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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눅스 서버... 일기 (日記)

하지만 기계 제작 일이 계속 주문이 들어와서 밀려 있는 상황. 조금 더 야간 잔업을 진중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 그렇지만 겨울철이다보니 너무 추워서 또한 야간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제 봄부터는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된 기계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더 많은 시간을 기계작업시간으로 충당하여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조부의 묘지 이장 (2)

2018.09.09 08:44

文學 조회 수:92

1. 어제 조부의 묘지를 군서 가족묘지로 이장을 하였습니다. 2. 태풍 솔릭과 그 이후 집중호우가 내려서 군서 산밭에 완전히 쑥대 밭이 되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가족 묘를 만드느라고 땅을 파 혜쳐 놓은 묘지 주변의 흙이 모두 쓸려 내려 갔고 자갈만 남아 있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나타내었으니까요. 3. 극단적인 방법으로 밭에 흙이 옆의 계곡 쪽으로 쓸려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물을 급하게 내려가지 않게 하여야 할 듯합니다.

2. 어제 땅을 한 자 정도 파서 흙을 삽으로 퍼 올려서 너무 무리한 듯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저녁에는 탁구를 치러 갔다 왔습니다. 토요일이여서 사람들이 별로 나오지 않았으므로 탁구장은 한가합니다. 그래서 탁구치기도 나은 편이고요. 평일에는 탁구장에 갈 수 없었으므로 (잔업을 하므로) 주말과 휴일에 탁구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약속하여 꼭 지키려고 하다보니 몸이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유선 TV로 외화를 잔깐 보다가 그만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을 한다. 


Untitled-1222.jpg


  이런 볼품없는 묘자리를 어렷을 때부터 명절 때마다 성묘왔었다.

  그렇지만 중년인이 된 지금 본 묘는 너무도 볼품이 없고 하잘 것 없었다. 어렷을 때는 무작정 이곳이 조부의 묘여서 성묘를 와야한다는 게 관념적으로 머리에 잡혀 있었는데 어느 듯 훌쩍 자라서 내 자신의 가족들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고 형제까지도 염두에 두고 가족묘를 만들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해 온 군서의 산밭을 조성하여 5년 동안 농사를 지어 왔던 걸 보면 그 생각이 늘 염두에 두웠던 걸 지금에 와서 어떤 각인된 사건으로 인하여 그만큼 5총 당숙부들과의 파벌 싸움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큰 집이었지만 조부와 부친이 못살아서 그만큼 영향력을 갖고있지 못해 왔었다.

  둘 째 집안인 Y.G 네는 4남 2녀를 두웠던 반면 우리는 1남1녀의 부친의 가족 관계였다. 또한 조부의 형편없는 무능력으로(그것이 부친까지도 대물림 되었지만) 인하여 전혀 친족들과 장손으로서의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고 제사만 물려 받아서 어려서부터 모친이 일 년에 많은 제사 음식을 장만하여 밤 늦은 시각에 제사만 지낼 정도로 연달아 제삿날만 돌아왔다고 푸념을 하던 걸 보아 왔었다.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이 터졌는데 둘 째 집안에서 작은 밭을 장만하여 그곳에 조상묘를 모두 모아서 함께 이장하려고 했는데 그곳이 공원지역으로 바뀌고 주변이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불가하다는 점과 두 번째는 둘 째 집안의 형제분들(당숙) 들간의 싸움으로 인하여 그야말로 우애가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때 나는 어렸지만 고등학생이었고 이 묘자리 조성에 참여하고 노동을 하여 던 적이 있었다. 밭에 다른 곳에서 이전해온 묘 자리를 만들고 조성했었는데 사실은 그 당시 우리와는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둘 째 집안의 묘 자리를 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는 게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런 일로 인하여 둘 째 집 안의 불화로 인하여 이 묘자리를 조성하는 모든 사항이 무마되었으며 그 뒤로 공원화 된다는 그곳 지역적인 특성과 장래에는 이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면서 그곳을 잊고 말았고 조부가 있던 같은 산의 중턱에 있는 묘를 같은 산의 하단부인 예의 밭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꿈이 깨지면서 우리 형제들은 그 둘 째 집안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실은 큰 당숙부와의 좋지 않은 언질에 발끈한 세 째 동생이,

  "형, 우리에게 한 소리인데 그냥 있을 거요! 갑시다."

  그렇게 말하여 결국에는 어렷을 때부터 관계를 유지하고 왕내하던 친족과의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제사까지도 넘겨 주게 되었으며 그동안 계모임을 하여 한 달에 만원씩 넣던 친족계까지도 모두 파토(?)가 되었었다. 물론 그동난 넣던 그 곗돈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고 진작에 끊었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결과를 낳았지만 얼마나 의미가 없는 일이었던지 그만 둔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었다.


Untitled-1221.jpg

다시 과거에서 현실인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오늘 조부의 묘자리를 이장해야만 해서 옥천에서 13km 정도 되는 거리를 1톤 화물차를 운전하여 익숙하게 찾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짐 10년 정도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두 명의 동생들이 계속하여 묘지 이전을 거절해서였다.

  


*.  1. 관계되는 온갖 소문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 묘자리에 물이 들어 시체가 썩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인부들이 따불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둥...

  2. 묘지 이장에 대한 숱한 얘기들.

  묘를 파냈는데 다른 게 나왔다는 둥, 아닌 말로 묘에서 귀신이 산다는 둥, 묘 자리를 잘못 써서 후대가 망했다는 둥, 조상을 잘 모셔야 잘 산다는 둥,  (이 부분에서 G.N 이라는 둘 째 당숙부의 위세가 나늘을 찌르던 것을 보면 조상에 대한 각별한 모습이 없잖았다)

  3. 그런 걸 보면 나 또한 어려서부터 장손, 장남, 우리 집안을 떠 받들 기둥, 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었다. 그러므로 나중에 잘 살아야만 하는 점과 친척들로부터 괄세를 받던 부친과 모친의 모습을 보면서 착찹한 기분에 빠졌었다. 가난했기에 그 위세에 눌려 지내야만 했던 둘 째 당숙부의 위압과 권위가 맹목적이고 집요하게 컸던 것을 보면 조상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떠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기억으로 그런 결과에 대한 선택과 어떤 길로 가야만 하는가! 에 대한 고심은 한 가지였다. 조부와 부친을 한 곳에 가족묘를 만들어 모두 모일 수 있게 해야만 한다는 점.

  그것이 당숙부들에게 당한 수모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그렇게 하여 다른 짐안과 차별성을 갖게 하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그 것은 먼 날을 내다본 내 의지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변변한 묘자리도 없었으므로 납골당에 부모를 모신 반면 나는 5년 동안 조성하여 왔던 군서 산밭에 마침내 원하던 묘자리를 장만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부를 이장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었는지 그 감회는 너무도 큰 것이었다. 하지만 세 째와 막내 동생들은 급급 만류하여 왔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런 내 의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모친의 작고를 계기로 큰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너희 둘이 어머니를 임실 국립묘지로 안자하기를 계속 우기면 앞으로 더 이상 동생들로 생각하지 않겠다. 앞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도 명절날에 우리 집에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테니 둘이서 죽이되든 밥이 되는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말하고 실천으로 강행하였던 것이다. 

  모친이 작고하기 전에 사전에 얘기해 둔 바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여 결국에는 뜻대로 가족묘를 조성하게 된다. 마침내 오랫동안의 내 숙원이 이루워 진 것이다.   


1. 조부의 묘지를 파내면서 계속 삽질을 하였지만 관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이쯤에서 관이 나와야 하는데..."

  "관도 묻지 않았어!"

  묘지 이장을 하게 되면 그에 관계되는 온갖 소문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 묘자리에 물이 들어 시체가 썩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인부들이 따불를 요구하고 그 내용물을 다시 화장해야만 하였다는 한 마디로 골치 아픈 경우가 발생하였다는 풍문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 둘 씩 사실적이건 그렇지 않건 내 귀에 들려 왔었다.

  그러다보니 무척 불안감이 들었다.

  묘지를 파 헤치는 동안 삽질을 하면서 점점 깊어지는 묘지에 깊게 웅덩이를 파 놓으면서 군대에서 참호를 팔 때도 이렇게 깊게 파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깊어질 수록 수변에 더 넓게 자리를 잡기 위해 애초의 표시 지점보다도 더 밖으로 흙이 무너지지 않게 파 나갔다.

 "포크레인으로 파야 되지 않을까?"

  옆 집에 Y.M 네 아빠는 자꾸만 불안 스러워 했다.

  그를 함께 가자고 한 것은 이장을 해 주기 위해 기술자를 불르게 되면 돈이 많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기술자가 아닌 옆 집 아저씨를 인부로 쓴 것이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서 삽질도 제대로 하질 못하고 조금 깔짝 거려 놓고 쉬기를 반복한다. 반면 나는 깊이 발로 흙 속에 삽을 박고 크게 땅을 떠내서 밖으로 던져 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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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고 이곳에 옮겨 적는 것은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숙성을 거쳐야만 하는 데 그 진가가 발휘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료로 첨부될 내용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이 모든 내용이 언제 어느 때 충분한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문학적인 고취하 충분히 무르익어야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