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청성에서 ...

1. 어제는 이틀째 청성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올 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여겨집니다. '그건 정말로 내가 농사꾼처럼 끈질긴 기질을 갖고 농업에 전념할 수 있게되었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겉만 농사꾼이여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지만 올 해는 가장 그럴 듯한 농업인이라고 부르렵니다. 2. 청성의 밭은 윗밭 470평 아랫밭은 170평 정도 됩니다. 그리고 군서 산밭은 300평 남짓하였지요. 문제는 대략 1,000평 가까이 되는 밭을 경작하면서 한 해 두 번을 농사 짓는 군서 산밭과 한 번만 짓는 청성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청성에서 이모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보여지지만 지금은 1모작도 힘든 실정이지요. 한 번씩 밭을 갈고 씨를 파종하게 되는데 고역중에 고역입니다.


  1. 이른 봄 군서 산밭에는 감자를 심었었다.

  장마가 오기 전까지 감자가 큰다. 하지만 장마가 오면 큰일이다. 감자가 땅 속에서 썩기 때문인데 장마란 놈은 일찍 오기도하고 늦장마가 되기도 해서 속을 알 수 없었다. 대략 6월 말에 감자를 캐야만 했으니까. 그동안 감자란 놈은 부지런히 땅 속에서 크게 되는데 일테면 감자를 심은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편이여서 수확은 의외로 잘 되는 편이다.

  군서 산 밭에는 감자를 캐고 나면, 다시 들깨를 심는다. 이모작인 셈이다. 들깨를 심기 위해서는 모종판에 파종을 해 뒀다가 옮겨 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또한 고역인 셈이다.

  "여기서 군서 산밭은 왜 나와?"

  "군서 산밭은 아닌데... 청성 밭인데... 왜, 왜, 왜?"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쿵작, 쿵작... 쿵자작 쿵자악!"

  "지랄 염병떠네... 야밤에 그만 떠 들고 잠 좀 자라!"


  누군가 내게 그렇게 찔러 말하는 듯해서 뜨끔하다.

  오늘은 군서 산밭 얘기가 아닌 청성의 밭 얘기를 하려고 새벽 4시에 깨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오직)  청성에에서 이틀간 밭을 갈고 콩과 들깨를 심은 과정을 적나라하게 적어 나갈 참이다. 


  2. 어제까지 청성에서 밭을 갈고 콩과 들깨를 심었다.

  윗밭에는 흰콩을(메주콩)을 심는데 고랑을 만들지 않아서 줄을 띄우지 않고 발로 땅을 긁어가면서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다음 줄은 다시 그 발로 긁어 놓은 곳을 연결해서 콩심는 기계를 끌고 가는데 다리를 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정작 그렇게 밭을 오고가는 동안 내 허리는 온통 짖눌려서 통증이 심해져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어제에 이어 똑같이 발을 질질 끄셔가면서 선을 긋게 되는데 허리가 남아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모든게 허리에 무리를 가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4시 즘 아랫밭으로 가서 밭을 갈게 된다. 그런데 이곳은 논으로 사용하던 곳이여서 윗밭과는 사뭇 달랐다. 자갈밭이 아닌 푹신 거리는 마른 흙이 경운기 로타리에 갈리는 양상이 달랐던 것이다. 푹푹 거리면서 깊이 로타리 칼날이 그야말로 진하게 박혀 버려서 매우 효과적으로 땅이 갈렸는데 그건 윗밭과 달리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밭도 잘 갈렸을 뿐만 아니라 로타리 뒤에 골을 파는 쟁기를 부착하였는데 골을 깊이 팔 수 있었다. 항상 경운기로 고랑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 관리기와 다르게 경운기는 고랑이 비뚤비뚤 했었다. 그렇지만 고랑을 만들어서 그 다음 작업은 콩심는기계로 들깨를 심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들깨가 많이 나오지를 않아서 올 해는 두 번을 밀고 다녔다. 한번 심고 다시 두 번째 심자 지칠대로 지쳐서 그만 자동차를 세워 놓은 농로길 주차를 위해 마련된 세면 바닥에서 누워 잠시 하늘을 보면서 그야말로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일어나서 다시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판 뒤, <콩심는 기계>에 들깨 씨를 가득 체우고 고랑을 따라 가면서 들깨를 심어 나갔다. 


  아래 밭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는데 윗밭과 다른 진도로 무척 과정이 빨랐다. 또한 발로 땅을 긍ㅓ가면서 줄을 만들고 고랑을 형성하는 게 아닌, 경운기에 부착된 둔덕을 만드는 쟁기질로 한 차례 지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랫밭은 되는 데 윗밭은 왜 안 될까? 그렇게 하였다면 발로 땅을 파가면서 콩을 심어 나가는 무리한 육체 노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 파김치처럼 지쳐버리고 허리 통증으로 인하여 그야말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고욕을 치르면서 무리하게 밭을 갈아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날에는 본업인 기계제작에 임해아만 하여서다. 그러다보니 12km 떨어진 청성의 밭까지 와서 농사를 짓는다는 게 그만큼 자주 오지 못하였으므로 무리를 하면서 밭을 갈고 씨를 파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제의 경우엔느 4시에 친구와 함께 왔다가 철수를 했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끝을 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으로 완전히 작업을 끝내지 않는다면 다시 와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 부담스러웠다. 하루 더 오게 되면 그만큼 본업에 대한 일을 못한다는 건 손실을 뜻하였다. 농사 일은 부업이고 본업은 기계제작 일은 본업이었으므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이틀씩이나 비워야만 하는 공장일이 그만큼 중단 됨을 뜻했었다.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대천으로 야외 나들이를 다녀오려고 했었다. 올 해 한갑(61세)이라고 해서 2020년 초에 제주도 여행을 꿈꿨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그만 취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천해수용장으로 뒤늦게 여행지를 바꾸고 어제 일요일 다녀오려고 했었지만 밭일 때문에 나만 가지 않고 아내와 아이 둘이 여행을 다녀왔었다.


  밭 일을 서두르는 이유도 따로 있었다.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이 제장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밭에 간 뒤에 끝을 내어 늦게까지 마무리를 짓게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끝을 내려는 것도, 이틀에 거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루만에 하는 것도, 그리고 4일 걸릴 일도 이틀에 끝내려는 의도가 바로 빨리 끝내고 본업에 임하여야만 한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못해서였다. 그로인해서 내 몸은 과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sample29tm.JPG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