던 게 무엇보다 잘목이라고 자책한다. 작년에는 심자마자 그렇게 했었으므로 콩 농사는 무엇보다 잘 되었었다. 그래서 조치를 안 했던 게 무엇보다 후회스럽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고 농사를 포기할 정도로 피해를 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고라니가 출몰하여 나마있는 콩줄기를 모조리 베어 먹어서 아예 눈으로 찾기도 힘들 정도로 변한 황무지와 같았다. 그러니,

  '어찌 들깨밭이 나마 풀밭에서 건져 올리는 게 시급하다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런 막다른 심정이었다.


  5. 오전 9시부터는 본격적으로 등에 질통을 지고 농약을 분사하기 시작한다. 막대기를 들고 풀을 헤집을 때처럼, 들깨 밑둥이 부분에 농약 분사구를 밀어 넣고 사이 사이를 조절하면서 농약을 분사한다. 그리고 들깨가 없는 양 사이드와 중앙의 빈부분에는 집중 적으로 높이 쳐들고 위에서 뿌려 대었다. 들깨 줄기 하단부을 골고루 움직이면서 공략하는 포인트가 중요했다. 자칫하다가 풀과 분사구가 얽혀서 빠져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힘을 주어 당기던가 민다. 그 사이 분사구는 빚발처럼 잡초 위에 뿌려졌다.


  6. 여기에서 비책(묘비)은 농로길 포장 도로에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는 동안 김밥을 한 줄씩 먹어 치웠는데 앞에 보이는 고즈럭한 시골 풍경이 무척 눈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2012년 나는 이 밭과 위에 다른 밭, 합쳐서 700평 가량 되는 것을 영동법원에서 불과 500만원에 경매로 낙찰 받았었다. 그 뒤 처음으로 이곳을 경작할 때의 그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동네에서 사람들을 사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산에서 한 가족이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를 와서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었는데 처음과는 달라진 느낌이지만 그 당시에는 한창 꿈을 꾸곤 했었다. 어떤 우연의 기회가 나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는가! 하는 사필귀정이 그야말로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병에 걸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농작물로 보리를 심고 녹즙을 만들어 먹으려고 농사를 지었다고 보면 된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농사 짓던 내 모습. 아마도 그 때의 심정은 죽음에 대한 대비책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참으로 감계가 무량하다.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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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