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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肖像)

sample_23.JPG 초상(肖像)[명사] 1. 사진,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 2.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모친의 묘에 잔디를 입혔다. (2)

2018.08.23 17:13

文學 조회 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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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잔디 천 장에 25만원, 인부 1명에 12만원을 들여서 가족 묘에 잔디를 심었다.

  잔디 판매소는 집에서 불과 1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며칠 째 찾아 갔었지만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냥 오곤 했었다. 하지만 태풍이 온다고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 호기를 그대로 놓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바뀌었는데 그건 마음속에 간직해오던 강력한 요구가 쌓이다가 결국에는 터져 버렸을 때처럼 절대적인 소원으로 다가 왔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9시쯤 잔디 판매소에 찾아 갔는데 주인이 없었으므로 양 쪽편으로 지붕을 씌 워 놓고 잔디를 쌓아 놓은 예의 장소에서 콘테이너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를 보면서 전화를 했다.

  "앞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요. 전에 탁구를 치자고 했던 철공소..."

  "아, 알고 있는데... 무슨일로..."

  "며칠 전에 모친이 돌아 가셨는데 가족묘를 만들어 안장 시켰답니다. 내일 태풍이 온다고 하길래 잔디가 필요해서..."

  "아, 그렇습니까? 밖에 나와 있는데 들어가서 전화 드리지요."

  그 와는 구면이었다. 공장에서 집으로 출퇴근을 하는 500미터 하천 변의 둑방길을 왕내하면서 자주 얼굴을 보고 인사를 했던 사이였었다. 그러다보니 오고가고 하면서 서로 얘기도 했고 무엇보다 탁구를 친다고 해서 우리 집 지하실에 탁구장을 만들어 놓았으므로 언제든지 와서 치라고 열쇠까지 맡겨 놓았지만 한 번도 오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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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잔디를 경운기에 싣는다.

  한 시간 후에 잔디집에서 전화가 왔다.

  "잔디 가게인데 와 있으니까. 만날 수 있어요?"

  "지금 가겠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급히 잔디판매소로 찾아 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구매와 그에 관한 내용으로 들어 갔다.

  "장소는 군서고요. 가족 묘를 만들어 놨는데 봉분은 없고 그냥 옛날 묘 한 기에 잔디를 심는 셈입니다. 잔디는 몇 장 필요할까요?"

  "천 장 정도는 충분할 겁니다. 지금은 다들 그렇게 봉분도 없이 묘지를 조성하지요. 가격은 이십 오만원 정도 가고..."

  "그럼 경운기를 갖고 올테니까. 실자고요!"

  하고 내가 말했다. 안도직입적으로 서론도 필요 없이 본론으로 들어 갔다. 마침 잔디가 천 오백장 정도 양쪽 진열하도록 화물차 짐칸 높이로 단이 쌓여 져 있는 진열된 장소(위에 천정만 있음) 에 쌓여 져 있었다. 며칠 전에는 그보다 더 많았었는데 모두 나간 모양이다.

  "그럼, 물 좀 뿌려 놓을테니까. 갖고 오세요."

  나는 재빨리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집 앞 울타리 대용으로 세워 놓은 경운기에 시동을 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도 시동이 켜지지 않는다.

  보링을 올 봄에 해 놓았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경운기. 뒤에 화물칸이 달려 있었고 전동축이 연결되어 있어서 1단과 후진으로 연결 시킬 수 있는만큼 언덕을 오르는 데 이것만큼 유용한 게 없을 정도로 군서 산밭에 짐을 실어 나르곤 했었다. 이번에도 잔디를 갖고 올라가기 위해 25만원을 주고 라지에터를 수리해 놓았었다. 로타리를 치는 경우기와 화물칸이 달린 경운기는 서로 종류를 달리한다. 그러다보니 두 대의 경운기를 갖고 있었지만 각각 용도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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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잔디를 심고 나자, 비가 내린다. 

  경운기 짐칸에 잔디 천 장을 실었다. 잔디 집에서 이미 물을 한 번 뿌려 놓았지만 집에 갖고 와서 내가 다시 물 호수를 대고 축축하게 물이 흐를 정도로 더 뿌려 준 뒤에 이번에는 1톤 화물차 뒤에 경운기 앞 부분만 걸터 놓고 밧줄로 묶고 출발을 했다. 경운기 자체만으로는 5km 정도 되는 목적지까지 가려면 너무 어려웠으므로 이렇게 경운기를 차와 연결하여 다녀와야만 했던 것이다. 추레라처럼 두 대의 운만 기구를 연결하여 이동하게 되면 많은 잇점이 있었다.

  또한 필요한 물건은 경운기 화물칸에 실어 놓았으므로 끌고만 가서 최종 목적지에서 다시 내려 놓고 경운기만으로 산길을 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곳까지는 두 개를 묶어서 간 뒤에 그곳부터는 경운기로 운행하게 되는 것이다.


  경운기가 먼저 산길을 오르고 그 뒤를 따라 아내돠 잔듸를 심어 주는 인부가 따라 왔다. 내가 경운기를 운전하면서 앞서 가는데 경사 60도의 심한 언덕이 초입에 나타났고 30미터 쯤 이르는 그 언덕을 오르자 이번에는 좌측으로 심하게 꺽는 좌측길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너무 심한 좌회전으로 인하여 경운기가 꺽이지 않아서 애를 먹다가 두 세번 후진과 전진을 한 뒤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최종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대략 500여미터였다.

  마침내 목적지까지 경운기에 잔디를 심고 도착하게 되었고 잔디를 모두 내려서 심고 나자 오후 3시 30분.

  하늘에서 먹구름이 잔뜩 끼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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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원과 감회

잔디를 태풍이 오기 전에 심겠다는 저의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소원이 너무 강력하면 그것이 이루워 진다>

  뜻을 세워 놓고 며칠 동안 마음 속에 고민을 해 왔었는데 그것이 모친의 작고와 장례식이 끝난 뒤에 묘자리를 조성하게 되면서 잔디와 연관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디를 한 번도 심어 본 적이 없었고 남들이 묘를 만들어 놓고 잔디를 심어 놓은 연고자들의 잘 조성된 곳을 보면 부러움이 들곤 했던 어린 시절 성묘를 다닐 때마다 보았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나도 언젠가는 내 땅에 묘자리를 만들어 놓고 반듯하게 가꾸리라 하면서 빌어 왔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모친의 작고로 인하여 묘자리를 만들고 그곳에 모친을 안장해 놓았지만 민둥으로 흙만 얹혀 있고 조성된 상태. 아무것도 자라 있지 않은 그 묘지에 심을 잔디를 구하는 방법과 심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지 4시간 만에 끝내게 되는 기록을 세워 놓고 나지 만감이 교차한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일을 가지고 왜 그렇게 뜸을 들이고 어려워 하였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이 일을 주관하였고 일꾼 한 사람의 지도아래 잔디 심는 걸 시도한 결과 마침내 성공하였다는 포만감과 감회에 젖어 들었다.


 8월 6일 발인을 한 날이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포크레인으로 묘지를 조성했고 잔디를 심어야만 했지만 날씨가 너무 무덥다보니 잔디가 죽는다는 조언을 듣고 심지 않은체 모친을 안장해 놓고 뒤 돌아 서는 발걸음이 종내 무거웠음일까?

  계속하여 오늘까지 그것이 쌓여 갔다.

    마침내 태풍 소식이 들려 왔고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TV 에 뉴우스로 방송되면서 인터넷 검색에서도 속보로 떴다. 이런 황금같은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태풍이 내륙으로 상륙한다는 하루 전 날이 되자 조바심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고 결행하면서 그것이 이렇게 빨리 끝내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하였으므로 저녁 늦게까지 해야 할 겁니다. "

  작업 인부는 석제상회에서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65세에 이르는 덩치가 크고 우람했지만 늙고 숨이 차서 곡갱이질을 하면서 연신 숨을 내 뱉으면서 쉬곤 했었다. 방법을 설명해 주고 구덩이를 먼저 파 놓고 그곳에 잔디를 심게 만들어 주웠다.

  세 사람의 잔디 심는 박자가 맞아 들어 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잔디가 모두 심어진 것이다.


  그동난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두 달째 계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비를 기다리는 것도 지쳐 버린 상황. 

  포크레인으로 묘지를 조성하면서 흙먼지가 잔뜩 일어나서 연기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그곳에 묘를 만들기 전에는 좁고 나무가 장식 되어 있는 아주 볼 품 없던 산 밭의 전경이 이제는 넓게 확장되고 나무 그늘에 눌려서 음침하던 곳까지 훤하게 하늘이 뚥히고 햇빛이 들어 왔다.


  '역시 사람이건 땅이건 가꿔 놓고 볼일이야!'

  이것는 내 침묵속에 감춰진 생각의 일환이다.

  이번에 잔디를 심은 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태풍 솔릭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더운 여름철에 그나마 잔디를 심게 되었다는 점.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흙 속에 마치 내동댕이 치듯이 잔디를 던져 놓고 마른 흙을 덮는 순간,

  '비가 오지 않으면 너희들이 모두 죽겠구나! 어디에도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두려운 마음에 감히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건 너무도 막연하지 않은가!'


   비록 태풍 솔릭은 많은 비를 뿌리지 않고 지나갔지만 그 비는 잔디를 심어 놓은 매마른 땅을 물기로 축축히 젖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그곳에 물을 뿌리는 인위적인 방법을 통했다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을지도 몰랐다.

  산 밭에 물을 길어다가 주려는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행동을 옮긴다는 건 불필요했다.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으니까. 물통을 경운기에 싣고 다시 올라가서 발전기를 돌려서 양수기를 통해서 뿌려주는 수고를 해야 할테니까.

  초기에 이곳에 밭을 조성해 놓고 보리를 심어 놓고 밑에서 물을 퍼올려 주던 어려움을 겪어 봐서 잘 알지만 그런 헛수고를 해서 잔디를 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환경을 잘 알고 그것을 농사에 조금이라도 적용하여 왔던 내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제초를 하고 성묘를 하여야 하는 데 누가 할거야!"

  세 째와 넷 째 동생이 강력하게 저지를 해 왔던 가족묘의 조성 계획을 반대해 왔던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셋 째 동생은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므로 자신이 찾이할 돈이 줄어 든다는 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는 나 중에 장례가 끝난 뒤에 800만원을 돈을 챙겨 갔었다. 그 행동이 둘 째 동생이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예식비를 모두 가지고 가서 나중에 부족한 예식비를 나와 모친이 충당했던 것처럼 돈 욕심에 눈이 멀어 있었으므로 가족묘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돈만 노렸는데 그 행동이 예전의 둘 째 동생의 모습 그대로 였다.

  하지만 지금의 둘 째는 전혀 달라 졌고 대신 세 째 동생이 그렇게 변해 버린 작태를 드러냈으므로 혐오스러울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동생인데 어쩔 것인가! 막내 또한 임실 국립묘지에 안장할 것을 주장해 왔었다. 그 이유인즉  부친도 그곳에 모셨고 관리를 국가에서 해 준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 왔었다.


  관리는 내가 농사를 지으므로 예초기를 갖고 있었으며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높았다.

  "그럼 나중에 당신이 죽으면 누가 관리하죠?"

  그렇게 아내까지도 반대해 왔던 사항을 무리하게 강행한 이유는 거리가 가깝다는 잇점을 들어서다.

  내가 명절 때라던가 현충일날 부친과 증조부를 모신 법동 무연고 묘와 임실 국립묘지를 찾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옮겨오지 않는 이상 찾지 않겠다고 선언해 왔던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가족묘를 조성하고 한 곳에 모두 옮겨 놓고 후대 까지도 묻힐 자리를 마련해 둔 것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한 셈이다.

삼우제만 해도 정말 20분만에 도착하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로 인하여 아주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무리하게 운전해서 임실까지 갔다오던 부친의 작고 이후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지 않았던가!


  가까운 게 가장 편리하다.

  가까워야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한 곳에 모두 모아 놓아야만 편하다.

 

  자식들이 분모를 사후에 모시면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결집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묘자리를 함께 하여 모일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내 소원이 마침내 이루워 졌다.

  그러므로 이번의 모친 장례식은 큰 의미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