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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肖像)

sample_23.JPG 초상(肖像)[명사] 1. 사진,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 2.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수정중 4

2018.08.08 23:18

文學 조회 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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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우제를 치루기 위해 다시 군서의 산밭으로 간다. -


  이곳은 군서 산밭에 마련 된 가족묘였다. 내가 사진부터 올려 놓고 틈틈히 글을 수정하고 있는 중이지만 얼마나 계속 유지할지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다기금 정신없이 <기계제작소>라는 본업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게 될테고 그로인해서 얼마나 쓸 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중에라도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떠 올려 보기 위해서 이렇게 정리라도 해 나가는 것이다.

 

  잔듸는 날씨가 하도 더워서 가을에 심기로 하였으므로 흙만으로 형태가 갖춰서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이는 둘 째 동생으로 지금까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다고 모친이 작고하자 돌연 나타나서 죄를 누우치면서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보였다. 예전에 성격을 모두 버린 모습이 사뭇 의연하지만 살아 계실 때는 가족을 원망하면서 20여년동안 인연을 끊고 살아 왔었다. 단지 명절 날마다 4명의 아들이 찾아왔는데 차마 내칠수가 없었고 그 애들의 만행에도 그냥 묵인하였는데 부모가 이혼하고 파산을 한 상태에서 자식들이 속을 썩인다는 게 지금의 동생에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못했는데 자식들이라고 잘 할 리가 있겠는가! 단지 크게 빗나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소리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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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다짐을 하는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내가 한 말은 일기를 써서라도 앙갚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먹으로 맞나 가면서 울면서 내가 한 말은 일기가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오늘날 내가 부친이 작고한 마당에 과연 그 일기를 갖고 있지 않았었고 내 모든 기억이 오봇하게 남아 있었으므로 정작 필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일기가 아닌 내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처럼 내 현재의 세계에 동생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달랐고 또한 원망과 함께 어떤 불만들이 전달되어 오는 것인지에 대하여 얘기를 쓰게 되는 건 아마도 어렷을 때 부친에게 한 말처럼 앞으로도 계속 글로 쓰여리지라!

  지금은 모친의 장례식에 관한 것이며 그 내용이 갖고 있는 파급효과는 부친이 아닌 동생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

 

  왜, 우리는 같은 형제이면서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서로 느끼는 심적인 갈등이 사뭇 다를까?

  세 째 동생은 이기적이었다. 모든 게 자신에 관계하여 분배를 하려고 하였고 부조금을 많이 갖고 가려는 듯 비용을 철저하게 줄이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같았다. 그리고 정산을 할 때 남은 금액 중에 800만원을 갖고 갔고 내가 500만원 두 동생들이 각각 50만원 씩 나눴다.

  이렇게 남은 금액을 정산한 이유는 세 째 동생의 문상객이 절반을 넘게 찾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소리를 칠만은 하였지만 모친을 4년 동안 모신 것은 나와 아내였고 다른 사람들은 요양병원비와 초기, 충대 병원 입원비를 한 번도 지원해 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모두 내가 지불한 것이다.  

  물론 그 이유 중 하나는 모친이 모아 놓은 재산이 모두 아내가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구실을 재공하였었다.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싸우는 꼴을 보기 싫다. 이 돈은 며느리가 갖고 있어라!"

 하고 당신이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아내에게 주웠는데 그 돈이란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만큼 가난한 생활을 하던 어린 시절. 부친은 술주정뱅이였고 모친 혼자 버는 돈은 한계가 있었으며 단지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공장 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쯤에 빚더미에 앉아 있던 생활이 조금씩 청산 되었던 형편이었다. 그리고 50세 때 부친이 중풍에 걸렸었고 모친이 혼자 부양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을 연명해 나갔던 중에 그나마 직업을 갖고 있던 고속버스 청소원과 다시 연료하게 되자 그 일도 놓고 폐지를 줍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모든 돈을 세 째와 네 째에게 나눠 주웠는데 그 돈도 얼추 보면 액수가 상당히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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