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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에서 ...

청성의 밭에서... (24)

2017.05.22 14:33

文學 조회 수: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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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성의 아랫밭에서...

  어제는 청성의 아래 밭(위의 밭과 구분하기 위해서) 180평을 경운기로 갈고 고랑을 만든 뒤에 기계로 들깨를 심었다.


  사실상 농사를 짓는다는 건 힘만든다. 그렇지만 작년에는 들깨 농사조차 망쳤었다. 가뭄 때문이었는데 시기를 잘못 맞춰 너무 늦게 심었던 탓도 있었으므로 올 해는 그렇지 않기 위해서 조금 서둘렀던 것이다. 밭에서 경운기로 밭을 갈았는데 잡초로 우거진 탓에 두 번을 연속해서 잘았으므로 힘이 더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엉겅퀴, 망초대, 비름, 잡초등이 무릎까지 자란 걸 흙과 섞어주지 않아서 씨앗을 심어도 들 떠 있으리라는 게 역역해 보였다.

  하루만에 밭을 갈아 엎고 들깨까지 기계로 심어야만했으므로 서둘러야만 했다. 혼자서 밭에와서 모든 걸 하루만에 끝마치려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먼 거리와 시간부족 탓이었다. 자주 오지 못하는 이유는 기계제작이라는 본업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거리가 너무 멀었으므로 기름값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어서 한번 나와서 밭을 갈고 파종까지 하는 작물을 선택하다가 들깨가 가장 원활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물론 콩도 있었지만 수확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작년에는 파종을 늦게하는 바람에 늦가뭄으로 인하여 들깨 농사가 전혀 안 되었는데 그야말로 최악적이었다는 판단으로 올 해는 가급적이면 파종 시기를 일찍 잡았다. 그래서 어제 들깨를심게 된 것이다.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의 작업이 제작한 기계의 납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밭에 가게 된 것이다. 사실상 기계 제작이 온통 매어 있는 본업이었는데 늘상 시간이 부족했었다. 그러다보니 농사를 짓는 것조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남들보다 늦게 파종을하기 일쑤였었다. 그만큼 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여 결국 농작물이 영향을 받게 되어 전혀 수확을 할수 없을 정도로  망치곤하던 했었다. 그럴때마다 절망감이 앞서 왔었고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심적인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올 해는 조금 일찍 서둘렀다.


 봄에 심은 감나무 스무그루가 말아서 죽어 버렸으므로 조금은 안타깝다. 그렇게 기대를 하였건만 모두 죽어 버린 것처럼 매말라서 잎조차 싹을 트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만큼 안스럽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물을 한 번씩 주고 주변에 나무와 덩쿨 식물들을 제거해서 살릴 수도있었을텐데 그러지못한 것이다.


 수정할 내용 : 혼자서 1톤화물차에 경운기를 싣고 가서 망초대와 비릎 높이까지 자란 잡초로 뒤덮인 밭은 완전히 개간하지않은 주변의 노는 땅처럼 볼상 사나웠습니다. 산굽이를따라 계곡을 이룬 도랑은 골짜기를 형성하여 계속 구불거리며서 산속으로 이어졌으며 그 주변에 밭이 경작할수 있는 농경지였지만 휴직기에 농사를 짓지 않은 잡초가 자란 휴경지들이 더러  있었고 그런 밭을 볼때마다 주인을 원망하는 마음이었지만 우리밭이 또한 그렇게 사람들에게 비쳐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2. Y.Hun 네 시골집에 방문하였는데...

 "나이가 들면 시골로 내려 갈려고요."

  그렇게 뇌까이면서 Y.Hun 네 식구는 전원생활을 꿈꾸곤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H.Hun 안사람은 친정집을 구입했고, 그것을 수리했으며, 텃밭에 채소와 농작물을 재배하게 되었다고 주말마다 대전에서 청성까지 20km 거리를 다녀오곤 했었다. 

  나도 마침 어제는 밭에 들깨를 심었으므로 같이 청성이라는 지역에 함께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하게 된다. 밭에 들깨를 심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오후 7시까지는 옥천 탁구장에 도착해있어야만했지만 오후 4시가 약간 지났으므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3. 오후 7시에는 탁구를 치러 갔다.

    청성의밭에서 돌아온 시각은 오후 6시가 약간넘었다. 과속과 중앙선으로 다른 차량을 추월하면서 속도를 내어 집에 돌아왔으므로 아직 여유가 있는 셈이다.

  "내일 몇 시에 올거예요?"

 어제 밤 탁구를 치고 난 뒤 다목적실에서 나오면서 S.Sug 이라는 여성분이 내게 물었다. 사진기로 동영상을 찍어 줬었는데 그것을 USB 메모리로 다운 받아 갈 수 없다고 다음날 나와 달라는 말과 함께 내게 나오는 시각을 물었던 것이다.

  "낮에는 일해야만 해서... 저녁 일곱시에나올께요!"

  그렇게 말한 이유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연속 탁구를 치러 나가려고했었지만 금요일에는 대구로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그렇게 하지못하고 엇그저께와 어제 일요일에 이틀만 탁구장에 나가겠다고 결심을 굳혔었다.

 

  그녀는 다른 클럽의 여성으로서 나이는 45세 정도 되어 보였다. 물론 유부녀일테고... 나는 탁구장에서 여성분들에게 관심을 갖지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건 이미 불장난이나  다름바 없었다. 지금의 나이에 그런 연민으로 괴롭게 되는 걸 회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나이 탓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사랑이라는 열병에빠지기에는 육체가 늙어서 전혀 불감증에 빠진 것이다. 우선거울을 들여다보면 대머리에 백발까지 아주 확연이 늙고 병약한 모습이 보인다. 그것이 내 얼굴이라고 느끼기에는 세월을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이미 그런 감상주의에 빠지지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늘 사랑에 굶주렸고 그런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쓰는 <동호호 탁구>에 관한 인용할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기술하기 위한 묘약을 상상해 내기위해서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샤워를 한 뒤에 탁구장에 갔다. 다리에 온통 먼지 투성이였다. 경운리 로우터리에서 흙먼지가 날리면서 집중적으로 다리로 뿜어져 나왔었으니까. 그것이 온통 바지와 맨발에조차 흙먼지로 마치, 때가  낀 것처럼 얼룩이졌었다. 

  오후 7 시 10분 정도에 다목적실에들어서자 한 사람이 나와 있었는데 여성분이었다.




470평의 위 밭. 170평 아랫논