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인쇄로 책을...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공개 자료실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청성에서 ...

2018년도 청성의 밭을 갈면서...

2018.07.22 13:18

文學 조회 수:25

  어제 오후 5시에 청성의 밭으로 갈 차비를 마침니다.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경운기를 싣고 출발하여 옥천 시내, 김밥집에서 천원짜리 김밥 다섯 줄을 사들고었습니다. 저녁과 내일 아침 밥까지 챙겨 든 것입니다. 밭을 갈고 팥을 심기 위해서지만 농사는 늘 뒤전에 남들 다 심은 뒤에 시기를 놓친 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곤 해서 항상 농사가 망치게 되곤 했습니다. 어쨌튼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들깨를 심려려고 모를 부워 놓았지만 모두 말라 죽었다고 가정하에 콩심는 기계와 팥씨를 한 자루 챙겨들고 나섰습니다. 들깨는 늦었고 그나마 팥을 심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아서 소용없게 됩니다.

  지금처럼 가뭄이 들고 비가 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 상태에서 농사는 모두 실패할 게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밭을 놀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산에 납품할 기계를 완성한 시점에서 이제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35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문제였습니다. 한낮에 밭을 갈게 되면 일사병에 쓰러질 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토요일 오후 5시에 준비를 끝내고 청성의 밭으로 출발하였는데 그것은 그동안 예정에도 없었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갑자기 밭에 가려고 하는 이유에 대하여 조금은 거론하고 넘어가지요. 청성의 밭은 두 곳입니다. 그리고 군서에도 산밭이 있었습니다. 내가 농사 짓는 장소는 이렇게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주업은 기계를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하여 전혀 상반된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법원에서 부동한 경매로 구입한 500만원의 청성의 두 곳의 토지는 대략 합쳐서 700평 가량 되고 군서는 산밭으로 산속에 위치한 250평의 그야말로 농사짓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뒤 늦게 출발하게 되었지요. 낮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땀이 비오듯해서해가 질 때와 헤가 뜨기 전에 밭을 경운기로 갈아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낮의 중복 더위를 피하여 470평 가량되는 밭을 로우타리 치려고 찾아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제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오늘 아침 새벽 4시에 도착하여 오전 7시 30분 경에 모두 끝냈습니다. 해가 서서히 뜨는 시각. 마침내 밭을 갈았을 때 땀으로 범벅인 상태에서도 즐겁기만 합니다.


1. 청성의 밭에 도착하는 순간 우선 들깨모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극심한 가뭄으로 모두 말라 죽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모두 사랑있었다.

  주인에게 더 넓은 땅으로 모종을 할 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빽빽히 콩나무 시루처럼 녹색의 자태를 뽐내면서 불쑥불쑥 솟아 오른 들깨모를 바라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빠졌다.

  내 눈을 의심하기라도 하듯이 두 골 가득하게 나란히 풍성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길어다 주자 그 안에 삐쩍 마른 체 시들은 싹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네 번씩이나 물을 길어다가 충분히 준 시각이 저녁 6시다.

  청성에 바로 도착하여 들깨모에 물을 주웠으니까. 그동안 목이 말라서 고생했을 것같은 들깨 싹은 이제 충분히 모종할 정도로 자라있었다. 하지만 너무 빽빽히 자라나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으며 옆에 다른 싹과 함께 성장을 멈춘 듯이 하늘로 한줄기로 자란체 줄기가 약했다. 물을 주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얼마나 물을 먹지 못해서 타들어 가기 직전일까? 총총히 자란 그 틈바구니에서 시들어 잎이 매말라버린 것도 다소 눈에 띄인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며칠만 참자! 기계를 납품하고 김포로 출장을 갔다온 뒤에 물을 듬뿍 먹여가면서 모종을 해 줄께...'

  그렇게 다짐을 한다.


  모두 네 번을 아래 도랑에서 물을 길어다가 조루로 주웠더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경운기에 시동을 넣고 밭을 갈아야만 했다. 들깨를 심을 곳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자갈밭이었다. 경사로를 따라 쑥, 망초대, 가시덤풀, 잡초, 등이 뒤엉켜서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 후반기의 식물이 곧 밭을 장악하기 위해 뜨거운 태양아래 자랄 수 있는 체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싹이 촘촘히 자라난 곳도 눈에 띄인다. 그런 것을 모두 제초제를 뿌려서 제거할 수는 없었다. 대신 뜨거운 태양빛에 매말라 죽게 하는 방법은 밭을 경운기로 로우타리 치게 되면 우선은 뿌리부터 말라 죽을 것이고 제초제도 쓰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다보니 사후양방을 하듯이 경운기로 밭을 갈아서 들깨를 모종할 곳을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21일(토요일) 오후 6였다.

  저녁을 먹지도 않고 12km 쯤 떨어진 옥천에서 청성면 밭에서 물을 길어다가 주면서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감격에 겨웠으니... 싹이 텃을 때는 햇빛을 받아서 금새 시드는 반면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는 초록색의 잎이 뜨거운 태양빛에 엽록소 활동으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싶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지 않겠는가!

  기계 제작을 하는 본업. 부산에 납품할 기계로 인하여 일주일가량 밭에 와보지 못하고 이젠 별수 없이 들깨 모종을 포기하게 된다고 낙담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들깨를 모종한 곳은 의외로 말라서 타죽지 않았으니...

  들깨 심는 걸 포기하고 팥을 심겠다고 결정을 내렸던 잘못을 반성한다.

  이런 들깨모를 아내가 봤다면 깜짝 놀랐을 터인에 마침 핸드폰도 배터리가 빠져나가서 불통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들깨모와 만남의 감격도 잠시.

  경운기를 차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올라왔다. 농로길 옆의 밭으로 직선으로 오르지 못하고 비스듬한 옆의 밭과 이어지는 경사로를 따라서 대략 20미터쯤 올라와야만 밭으로 들어서게 된다. 시동을 켜고 로우터리를 돌리면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서둘르지 않으면 금새 어두워질 태세. 벌써 해가 산으로 넘어간 건 그렇다치고 어둠이 뉘엇뉘엇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전체 밭의 면적 중에 하단부만 일부 경운기로 갈기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어두워져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지자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각이 밤 9시.

  전원 생활을 하기위해 같은 지역이지만 3km 떨어져 있는 다른 마을에 주말마다 내려오는 지인부부가 있는 주택을 찾았다. 마침 Yeong Hun 이라는 부부는 밭에 오기 전에 찾아가서 인사를 해 두웠던 터,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으니...

 같은 청성면의 다른 지역이었지만 집에 돌아갔다가 새벽에 오는 것보다 나았다.


  다음 날 새벽 네시.

  고양이 소리를 듣고 깨었다. 후레쉬를 켜소 창 문 밖으로 비쳐보니 하얀색의 암코양이가 담장 위에서 계속하여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이 내는 울음 소리처럼 귀에 거슬려서 깨곤 했었다. 이따금 방 안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방향으로 후레쉬를 비춰서 담장 위에서 거만한 몸을 깔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지만 불빛을 강하게 반사하면서도 달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거만스러움에 흠찟 놀랐다.

  꼬리라 아홉개나 달린 여우처럼 능글맞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마을에 고양이가 극성으로 번식하여 살고 있는 걸 현실적으로 느낌이 와 닿았다. 흰 색의 커다란 고양이가 담에서 뛰어 내려 다른 곳으로 달아나고 울음 소리가 멀어졌다.


 옷을 주엄주엄 갈아 있고 지인의 집을 나와 마을 회관 앞의 공동 주차장에 가는 동안 냉장고에서 어제 넣어 두웠던 김밥 세 줄을 훔쳐 오듯이 꺼내 왔다. 그리고 직접 수확하여 쪄서 마침 뜨겁게 익어던 옥수수 열 개 정도를 갖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세 개를 아침 대용으로 먹으면서 차를 운전하여 밭으로 간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집까지 12km 를 갔다 왔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새벽의 공기는 습기를 머금어 안개처럼 뿌옇다. 그리고 물기가 땅에 축축히 내렸으므로 처음에는 비가 왔는가 싶었는데 밭을 갈면서 오히려 그 습기로 인하여 먼지가 덜나기까지 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그나마 초원이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아침 이슬이 비가오지 않고 가뭄이 든 초원에 내리는구나! 그래서 들깨모도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게 아닐까?'

  마치 위대한 발견을 한 것처럼 사뭇 감격한다.

  하지만 산그늘에 가려서 해빛이 비칠 때까지 경운기로 밭의 나머지 부분을 갈기 시작하면서 날파리처럼 달려 붙어서 오른쪽 귀를 따갑게 물고 늘어지는 날벌레로 인하여 계속하여 박수를 치듯이 얼굴 위로 날아다니는 벌레를 잡아야만 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날벌레. 어제 밤부터 물려서 뜯긴 귀볼이 가렵고 침을 맞은 것처럼 따끔거린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는 오전 8시가 되었다. 낮에는 1시간도 땡볕에서 버틸 수 없었지만 밤에는 몇 시간이고 가능했다. 두 해전인가! 이런 여름철 이렇게 똑같이 밭을 갈은 적이 있었는데 한낮에 갈다보니 더위를 먹고 혼났던 적이 있었다. 일사병에 걸릴 수 있었으므로 무척 위험한 짓이다. 그러므로 밤에 밭을 갈기 위해 이틀째 보냈지만 모두 태양을 피해서 밭을 갈았다. 


Untitled_116270.JPG

 

"반갑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줘서 들깨모들아!"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감회도 잠시뿐이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밭을 갈아 놓아야만 했으니까.

  경운기로 로타리를 치면서 먼지가 수북힌 앉은 들깨모에 다시 물을 뿌려서 잎에 먼지를 제거해 주웠다.

  그리고 21일 밤 8시까지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밭을 갈았는데 전체 밭 중에 3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근처 지인이 주말에 와서 지내는 전원주택이었다. 그리고 불과 3km 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밭을 갈기 시작하여 오전 8시에 끝내게 된다.


Untitled_116271.JPG


Untitled_116272.JPG


Untitled_116273.JPG


Untitled_116274.JPG


Untitled_116275.JPG


Untitled_116276.JPG

-밭에서 내려다 본 풍경-


Untitled_116278.JPG


Untitled_116279.JPG


Untitled_116280.JPG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