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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서...(5)

2019.06.05 18:07

文學 조회 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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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성의 아랫밭에 경운기로 밭을 갈고 들깨를 심었다.

  '웃통을 벗고 피서를 나왔다고 생각하고 썬팅을 하자!'

  예전에 대천 해수욕장으로 Y.H 가족과 함께 놀러 갔던 적이 또올랐다. 갑자기 해수욕장에서 팬티 바람으로 돌아 다니다보니 살갖이 타서 허물이 벗겨 지고 따끔 거리면서 아팠었던 기억.

  '왜, 해수욕장만 가서 썬팅을 할까? 농사를 지으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웃통을 벗고 경운기로 밭을 갈았다.

  시골이다보니 농로길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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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바퀴에 타이어가 아닌 쇠바퀴를 끼워서 1톤 화물차에 싣고 내리다보면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군서의 산밭(산속의 밭)에 경운기를 올라가려면 타이어는 못 올라간다. 쇠바퀴를 바꿔야만 비탈진 경사길을 올라 갈 수 있었다. 청성의 밭은 쇠바퀴가 필요없었다. 농노길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으므로 타이어 바퀴만으로도 로우타리를 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아래 밭은 처음에 논에서 밭으로 사용하려고 하자 질척거리고 바퀴가 빠져서 쇠바퀴를 사용하게 되었다.


  문제는 쇠바퀴를 1톤 화물차에 싣고 내리기 위해서 사다리를 걸치고 오르고 내리다가 로타리 날이 사다리에 끼어서 빠지지 않게 되면 경운기가 한 쪽 바퀴로 쏠리게 됨으로서 넘어질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달랐지만 이번에는 로우타리 날이 새로 교체를 하였으므로 길게 나와서 무척 높았는데 중심이 타이어 바퀴보다 쇠바퀴가 높아서 전복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오늘도 목적지에 도착하여 경운기를 내리는 중에 한 쪽 바퀴가 사다리에서 이탈을 하여 오른 쪽 바퀴만 걸려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이다. 어쨌튼 끌어 내려야만 했으므로 넘어지는 것을 감안하여 차를 앞으로 빼어 사다리를 땅 바닥에 떨쳐내려서 겨우 위험을 모면하였다.


  이런 아찔한 순간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경운기를 내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타이어 바퀴는 그래도 미끄럽지가 않았다. 하지만 쇠 바퀴는 쇠로 된 사다리에서 미끌러지는 경향이 많았다. 자칫하다가 한 쪽 바퀴가 빠지던가 삐틀어질 경우 그대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는 데 이때 자칫하다가는 경운기 밑에 깔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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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서를 나온 것처럼 밭에서 웃통을 벗고 밭을 갈았는데 그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즐겁게 농사를 짓는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해서 웃통을 벗고 경운기로 밭을 갈았다.

  시골이다보니 농로길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땡볕에 밭에 나와서 웃통을 벗고 밭을 갈다니...

  '미친 사람 아냐?'

  아마도 도시 같으면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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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 옷을 입지 않아서 허리를 최대한 짧게 졸라 매야만 했다.

내 나이 60세인데 70세 때도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마음은 20대처럼 젊은데 왜, 못할 게 뭐 있을까?

살갖을 태우면 <비타민 D>가 생성된다는 데 그렇게 해 볼까? 

그래서 더 건강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경운기 바퀴가 타이어가 아닌 쇠바퀴였으므로 진동이 많았고 속도로 빠랐다. 바퀴가 더 크고 미끄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진동과 거친 바퀴의 마찰력이 그대로 전달해져 왔다.


  경운기 운전은 양 쪽에 손잡이 부분에 달려 있는 누름 쇠를 눌러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러다보미 쇠바퀴를 달게 되면 속도도 빨라지고 거친 말처럼 함부로 달려 간다. 다루기가 더 쉽지 않은 이유다. 자칫하다가 시기를 놓치게 되면 밭을 갈다가 비탈길에서 전복될 사고도 더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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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1톤 화물차에 싣고 내릴 때마다 긴장의 끝을 놓지 않아야만 했다.

쇠바퀴가 사다리에 끼던가 미끄러질 수 있고 뒤에 달린 로우타리 칼 날이 그대로 사다리 사이에 끼게 되면 꼼짝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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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내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낸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건 내 몸에 대하여 아직도 건강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웃통을 벗고 경운기로 밭을 갈고 기계로 들깨를 심어서 정리를 해 놓고 이제는 내일 모래 비를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하늘도 최선을 다하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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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밭에 들깨를 모두 심어 놓고 500미터 떨어져 있는 위 밭에 올라 왔는데 고라니가 들어와서 콩을 뜯어 먹었다. 떡잎과 새싹이 뜯어 먹히고 뿌리만 남아 있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나란히 줄을 띄워 심어 놓은 곳에 빈 곳이 많이 눈에 띄인다.

  '아니, 이럴수가!"

  하지만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 고라니가 출범하여 계속하여 콩밭을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반짝이 줄을 띄우고 허수아비를 세워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울타리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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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을 모두 갈아 놓고 들깨를 기계로 심어 놓고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오전 8시에 옥천에서 출발하여 오후 2시에 상황을 마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밭의 반대편에서 바라 본 전경. 옮겨 심은 옥수수에 물을 흠뻑 주웠지만 뜨거운 태양으로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아마 성장도 멈추고 크지도 않을 것이다. 옮겨 심고 난 뒤에 말라 죽어 있는 옥수수 싹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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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에 돌아와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했다.

  토요일 왜관 S.M 이라는 공장에 납품할 기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아직 이틀이라는 기간이 있으므로 여유는 있었다. 출장도 예전처럼 잘 나가지도 않았다. 이 출장 문제만 해도 무척 곤란한 처지를 유발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내 기계의 보급이 많이 확보되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부르지 않았으니까.


  체력적으로 경운기 운전을 하여 밭을 갈고 또한 들깨를 기계로 심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위안을 받게 된다. 그러다보니 낮에 전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을 때와 들깨를 기계로 심기 위해서 잠시 웃통을 벗고 썬팅을 하기 위해 그렇게 태양 빛을 받았던 것이지만 지금 집에서 이 글을 쓰는 밤 10시 49분경에 팔뚝과 등어리에서 화끈 거리고 있는 느낌을 바로 직사광선 때태문이라고 확인하는 중이었다.

  살갖이 타서 화끈 거리는 팔 뚝과 어깨.

  얼굴은 귀까지 덮는 그늘이 가려지는 모자를 썼는데 그 이유는 탁구치러 가면서 얼굴에 검은 피부암이 발생하는 것처럼 검버섯이 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차양이 있는 모자를 쓸 수 밖에 없었다.


  9년 전에 나는 건강이 나빠졌는데 그건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에 너무 치중하여 살다보니 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썋여서였다고 본다. 그 뒤 탁구를 치게 된 뒤로 건강을 되 찾게 됨으로서 지금처럼 농사도 건강을 위해서 유체적인 노동이 필요하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 대단한 결정을 내린 이유. 즉, 웃통을 벗어 던져서 썬팅을 하면서 들깨를 기계로 심었던 이유는 바로 나름대로의 재미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해수욕장에 가지 못하는 대신, 농사를 지으면서 같은 방법으로 지내보자! 는 견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육체를 드러내고 알몸은 아니지만 웃 통을 벗었다. 어찌보면 뼈만 드러난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살을 찌지 않고 166Cm 의 키에 체중 60kg을 유지하면서 가급적이면 탁구를 치면서 몸을 관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나는 무척 자신하고 있었다.

  건강하다고...


  어떻게 9년 전보다 더 건강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을 떠 올려 보면서 아찔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현기증과 함께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물체가 균형 감각이 없이 왜곡되고 부정확한 느낌까지 배제할 수 없었으며 똑바로 인식할 수 없는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느낌으로 머리를 만지면 북처럼 울리는 소리를 냈고 사물이 정홝하게 인식되지 않았었는데 이런 위험한 상황을 나는 너무도 고통스럽게 인식하여 곧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괴로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움직이는 것과 내가 움직이는 차이점. 세상을 고정되어 있는 데 내가 돌고 있었다.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고 시시각각으로 계속 불안감이 증폭하여 나중에는 폭발할 것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아,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적어도 그런 위험으로부터 현재는 건져 올려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땡빛에서 경운기를 운전하여 밭을 갈고 다시 재차 콩심는 기계로 들깨를 심기 위해 고랑마차 찾아 다니면서 끌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내게 이런 건강함을 다시 되 찾기까지 실로 9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2000년도에 위기를 만나서 병원 응급실에 들어 갔을 때 나는 절망감에 빠졌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호하던 일. 충대병원에 모친을 모시고 다니면서 통원 치료를 받던 중에 앞에 앉아서 의사의 진료 과정을 지켜 보던 내 모습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였었다. 앞에 진료를 받는 환자보다 뒤에 보호자가 더 위험하다고 감히 떠 올릴 정도로 아찔한 현기증에 사로 밥혀 있던 건 그야말로 뒤에서 그대로 인식하고 있던 내 모습에서 반감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을 벋어 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렇게 농사까지 덤으로 짓는 건 아무래도 그 무엇보다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신기했다. 

  적어도 9년의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따져 보자면, 우선 탁구동호회에 가입하여 탁구를 치게 된 점과 두 번째는 농사를 짓게 된 사실이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